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발도르프학교의 저학년 통합교과 활동 (7) - 공교육 저학년 통합교과 활동에 주는 시사점 본문
공교육 저학년 통합교과 활동에 주는 시사점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발도르프학교의 수업을 참관하게 되면 마치 예술학교처럼 느껴질 수 있다. 모든 교과활동에 노래와 율동, 연극, 그림, 이야기, 시 등이 풍부하게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도르프교육에서는 수업에 다양한 예술적 활동을 집어넣는 것에서 나아가 교육 자체가 예술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이들이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저학년 아이들은 아름답고 안정감이 있는 교실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그리고 예술적인 활동 속에서 배움의 기쁨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이 단지 발도르프학교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공교육의 저학년 통합교과 활동에서 고려해야 할 것은 첫째, 아동에 대한 이해이다. 이갈이를 해서 기억력이 강해졌지만 여전히 모방과 판타지 능력이 강한 저학년 아이들에게 수업은 이야기와 움직임, 그림 등이 풍부할 때 가장 만족스럽게 된다. 글자를 배울 때는 자음과 모음이 하나의 기호가 아니라 의미 있는 그림으로 제시될 때 아이들은 자기 내면으로 그 심상을 가져갈 수 있다. 이것은 숫자도 어느 정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활동들은 담임교사의 적절한 보호와 지도 아래 개별성을 고려해 진행된다. 아동 각자의 발달 특성뿐 아니라 기질적 특성까지 고려할 수 있을 때 진정한 맞춤형 학습이 가능하다.
두 번째는 모든 활동 속에서 경이감, 감사함, 책임감을 길러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을 경이롭게 바라보고 작은 일에도 감사할 줄 알며 주어진 일을 책임감 있게 완수할 수 있는 어린이라는 이상은 공교육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그 방법으로 도덕적인 훈계의 방식이 아니라 판타지적 그림이 분명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연극적인 활동에서 입장을 바꾸어서 느껴보는 것, 교실에 확실한 규칙과 함께 저마다 역할이 주어지는 것 등이 요구된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담임교사에게 커다란 영향을 받기 때문에 교사는 건강한 권위를 가지고 아이들이 모방할 수 있는 생각과 감정, 행동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럴 때 아이들은 상상력이 풍부한 사고 능력, 공감의 기초가 되는 정서적 능력, 책임감 있는 의지력을 키워갈 수 있다.
세 번째는 다양한 예술 작업을 통해 치유적 효과를 고려하는 것이다. 모든 예술은 공통적으로 치유의 속성을 띤다. 이미 영유아 시기에 스마트폰이나 감각적으로 해로운 환경에 의해 감각발달에 손상을 입은 아이들에게 우리는 예술을 통한 치유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지나치게 지성이 깨어난 아이일수록 더 단순하고 쉬운 움직임 활동을 반복하는 것이 좋다. 저학년 시기에는 독서지도보다 놀이지도가 더 유익한 것은 분명하다. 온몸을 이용해 구르고 기고 걷는 작업, 축구 같은 스포츠보다 고무줄이나 목말타기 같은 전래놀이를 하는 것, 노래와 함께 손유희를 하고 리코더 같은 악기를 연주하는 것, 밀랍이나 찰흙으로 이야기의 장면을 꾸며보는 작업 등은 오늘날 감각발달에 어려움을 가진 아이들에게 커다란 도움을 줄 것이다.
말로만 전인교육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손발과 가슴, 머리를 골고루 자극을 하기 위해 수업을 잘 디자인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저학년 시기는 지성을 발전시킬 시기가 아니라는 것이 중요하다. 좀 더 손발을 많이 움직여야 하고 무엇보다 가슴으로 느끼는 시간을 넉넉히 가져야 한다. 따라서 수업활동이 너무 분주하거나 바빠서는 안 되고 고요한 순간들이 수업 속에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전체적으로 수업은 가슴으로 시작해 손발을 쓰고, 그런 다음 머리를 자극한 뒤 다시 가슴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주요수업의 시작을 노래와 시로 하고, 마무리를 이야기 들려주기로 끝내는 것은 그러한 인간의 특성 때문이다. 연극적 활동과 그림 그리기 등을 충분히 한 뒤 수업내용을 정리하고 토의하는 것은 머리보다 손발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시기의 아이들은 영유아 시기 아이들과 달리 배움의 욕구가 놀이의 욕구만큼이나 크다. 아이들의 발달특성을 잘 고려한 수업내용이 적절한 활동을 통해 제공된다면 학창시절 내내 배움은 큰 기쁨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렇지 않고 아이들의 내적 욕구와 수업내용이 괴리되고, 문제풀이식, 암기식 공부만이 주어진다면 아이들은 배움이라는 것에 진저리를 칠 것이다. 아이들은 교사라는 외적 권위에 의존해 적절한 보호와 안내를 받으며 차츰 자기주도적인 학습으로 나아갈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교육이란 인간과 인간의 만남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오늘날 교실에서 익숙한 수업방식은 무엇일까? 컴퓨터에 담긴 프로그램을 대형TV로 보여주고, 스피커로 반주와 노래를 들려주며, 학습지를 나눠주고 수업내용을 적거나 문제를 풀게 하는 것은 인간적 만남을 방해하는 일이다. 아이들, 특히 저학년 아이들은 교사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 교사가 자기를 바라봐주길 원하고 이해해주길 원한다. 그래서 교사는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고유한 선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눈을 마주치고 함께 수업이라는 예술 작업에 몰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교육은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이 될 수 있다.
교육의 본질에 인간이 있다는 것은 수업이 단지 아이들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교사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도 기능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아이들은 교사가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거울 같은 존재이다. 아이들은 교사를 성장시키는 스승과 같다. 스스로 성장하기를 멈추지 않는 교사를 보며 아이들 역시 성장한다. 건강하게 성장한 아이들이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다. 교사가 교육 본연의 가치에 헌신할 때 세상은 조금씩 온전함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인간은 무엇이고, 교육은 무엇인지, 우리가 교육을 통해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등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을 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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