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인지학적 관점에서 본 동화의 의미 (3) 본문
털복숭이 공주
독일 그림형제
옛날 어느 곳에 금발머리 왕비를 둔 왕이 있었습니다. 왕비는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아름다웠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왕비가 앓아 눕게 되었습니다. 왕비는 앞으로 얼마 살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왕비는 왕에게 자신이 죽은 다음 다시 결혼을 하게 된다면 자기처럼 금발머리의 아름다운 사람과 맺어졌으면 좋겠다며 약속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왕비의 말에 왕이 약속을 하자 왕비는 숨을 거두었습니다. 왕은 왕비가 죽은 뒤 오랫동안 슬픔에 잠겨 있었고, 새 왕비를 맞이할 생각도 없었습니다. 마침내 신하들은 백성들을 위하여 새 왕비를 맞이할 것을 왕에게 간청했습니다. 신하들은 죽은 왕비의 아름다움에 못지않은 왕비를 찾기 위해 온 나라를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나 죽은 왕비만큼 아름다운 여자는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어쩌다 아름다운 여자를 만나면 금발머리가 아니었습니다. 신하들은 왕비감을 찾아내지 못하고 결국 되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왕에게는 예쁜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딸은 죽은 어머니 못지않게 아름다웠고, 금발머리였습니다. 어느 날 왕은 다 큰 딸을 보고 얼굴 생김새가 죽은 아내와 똑같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왕은 느닷없이 다 큰 딸을 보고 뜨거운 사랑을 느끼고, 신하들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았습니다.
“딸과 결혼을 해야겠네. 그 아이를 보면 죽은 아내가 살아온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신하들은 이 말을 듣고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버지와 딸이 혼인하는 것을 금하셨습니다. 그런 죄를 지으면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고, 결국 온 나라가 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왕의 결심은 확고했습니다. 아버지의 결심을 전해들은 딸은 어찌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아버지의 마음을 바꿀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잃지 않고 있었습니다. 딸은 아버지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제가 아버지의 소원을 들어드리려면 그 전에 해와 같은 금빛의 옷과 달과 같은 은빛의 옷과 별과 같이 빛나는 옷을 가져야 합니다. 수없이 많은 짐승의 털로 만든 망토도 있어야 합니다. 나라 안의 모든 짐승의 털을 조금씩 잘라 만든 망토여야 합니다.”
딸은 모든 짐승의 털을 가지고 망토를 만들기가 어려우니 아버지의 결심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왕은 매우 끈질긴 사람이었습니다. 나라 안에서 솜씨 좋은 여인들을 다 불러모아서 해와 같은 금빛의 옷과 달과 같은 은빛의 옷, 별과 같이 빛나는 옷을 짜도록 명령했습니다. 사냥꾼들에게는 나라 안의 모든 짐승들을 잡아오게 해서 껍질을 조금씩 떼어내게 했습니다. 그래서 수없이 많은 모피 조각들로 망토를 만들었습니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왕은 망토를 가져와 딸 앞에 펼쳐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내일 결혼식을 치르겠다고 당당하게 선포하였습니다. 공주는 아버지의 마음을 돌리기는 어렵다고 생각하여 달아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날 밤 모두가 잠들었을 때 공주는 살며시 일어나 소중한 물건 세 가지를 꾸렸습니다. 그것은 금반지와 황금물레, 작은 황금실패였습니다. 공주는 해와 같은 금빛의 옷과 달과 같은 은빛의 옷, 별과 같이 빛나는 옷도 함께 넣은 후 온갖 짐승의 모피 조각으로 만든 망토를 걸친 다음 숯 검뎅으로 얼굴과 손을 검게 칠했습니다. 공주는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궁궐을 떠났습니다.
공주는 밤새도록 걸어서 커다란 숲에 다다랐습니다. 피로에 지친 공주는 속이 비어 있는 나무로 들어가 그대로 잠이 들었습니다. 해가 떴는데도 공주는 계속 잠을 잤습니다.
어느덧 날이 환하게 밝았습니다. 그때 이 숲을 다스리는 왕이 그곳으로 사냥을 나왔습니다. 왕이 데리고 온 사냥개들은 나무로 달려가 냄새를 맡고는 나무 주위를 뱅뱅 돌면서 컹컹 짖어댔습니다. 왕은 사냥꾼들에게 어떤 짐승이 숨어 있는지 보고 오라고 명령했습니다. 왕의 명령을 따랐던 사냥꾼들은 돌아와 이렇게 보고했습니다.
