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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와 뉴턴 - 홍성욱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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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와 뉴턴 - 홍성욱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18. 4. 8. 10:21

괴테와 뉴턴



불후의 명작 '파우스트'의 저자 괴테는 독일이 낳은 대문호로, 만유인력의 개념이 등장하는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의 저자 뉴턴은 영국 최고의 과학자로 칭송된다. 이 두 거장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대표하지만 빛과 색깔을 연구했다는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다. 


대학생 시절, 프리즘을 사용해 간단한 실험을 하던 뉴턴은 기존의 광학 이론이 모두 잘못돼 있다는 실마리를 잡았다. 당시 빨강.노랑과 같은 색깔은 태양빛과 같은 백색광이 '변형'돼 만들어진다는 이론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는데, 뉴턴의 실험은 백색광 속에 빨강.노랑 등의 색광(色光)이 혼합돼 있음을 시사했다. 뉴턴은 이 이론을 토대로 첫 논문을 발표했는데, 그 결과는 오해와 비판뿐이었다. 그는 상처를 받은 채 광학 연구를 중단했으며 예순이 넘어 영국 최고 과학자의 지위를 얻은 뒤에야 '광학'의 집필과 출판에 착수했다. 빛과 색깔에 대한 혁명적인 이론을 만들고 30년이 지난 1704년 그의 '광학'은 출판됐다. 


역시 20대 중반, 괴테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써서 작가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그렇지만 그는 문학뿐 아니라 생물학.광물학 같은 과학 분야를 진지하게 연구했으며, 문학에서 과학에 이르는 모든 지식의 통일성과 삶의 총체성을 믿었다.


괴테는 41살이 되던 해, 프리즘으로 실험하다 뉴턴의 이론이 잘못됐다는 실마리를 잡았다. 프리즘을 통해 바라본 흰 벽은 여전히 흰 벽이었고, 반면 검은색 그림이 그려진 흰 벽을 바라봤을 때는 흰색과 검은색의 경계에서 노랑.파랑.빨강이 나타났다. 뉴턴의 이론은 백색광에 다양한 색광이 혼합돼 있다는 것이었는데, 이 이론이 흰색과 검은색의 경계에서 색깔이 만들어지는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게 괴테의 해석이었다. 그는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모든 색깔이 만들어진다는 새로운 이론을 제창했으며, 자신의 이론과 실험을 집대성해 1810년 '색채론'을 출판했다. 괴테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시인으로서 자신의 업적은 보잘것없지만 색깔의 본질을 이해한 유일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무척 자부심을 느낀다고 쓰기도 했다.





괴테는 뉴턴의 이론을 과학의 권위를 빌린 독재라고 비난하면서 이것이 전제정치나 무정부주의 같은 위험한 정치사상과 일맥상통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뉴턴의 7가지 기본색에 반대해 빨강.노랑.파랑의 삼원색을 주장했고, 이 각각에 초록.보라.주황이 심리적 보색으로 대응된다고 강조했다. 빨강이 정열과 흥분, 파랑이 수축과 차분함에 대응한다는 색깔의 심리적 효과를 처음 주장한 사람도 괴테였다.


화가들은 괴테의 색깔이론을 환영했다. 영국의 화가 터너는 삼원색과 보색을 강조한 괴테의 색깔이론이 뉴턴의 색깔이론보다 화가의 작업과 더 잘 부합한다고 봤으며, 색깔의 심리적 효과를 자신의 그림에 응용했다. 반면 과학자들은 괴테의 이론을 철저하게 배격했고 무시했다. 19세기 영국의 과학자 토머스 영은 괴테의 색깔이론이 "인간 지성의 도착(倒錯)"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혹독하게 비난했다. 인문학과 과학, 과학과 예술의 거리는 이렇게 멀어졌다.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색깔이 생겨난다는 괴테의 이론은 과학적 근거가 없지만 그의 '색채론'은 인간의 색채 인식에 대해 뉴턴이 답하지 못한 문제를 다루고, 이에 대한 해답을 주고 있다. 20세기 들어 과학자 하이젠베르크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이런 이유에서 괴테의 색깔이론에 대해 깊이 천착했다. 색깔 인식에 대한 최근의 생리학 연구도 괴테의 이론과 잘 부합하고, 물리학 학술지 '피직스 투데이' 최근호는 괴테의 색채론을 재평가하는 논문을 게재했다. 멀기만 했던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적 이성은 이제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



홍성욱 서울대 교수.과학기술사

2004.06.10



[출처 : http://news.joins.com/article/348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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