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인지학적 관점에서 본 동화의 의미 (4) 본문
이야기의 서두가 충격적인데, 여기서 왕과 왕비, 공주를 그대로 보기보다는 동화의 배후에 있는 깊은 의미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일반적인 사회논리로 보아서는 내용에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
“에다”라는 독일 신화에 등장하는 유형들이 있는데 서두가 털복숭이와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분리, 이탈의 개념이 중요합니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금발머리 왕비가 죽게 되고 왕이 혼자 남게 되는데, 본디 둘이 이루고 있던 일체가 붕괴되고 구멍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왕은 향수를 가지고 있습니다. 왕비를 인간계의 왕비라고 보기보다는 하늘세계의 왕비라고 보고, 왕은 그것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왕비를 하늘의 지혜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왕이 구하고자 하는 것은 하늘의 지혜 또는 그 전의 일체로 다시 돌아가고자 하는 갈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세 등장 인물을 세상의 논리로 보지 말고 분리로 인해 조화가 깨어져서 생기는 향수 등으로 느껴보는 게 더 바람직합니다.
소외감, 분리, 부조화, 일탈의 상황이 공주로 하여금 왕국을 떠나게 합니다. 공주가 떠나는 것은 낙원으로부터의 전락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도 두 가지 의미의 추방을 볼 수 있습니다. 태초의 하느님이 아담을 창조하셨고 아담은 그 자체로서 온전한 존재였는데 나중에 하느님은 아담의 몸의 일부로 이브를 만드셨고 아담과 이브는 금단의 사과로 인하여 낙원에서 추방됩니다. 태초의 이야기를 털복숭이 이야기의 서두에서도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털복숭이 동화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털복숭이 동화도 낙원의 상실과 내면적인 시련과 내면의 노력을 통해서 다시 낙원을 회복하게 되는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동화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대부분이 미인이고 금발머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공주라는 이미지는 하늘 세계에서의 조화로움을 내면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극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의 조화로움을 내면에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공주가 세상의 물질계로 나아갈 때, 다시 말해서 낙원의 문이 닫힐 때는 얼굴에 검뎅이를 묻히거나 이상한 옷을 입습니다. 외형적인 모습은 변했지만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변하지 않는 정신적인 아름다움은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내면에 존재합니다. 심청이도 아버지에 대한 희생이 아름다움이라는 외형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어린이들은 부모가 “옛날 옛날 아름다운 공주가 살았습니다”라고 이야기를 들려줄 때 직감적으로 자신을 두고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압니다. 엄마들이 보는 아이들의 내면에는 그러한 아름다움이 내재해 있습니다.
아이들이 미디어를 통해서 보는 디즈니에서 만들어낸 이미지들은 동화의 아름다움을 망치고 있습니다. 시각적으로 보여지는 것들은 아이들에게 외적인 모습을 따라하고 선망하게 합니다. 시각적인 자극을 통한 이야기보다 엄마가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는 사랑이 넘치고 많은 의미가 있으며,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외형적인 게 아니라 내면적인 것임을 아이들은 알게 됩니다. 또한 그림책의 그림을 통해 동화를 보여주는 것은 아이 스스로 갖는 내면적인 의미를 제한하는 것이며 이야기 안에 들어있는 생기를 잃어버리게 합니다.
이야기에 세 사람(왕, 왕비, 공주)이 등장하고 왕비가 죽고 공주가 왕국을 떠나게 되는 일이 생깁니다. 이때 공주가 가지고 가는 것들이 세 가지의 옷, 반지, 물레, 실패 그리고 모피로 만든 옷 입니다.
‘3’ 이라는 숫자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좋은 것은 항상 3과 연계되어서 온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기독교에서도 삼위일체가 있습니다. 원자도 양성자, 음성자, 핵의 3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3’의 원리와 원칙이 우주의 제현상에 깊은 관련이 있고, 동화에서도 ‘3’이라는 숫자는 신비한 수입니다. 알라딘 이야기에서도 “3가지의 소원을 말하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달리 이야기해 본다면 음과 양, 남성성과 여성성이 합쳐져서 일체가 될 때 어떻게 보면 제3의 성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공주가 왕국을 떠나서 숲으로 가서 큰 구멍이 뚫린 나무에서 잠을 자게 되는데 이것은 죽음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음날 사냥을 나온 왕을 만나게 되는 것은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공주는 이전의 세상으로부터 가져온 소유물들이 있습니다.
