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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2024 사람과디지털포럼 기조 강연 : 테드 창 “예술은 무수한 선택의 결과… AI, 인간 예술 대체 못 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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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2024 사람과디지털포럼 기조 강연 : 테드 창 “예술은 무수한 선택의 결과… AI, 인간 예술 대체 못 해”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4. 9. 7. 09:19

테드 창 “예술은 무수한 선택의 결과… AI, 인간 예술 대체 못 해” 

 

[전문] 2024 사람과디지털포럼 기조 강연 

생성형 AI는 ‘인공지능’ 아닌 ‘인공기술의 시연’
챗지피티는 정확한 문장 생성하지만
인간언어가 지닌 의미·의도 결여
에세이 쓰기는 두뇌 위한 근력 운동
AI가 아무리 뛰어난 작품 생성해도
의미와 삶의 경험 못담아 감동 못줘

 

한겨레 한귀영 기자
2024. 7. 1.

 

제3회 한겨레 사람과디지털포럼(사람 넘보는 AI, 인간 가치도 담아낼 수 있을까?)이 2024년 6월12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려 테드 창 SF 작가가 `인공 지능, 인공물, 예술'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지난 6월12일 열린 ‘제3회 사람과디지털포럼’의 기조연설자로 참석한 테드 창의 강연은 큰 화제를 모았다. ‘인공지능, 인공물, 예술’을 주제로 40분 동안 펼친 강연은 당대 최고의 과학소설작가라는 평가가 무색하지 않게, 인공지능이 가져올 변화와 불안을 뛰어난 통찰과 아름다운 비유로 풀어내 큰 감동을 선사했다. 당사자의 요청으로 동영상이나 발표문 등 자료는 공개하지 못하지만, 강연 전문을 정리해 싣는다. / 편집자

 
 

인공지능 아닌 응용통계

 

저는 인공지능(AI)을 응용통계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능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모호할 때가 많습니다. 인간의 지능이 측정가능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논쟁이 있습니다. 인간의 인지나 동물의 인지를 설명할 때, 그리고 기계가 데이터를 처리하는 방식을 설명할 때 지능의 의미는 다 다릅니다.
 
인공지능 업계 종사자들은 자신이 개발해낸 것을 지능이라고 규정하는데, 이때 기준은 주체가 목표를 달성하는 데 얼마나 효과적인지입니다. 이 정의에 따르면, 체스 프로그램은 체스 게임에서 이기는 데 능숙하기 때문에 지능적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정의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온도 조절기가 목표를 달성하는 데 능숙하다고 해서 그 온도 조절기를 지능적이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기술과 지능을 구분해, 기술은 작업을 얼마나 잘 수행하는가로, 지능은 새로운 기술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습득하는가로 규정한 과학자도 있습니다. 저는 이 정의가 훨씬 마음에 듭니다. 인간의 직관을 잘 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뉴욕에 사는 사람이 호주 오지에 낙오되었다고 생각해봅시다. 그 사람은 호주 원주민에 비해서 음식과 물을 찾는 기술은 상당히 뒤처질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뉴욕 시민이 호주 원주민보다 지능이 낮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단지 필요한 기술이 부족할 뿐입니다. 필요한 기술을 효율적으로 습득할 수 있는 사람을 우리는 지능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지능을 기술의 습득으로 보는 이 개념은 동물에게도 잘 적용이 됩니다. 우리는 쥐가 지능이 높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쥐도 새로운 기술을 배울 수 있습니다. 2019년에 몇몇 연구자들이 쥐에게 운전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실험을 시도했습니다. 연구진은 쥐를 작은 플라스틱 카트에 넣었는데, 각 카트 안에는 3개의 구리선이 있어 쥐가 이 구리선 중 하나에 발을 대면 카트가 앞으로 가거나, 좌회전을 하거나, 우회전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반대편에는 음식이 담긴 접시가 있기 때문에 쥐는 카트를 그쪽으로 향해서 움직이려고 합니다. 연구진은 일주일에 세 번씩, 한 번에 5분씩 카트에 쥐를 태웠는데, 8주가 지난 후 쥐는 운전에 능숙해졌습니다. 24번의 시도 만에 생쥐는 인류 역사상 어떤 이도 해내지 못한 것을 능숙하게 해냈습니다. 저는 이것이 지능의 좋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컴퓨터 프로그램을 생각해볼까요? 컴퓨터 프로그램 알파제로는 인간보다 체스를 잘 둡니다. 순수하게 자신과의 대결을 통해 체스를 배웠습니다. 알파제로는 분명히 높은 수준의 기술을 보여주고 있죠. 하지만 알파제로가 그 기술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습득했을까요? 알파제로가 인간 선수보다 더 나은 실력을 갖추기까지 약 4시간이 걸렸다고 보도됐습니다. 하지만 그 4시간 동안 약 1000만 번의 게임을 연습했습니다. 인간 체스 기술자는 그랜드마스터에 도달하기까지 몇 천 번의 게임을 합니다. 알파제로가 인간과 비슷한 수준에 도달하려면 인간보다 약 1000배나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사용하는 지능의 정의에 따르면 알파제로는 그다지 지능이 높지 않습니다. 단지 비인간적으로 많은 연습을 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인공지능’이라기보다는 ‘인공기술의 시연’에 가깝습니다.
 
