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세상읽기] 가짜뉴스와 유사과학에 맞서다 - 원병묵 본문

기사 및 방송

[세상읽기] 가짜뉴스와 유사과학에 맞서다 - 원병묵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19. 7. 11. 07:01

세상엔 가짜가 많다.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기 쉬울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사실과 거짓이 교묘하게 뒤섞여 있으면 거짓을 구분하기 어렵다. 식별이 쉬운 가짜는 진짜 근처에 얼씬도 못 한다.

 

진짜와 유사할수록 가짜는 더 오래 생존한다. 가짜가 가진 본성은 생명의 본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자연의 지혜를 살펴보자. 생명이 있는 곳엔 항상 가짜와 진짜가 공존했다. 자연의 생물은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거나 먹이를 획득하는 데 유리하도록 다양한 `위장술`을 구사한다. `위장(僞裝)`을 뜻하는 프랑스어 `카무플라주(camouflage)`의 어원은 `감싸다`라는 뜻의 `moufle`에서 유래했다. 자신을 주변과 동일한 것으로 감싸며 정체를 숨길 때 생존 가능성이 증가한다. 가짜는 다양한 위장 전술과 생존 능력을 획득하며 오래도록 진화했다. 

가짜의 생존법은 진짜의 생존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가짜는 다음의 특징을 가진다. ①가짜는 진짜를 추구한다. 진짜의 본성을 타고나지 못한 가짜는 진짜가 가진 생존 능력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진짜가 되고 싶어한다. ②가짜는 진짜를 모방한다. 모방은 생존을 획득할 가장 손쉬운 전략이다. 모방에 성공할수록 가짜는 진짜처럼 오래 생존한다. ③가짜도 진짜처럼 성장하고 번성한다. 생존에 필요한 진입 장벽을 넘으면 가짜도 진짜와 마찬가지로 세력을 얻으며 성장한다. ④가짜도 진짜처럼 유전된다. 가짜의 생존 전략이 경쟁에서 살아남으면 가짜의 유전자가 후세에 전달된다. 결과적으로 가짜의 본성도 생명의 순환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가짜의 생명력은 아주 끈질기고 강력해서 단번에 뿌리 뽑을 수 없다. 가짜는 어디에나 존재하며 그래서 항상 의심해야 한다. 

가짜뉴스는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다. 가짜뉴스는 단순히 사실과 모순된 뉴스에 그치지 않고 정치적 의도와 상업적 목적을 위해 꾸준히 재생산·확대된다. 대중을 자극적인 거짓으로 선동하여 여론을 움직이고 시민들의 올바른 의사결정을 방해하는 가짜뉴스는 사회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한다. 지난해 영국과 스위스 공동 연구팀이 수학 모델을 고안하여 가짜뉴스가 선거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다. 편파적인 가짜뉴스가 특정 후보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때 유권자의 분별력에 따라 선거 결과가 바뀌는 상황을 시험한 것이다. 가짜뉴스를 알아채고 즉시 배제하는 유권자가 있는 반면 가짜뉴스를 무조건 믿는 유권자도 있다. 대부분의 유권자는 둘 사이에 놓이는데, 중요한 것은 진짜와 가짜를 식별하기 어렵지만 가짜일 수 있다고 조금이라도 의심하는 유권자가 늘면 가짜뉴스의 영향에서 벗어나 후보에 대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 가짜뉴스의 영향을 줄이려면 시민 사회가 깨어 있어야 한다. 

유사과학의 위장술은 아주 교묘하다. 과학으로 포장한 유사과학은 까다로운 과학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고 편안함을 주기 때문에 사회에 빠르게 침투한다. 그러나 유사과학의 본질은 매우 위험하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학문의 기반을 파괴한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경계는 지식을 추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데 가짜는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학문의 근간을 무너뜨린다. ②사회의 자원을 낭비한다. 매년 막대한 세금이 과학 연구에 투입된다. 유사과학은 낭비일 뿐이다. ③시민의 건강을 위협한다. 과학적 치료법을 거부하고 근거 없는 대체 치료법을 내세워 소비자의 주머니를 노리는 상업적 유사과학은 위험하다. 우리는 유사과학을 경계하고 올바른 과학 연구에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

 

현대사회를 위협하는 가짜뉴스와 유사과학 등 가짜의 위세는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정부와 언론은 시민사회의 합리적 판단을 위해 정확한 정보를 신속히 제공할 책임이 있다. 가짜에 속지 않으려면 증거와 의심에 기반한 시민사회의 과학적 태도가 필요하며 가짜를 판별하기 위한 전문가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도 매우 절실하다. 가짜의 판별이 전문가의 몫이라면, 가짜의 상술에서 벗어날 책임은 오롯이 우리의 몫이다. 

 

 

 


[원병묵 성균관대 신소재공학부 교수]

입력 : 2019.05.23

 

 

출처 : https://www.mk.co.kr/opinion/contributors/view/2019/05/340169/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