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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누리 "윤석열 등장, 우연 아냐…한국 지배 엘리트는 파시스트"
2025.01. 31.
안지현 기자
김누리 중앙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 인터뷰

김누리 중앙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는 12·3 비상계엄 사태에 빗대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저는 1979년에 대학에 들어갔고요. 올해 정년이에요. 대학에 들어왔을 때도 계엄이었고, 지금 45년 만에 또 계엄이에요. 계엄에서 시작해서 계엄에서 끝나는 세대인 거죠."
지난 24일 만난 김 교수는 현재 우리 사회가 맞은 위기는 우연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김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의 등장은 우연이 아닙니다. 지금 한국 사회가 올바로 청신하지 못한 과거를, 그 후과(좋지 못한 결과)를 지금 보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독일 유럽연구센터 소장을 맡은 김 교수에게 12·3 사태 이후 두 달 가까이 지난 우리 사회의 현주소와 해결책을 들어봤습니다.
Q.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두 달 가까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A. 아시아 최고의 민주주의라고 추앙받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갑자기 미얀마 수준으로 떨어진 거죠.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겁니다. 그런데 사실 제가 더 큰 충격을 받은 것은 그 이후예요. 한국의 지배 엘리트들이 보인 태도를 보고 저는 훨씬 더 큰 충격을 받았어요. 장·차관들, 국회의원들 그리고 방송에 나와서 떠드는 학자들, 그들 대다수가 민주주의자가 아닌 파시스트였습니다. 민주주의를 이렇게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행위에 대해서 그들은 마치 이것이 있을 수도 있는 일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어요.
Q. 한국의 지배 엘리트들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면요.
A. 우리는 '계엄'이라는 걸 정확히 잘 몰라요. 독일어로는 아주 분명해요. '크릭스 레이트'라고 써요. 크릭이 전쟁이에요. 계엄은 헌법을 정지시키고 총부리를 든 군인들이 와서 국가를 지배하겠다는 거예요. 군사 통치를 말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에 대해서 정당화하고 상대화하는, 이를 옹호하는 말들을 할 수가 있어요? 지금 국민의힘 의원들이 보이는 저런 행태들은 정말 있을 수 없는 행태들입니다. 게다가 학자라는 이름으로 이걸 정당화하는 말들을 하는 자들을 보면서 사실 좀 절망했어요. 민주화가 됐다고 하는데 그동안 무엇을 배웠는가, 한국 사회가 정말 국제적으로 칭송 받는 민주주의 국가가 맞는가, 여기에 대해서 사실은 개인적으로 굉장히 충격을 받았어요. 특히 지배 엘리트들이 그런 현상을 보이는 것은 너무나 충격적인 일이죠.
Q. 윤 대통령 구속 직후, 서부지방법원 폭동 사건 역시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A. 우리 현대사로 보면 굉장히 충격적인 사건이에요. 우리나라는 정치적으로 굴곡이 많은 나라인데 광복 이후 80년 동안 법원을 습격하는 일은 없었어요. 한 국가를 지키는 가장 중요한 기관이 대부분 정보 기관이에요. 우리는 정보 기관을 국가정보원으로 부르는데 독일의 경우 '헌법수호청'으로 부릅니다. 그 의미는 헌법을 지키는 것이 국가를 지키는 것에 핵심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 법원을 공격했다, 이건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거죠.
Q. 특히 2030 남성이 전면에 등장한 사건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A. 그와 관련해선 저는 많은 분석이 필요하다고 봐요. 왜냐하면 2030 젊은이들, 그게 남성이든 여성이든 앞으로 한국 사회의 주역이 될 세대인데 그들 안에 아주 잘못된 의식이나 행동 방식이 자리를 잡고 있다면 굉장히 치명적인 일이죠. 그러나 지금 젊은 세대 남성을 그걸로 악마화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얘기입니다. 기본적으로 폭력성을 드러낸 건 소수의 문제죠. 다만 분명한 건 그들이 선동에 취약하다는 겁니다. 극우 유튜버라는 사람들의 언어는 도저히 논리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데 그런 말에 선동당해서 행동을 벌였다고 하면 심각한 문제죠.
Q. 이들이 선동에 취약하다고 보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A. 이런 일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사실은 그 이전에 젊은이들이 받은 교육 과정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저는 생각해요. 독일에서는 민주 시민을 위한 교육을 정치 교육으로 하는데, 이 교육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 '선동가 판별 교육'입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말을 할 때 선동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능력을 초등학교 때부터 가르쳐요. 그러니까 젊은 아이들이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걸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거죠. 또 스스로 좋은 미디어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미디어 교육도 함께 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선동이 미디어 매체라는 기술 환경 속에서 주로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한국에서 이런 교육이 결여돼 있는 상황에서 나타난 피해자인 측면도 있죠. 이번에 이런 일을 통해서 그들 또한 스스로 자각하는 기회가 되길 기대하고 있어요.