생쥐처럼 단 24번의 시도만으로 새로운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만약 이런 프로그램이 나온다면, 생쥐만큼이나 똑똑한 컴퓨터 프로그램이 탄생하게 되는 셈입니다. 챗지피티(GPT)와 같은 거대언어모델(LLM)이 새로운 기술을 습득할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인간언어와 챗지피티의 결정적 차이, ‘의도’

 
챗지피티가 정확한 문장을 생성한다는 사실은 놀랍습니다. 거대언어모델을 논의할 때 우리가 종종 간과하는 부분은 이러한 문장이 사실은 언어학자들이 말하는 의미의 언어는 아니라는 겁니다. 언어학자가 언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는 의사소통 체계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거대언어모델에서는 의사소통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의사소통에는 의도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거대언어모델’은 ‘거대텍스트모델’로 부르는 게 더 적절할듯합니다. 챗지피티가 일련의 단어를 표출하는 것은 매우 쉽습니다. 예를 들어 챗지피티가 “만나서 반갑습니다”라고 말하는 건 쉽지만, 실제 여러분을 봐도 반갑지 않습니다. 강아지는 언어 능력이 부족해도 사람을 보면 반가워하고 반가운 마음을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죠. 마찬가지로 아직 말을 못 하는 갓난아이도 여러분을 보고 반가워하고 자기의 기분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챗지피티는 아무것도 못 느끼고, 어떤 의도도 없기 때문에 언어를 사용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주관적인 느낌, 감정 상태를 전달하려는 의도가 있어야 의미 있는 언어적 발화가 됩니다.
 

현재 거대언어모델이 하는 일은 모방에 불과합니다. 나비가 날개에 커다란 검은 반점을 만들어서 큰 눈을 가진 포식자라고 새들을 속이는 것과 같은 이치죠. 나비는 그런 검은 점이 있을 때도 때론 새에게 잡아먹히지만, 검은 점을 통해서 새들을 속이려고 하는 의도가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챗지피티 시대, 에세이를 써야 하는 이유

 
현재 인터넷은 정보의 출처로서 영구적으로 퇴보할 위험성이 큽니다. 거대언어모델이 만든 텍스트는 광고성인 경우가 많습니다. 챗지피티가 이러한 텍스트를 바탕으로 신문 기사들을 만들 경우 정보 출처의 역할은 퇴보할 수 있습니다. 클릭 횟수만을 높이기 위한 질 낮은 텍스트가 대거 생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종류의 글쓰기를 구분하는 하나의 방법은 사고적인 글쓰기와 귀찮은 글쓰기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는지 정리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정형화된 글을 써야 하고 이 경우에는 챗지피티가 뛰어납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거대언어모델이 글을 잘 쓴다는 뜻이 아니라는 겁니다. 무의미한 텍스트가 너무 많이 필요한 현대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일 뿐입니다. 또 다른 측면은 우리는 거대언어모델을 사용해서 짧은 내용을 장황한 문서로 만들어 보내고, 그것을 받은 사람은 또 거대언어모델을 이용해서 긴 문서를 짧게 요약하는 방식으로 챗지피티를 활용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진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학생이 거대언어모델을 사용해서 에세이를 쓰는 현상에 대해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에세이 쓰기를 학생들은 귀찮아하지만 교사들은 사고력을 키우는 연습이라고 생각해 과제를 냅니다. 어느 언어학자는 교사가 학생들에게 에세이 숙제를 내는 것은 이 세상에 학생들의 에세이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학생들에게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자기 표현을 글로 쓰는 건 사고력을 더욱 예리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비유는 역도인데요. 바벨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것이 무의미해 보이지만, 축구·야구 등 어떤 스포츠든 여러분이 잘하고 싶다면 웨이트룸에 가서 바벨을 들었다 놨다 하는 그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야말로 스포츠를 잘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중 대학생이 있다면 미래 어떤 직업을 갖게 되든 그 직업이 자신이 경쟁할 스포츠 종목이라고 한번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이 어떤 스포츠 종목을 선택하게 될지는 아직 모르고, 교수님도 여러분도 모릅니다. 하지만 교수님들이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은 근력 운동이 도움된다는 사실입니다. 에세이 쓰기는 바로 두뇌를 위한 근력 운동입니다. 에세이를 쓰기 위해서 챗지피티를 사용할 경우, 마치 웨이트트레이닝룸에서 바벨 대신 지게차를 가져와서 쓰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식으로는 학생들의 인지 능력을 향상시킬 수 없습니다.
 
