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발도르프 교육의 철학적 이해: 교육예술을 위한 요청으로서의 발달에 따른 교육단계 - 강상희 (2) 본문

발도르프교육학/발도르프 교육철학

발도르프 교육의 철학적 이해: 교육예술을 위한 요청으로서의 발달에 따른 교육단계 - 강상희 (2)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3. 1. 9. 21:47

3. 교육예술을 위한 요청으로서의 발달에 따른 교육단계

 


예술로 요청되는 교육에 있어서 핵심은 형성되어 가는 인간의 본질을 인식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술가로서의 교육자는 인간의 본질을 이루는 것과 인간 본질을 이루는 것의 발달 과정에 대한 지식을 익히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교육예술가는 특정한 연령 단계에서 인간 본질의 어떤 부분에 영향을 주어야 하는지, 그런 영향이 어떻게 사실에 적합하게 이루어지는지를 알아야 하기(EG, 21) 때문이다.


슈타이너는 예술로서의 교육이라는 전제 아래서 형성 과정에 있논 인간의 본질로부터 교육을 위한 관점이 생겨나므로 인간 본질의 형성 과정을 인식하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렇게 볼 때 인지학적 인간론에서 파생된 발달 단계에 따르는 교육은 발도르프 교육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인지학적 인간학은 각 교육단계를 정하는데 영향을 미친다. 교육단계를 정하는 기준이 되는 것은 슈타이너의 인간이해에 기초한 발달론이다. 슈타이너는 인간 발달에 따른 연령단계의 몸-영혼상의 공통성들을 제시하고 각 단계의 특수한 교육과제와 내용, 방법들을 지시하였다. 모든 학급과 학과가 다루어야 할 내용 중 어떤 것은 대략적으로 지시하고 읽을 거리의 선택 등은 아주 상세히 지시한다.


슈타이너는 7년 리듬(Hebdomadae)에 따라 인간의 발달 시기를 분류한다. 인간의 본질 지체들인 물리적 신체, 에테르체, 아스트랄체 그리고 자아가 “탄생”을 거쳐 변용되는 7년(Jahrsiebte)이라는 리듬이 발달론의 기본 틀을 이룬다. 그런데 이것은 히포크라테스 등이 그랬던 것처럼 치아를 갈거나 사춘기의 시작을 보고 읽어낸다(Ullrich, 1989b: 465).


슈타이너에 따르면 인생의 첫 7년을 지배하는 것은 물리적 신체이다. 7세까지의 첫 7년기 단계에서는 어린이의 외적 감각기관들이 풀려나 있다(EE, 21). 첫 7년기 단계에서는 “독창적인, 놀이에서 확인되는 모방"(Kügelgen, 1985: 14)을 통해 외적인 감각들이 형성된다. 따라서 어린이가 신체적으로 모방할 수 있는 물리적 환경의 제공이 이 시기에 매우 중요하다. 물리적 환경은 형태와 색깔이 풍부하여야 하고 물리적 대상은 어린이가 자신의 작업을 통해 상상력을 적용할 수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런 맥락에서 슈타이너는 냄킨으로 인형을 만드는 것을 하나의 예로 들고 있다. 이때 세계는 선하다라는 것이 세계를 표현하는 모토가 된다.


슈타이너의 인지학적 발달론에 의하면 젖니를 갈 무렵인 7세쯤에 에테르체가 ‘탄생’한다. 이로써 14 세까지의 두 번째 7년기 단계에서는 습관, 기억, 기질 등이 자유롭다(EE, 21). 에테르체의 발달에 영향을 주는것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보고 파악된 생생한 상(像)이기 때문에 이 시기 발도르프 교육은 어린이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 동화, 우화 그리고 신화를 강조한다. “에테르체가 모든 사물 속에 숨겨져 있는 리듬을 감지할 수 있도록 에테르체에게 리듬을 부여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이 시기 발도르프 교육은 그리기, 체조, 음악, 시나 이야기 낭송 등 예술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 단계에서 발도르프 교사의 “애정 깊은, 구상적 예술적으로 자극하여 본받게 하는 권위"(Kügelgen, 1985: 14)를 통해 내적 감각들, 즉 상상력과 기억력이 발전된다. 이때의 모토는 세계는 아름답다는 것이다.


인지학적 발달론에 의하면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아스트랄체가 ‘탄생’한다. 이후 20, 21세까지의 세 번째 7년기 단계에서 비판적 오성, 환경과의 독립적인 관계가 자유롭다(EE, 21). 세 번째 7년기에서 개념-추상적 사고와 독립적 판단력이 발달된다. 따라서 이 시기 발도르프 교육은 학생들의 판단력의 배양에 중점을 두고 지적 발달을 강조하는 학과가 교과에 도입된다. 세계는 참되다라는 모토 아래서 “자유롭게 하는 대가다움, 자유롭게 선택한 이상의 추구는 젊은이를 책임 의식과 자아발견으로 이끈다"(Kügelgen, 1985: 14).

