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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와 신비주의 - 최혜경 본문

루돌프 슈타이너

슈타이너와 신비주의 - 최혜경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2. 8. 8. 11:28

슈타이너와 신비주의


최혜경
(2007년 10월 10일)



인터넷에 뜨는 슈타이너에 관한 소개의 글들을 가끔 읽어 보면, 한국에서 슈타이너에 대해서 상당히 긍정적이기는 하지만 아주 깊은 오해가 그 근저에 깔려 있는 것을 느낀다. 물론 인지학이 생소한 분야이기도 하고, 슈타이너가 발도르프 교육학을 통해서 한국에 전해졌기 때문에 슈타이너를 교육자, 교육철학자 쯤으로 여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슈타이너의 삶을 설명하는 글들을 읽어 보면 으레 나오는 내용이 슈타이너가 동서양의 숱한 신비주의적 사상불교, 그노시스, 카발라, 신지학 등등의 ‘영향을 받았으며’, 서양 철학플라톤, 피히테, 실러, 괴테, 니체, 헤겔 등등의 한 말미에서 괴테의 정신을 계승하면서 동, 서양의 신비주의와 혼합한 듯이 설명하고 있다.


이미 십대에 칸트의 저서들을 섭렵하기 시작했으니 슈타이너의 독서량과 질은 사실 우리가 거의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할 수 있다. 20대에 그는 학비를 벌기 위해서 가정교사 노릇을 하면서도 그리스 철학부터 시작해서 당대의 철학까지 섭렵하였으며, 특히 그가 존경하던 슈뢰어를 통해서 괴테를 깊이 다루게 된다. 뿐만 아니라 당시 빈(Wien)의 학자, 예술가 등과의 교류를 통해서 불교, 신지학 등도 접하게 되었다.


슈타이너는 자서전에 쓰기를, 이러한 외적인 활동과 병행해서 내적으로 항상 정신세계를 “체험”하고 있었으며, 그것에 대한 것을 혼자서 외로이 지키고 있어야만 했다고 한다. 그의 독서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읽고 일방적으로 그것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정신적 체험을 통해서 얻은 것으로 그런 사상들의 한계를 인식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철학적 사조나 사상, 종교 그리고 심지어는 그가 교류했던 사람들에 대한 슈타이너의 태도는 <고차세계의 인식으로 가는 길>에 서술한 “수련을 위한 첫 번째 조건”, 즉 “겸손함”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라고 여길 수 있다. 자신이 정말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그런 철학이나, 자신과 전혀 다른 방향의 의견을 지녔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그는 항상 깊은 인간적 관심으로 대하고, 충심으로 듣고 이해하려고 하였던 것이 그의 태도였다. 예를 들어서, 그가 가장 존경했고, <자유의 철학>에서 수없이 인용하는 철학자 에두아르트 폰 하르트만은 철저히 칸트의 이원론에 근거한 비관주의 철학자였기 때문에 사실 슈타이너의 인간관과 세계관에 절대로 들어맞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타이너의 그에 대한 존경이 덜했다고는 볼 수 없을 정도의 경의를 표하였다.


이는 단지 한 예에 불과하다. 불교, 카발라, 신지학 등의 신비주의에 관한 저서들을 읽으면서도 슈타이너는 그런 종류의 신비적 체험이 자신의 정신적 체험과 얼마나 다른지를 인식할 수 있었다 한다. 스스로 그런 것들에 대해서 “내적으로 토할 정도의 반감”을 느꼈다고 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의 인류가 영혼적으로 정신적으로 어떤 상황에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 충심을 다해서 읽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슈타이너가 발견한 매우 흥미로운 점은, 신비주의적 체험이 자연과학적 물질주의와는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정신세계로 향한 길을 부인한다는 사실이다. 자연과학적 물질주의가 감각적 물질을 통해서 그 배후의 정신을 찾고자 하는 반면, 신비주의는 맑은 정신의 상태를 부인하고 감성의 영역에 머무는 “체험”을 통해서 정신세계로 들어가려고 함으로써, 정신세계가 관조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한 개인의 “주관적” 체험으로 전락하도록 만든다고 하였다. 정신세계가 주관적 체험에 불과하기 때문에 정당한 학문으로서의 상대가 되지 않고, 결국은 정신세계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과에 간접적으로 이르게 되는 것이다.


