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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영혼의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과 함께 그림그리기 본문

발도르프교육학/발도르프 미술교육+습식수채화

영혼의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과 함께 그림그리기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18. 4. 10. 10:44

영혼의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과 함께 그림그리기




저자: 에바 리스 담 (Eve-Lis Damm)


번역: 이소윤

- 독일 본 알라누스 예술대학 인지학 미술치료학 전공

- 만하임 발도르프 사범대학 미술교수법 전공


[이 책의 저자인 Eve-Lis Damm 여사는 발도르프 특수교육자이면서 인지학적 미술치료사이다. 영혼의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과 함께 그림 그리기 는 루돌프 슈타이너의 특수교육학 강의를 토대로 장애의 본질적인 접근을 다루었으며, 그림의 특수교육적인 의미에서부터 치료적인 부분으로까지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본인 역시 이 책을 통해서 현장에 많은 부분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특수교육 및 기관에 종사하시는 분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되어 번역에 들어갔다. 번역된 부분은 책의 일부분을 소개한 것이다.]



보편적인 부분



치료하기 - 양자간의 균형 잡기


먼저 개별적인 사례들이 보고되기 전에 몇 해 동안 그곳(Sonnenhof,존넨호프/ 특수 장애 아이들이 지내던 곳-역자)에서 성장한, 영혼의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서 다양하게 진행되었던 방법들을 상기시켜 보겠다.


인지학의 창시자며, 특수교육의 발판이 되었던 루돌프 슈타이너는 오랜 시간 동안 교육에서 보여준 모든 특수교육의 행위에 대해서 “치료에 매우 가깝습니다. 아리만(Ahriman)적으로 형성된 것과 루치퍼(Luzifer)적으로 형성된 것으로부터, 선한 정신이 향상되는 의미에서 그 양자의 중간선을 지키는 것으로 접근되는 것을 치료라고 여겼습니다. 아리만적인 것과 루치퍼적인 것 사이의 균형이 치료와 가깝게 서 있다고 보았습니다. 아리만적인 것과 루치퍼적인 것 사이의 균형을 치료에서 인식하였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높은 차원의 감각으로, 교육을 통해서 비로소 그 균형을 얻도록 해야만 한다는 것을 인식하였을 때, 특정한 의미에서 어린이 안에 아직은 비정상적인 것이, 병든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치료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고대에서는 치료와 교육의 단어가 똑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교육이라 함은 소위 정상적인 인간을 치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치료라는 것은 소위 장애를 지닌 사람을 위해서 단지 특수화된 교육일 뿐입니다.”(특수교육학 강의/ 열두 번째 강의)


R. Steiner는 20세기에 발도르프 교육학의 교육예술이 치료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았다. 슈타이너는 교육예술을“발도르프 교육학에서 소위 비정상적인 어린이들에게 접근시키는 교육 방법론으로 심화”시켰다. (특수교육학 강의/ 열두 번째 강의)


모든 교육의 영역들은 이 심화에 대해서 깊이 연구되어야 한다.


교육자와 한층 강화된 특수교육자가 학생에게 다가서려면, 대립된 힘들 사이에서 균형을 지녀야 한다.


이 “중심선”은 항상 특수교육자들의 목표의식에 서 있어야 한다.


이러한 활동의 목적은 무한한 많은 가능성들을 지니고 있다. 그것들 중 하나로 <색과 함께 하는 그림 그리기>가 있다.


균형을 지닌다는 것은 오로지 인간의 위치에서 대항력으로부터 한쪽으로 치우쳐진 것들을 제어하고, 구속으로부터의 중심을 조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중심을 지키는 힘을 길러야 한다.


인간을 세 영역의 시민으로 살펴본다면 신체는 물질세계에 속하고, 영혼은 내면세계에, 그리고 인간의 정신은 정신세계에 속한다.(신지학/ 도르나흐 1961)


영혼은 전달자의 역할을 한다. 지상에서의 경험들을 정신세계 안으로 지니게 하고 정신세계에서의 자극은 현세의 존재 속에서 실행되도록 한다. 색이 빛과 어둠 사이에서 존재하는 것처럼 영혼은 정신과 물질의 삶 속에서 존재한다.



색 - 중심의 현상


영혼과 색은 서로 깊은 관계를 지닌다.