Q. 청년 뿐 아니라 많은 계층 사이에서 '부정선거론'이 퍼져 나가는 이유는 뭐라고 보시는지요.
A. 부정선거론만이 아니고요. 소위 이제 음모론이라고 하는 논리적인 적합성을 갖기 어려운 설들이 난무하고 있는 게 사실이죠. 다만 그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고요. 저는 근본적으로 봐야 된다고 생각해요. 현재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허약하다는 걸 지금 배우고 있는 거죠. 그 이유는 뭐겠어요? 지금 한국 사회는 사실은 아주 깊은 의미에서 보면 민주주의 사회라기보다는 후기 파시즘 사회예요. 전기 파시즘인 제도로서의 파시즘 사회만 지난 거죠. 독일은 후기 파시즘, 즉 태도로서의 파시즘을 청산하기 위한 많은 노력들을 했고, 성공했어요. 한국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는 사라졌어요. 다만 그 이후에 태도로서의 파시즘을 청산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었나요? 태도로서의 파시즘이 무엇인지에 대한 인식이 있었나요? 아예 없어요. 그냥 그 체제가 무너지면 다 없어진다고 생각을 해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대다수의 많은 한국인들은 그런 파시스트적 선동에 취약한 사람들로 만들어 놓았다는 것을 이제는 각성해야 돼요. 이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단순한 음모론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Q. 해결책으로 '교육'을 언급하셨는데, 우리 사회의 교육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 진단하시는지요.
A. 독일은 1970년 교육 개혁을 했는데 핵심은 '경쟁 교육은 야만이다'였습니다. 학교 안에 등수도 없고 석차도 없어요. 우열을 나누는 일체 행위가 금지돼 있습니다. 대학 입학 시험도 없어요.고등학교 졸업 시험만 봐요. 90% 이상이 붙어요. 여기에 붙으면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에 원하는 때에 갈 수 있습니다. 우리로선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거죠. 한국은 학교에서 12년 간 교육을 받아요. 민주주의자가 될까요? 파시스트가 될까요? 이게 핵심적인 문제예요. 우리가 한국 교육에서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완전히 병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경쟁'을 당연시하고 우열을 낳는 걸 당연시하고 우월한 자가 지배하는 건 당연하다고 모두가 생각하고 있잖아요. 이런 환경 속에서 교육을 잘 받은 아이들, 전교 1등을 하는 아이들은 거의 자기도 모르게 확신에 찬 파시스트가 돼 있어요. 민주주의자는 이 세계를 자유롭고 평등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동체로 봅니다. 거기엔 우열이 있는 게 아닙니다. 다양성이 존중돼야 한다는 거죠. 민주주의는 책 몇 권 읽었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생활 방식, 사유 방식, 삶을 대하는 감수성, 여기서 생기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민주주의자로 성장하지 못한 거죠. 제도로서의 파시즘은 이겨냈지만, 태도로서의 파시즘은 여전히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Q. 12·3 사태가 우리 사회에 준 교훈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A. 윤석열 대통령이라고 하는 인물이 우리 사회에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에요. 지금 한국 사회가 파시즘의 과거를 올바로 청산하지 못한 그 후과를 지금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런 것들을 우선 잘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윤석열 사태'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한국의 지배 엘리트들이 완전히 시대착오적인 파시스트들로 구성돼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고요. 또 젊은 아이들 사이에서 기본적으로 잘못된 교육을 통해서 파시즘에 쉽게 현혹되는 그러한 문화가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았죠. 그래서 이것을 우리가 넘어서기 위한 근본적인 교육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결론적으로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https://news.jtbc.co.kr/article/NB12233783?code=ISSUE&idx=NK10014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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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누리 중앙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는 12·3 비상계엄 사태에 빗대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저는 1979년에 대학에 들어갔고요. 올해 정년이에요. 대학에 들어왔을 때도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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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누리 칼럼] 교권을 넘어 정치적 시민권으로
2023. 08. 01.
교육 지옥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참혹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살인적인 불볕더위 속에 모인 수만명 교사들의 절박한 심정을 알겠다. 23살, 젊은 교사의 죽음 앞에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서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어떻게 학교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 사건을 계기로 교육이 전국민적 관심사가 되었다. 문제의 핵심은 교권 붕괴다. 최근의 여론조사를 보면 붕괴의 실상은 참으로 충격적이다. 교사의 99%가 교권 침해를 경험했다고 하고, 93%가 학생 지도 중에 학대 신고를 두려워한다고 한다. 교사의 87%가 최근 1년간 사직이나 이직을 고민했다고 하고, 27%가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지금 교사들은 학부모 갑질과 악성 민원, 아동학대법 신고를 두려워하며 ‘전시 간호사 수준의 스트레스’ 속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것은 교육이 아니다. 그러니까 이 교사의 자살이 보여주는 것은 한 개인의 죽음이 아니고, 교권의 붕괴만도 아니다. 그것은 곧 교육의 죽음이다. 한국 교육이 사망했음을 알리는 부고다.