슈타이너의 정신과학에 따르면, 감각적인 물질세계를 우리의 감각으로 지각할 수 있듯이, 정신세계는 사고를 통해서 직관적으로 관조할 수 있는 것이다. 감성적 체험은 인지학적 인간학의 관점에서 보아서 꿈꾸는 상태이며, 꿈속에서 사실을 관찰할 수 없듯이, 그런 상태에서는 정신세계를 관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정신세계에 침잠해서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깨어 있는 의식으로 정신이 비쳐드는 “관념”을 통한 사고에서 직관적으로 자신 내부의 정신세계를 일구어 내는 것이다.


이는 그가 33세에 저술한 <자유의 철학>의 근간으로, 이미 이십 대에 그 기초가 완성되어 있었다. 바로 자신의 정신세계에 대한 관조와 맑은 의식 상태에서의 정신적 “체험”이 있었기 때문에, 슈타이너는 여러 철학 사조의 한계 역시 꿰뚫어볼 수 있었던 것이다. 혹자는 슈타이너가 괴테의 인간관과 자연관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분명 괴테의 정신을 슈타이너가 깊이 이해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슈타이너는 괴테의 발치에 머문 것이 아니라, 괴테가 어떤 이유에서 넘지 않은 선을 (슈타이너에 따르면 괴테가 정신세계에 대해서 너무나 큰 경외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며, 괴테를 제4문화기의 마지막 완성자라고 한다) 극복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슈타이너의 플라톤의 관념에 대한 인식, 독일 이상주의와 독일 관념론에 대한 인식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다.


여기에 <일반인간학>을 일본어로 번역한 타카하시 이와오의 해설의 한 부분을 인용한다.


“이 책을 읽으면, 저자 루돌프 슈타이너가 중부 유럽에 있어서 어떤 정신문화의 계보에 속해 있는 것을 다시 한 번 강하게 의식하게 된다. 빈케르만이나 헤르다 이래, 괴테, 실러, 독일 낭만파, 독일 관념론, 쇼펜하우어, 리하르트 바그너, 니체로 계속되는 이 계보의 특징을 한 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이들은 어떻든 마음속 깊은 곳에 상상의 힘을 믿고 있었다. ...”


“이 계보의 특징을 한 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 루돌프 슈타이너가 ... 어떤 정신문화의 계보에 속해 있는 것을 다시 한 번 강하게 의식하게 된다”고 설명하니 참 어이가 없다. 스스로 표현할 수 없는 특징을 어떻게 슈타이너를 성격화하는 데 이용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독일 낭만파와 독일 관념론이 한 계보에 속하는지, 실러, 괴테와 니체가 어떤 계보에서 연관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당연히 한 인간이 한 사회에 태어나면 그 사회의 정신적 사조를 지니고 태어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슈타이너를 어떤 정신적 계보(그것도 일관성이 전혀 없는)의 말미에 장식하는 것은 슈타이너와 그의 인지학의 근거를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설명이다. 타카하시 이와오가 쓴 해설에는 이외에도 슈타이너에 대한 그만의 어처구니없는 설명들이 숱하지만 언급의 가치가 없다고 여긴다. 이런 식의 관점은 바로 아틀란티스 제4문화기의 지식중심 교육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올바른 관찰자라면, 스스로 이해하지 못한 여러 철학적 사조들의 이름과 슈타이너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슈타이너의 관점이 그런 철학적 사조들과 어떻게 다른지를 알아내어야 할 것이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슈타이너가 반사회주의적이고 발도르프 교육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교육의 식민주의를 북돋는 것이라는 어이없는 글을 읽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슈타이너는 반사회주의자였을 뿐만 아니라, 반카톨릭주의자, 반자본주의자, 반물질주의자, 반신비주의자, 반정당정치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본성을 부인하는 모든 것을 그는 반대했다.


발도르프 교육의 “수입”이 식민주의적이라는 생각은 자신이 슈타이너에 대해서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점을 너무나 당당하게 고백하는 문장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모르면 용감해진다”라는 독일 속담이 있는데, 바로 그 모양이다. 발도르프 교육은 인간을 키우는 교육이지 독일인을 키우는 교육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발도르프 교육을 소화해서 우리 아이들을 인간으로 키우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독일의 발도르프 학교를 모방하고 독일인이 우리에게 발도르프 교육의 내용을 주입시켜 주기를 바라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면 당연히 문화식민지 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발도르프 교육의 성격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태도의 문제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출처 : http://cafe.daum.net/Wittenwaldorf/L63l/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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