“색은 영혼의 법칙을 반사합니다. 이렇게 말해도 된다면 영혼의 빛은 육체의 어둠과 함께 숨을 쉽니다. 괴테는 영혼의 색에서 육체의 움직임들을 <행위와 고통>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색은 그 안에서 영혼의 느낌을 움직이는 매개물입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빨강은 혈액과 의지의 영역을 깊게 자극합니다. 파랑은 의지의 영역과 반대되는 극인 차분한 사고를 형성하는 곳으로 향합니다. 호흡은 이완과 긴장 속에서 육체와 전체의 영혼이 함께 하는 것입니다. 생각은 본래 빛 안에서 성장하고, 우리는 단지 우리의 느낌으로 채색을 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의지의 과정은 어둠으로 사라지게 되고, 우리는 또 다시 우리들의 색 느낌과 함께 합니다. 따라서 색들은 생명력 있는 영혼의 호흡이며, 영혼은 빨강과 파랑 안에서 마치 하나인 것처럼 숨을 쉬는 것입니다.


통계학적인 개념으로 색이라고 하는 것은 영혼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놔둔 채 단지 그것을 파악하는 것입니다.”(마가레테 하우쉬카 Margarethe Hauschka/ 회화적인 호흡연습)


색이 매개물로써 영혼을 느끼고 움직일 때, 그것은 인간 안에서 하나의 현상으로 일어난다. 또한 색의 분위기는 자연현상에서도 일어난다.


그것이 정신세계에서 우리의 감각세계 안으로 비춰지면 우리에게는 무지개처럼 이것이 문이나 혹은 다리로 물질과 정신 사이에서 깊이 관계한다.


<색은 자연의 영혼이며, 완전한 우주이고, 우리가 색을 공감하는 순간 우리의 영혼에 관심을 갖는다.>(마가레테 하우쉬카 / 예술적인 치료 )



그림 그리기 - 영혼의 숨 쉬는 과정


인간은 그림그리기를 통해서 영혼을 움직인다. 그림그리기는 외적인 세계와 내적인 세계를 흔든다. 영혼을 불어넣는 방법으로 주변에 감성의 문을 열어놓고, 보여지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지각하는 것들은 내적인 삶을 변화시키는데, 이렇게 지각한 것을 다시 색과 붓으로 종이 위에 그려본다.


이 과정에서는 많은 능력이 요구된다.


그림 그리기를 시작하는 모든 인간은 스스로 관찰력이 향상되는 것을 확인한다.


영혼의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부족한 관찰력을 가르친다는 것은 매우 큰 의미를 가진다. 어떤 아이들은 관찰은 하지만 그 인상이 사고 안으로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색을 이용해서 그림을 그리게 되면 무엇인가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사람은 다름 아닌 색을 통해서 영혼 세계에 대한 관심을 갖습니다. 회색의 세계는 무겁게 반사되어 메마르고 외롭게 합니다. 색채의 세계는 우리의 일상을 구제해주는 역할을 하는데 이러한 결실 없이는 의식은 무겁고 어렵게 다가옵니다. 왜냐하면 색은 그것들의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색으로 깨어나고, 어둠 속으로 잠들고, 그리고 의식은 흐려집니다.>(마가레테 하우쉬카/ 회화적인 호흡연습)


다양한 방법으로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영혼에 숨을 불어 넣어준다.


그림그리기에 깊이 있게 몰두하고, 거리를 두고 관찰을 하게 되면 형성되는 것에 새롭게 접근된다. 여기에서 움직임에 변화를 주게 된다.


미리 준비된 색들은 영혼의 호흡에 영향을 준다.


빨강은 우리에게 다가오고, 파랑은 넓은 곳으로 나아간다. 색상환에서는 이런 식으로 움직임이 일어나게 되는데, 빨강이 파랑과 섞이게 되면서 불쾌감을 주지만, 파랑색이 빨강색과 섞이게 되면 사람이 자유로워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즉, 긴장과 이완, 들이마시고 내쉬게 되는 작용이다. 마가레테 하우쉬카는 이러한 것을 토대로 <회화적인 호흡연습>을 발전시켰다.(R. Steiner/나의 인생길-장석길 역) 누군가 이 연습을 실제로 해본 경험이 있다면, 이 연습이 얼마나 치료적인 그림을 위해 큰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생동감 있고, 산뜻하게 호흡을 고르게 하고 경직, 긴장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 방법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면, 이것을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하게 될 것이고, 또한 영혼의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서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괴테는 놀라운 방법으로 호흡의 작용을 표현한다.



숨을 쉬는 것에는 두 가지의 관대함을 지닌다.


공기를 들이마시고, 그것을 비우는 것이다.


공기를 들이마실 때 몸이 움츠러들다가, 내쉬면서 편안해진다.


이렇듯 삶에는 놀라운 결합이 일어난다.


당신이 스스로 억압받을 때 신에게 감사하라.


당신이 다시 해방될 때, 신에게 감사하라.





* 이 글은 이소윤 선생님의 번역글입니다. 출처가 확인되는 대로 출처표시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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