한 대학생이 책에서 발췌한 다섯 페이지 분량의 인용문만으로 구성된 리포트를 제출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대학생은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것보다 인용문이 더 정확하게 전달한다고 생각해서라고 말했지만 대학교수는 학생이 출처를 제대로 표기했더라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챗지피티로 쓴 에세이를 교수들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교수들은 통찰력 있는 잘 쓴 논문을 찾는 게 아니라, 학생들이 자기 생각과 언어로 에세이를 써내려가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것입니다.
 

챗지피티로 소설을 쓸 수 있을까?

 
거대언어모델이 도서 출판에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현재로서는 매우 허접하지만 향후 나아진다고 가정하더라도 우리가 챗지피티로 생성된 소설을 읽게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출판 업계 종사자들은 이 사실을 누구나 압니다. 출판사에 들어오는 원고는 넘치고 저자에게 지급하는 인세가 책 출판 비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습니다. 인세를 줄인다고 해서 책 출판 비용을 절감하지 못합니다. 대부분의 비용은 광고, 홍보, 책 표지 디자인에 지출이 되고 있습니다. 많은 책들 사이에서 여러분의 책을 돋보이게 하는 건 바로 이것입니다. 그래서 출판사들이 거대언어모델을 이용해서 수천 권의 소설을 만들어낸다 하더라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차별화하는 것은 챗지피티가 할 수는 없습니다. 돈을 지불하고 책을 구매할 의향이 있는 인공 독자를 만들어내지 않는 한, 인공지능은 이 문제에 도움을 줄 수 없습니다.
 
세계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이 2007년도에 누구나 책을 출판할 수 있는 셀프 출판 플랫폼 킨들 다이렉트 퍼블리싱을 시작했죠. 상당히 성공적이었는데, 기존의 도서 출판 산업을 파괴하지 않고 별도의 독자층을 만들어냈습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킨들 다이렉트에서 자가 출판을 하신다면 여러분이 당면한 가장 큰 어려움은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돋보이는 것입니다. 인공지능을 이용해 책을 출판할 수는 있지만, 다른 책과 차별화하는 것을 인공지능이 도와줄 수는 없습니다. 다른 작가들도 다 인공지능을 사용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술은 수많은 선택의 결과

 
이제, 합성 텍스트, 또는 합성 이미지가 예술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핵심은 예술은 표현의 한 형태라는 점입니다. 챗지피티는 스스로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없습니다. 예술가적인 의도도 없습니다.
 
생성형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예술가가 자신의 의도를 구현하는 데 있어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예술은 무수히 많은 선택의 결과물입니다. 예를 들어, 소설을 쓸 경우 여러분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단어를 선택하게 됩니다. 만약 1만 개 정도의 단어로 이루어진 단편 소설이 있다면, 여러분은 1만 번의 선택을 한 셈입니다. 그런데 생성형 인공지능 프로그램 프롬프트를 이용한다면 선택이 확연히 줄어듭니다. 만약 100개의 단어로 이루어진 프롬프트라면 여러분은 100개 정도의 선택만 하게 되어 선택이 최소화됩니다.
 
이 과정이 이루어지는 방식은 첫째, 다른 작가들이 선택한 단어들을 토대로 평균을 냅니다. 특징도 없고, 흥미롭지도 않은 단어들의 평균입니다. 또 다른 방법은 여러분이 특정 작가의 스타일을 모방하도록 프롬프트에 명령을 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스토리는 파생적인 이야기로 전락합니다. 이 두 가지 모두 흥미로운 예술적 작품을 만들 수 없습니다.
 
