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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칼럼] '서초동 권력'이 접수한 한국사회 세계관 (2024. 6. 8.)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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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칼럼] '서초동 권력'이 접수한 한국사회 세계관 (2024. 6. 8.)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4. 7. 5. 11:49

윤석열의 '서초동 권력'이 빚어낸 '대혼돈의 멀티버스'

 

[박세열 칼럼] '서초동 권력'이 접수한 한국사회 세계관

 

2024. 6. 8.

 

 

한국은 '삼권분립'으로 설명될 수 없는 독특한 권력 지형을 갖고 있다.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의 틈새에 제 4부라 할 수 있는 '검찰 권력'이 존재한다. 검찰은 행정부 소속이지만 스스로를 '준사법기관'으로 여긴다. 한국 검찰은 행정부이면서 행정부 포함 3부의 권력을 모두 견제하는데, 이 '검찰 권력'의 핵심은 수사와 소추의 독점 권한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범죄가 되는지 안되는지 1차적으로 판단하는 권력이다.

 

원래 검찰은 법을 집행하는 행정권의 '절제'와 '인권 보호' 등을 위해 도입된 제도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식 원님 재판을 막기 위해 사법권을 행사하는 판사와 동등한 수준의 법률전문가를 국가에서 고용해 '형사 절차'의 근대화를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하지만 '기소독점권'과 같은 막강한 권한으로 '수사와 소추'의 독립성을 보장받는 한국 검찰은 3권의 사각지대에서 독특한 포지션에 자리를 비집고 들어앉아 한국 사회를 호령해왔다.

 

그리하여 한국에서는 3권 분립이 아니라 독특한 권력 분류법이 구전을 통해 존재한다. 이른바 '한국사회 세계관'이다. 여기에 따르면 한국 사회는 여의도 권력(정치)과 서초동 권력(검찰), 그리고 강남 권력(재벌)의 '삼권분점'으로 이뤄진다. 서울의 유명 지명들을 딴 이 권력 분류법은 '삼권분립'과 같은 따분한 학술적 규정보다 훨씬 직관적으로 한국사회를 설명해준다. 비유하자면, '삼권분립'이 낮의 권력 지형도라면, '삼권분점'은 밤의 권력 지형도다. 교과서와 필드매뉴얼의 관계라고 할까? 이 '구전설화'의 세계관에서 '행정부'를 따로 뺀 이유는, '정치 권력'에 입법부와 행정부가 공존하고 있어서다. 대통령이 주로 '입법권력'에서 선출돼 왔고, 정치가 행정부(정확히는 '자리')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삼권 분립'은 이데아고, '삼권분점'은 마키아벨리적 현실이다. 이 현실을 직시해야 한국 사회를 더 정확히 볼 수 있다.

 

나름대로 견제와 균형을 이뤄왔던 이 세계관 속에서 이변이 일어난 건 지난 2022년 대선 때였다. 행정권의 별첨된 '부록'이었던 검찰이 서초동 권력으로 성장하더니 급기야 '본책'을 접수하고 나서면서 주객전도가 벌어졌다. 허약한 보수 세력은 어설픈 '용병술'을 펼쳤고, 그로 인한 윤석열 대통령의 탄생은 서초동 권력이 3권분점의 균형을 깨고 여의도 권력의 절반인 행정부를 집어삼킨 사건이라 보는 게 맞을 듯 하다. 서초동 권력의 '영토 확장'에 따른 반대급부로 여의도 권력은 그만큼 쪼그라들었다. 과거 군인 권력, 혹은 정치 권력의 '종속 변수'에 불과했던 서초동 권력의 '사법굴기'다.

 

희한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내가 수사해 봐서 아는데'라며 교육 전문가, 경제 전문가를 자처하는데, 그런 대통령을 앞에 두고 정작 전문가 관료들은 "대통령에게 제가 배웁니다"며 한껏 겸양을 떠는 것이다. 수사 및 기소권을 제한하려 하자 온몸을 비틀어 반발하던 검찰은 급기야 '선출된 권력'이란 타이틀까지 획득했고, 천박한 검찰식 '우월주의'가 벌거벗은 채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자 대통령은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있는 사람한테 딱딱 물어야 되는 것이지, 그냥 막연하게 다 책임져라, 그것은 현대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정치적 책임론에 '전근대' 딱지를 붙였다. 재판에 붙여볼 것도 없이 불기소 처분을 내리는 검사의 모습이 대통령의 얼굴에 오버랩됐다.