“속이 빈 나무 안에 이상한 짐승이 누워있습니다. 난생 처음 보는 동물입니다. 피부는 수천 가지 모피로 되어 있는데 아직 곤히 잠들어 있습니다.”
왕은 산채로 잡아서 단단히 묶어 마차로 데려가자고 말했습니다. 왕의 말대로 사냥꾼들이 움켜잡자 공주는 깜짝 놀라며 비명을 질렀습니다. 공주는 왕을 보면서 부모님에게 버림받은 불쌍한 계집이니 보살펴 달라고 말했습니다.
“너 같은 털복숭이는 부엌일을 하면 안성맞춤이겠다. 우리와 같이 가자. 마침 재를 청소할 사람도 필요하니까.”
왕은 털복숭이를 마차에 태우고 왕궁으로 돌아갔습니다. 사람들은 계단 밑의 작은 벽장으로 털복숭이를 데려갔습니다. 그곳은 낮에도 햇볕이 들어오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털복숭이에게 벽장에서 지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털복숭이는 부엌으로 보내졌습니다.
공주는 부엌에서 땔감과 물을 나르고, 불을 지피고, 닭 털을 뽑고, 야채를 볶고, 재를 치워야 했습니다. 모두 더럽고 궂은 일뿐이었습니다. 털복숭이는 그곳에서 아주 오랫동안 고생을 하면서 지냈습니다. 아름다운 공주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그런데 어느 날 성에서 무도회가 열렸습니다. 털복숭이는 요리사에게 위로 올라가서 잠시만 구경해도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문밖에 서 있기만 하겠다고 하자 요리사는 재를 말끔히 치워야 하니 30분 안에 돌아오라고 하면서 허락을 해 주었습니다.
털복숭이 공주는 작은 등불을 들고 벽장으로 가서 해와 같은 금빛의 옷을 걸쳤습니다. 그리고 얼굴과 손에 묻은 숯 검댕이를 말끔히 씻었습니다. 아름다운 얼굴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공주는 해처럼 눈부신 옷을 입었습니다. 몸단장을 끝낸 공주는 계단을 올라가 무도회장으로 갔습니다. 모두가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당연히 진짜 공주인 줄만 알았습니다.
왕이 다가오더니 공주에게 손을 내밀어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왕은 이렇게 아름다운 공주를 보기는 난생 처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춤이 끝나자 공주는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왕은 공주가 사라지는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습니다. 공주가 어디로 갔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성문을 지키던 보초병들을 불러다 물어보았지만 공주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 사이 공주는 자기 옷장으로 가서 재빨리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그런다음 얼굴과 손을 검게 칠했습니다. 공주는 다시 털복숭이가 된 것입니다. 공주는 부엌으로 다시 돌아와서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재를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그 일은 내일 하고 임금님이 드실 스프를 끓이거라. 네가 만드는 동안 나는 올라가서 구경을 할 테니까.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떨어뜨리면 나중에 밥 한 톨도 얻어먹지 못할 줄 알아라.”
라고 말하고는 요리사는 가버렸습니다. 공주는 임금님이 드실 스프를 정성들여 만들었습니다. 스프가 다되자 벽장에서 금반지를 가져와 접시 안에 넣었습니다.
무도회가 끝나자 왕은 스프를 가져오라고 명령했습니다. 왕은 스프를 먹었습니다. 왕은 그렇게 맛있는 스프는 난생 처음 먹어보았습니다. 그런데 다 먹고 나니 접시 바닥에 반지가 하나 있었습니다. 왕은 어떻게 그릇에 반지가 들어가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왕은 요리사를 불렀습니다. 요리사는 왕이 찾는다는 소리를 듣고 바들바들 떨었습니다. 요리사는 공주에게 말했습니다.
“틀림없이 네가 스프에 머리카락을 떨어뜨린 게로구나.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너를 가만두지 않겠다.”
왕은 요리사에게 스프를 누가 만들었냐고 물었습니다. 요리사는 자신이 만들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왕은 요리사가 전에 만들었던 스프보다 훨씬 맛있었기 때문에 요리사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요리사는 털복숭이가 끓였다고 실토를 했습니다. 왕은 털복숭이를 당장 데려오라고 명령했습니다.