시각 예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화가가 그림을 그릴때도 수많은 선택이 수반되지만, 인공지능이 생성한 이미지는 대부분 일반적인 것입니다. 그 어떤 선택도 사람이 아닌 프로그램이 대신하기 때문입니다. 그 선택은 인터넷상 데이터의 평균을 가지고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미지 생성 프로그램을 이야기할 때, 사진 기술이 그림에 미치는 영향을 비교합니다. 사진 기술이 처음에 도입되었을 때는 예술적인 매체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진을 찍을 때, 많은 선택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카메라를 통해 많은 것들을 할 수 있고, 예술가들은 점차 자신만의 선택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전문가의 사진은 아마추어의 사진과 구별되었습니다.
 
포토숍과도 비교해보겠습니다. 예술가는 포토숍으로 예술 작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포토숍은 사용하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렵고,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수천 번 설정을 해야 합니다. 수학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포토숍의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매우 고차원적인 공간입니다. 하지만 이미지 생성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상당히 저차원적인 공간입니다. 여러분이 포토숍을 사용할 때는 여러분이 만들고자 하는 이미지를 미세하게 제어할 수 있지만, 생성형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사용할 경우엔 대강의 제어만 가능합니다.
 
베넷 밀러라는 영화 감독은 달리(Dall-E)라는 이미지 생성 인공지능 도구를 이용해 놀라운 이미지를 만들어냈고, 전시도 했습니다. 이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 그는 매우 긴 텍스트 프롬프트를 사용했고 몇 개월 동안 수정작업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시도한 이 기법들은 최근에 출시된 달리에서는 더는 먹히지 않는다고 합니다. 밀러 감독이 달리를 개발할 때의 목적대로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마치 마이크로소프트 페인트라는 프로그램을 해킹해서 포토숍처럼 작용하도록 한 건데, 새로운 버전이 나오면서 더는 먹히지 않는 것과 같죠. 생성형 인공지능 도구는 밀러 감독 같은 기술적 숙련도를 갖추고 흥미로운 선택을 하는 사용자들을 위해서 출시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오픈에이아이(AI)로서는 저차원적인 인터페이스가 판매 포인트가 되기 때문이죠.
 
대부분의 예술 도구의 경우, 선택하는 능력과 그런 선택을 실행하는 능력을 분리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도구에 대한 깊은 지식이 있어야 선택을 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께서 만약에 포토숍 기능을 잘 모른다면 절대로 포토숍 관련한 예술가가 될 수 없습니다. 혹자는 생성형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매우 많은 세션에 걸쳐서 그리고 또 수천 개의 단어를 텍스트박스에 넣으면 미세하게 제어된 독창적 이미지를 만들 수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로 인한 결과물은 텍스트 기반의 인터페이스를 사용한 포토숍과 같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현재 인공지능 개발 기업들이 만들고자 하는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이론적으로는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이런 생성형 인공지능 도구를 사용하는 예술가들도 예술가로 부를 수 있을까요? 또 이런 도구를 이용해 소설을 쓰는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여러 세션에 걸쳐서 10만개의 단어를 텍스트 형태로 넣으라고 할 수도 있고 그 결과 10만개로 이루어진 텍스트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저는 이런 도구는 절대로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존재한다면 사용자는 작가로 불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빅테크가 출시한 생성형 인공지능 도구는 여러분이 주입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생성하기 때문에 예술가를 위한 도구로 기능할 수 없습니다.
 

소라(생성형 AI 도구)로 만든 영화가 감동을 줄 수 있을까?

 
얼마 전 오픈에이아이는 소라(Sora)라는 텍스트 기반 영상 제작이 가능한 프로그램을 발표했습니다. 미래에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지금도 아이폰 등 기계 장치를 이용해 영화를 만들 수 있고 그 결과물이 나쁘지 않습니다. 생성형 인공지능 도구를 이용해 영화를 만든다면, 스튜디오 프로덕션에서 제작한 것보다 더 뛰어난 결과물을 만들 수 있을까요? 즉, 스튜디오 등 큰 예산을 들이지 않아도, 또 배우나 스태프 없이도 비슷한 수준의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요?
 
생성형 인공지능 도구가 얼마나 발전을 하든 이전만큼 좋은 영화를 만들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영화는 매우 많은 사람이 수많은 선택을 거쳐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작가·감독만 있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 각도를 조절하는 카메라맨, 세트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프로덕션 디자이너, 의상에 대해 선택을 하는 의상 디자이너, 속도에 대한 선택을 하는 편집작가, 음악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작곡가들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참여하는 배우들은 연기에 대해 선택을 합니다. 한 편의 좋은 영화는 수많은 선택을 거쳐 나온 결과물로 영화의 흡인력은 여기에서 나옵니다.
 
