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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실재론의 규범적 기초: Dave Elder-Vass와 Leigh Price에 대한 논평 (2) 본문

과학철학 및 사회과학

비판적 실재론의 규범적 기초: Dave Elder-Vass와 Leigh Price에 대한 논평 (2)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5. 2. 24. 15:04

비판적 실재론과 도덕적 보수주의

 

Dave Elder-Vass(2017)는 짧지만 사려 깊은 논문에서 Bhaskar가 지지하는 가치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그는 자본주의에 대한 Bhaskar의 사회적 비판을 받아들이고, 정치적 급진주의에 동의하며, 도덕적 보편주의도 승인한다. 그가 합의하지 못하는 것은 더 깊이 들어가 철학적 윤리의 기초와 관련이 있다. 그는 윤리에서 자연주의의 가능성을 의문시하고 Bhaskar의 도덕적 실재론도 기각한다. 그가 반대하는 것은 비판적 실재론의 윤리와 정치가 아니라, 그 규범적 입장을 철학적으로 정당화하는 방식이다. Dave Elder-Vass는 그렇게 많은 말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비판적 실재론의 실재론이 아니라 비판이 유지되길 원한다.

 

* 이 논문의 더 긴 버전은 <비판적 실재론 저널>에 게재되었다. Elder-Vass (2010) 참고.

 

이제 문제는 상대주의의 경사(slope)를 피하면서 도덕적 실재론을 버릴 수 있는지 여부이다. 필요한 것은 도덕적 보편주의에 대한 강력한 방어이다. Elder-VassJürgen Habermas의 담론 윤리에서 그것을 찾는다. Habermas에 따르면, 합리적 대화와 토론에서 참여자들은 힘(권력2)*의 개입 없이도 서로의 관점을 교환하고 서로의 주장의 장점을 평가할 수 있다. 담론에서 '더 나은 주장의 힘'은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이다. 반대로, 토론은 현상적이거나 경험적인 판단의 공동체가 아닌 실재의 관점에 초점을 맞추어 현재를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합리적 존재들의 미래 공동체를 불러온다. 관점의 상호성과 토론 참여자들의 진리 주장을 평가하는 더 큰 공동체에 대한 기대 덕분에 현상에 실재적 초월의 요소가 도입된다. Habermas의 담론 윤리를 Elder-Vass가 제시하는 것보다 더 강하게, 실재론적으로 읽으면, 이 독일 철학자가 상대주의를 억제할 수 있는 강력한 판단적 합리주의 버전을 옹호할 뿐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시사한다. 그는 더 많은 기여를 한다. 그는 기존 사회를 초월하는 가치 영역에 접근할 수 있는 실재적이지만 현상적이지 않은 공동체를 소개하면서 도덕적 실재론의 사례도 제시한다.

 

* (역주) 하버마스는 권력을 두 측면(faces) 혹은 차원(dimensions)으로 나눈다. 먼저 권력이 형성되는 차원에서 타인과 함께 공공의사(common will)를 만들어가는 자발적이며 창조적인 의사소통적 권력(communicative power)의 측면과, 그것이 다시 우리에게 이행되고 계속 유치되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서 강압적이지만 실제적인 힘을 행사하는 행정적 권력(administrative power)의 측면이 있으며, 해방적 통합이란 이 두 측면이 서로 분리되어 균형(balance)을 이루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동수, “하버마스에 있어서 두 권력”, 한국정치사상연구 제5, 한국정치사상학회, 2001 참고.)

 

이 저널의 편집자인 Leigh Price는 윤리적 자연주의와 도덕적 실재론에 대한 Dave Elder-Vass의 날카롭고 강력한 비판에 대한 답변에서 실재론적 정통성을 옹호한다.* Elder-VassBhaskar의 설명적 비판을 기각한 것에 대해 그녀는 Bhaskar의 도덕적 실재론에 대한 해석(exegesis)을 제시하고 그것이 자연주의적 오류를 성공적으로 해소하고 해결했음을 단언한다. 약간의 수정을 통해 사실에서 가치로의 전환은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칭찬할 만한 것이 된다. 그러나 설명적이고 가치론적인 문제에서 실재론적 정통성을 옹호하는 것은 비판적 실재론 내의 종교적으로 기울어진 분파의 도덕적, 사회적 보수주의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으로 이어진다.