 

아마 포항 석유 시추 지시도, MB정부 자원외교 비리 수사에서 '전문성'을 얻은 결과가 아닐까? 자원 외교를 수사했던 검사들은 슬그머니 수사를 접었고, 막대한 국고 손실의 책임자들은 대부분 처벌을 면했다. 성공률 20% 가능성에, 시추공 한 번에 1000억 원 든다는 말에 최남호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은 "자원개발은 성공불융자 개념으로 한다. 그러니까 자원개발 자체는 워낙 성공률이 높지 않기 때문에 실패 시에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 국제적인 관례"라고 했다. 대통령의 '직접 브리핑'의 자신감은 거기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

 

경제범죄를 수사하던 이복현 검사는 금융위원회의 산하 기관인 금융감독원장으로 가더니 최근 경제 위기설이 "길어도 1년 내, 바라건대 하반기 들어 정리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경제부총리 말투를 흉내내고 있다. 강남 권력은 '재벌 잡던' 검찰 권력에 순응하는 모습으로 자신의 위치를 재정립하기 시작했고. 대통령의 은밀한 프랑스 파리 술자리에 불려다니고 부산 깡통 시장에서 떡볶이를 들고 대통령과 함께 사진 찍는 재벌 총수들의 모습에서 서초동 권력의 '전리품'과 같은 그들의 처지가 읽혔다. 윤석열 정부 들어 '대기업 수사'가 사실상 사라진 건 우연일까? 오히려 삼성 이재용과 롯데 신동빈 등 재벌 총수들은 대거 사면받았다. 행정부 권력을 접수하기 전 본인들이 단죄했던 사람들이다.

 

논공행상에도 비상이 걸렸다. 서초동 권력이 행정부 구석구석 요직을 향해 진격했다. 사면권을 쥔 서초동 권력은 범죄자를 사면해 보궐선거 여당 후보로 공천하더니, 대통령실 비서관으로까지 기용했다. 그러나 '자리'를 기다리던 여의도 판에서는 "검사 출신에 이어서 이젠 전과자들에게도 밀린다"는 푸념이 터져 나왔다.

 

행정부 권력을 접수한 서초동 군단의 '지상군 사령관'격인 한동훈은 인사 검증까지 장악한 '역대 최강 법무부'를 이끌었다. 급기야 여의도로 진군해 단번에 '군정 사령관'으로 '여당 대표'직에 오른다. 그는 식민 총독이 모국어 사용을 금지하듯 "여의도 사투리"를 철폐하려 했으나 이미 패색이 짙던 상황. 결국 '총선 전투'에서 서초동 군단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만다. 이미 유권자는 서초동 정치에 질려 있었는데, 지금 이 사실은 윤석열 대통령만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총선 참패 후 사표 낸 총리가 유임되고, 채상병 특검법이 거부당했다. 대통령은 '총선 전투' 생존자들이 연 대책 회의 자리에서 "과거는 잊자"고 한다. 지지율 21%엔 다 이유가 있다.

 

행정부를 장악한 서초동 권력의 혼란상은 채상병 사건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행안부 산하 경찰은 순직한 해병대원 관련 군 수뇌부의 범죄를 수사하고 있다. 그 경찰은 해병대 수사단으로부터 사건을 이첩받았다가 국방부에 돌려준 혐의(직권남용)로 공수처에 고발당했다. 해병대 수사단의 박정훈 대령은 '이첩 보류 불복'에 따른 항명수괴죄(후에 항명혐의로 바뀜)로 군 검찰의 수사를 받고 기소됐다. 군 검찰은 박정훈 대령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VIP 격노설'을 '망상'이라 했다가 국방부 조사본부의 조사를 받고 있다. 그런데 국방부 조사본부는 이첩된 수사기록을 재검토하는 과정에서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의 혐의를 축소한 의혹으로 공수처의 조사를 받고 있다. 공수처는 어떤가. 끊임없는 '외압설'에 시달리는 와중에 '특검법'으로 압박을 받고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수사는 대혼돈의 멀티버스다. 서초동 권력이 접수한 한국 사회의 세계관에서 채상병 사건이 파생한 무수한 수사는 선형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동시성으로 존재한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평행우주의 가능성들이 난잡하게 중첩되고 얽히면서, 수사받는 자가 수사하고 수사하는 자가 수사 받는 '사법 카니발'이 펼쳐진다. 국방부와 대통령실, 군 검찰과 경찰, 행정부 기관들 사이에서 일찌기 경험해보지 못한 초현실적인 일이 벌어지는데, 그 모든 의혹들의 정점엔 '서초동 권력'의 핵심인 대통령이 술 취한 듯 흔들거리며 서 있다. 서초동이여, 대체 행정부에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입법 권력, 경제 권력을, 심지어 행정 권력을 단 한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서초동 사람들이 거대한 대한민국 사회를 움직이는 권력의 핵심부를 운용하기 시작하면서 벌어진 일들이다. 후대 역사가들은 이걸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프랑스의 드레퓌스 사건은 3권 분립이 정립되는 과정의 프랑스 제3공화국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간첩 누명을 쓴 유대인 프랑스 장교 하나를 두고 왕당파와 종교 권력이 행정 권력과 사법 권력을 좌지우지하면서 벌어진 이 사건으로 공화국의 역사가 뒤집어지고 재정립됐다. 우린 어쩌면 지금 19세기 말 전근대적 민주주의 시스템이 빚어낸 혼돈의 시대를 21세기에 겪고 있는 것일 수 있다.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4060711384537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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