만약 이런 선택들이 평균적인 인터넷 비디오로 대체된다면 영화는 텅 비어 있는 느낌이 들 것입니다. 소라와 같은 비디오 생성 인공지능 도구는 할리우드가 지난 수십 년 동안 사용한 컴퓨터 생성 이미지(CGI)와 큰 차이가 있다는 점도 명심해야 합니다. 수많은 디지털 아티스트들은 매우 복잡한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이용해 수많은 선택을 거쳐 미세하게 조정된 이미지를 생성해냅니다. 즉, CGI의 경우 특별하고 독창적인 것이 가능하지만, 소라와 같은 생성형 도구는 비슷한 결과물을 더 싸게, 그리고 쉽게 할 수 있다고 홍보하지만 실제로는 불가능합니다.
 

 

인간은 10초마다 감동할 수 없다

 

생성형 인공지능 도구를 개발한 기업들은 이 프로그램이 창의성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홍보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술이라는 것을 땀 흘리지 않고도, 노력 없이도 쉽게 만들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이것은 불가능합니다. 예술은 모든 단계의 미세한 선택을 기반으로 이루어집니다.
 
많은 소설가는, 굉장히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며 50대 50으로 나눠서 소설을 한번 써보자고 접근해오는 사람들을 경험해보셨을 겁니다. 하지만 이러한 제안을 하는 사람들은 문장을 쓰는 것이 소설 작업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만족할 수만 있다면 이미지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놀랄 만큼 아름다운 이미지를 인간의 선택을 최소화해 만들어낼 수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생성형 인공지능 도구에게 아름다운 그림을 보여주면서 감동적인 그림을 만들어달라고 명령하면 아마도 10초마다 아름다운 영상을 내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경우 여러분께서 심오하고 감동적인 그림을 10초마다 한 번씩 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여러분께서 무엇을 보시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여러분께서는 10초마다 감동을 할 수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온종일, 10초마다, 1년 365일 내내 감동을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께서는 뛰어난 예술 작품에 금방 익숙해지기 때문에, 더 위대한 작품을 볼 때, 비로소 감동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술의 위대함은 정량화할 수 없습니다. 마치 빛을 정량화할 수 없는 것처럼요. 예술이 여러분을 감동시키는 것은 예술작품에 있는 측정가능한 속성 때문만은 아닙니다. 여러분의 개인적인 삶의 경험 때문에 감동하는 것이고, 이 둘은 분리하기 어렵습니다. 만약 예술을 즐기는 여러분의 능력에 상한선이라는 게 있다면 그것은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위대한 예술 작품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생성형 인공지능은 엄청난 양의 데이터 분석을 통해 작동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인지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또한 생성형 인공지능은 인간 노동을 절감할 수도 없습니다. 지금 인공지능이 하는 작업은 인간이 피하고 싶은 작업을 대신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생성형 인공지능은 사람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대신하면서 우리가 예술에 대해 가지는 기대 수준을 낮춥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의미를 퇴색시키기 때문에 대단히 비인간적입니다.
 
거대언어모델과 비교하면서 대부분의 인간들의 말도 독창적이지 않다고 말합니다. 사실이기도 하고 거짓이기도 합니다. 만약에 누군가가 “미안하다”고 말할 때는 과거에 이 말을 많이 했느냐와는 관계없이, 사과 자체가 가치·의미가 있습니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반갑다”고 말하는 것도 진부한 표현일지는 모르지만 의미 있는 표현입니다.
 
어떤 학생이 에세이를 제출하면서 “햄릿은 바보다”라고 이야기할 때, 많은 이들이 하는 일반적인 주장이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이 학생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그 의견을 정당화하는 것입니다.
 
예술도 비슷합니다. 여러분께서 소설을 쓰시든 그림을 그리든 아니면 영화를 찍으시든 여러분께서는 청중과 소통을 하는 것입니다. 창작물이 여러분의 고유의 삶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청중에게 도달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여러분의 작품을 새롭게 만듭니다. 이런 것들은 결코 응용통계가 할 수 없습니다.
 
 
한귀영 사람과디지털연구소 연구위원 hgy4215@hani.co.kr

 
 
 
https://www.hani.co.kr/arti/economy/it/1147113.html#cb

테드 창 “예술은 무수한 선택의 결과…AI, 인간 예술 대체 못 해”

지난 6월12일 열린 ‘제3회 사람과디지털포럼’의 기조연설자로 참석한 테드 창의 강연은 큰 화제를 모았다. ‘인공지능, 인공물, 예술’을 주제로 40분 동안 펼친 강연은 당대 최고의 과학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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