 

* Price (2018), “Moral Realism Revindicated: Response to Elder-Vass” (원고, academia.edu에서 확인 가능).

 

마가렛 아처, 피에르-파올로 도나티, 캔터베리 주교는 페미니즘, 동성결혼, LGBTQI 권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단숨에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도덕적 보수주의와 사회적 진보주의의 대립 구도가 형성되면 평등과 정체성을 이중으로 옹호하는 좌파가 유일한 선택지가 된다. 이 과정에서 신학자들뿐만 아니라 Habermas도 비난을 받는다. 실증주의라고 의심받는 것뿐만 아니라, 더 나쁘게는 그의 사회적 보수주의 때문에도 비난을 받는다. 마치 소수자들의 정체성 정치의 과잉에 대한 다수자의 반란이 부드러운 합의주의로 용납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비록 나는 Leigh Price의 두려움을 이해하고 그녀의 정치적 입장에 공감하지만, 그녀의 도덕적, 사회적 보수주의의 혼합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 비판적 실재론 공동체 내에는 우파가 없다. 우리는 모두 일종의 사회주의자이다. 심지어 가톨릭 신자들도 확고한 반자본주의자이다. 탈세속적 인본주의자로서 나는 종교적 스펙트럼에서 유신론자-초월론자보다는 무신론자-내재론자*에 더 가깝다고 느낀다. 정체성 정치의 문제는 더 어려운 문제이다. 종종 그것은 포스트구조주의와 해체주의적 색채가 짙어 일부 실재론자들은 그것을 저주한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상관하지 않지만, 누군가가 인종주의와 가부장제를 생성 기제로 지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종 연구에 색깔론을 다시 도입하거나 소위 '젠더 이데올로기'에 반하는 성을 재배치하기 위해 비판적 실재론을 사용하기 시작하면 분명히 반대할 것이다. 비판적 실재론은 광범위한 교회이다. 나는 그 다원주의를 높이 평가하고 소중히 여긴다. 나는 포스트모던 비판적 실재론자, 기독교 사회주의자, 심지어 통합적 메타실재론자까지 만났다. 수년에 걸쳐 나는 또한 영국 실재론자들과 비판적 실재론 저널의 정통성을 높이 평가하게 되었다. 한 단계도 건너뛸 가능성 없이 Bhaskar 체계의 모든 것을 통째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은 언뜻 비생산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변증법(Dialectic)(Bhaskar 2002)을 통한 진입은 첫 번째 물결과 마지막 물결의 연결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비판적 실재론을 인기 없고 팔아먹을 수 없게 만든다. 그것은 약점이 아니다. 그것은 강점이며, 학계의 주변부에 있는 진지한 학자들이 국제 비판적 실재론 협회(international association of critical realism) 연례 학술대회에 참석하게 하는 지속적인 매력의 일부이다.

 

* (역주) 내재론(內在論): 전지전능한 신은 자연과 우주 어디에나 내재하고 있다는 설.

 

 

동일한 관찰이 종교적인 협회들에도 해당되는데, 물론 비판적 실재론이 좌파에 남아 비판적 우위를 유지한다는 전제 하에 말이다. 비판적 실재론은 다원주의를 육성함으로써 급진주의도 촉진한다. 지적 힘과 개념적 견인력에도 불구하고 학계의 주류에 합류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비판적 실재론은 시스템의 주변부에서 번성한다. 엄격한 과학 철학(실재론)으로서 그것은 견고한 측면을 가지고 있다. 지배 구조에 대한 해방적 비판으로서 그것은 또한 부드러운 측면(유토피아)을 가지고 있다. 실증주의의 대체물이 되고 대용품이 되는 순간 그것은 혼합(incorporation)의 위험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혼합이 다가오는 순간 취약점(soft underbelly)이 다시 전면에 등장한다. 그것이 비판적 실재론을 기회주의에 상대적으로 면역되게 만드는 이유이다.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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