 

마지막으로 21 세 전후 자아가 ‘탄생’하면 신이 내부로부터 인간에게 말을 걸어온다.


이러한 인지학적 발달 모텔에 따라 발도르프 교사는 어린이를 교육해야 한다. 그밖에 다른 모든 것들을 슈타이너는 “인간교육의 법칙에 어긋나는 것 "(EE, 2 1)으로 간주한다. 각 단계에서의 교사의 행동 역시 인지학의 규정에 따라 결정된다. 각 신체, 즉 물리적 신체, 에테르체 그리고 아스트랄체의 탄생 이론이 교사의 행동을 결정한다. 역으로 이런 원칙에 맞지 않는 것은 어느 것이나 장려되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예컨대,


“대략 7세와 14, 15세 사이에 어린이는 감각기관에서 완전히 영혼이 되지만 아직은 정신이 아니어서 논리적 맥락에, 주지적인 것에 중심 가치를 두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어린이는 영혼 내면에서 굳어져 버린다. [...] 우리가 논리보다는 정서를 되어 가는 대로 두면 그것이 더 큰 가치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어린이는 논리를 필요로 하지 않고 우리를 필요로 하고 있고 우리의 인간성을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GE, 18).


따라서 판단능력은 우주론적 질서에 따라서 사춘기 이전에는 생길 수 없고 아스트랄체의 탄생 후에 생길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어린이에게서 때 이르게 나타나는 판단능력은 억제되어야 한다.


슈타이너는 자신이 정립한 인지학적 방법으로 인간 내적인 발달과 변화까지도 파악할 수 있다고 보았다. 가장 널리 알려진 발달 단계론인 피아제(Jean Piaget) 의 발달 모벨은 어린이의 정서(특히 도덕) 발달을 완전히 도외시한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어린이의 인지적 발달 과정에 방향 잡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슈타이너의 발달론은 유기체주의에 입각하여 인간의 신체적, 지적, 정서적, 영적 부분 전체를 고려한 기획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었다. 또한 육체, 영혼, 정신을 똑같이 교육의 근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발도르프 교육학의 교육적 원칙, 그리고 교육의 내용과 형식을 어린이의 발달이라는 교육(또는 인간) 내적 원리에 따라 구조화하려는 발도르프 교육학의 교육적 노력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교육적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인지학적으로 확장된 발달 심리학은 발달에 방향 잡힌 발도르프 교육학의 전제가 된다.


인지학적 발달 원리는 각 교육 단계의 교육이나 수업에 이식된다. 이럴 경우 어린이는 인지학적 인식이론의 전제 아래서만 가능한 당위적으로 존재하는 어린이이다. 이런 도식에 따를 때 어린이의 현실적 실존은 과소 평가되기 쉽다. 인지학적 교육 단계론이 교사들의 행위를 지시하는 도그마적 형이상학적 체계가 아니라고 강조하는 인지학적 교육학자들의 말(Kiersch, 1997: 23)을 수용하더라도, 어린이의 개별적 인격이 아니라 교육에 가정되어 있는 일반(Allgemeine)이 교육의 핵심에 있다는 비인지학권의 지적(W. Schneider, 1992: 281) 또한 타당하다. 이 일반이라는 것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쉽게 확신할 수 없는 것이 또한 문제이다. 각각의 교육 단계에서 취하는 교육들은 슈타이너의 인간론 안에 확정되어 있는 인간상을 따르며 이 단계로부터 선험적으로 도출된다. 교사와 학생의 만남은 그 전제로부터 살펴 볼 때 철저히 규범적 구조 위에 서 있다.


슈타이너의 인지학적 발달 단계론은 발도르프 학교의 전 교육과정에 걸쳐 기본 토대로 굳혀져 있다. 인지학적 발달론은 교육 실천에서 당연히 따라야 할 당위가 아니라 경험에 의해 검증되어야 할 가설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도그마로 굳어질 확률이 높다. 슈타이너 사후 어린이의 발달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 성과들이 많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인지학권에서는 슈타이너의 인지학적 발달 단계론만 고집하고 있다. 인지학적 발달 단계론이 현대 심리학 안에서 어느 정도 타당성 있는 것으로 수용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정혜영, 1996: 39).