공주가 동물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왕국을 떠나게 되는 과정이 있습니다. 인지학적 견해에서 동물계와 인간계를 볼 때 동물계는 발달과정의 어느 단계에서 멈추어 버린 것이고, 인간은 그 단계를 지나서 진화해 온 것입니다. 공주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는데 왕국의 지하실에서 삶을 다시 시작하게 됩니다. 공주는 부모님을 여윈 불쌍한 소녀라고 자신을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하늘의 세계로부터 추방당한 것을 뜻합니다. 부모를 여읜다는 것은 하늘세계의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의 세계로 와서 홀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지만 하늘의 세계, 정신의 세계로부터 가져온 소유물들이 있습니다. 정신세계로부터 가져온 선물은 공주가 시련과 고난을 겪기 전에는 사용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슈타이너는 잃어버렸던 정신세계를 다시 획득하기 위해서 꼭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자기희생이라고 했습니다. 공주는 이 과정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개념은 불교나 기독교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자기희생이라고 했던 것은 공주는 자신이 고귀한 공주였다는 인식 자체를 버리고 이전에 갖고 있던 것을 모두 주어버린 상태입니다.
이야기가 반전되기 전까지 공주는 침침하고 어둡고 재가 날리는 곳에서 생활했어야 합니다. 보잘 것 없는 일을 열악한 환경 속에서 해내면서 정신적인 세계를 다시 찾을 수 있는, 내면의 정신적인 아름다움을 다시 내보일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신데렐라에서도 비슷한 줄거리의 양상을 볼 수 있습니다. 공주가 불빛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열악한 장소에서 생활하는 것은 이 당시에는 영혼이 신체 속에 제약되어 있는 삶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내면의 아름다움이 밖으로 빛을 발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닙니다. 달리 표현하면 갱생, 부활의 신비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공주가 자기 자신을 버리고 희생하며 어려운 일을 하는 동안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왕국에서 무도회가 열리게 됩니다. 털복숭이 공주는 허락을 받고 무도회에 갑니다. 무도회에 세 번 참석하는데, 첫 번째 무도회에 참석했을 때는 해와 같이 빛나는 옷을 입었고, 금반지를 스프에 넣었습니다. 여기서 해와 같이 빛나는 옷은 자체의 아름다움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고난을 겪으면서 내면적으로 이루어낸 공주의 내적 아름다움을 의미합니다. 해와 같이 빛나는 옷은 그녀의 마음이 해처럼 빛을 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금반지는 영혼, 지혜, 일체를 상징합니다.
두 번째 무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또 다시 어려운 생활을 계속해야 했습니다. 두 번째 무도회에는 달과 같이 빛나는 옷을 입고 참석합니다. 달과 같이 빛나는 옷은 정화된 영혼이 밝게 빛나는 것을 상징합니다. 작은 물레는 유럽의 동화에서는 삶, 카르마를 짠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가 의미하는 것은 정화된 영혼을 통해서 공주가 자기 삶, 카르마의 모습을 좀 더 명확히 볼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별처럼 빛나는 옷은 마침내 완성된 공주의 정신적인 존재가 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세 가지의 옷이 궁극적으로 의미하는 것은 공주의 아름다운 마음, 정화된 영혼, 완성된 정신적 존재를 상징합니다. 마지막으로 공주가 스프에 넣었던 것은 하늘에서 가져온 실패였습니다. 실패는 십자가 모양이고 나무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실패의 십자 모양에 실을 감으면 다이아몬드 형태가 나타나게 됩니다. 실패는 영생하는 신체를 상징합니다.
본질적으로 모든 인간은 정신적인 진화, 발전 또는 정신적인 부활의 잠재력을 가지고 태어나게 되는데, 여기에 나타나는 이야기에도 이러한 것이 상징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공주가 왕에게 주었던 것은 빵으로 만든 스프입니다. 유럽에서는 빵이 우리의 밥과 같은 것이지만 성경에서는 빵이 예수님의 몸을 의미합니다. 동화에서도 성경의 이러한 의미가 상징적으로 들어있습니다.
세 번째 무도회에 참석했을 때에는 공주가 동물가죽 옷을 입고 숯검댕이를 칠했지만 왕 앞에 갔을 때 왕이 끼워주었던 반지를 보고서 왕이 털로 만든 망토를 벗기자 공주가 스스로 옷을 벗고 빛나는 옷을 드러냈다는 것은 시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완성된 정신적인 영원한 존재가 비로소 완전하게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럼으로 해서 정신과 영혼이 하나가 되었고 이것은 공주와 왕의 성스러운 결혼식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렇게 살펴보았을 때 동화가 고대의 신비라든지 정신적인 발달 과정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반지, 물레, 실패의 상징적 의미는 유럽에서 보편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것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동화를 읽는 많은 사람이 동화 뒷면에 숨겨져 있는 깊은 의미들을 알고 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비록 상징물에 대한 이해는 조금 없더라도 직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이야기를 보거나 들으며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이해는 하지 못하더라도 이것이 정신적인 것들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옷들의 우주적, 정신적 의미들은 쉽게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인지학적으로 상징물의 의미에 대하여 알려주는 책들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 이러한 이야기를 어린이들이 들으면 구체적으로 상징적인 의미는 모르더라도 직감적으로 느낌을 받고 상징으로 인해서 조금 더 고차원의 세계로 본인을 올릴 수 있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 글은 한국슈타이너교육예술협회 자료집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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