교사의 자살이 드러낸 것은 교권의 붕괴를 넘어 교육의 총체적 난맥상이다. 그렇기에 이 문제는 교사에 대한 보호 강화라는 소극적 정책이나, 학생인권조례 폐지 따위의 퇴행적 조치로 해결될 수 없다. 이제 사태의 본질을 보아야 한다. 교권 붕괴의 뿌리를 더듬어야 한다.
교권이 바닥에 떨어진 근본 원인은 무엇보다도 한국의 교사들이 정치적 시민권을 완전히 박탈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 없고, 정치 활동을 할 수 없으며, 피선거권도 없는 정치적 금치산자라는 사실―이것이 핵심 문제인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한국 민주주의는 ‘아시아 민주주의의 등불’이자, ‘세계 민주주의의 모범’이라고 평가받는다. 그러나 한국의 교사만은 민주주의의 변방에서 여전히 ‘정치적 천민’ 상태에 놓여 있다. 시민의 가장 중요한 기본권인 정치적 시민권을 박탈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치적 무권리 상태는 사회적 무기력으로 이어지고, 교육적 무력감으로 전이된다. 사실 교권의 붕괴는 지난 수십년간 교육계를 뒤덮고 있는 거대한 무력감이 불러온 필연적 결과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교사의 정치적 시민권을 완전히 박탈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대다수 국가에서 교사들은 중요한 정치 세력으로서 막강한 정치적·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특히 국회 내 영향력이 상당하다. 국회의원 중 교사 비중이 핀란드의 경우 20%나 된다. 독일도 15%이며 OECD 평균은 10% 정도이다. 대체로 국가의 선진성과 교사의 대표성은 비례한다. 선진국일수록 의회에 많은 교사가 앉아 있는 것이다. 한국의 의회에 교사가 한 명도 없다는 ―과거의 교사가 2명 있을 뿐이다― 사실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왜 선진국에서는 교사가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갖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교사는 어느 나라에서나 가장 대규모의 지식인 집단이고, 그들에게는 높은 수준의 윤리성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오늘날처럼 가치와 의미, 윤리와 도덕이 실종된 시대에 교사 집단의 지성과 윤리성은 더욱 크게 요구되는 것이다.
한국에서 교사의 정치적·사회적 영향력이 초라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박정희 군사정권 때문이다. 1963년 박정희가 박탈해버린 교사의 정치적 시민권이 아직도 회복되지 않은 것이다. 이승만 독재의 정치적 동원으로부터 교사(와 공무원)를 보호하기 위해 1960년 민주당 정부가 만든 ‘정치적 중립 의무’ 조항을 박정희는 교사의 ‘정치적 시민권 박탈’의 빌미로 악용한 것이다. ‘중립 의무’를 내세워 ‘참여 권리’를 빼앗았다. 이후 한국의 교사들은 무려 60년 동안 ‘정치적 중립 의무’의 덫에 걸려 있다. 그 결과 그들은 세계가 경탄하는 ‘케이(K)민주주의’의 화려한 무대 뒤편에서 서성대는 마지막 정치 천민이 되었다.
교사는 국가의 보호 대상이 아니고, 정치적 금치산자도 아니다. 교사는 교육의 주체로서 국가 발전을 견인하고 사회 진보를 주도하는 지식인이다. 교사는 또한 교육개혁의 수동적 객체가 아니라 능동적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이제 정치적 중립 의무라는 낡은 굴레를 떨치고 나와, 성숙한 민주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적 의무를 자각해야 한다. 요컨대, 교권 회복을 넘어 정치적 시민권을 복원해야 한다.
교사의 교권 회복이 교육의 무너진 육신을 추스르는 것이라면, 교사의 시민권 복원은 교육의 빼앗긴 영혼을 되찾는 것이다. 교권 회복을 넘어 시민권 회복을 이룸으로써 죽은 교육을 다시 살려내야 한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02609.html
[김누리 칼럼] 교권을 넘어 정치적 시민권으로
김누리 | 중앙대 교수(독문학) 교육 지옥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참혹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살인적인 불볕더위 속에 모인 수만명 교사들의 절박한 심정을 알겠다. 23살, 젊은 교사의 죽음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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