인간을 구성하는 본질 지체들이 각각 7년의 리듬을 타고 이어지는 탄생을 통하여 인간은 발달한다는 슈타이너의 발달론에는 성숙하여 탄생하게 되는 신체가 태아처럼 각 선행 단계 속에서 잠재되어 있는 상태로 자기 형태를 발달시켜간다는 변형 사상이 결부되어 있다. 그런데 모태의 태아처럼 변화를 거쳐 생성되는 새로운 본질이 태어나기까지는 조산 등 외부로부터의 방해에서 보호받아야 한다. 이는 완전한 성숙이 이루어져 탄생과 동시에 외적으로 발현되기까지는 외적 영향력이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으로 자연스럽게 이끌어간다. 이러한 측면에서 인지학적 발달론에 의하면 절대로 개입해서는 안 되거나 어린이에게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되는 요인들의 영향이 교육적 의도 없이도 끊임없이 나타나는 현실에 비추어 인지학적 발달론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 즉 인지학적 발달 단계론에 의한 교육적 노력은 인간의 모든 행위와 영향을 교육적 관점 아래서 원천적으로 걸러내는, 완전히 고립되어 있는 “교육적인 섬”을 만들려는 시도(Salzmann, 1987: 334-335)로 읽히기도 한다.


‘하나의 섬’에 대한 비판은 교육학적으로 생각해 볼 때 일반 사회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아동에게 미치는 부정적 영향력을 최소화하려는 발도르프 학교의 교육적 노력을 역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섬’이라는 메타포에 의한 비판은 어린이가 경험하는 공간을 교육적으로 형상화하려는 발도르프 측의 교육적 노력을 상기시켜준다.


교육학의 근대는 루소가 『에밀』에서 아동의 고유한 가치와 현재성을 강조하면서 아동기를 발견하는 데서 비롯된다. 아동기의 발견은 교육에 있어서 성인 세대와 성장세대의 분리를 내포하고 있다. 그런데 대중매체의 급속한 발달로 인해 성인과 아통 사이의 세대라는 벽이 무너지면서 아동기의 강조는 소멸됨으로써 세대간의 차이에 기초한 근대적 기획의 교육의 정당성은 사라지고 있다. 이런 현상에 제일 먼저 눈뜨고 주목한 것 개혁교육학의 정신이라고 본다. 개혁 교육학은 학습과 교육을 통해 아동들의 인성을 발달시키고 그들의 미래를 위한 “고유한 경험 영역”을 마련해주려는 목적으로 아동의 교육화를 주장했다(Giesecke, 2002: 44). 소멸되어 가는 아동기를 학교 교육 환경을 통하여 어린이에게 주려는 발도르프 학교 교육의 진지한 노력을, 진정한교육실천이 이루어지기 위해 요청되는 전제 또는 조건이 무엇인지를 ‘섬’의 메타포는 시사해준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사회적 동물이라는 인간 존재 형식에 비추어 볼 때 ‘교육적 섬’을 만들려는 노력은 회의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교육의 사회성이라는 측면은 무시하지 못할 그리고 무시해서도 안 되는 측면이다. 교육은 사회적 요구와 아동의 내적 발달 요구, 이 두측면의 균형 있는 고려 속에서 수행되어야 한다(정혜영, 1996b: 39).


교육의 당연한 과제는 어린이의 자연적 경향성을 뒤따라갈 뿐만 아니라 앞서보며 자극도 주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발도르프 교육학의 발달론을 살펴보면 자연적 경향성을 뒤따르는 교육만 부각시키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발도르프 교육학의 발달 이론에는 인간의 각각의 본질 지체들이 우주적으로 근거 지워진 특유의 본질 및 발달 법칙을 따라 발달된다는 기본 전제가 깔려 있다. 이러한 단초로부터 필연적으로 뒤따름의 교육 실천이 전개된다. 교육적 관여 없이 적용되는 발달 법칙들을 따라 순응하고 그럼으로써 자연의 설계안에 있는 경향성을 강화시키는 것이 뒤따르는 교육의 주 관심사이다. 그에 반해 앞서가는 혹은 자극하는 교육은 인간의 발달에는 끊임없는 자극이 필요하고 또한 자극이 발달을 이끄는 큰 힘이라는 점을 확신한다. 세계에 대해 열려 있으며 고정되어 있지 않은 존재인 인간의 발달이나 사람됨은 사회문화적 자극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슈타이너의 교육학은 인간의 발달이 문화의 자극에 의존한다는 측면을 고려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인지학적 교육이론에서는 인간의 초감각적인 본질 지체들(즉 물리적 신체, 에테르체, 아스트랄체, 자아 등)의 기술로부터 교육 실천에 중요한 귀결들이 직접 도출되어 나온다. 이런 맥락에서 가베르트(Erich Gabert) 의 물음은 꼭 상기할 필요가 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인간의 본질 지체들이 인간의 지성의 발달을 위해 어떤 의미를 갖는가?(Gabert 1981, 69). 그 점에 대해 슈타이너가 언급한 것은 없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