왕은 털복숭이에게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털복숭이는 부모를 여윈 불쌍한 소녀에 지나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왕은 털복숭이에게 왜 성에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공주는 부엌데기 말고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왕은 털복숭이에게 왜 금가락지가 스프 안에 놓여있는지 물었습니다. 털복숭이는 반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며 시침을 떼었습니다. 속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한 왕은 어쩔 수 없이 공주를 돌려보내야 했습니다.
몇 달 뒤 다시 무도회가 열렸습니다. 공주는 지난 번처럼 구경을 하게 해 달라고 요리사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요리사는 임금님이 털복숭이가 끓인 스프를 좋아하시니 30분 안에 돌아오라고 하면서 허락을 해 주었습니다. 요리사의 허락을 받은 공주는 벽장으로 달려가서 재빨리 몸을 깨끗이 씻었습니다. 그리고 가방에서 달과 같은 은빛의 옷을 꺼내어 입었습니다. 그녀가 무도회장에 모습을 나타나니 영락없이 진짜 공주 같아 보였습니다.
왕은 다가가서 만나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습니다. 춤이 막 시작되었기 때문에 두 사람도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춤이 끝나자 공주는 재빨리 사라졌고, 왕은 공주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 사이에 공주는 작은 벽장으로 돌아와 다시 털복숭이 짐승으로 변장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부엌으로 가서 다시 스프를 끓였습니다.
요리사는 아직 무도회를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공주는 작은 황금물레를 가져와 그것을 접시 안에 넣고 그 다음에 스프를 부었습니다. 왕은 가져온 스프 맛을 보고 또 다시 반했습니다.
왕은 다시 요리사를 불렀고 요리사는 털복숭이가 스프를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공주는 이번에도 왕 앞에 불려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자기는 부엌데기 말고는 아무 쓸모없는 계집아이이며 작은 황금물레 같은 것은 알지 못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얼마 후 왕은 세 번째 무도회를 열었습니다. 전과 똑같은 일이 되풀이 되었습니다. 요리사는 무엇인가 낌새를 채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 털복숭이 너는 마녀가 틀림없어. 그래서 언제나 스프 안에 무언가 집어넣어서 맛을 내니까 임금님이 너가 끓인 스프를 더 좋아하시는 거야.”
그러나 공주가 사정사정을 하자 요리사는 무도회 구경을 잠깐 하도록 허락했습니다. 공주는 별처럼 빛나는 옷을 입고 무도회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번에도 왕은 아름다운 공주와 춤을 추면서 그녀의 눈부신 아름다움에 넋을 잃었습니다.
왕은 공주와 춤을 추다가 상대방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살며시 금반지를 공주의 손가락에 끼웠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오랫동안 춤을 출 수 있게 하도록 명령했습니다.
춤이 끝나자 왕은 공주의 손을 움켜잡으려고 했지만 공주는 있는 힘을 다해 뿌리치고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재빨리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하지만 위에서 30분이 훨씬 넘도록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옷을 벗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망토를 그 위에 걸쳐 입어야 했습니다. 그런데다가 너무 서두르는 바람에 온 몸에 검정칠을 하지 못하고 손가락 하나가 하얗게 남았습니다. 그런 다음에 부엌으로 가서 왕을 위해 스프를 만들었습니다.
공주는 요리사가 없는 틈을 타서 황금실패를 접시 안에 넣었고, 왕은 접시 밑바닥에 있는 황금실패를 보고 털복숭이를 불렀습니다. 왕은 춤을 출 때 끼웠던 금반지가 털복숭이에게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왕은 털복숭이의 손을 꽉 움켜 쥐었습니다. 공주는 달아나려고 발버둥을 쳤습니다. 그 바람에 망토가 조금 벗겨지면서 별처럼 빛나는 옷이 드러났습니다.
왕은 망토를 북북 찢어 공주의 몸에서 벗겨냈습니다. 갑자기 공주의 금발머리가 치렁치렁 늘어뜨려졌습니다. 더 이상 자기를 숨길 수 없게 된 공주는 황홀한 옷에 싸여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공주는 얼굴에서 재와 검댕이를 닦아냈습니다. 그러자 이 세상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처녀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대를 신부로 맞이하고 싶소. 우리 영원히 함께 삽시다.”
왕이 말했습니다. 그래서 성대한 결혼식이 치루어졌고, 두 사람은 오래 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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