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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는 어떻게 꽃이 잎의 변형기관이라는 사실을 알았나 - 강석기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18. 4. 8. 10:16

괴테는 어떻게 꽃이 잎의 변형기관이라는 사실을 알았나



위대한 시인이기보다는 뛰어난 과학자로 불리기를 바랐던 독일의 대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61세 때인 1810년 자신의 최대 역작인 ‘색채론’을 펴내며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의 ‘광학’에 도전장을 던졌다.


그는 이 책에서 색채는 단색 광선의 결합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는 뉴턴 광학은 폐기해야한다며 색채 현상은 밝음과 어둠의 양극적 대립 현상으로 봐야한다고 주장했다. 괴테는 “내 문학작품은 다른 사람들도 쓸 수 있는 것이지만 색채론만큼은 독창적인 불멸의 업적”이라고 자신했지만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물론 오늘날 관점으로도 괴테의 이론은 전혀 과학적이지 못하다.



‘식물 형태론’ 속편을 위해 괴테가 의뢰한 엽화된 장미꽃 수채화. 괴테는 ‘식물 형태론’에서 이 형태를 자세히 묘사했다.



하지만 괴테가 41세 때인 1790년 발표한 ‘식물 변태론’은 얘기가 다르다. 이 책에서 괴테는 “줄기에서 잎으로 확장해 매우 다양한 하나의 형태를 갖게 된 바로 이 기관이 꽃받침에서 수축했다가 꽃잎에서 다시 확장한다. 마지막으로 열매로 확장하기 위해 생식기관(수술과 암술)에서 다시 수축한다”고 쓰고 있다. 즉 꽃을 이루는 기관은 잎이 변해서 만들어졌다는 주장인데, 색채론과 마찬가지로 그의 생전에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색채론과는 달리 식물 변태론은 20세기 후반 꽃구조 형성에 관여하는 유전자들이 속속 밝혀지면서 ‘근본적으로’ 옳은 이론임이 밝혀졌다. 즉 꽃구조 형성 유전자가 고장날 경우 잎처럼 생긴 구조가 꽃받침, 꽃잎, 수술, 암술을 대신한 것이다. 그렇다면 괴테는 어떻게 ‘꽃은 잎이 변형된 기관’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을까?



●이상하게 생긴 장미꽃 주목


어느 날 괴테는 정원을 산책하다 우연히 이상하게 생긴 장미꽃을 발견한다. 꽃의 중심에 수술과 암술이 있는 대신 줄기가 올라오고 거기에 빨간색 작은 꽃잎과 녹색 작은 잎이 여러 장 붙어있었다. 이 기형 꽃을 면밀히 관찰하던 괴테는 꽃이 결국은 잎의 변형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즉 괴테가 본 기형 장미꽃은 잎의 변형이 불완전해 꽃받침과 꽃잎은 만들어졌으나 수술과 암술은 형성되지 못한 상태라는 것.



엽화가 심하게 일어난 장미꽃 봉오리의 단면. 엽화의 정도는 꽃구조가 어느 정도 남아있는 경우에서 완전히 소멸된 수준까지 다양하다.

 


괴테 이후에도 몇몇 식물학자들이 이런 현상을 관찰했고, 특히 영국의 식물학자 맥스웰 마스터스는 1869년 펴낸 책 ‘식물 기형학(Vegetable Teratology)’에서 이런 현상에 ‘엽화(葉化, phyllody)’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 뒤 엽화가 일어나는 원인이 하나 둘 밝혀졌는데, 가장 큰 원인은 파이토플라스마(phytoplasma)라고 불리는, 식물에 감염하는 기생 박테리아로 밝혀졌다.


파이토플라스마는 식물과 식물을 먹는 벌레를 이중으로 숙주로 삼아 살아간다. 즉 감염된 식물이 꽃을 피우지 못하게 해 계속 잎을 만들게 하고 여기에 꼬인 매미충 같은 벌레에 옮겨 타 다른 식물로 이동한다. 벌레가 식물의 수액을 빨아먹을 때 침에 들어있던 파이토플라스마가 옮는 것. 결국 식물은 생식기관인 꽃을 피워야 열매를 맺을 수 있는데, 박테리아 운반체인 벌레의 먹이가 되는 잎만 계속 만들다가 씨앗도 보지 못하고 일생을 마감하게 된다. 

 


●박테리아 단백질이 식물 단백질 파괴 유도


학술지 ‘플로스 생물학’ 4월호에는 파이토플라스마가 식물이 꽃을 만들지 못하게 하는 메커니즘을 분자차원에서 규명한 연구가 실렸다. 영국 존인네스센터의 연구자들은 모델식물인 애기장대를 대상으로 즉 파이토플라스마의 SAP54라는 단백질이 식물의 꽃구조 형성에 관여하는 단백질에 달라붙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런 결합이 일어난 뒤 식물 단백질이 파괴됐다.



파이토플라스마 박테리아의 또 다른 숙주인 매미충(Aster leafhopper). 실험 결과 매미충은 정상 꽃이 핀 식물보다 엽화된 꽃이 핀 식물을 선호했다.



연구자들은 추가 연구를 통해 SAP54가 식물의 RAD23이라는 단백질에도 달라붙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RAD23은 단백질 파괴 공장인 유비퀴틴 프로테아좀 시스템(UPS)으로 처리할 단백질을 운반하는 역할을 한다. 즉 SAP54가 한 손에는 꽃구조 형성 단백질을 잡고 다른 한 손에는 RAD23을 잡은 채 UPS로 가 꽃구조 형성 단백질이 파괴되도록 만든 것이다. 원래 UPS는 세포 내에서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지거나 변형돼 해로울 수 있는 단백질을 파괴하는 곳인데, SAP54의 농간으로 한창 일해야 할 멀쩡한 단백질을 부수게 된 것.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매미충 같은 매개체 벌레들이 정상적인 꽃이 핀 식물보다 엽화된 꽃이 핀 식물을 더 선호한다는 것. 식물을 방문한 매미충이 알을 낳은 비율도 정상 식물이 20% 수준인 반면 엽화된 꽃이 핀 식물은 80%에 달했다. 연구자들은 이런 선호도의 차이를 꽃구조의 차이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식물 변태론으로 이끈 계기가 된 기형 꽃을 피우는 장미가 기생 박테리아의 농간으로 만들어진 좀비 식물이라는 사실을 괴테가 알았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2014년 04월 21일


[출처 : 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4305]



* 조만간 괴테의 <식물론>이 번역돼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괴테 연구자인 전영애 교수님의 괴테 전집 번역의 일환입니다. "전 교수는 수년 전부터 괴테 전집을 새로 번역하는 기나긴 작업에 돌입했다. 시·소설 외에 자연과학 서적도 포함돼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괴테의 `식물론`은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번역이다. 그는 "200년 전 이야기가 지금의 사람들에게 읽힐 수 있도록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http://news.mk.co.kr/newsRead.php?no=170266&year=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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