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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발도르프 교육의 철학적 이해: 기질론의 지평 안에서 이해되는 교육 - 강상희 (3) 본문

발도르프교육학/발도르프 교육철학

발도르프 교육의 철학적 이해: 기질론의 지평 안에서 이해되는 교육 - 강상희 (3)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3. 1. 11. 10:22

4. 기질론의 지평 안에서 이해되는 교육

 


슈타이너는 발도르프학교 초기 교사들과의 세미나 논평에서 학급당 학생 수가 아무리 과밀할지라도 어린이들의 다양한 성격들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기질론을 교육의 시금석으로 제시하였다. 슈타이너는 학급을 4개의 다른 기질 그룹으로 분류할 것을 요구한다.

 

기질론 역시 오로지 인지학적 인식이론의 지평 안에서만 타당한 근거를 가지며 그 근거를 경험적으로 확인할 길은 없다. 발도르프 교사들은 인지학적 기질론에 기초하여 외적인 특징에 근거하여 어린이를 다양한 기질로 도식화하여 분류하고 교육한다. 이 경우에도 어린이는 유일성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 기질 일반의 결정체로만 간주된다. 기질론에 따라 분류된 전형이 교육자와 어린이의 만남의 중심에 자리잡기 때문에 이 역시 규범적 구조라고 볼 수밖에 없다.


슈타이너의 인간론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기질론은 발도프프학교의 수학 교수법을 결정한다. 예컨대 수학 시간의 사칙 연산을 배울 때 기준으로 삼는 것은 4개의 기질들이다. 수업은 기질에 맞추어야 한다는 원칙 아래서 슈타이너는 상세한 지침을 제시하면서 덧셈은 특히 점액질(phlegmatisch) 어린이에게, 뺄셈은 우울질(melancholisch) 어린이에게, 곱셈은 다혈질(sanguinisch) 어린이에게, 그리고 나눗셈은 담즙질(cholerisch) 어린이에게 잘 들어맞는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EZ III, 42 f).


슈타이너에 의하면 철자처럼 사칙연산에도 본질 속성이 있다. 덧셈은 점액질, 뺄셈은 우울질, 곱셈은 다혈질 그리고 나눗셈은 담즙질 성격을 띤다. 그런데 기질의 분류와 사칙연산의 성격을 자세히 살펴보면, 슈타이너의 주장의 타당성 여부를 일반 사람으로서는 가늠하기 어렵다.


가령 슈타이너는 발도르프학교의 개교를 위한 슈투트가르트 세미나 협의에서 점액질 어린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린이가 내적으로 한가하다는, 즉 어린이가 자신 안에 잠겨 있지만 밖을 향해 관심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인상을 우리가 가진다면, 우리는 점액질 어린이와 관련시켜야 한다"(EZ III, 11).


“자기 안에 침잠해 있고 어떤 관심도 표현하지 않는 것”이 덧셈과 연상될 수 있는 근거는 명확하게 밝히지 않는다. “난리법석을 피움으로써 강하게 자기 의지를 표현하는 담즙질 어린이"(EZ III, 11)의 기질을 나눗셈과 결합시키는 근거도 확인할 길이 없다.


기질의 분류에 따른 사칙연산 교수법은 슈타이너(또는 교육자)의 주관적인 연상 세계 안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라고 밖에는 달리 볼 여지가 없다. 따라서 그것을 어떤 것과 연결시켜 생각할는지는 본질적으로 사태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연상하고 있는 사람의 주관적 상태, 즉 슈타이너에게 있다. 이 점 역시 슈타이너의 인식이론의 전제들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인식이론의 최종 척도는 슈타이너 개인의 주관적 직관, 즉 슈타이너 자신의 자아인 바, 그것은 객관적인 기준에 묶여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기질의 분류에 따라 행하는 교육적 처치에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같은 기질끼리 만나게 할 때 서로 완화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슈타이너의 주장에 따라 발도르프학교에서는 기질이 같은 어린이들을 함께 둔다.


“우리가 같은 바탕의 기질로 이루어진 네 개의 그룹으로 어린이들을 분류하고 같은 어린이들끼리 나란히 앉히면, 이 바탕들은 서로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상쇄하는 작용을 한다. 예를 들어, 다혈질 어린이 그룹은 자기네 바탕들을 강화시키지 않고 그 바탕들이 서로 마모된다"(EZ III, 16).


수업 중 그룹의 조직에 적용되는 것은 어린이와의 개인적인 교제를 위해서도 의미를 지닌다. 가령 슈타이너는 이런 방식의 교정 효과를 위하여 우울질 어린이에게 "진지한 관념들을 접근시킬 것"(GE, 114)을 권한다. 그런데 기질에 있어서의 이런 동종요법 원칙을 슈타이너 자신이 담즙질에 대한 조치에서 깨고 있다. "담즙질 어린이가 예를 들어 잉크병을 땅에 내던지는 등의 난리법석을 피울 경우 이에 대해 겉으로 점액질 같이 의연해지려 노력하고 절대 충격 받지 않으려고 노력할"(EZ III, 13) 것을 슈타이너는 교사들에게 권하고 있다. 곧 그는 무관심을 통해 담즙질 어린이를 진정시키라고 교사들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슈타이너가 세운 기질론 체계 역시 자체 내에 모순이 서로 부딪치고 있다.


슈타이너가 규정한 ‘기질’에서 방향을 찾고자 할 때 교사들이 빠져들 수 있는 당혹감을 칼그렌(F. Carlgren)의 논평으로부터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는 보고하기를, 자신이 가르친 적이 있는 어린이들 중에, “처음 볼 때 수줍어하는 태도나 우수 어린 얼굴 표정이나 여윈 체격을 보면 우울질일 것 같은 인상을 주지만, 그 다음에는 몹시 소란스럽고 가만있지 못하는 행동을 하는 어린이들이 있다. 여기서 사람들이 학생 ‘원래의’ 것으로 일컫는 특징들과 환경의 영향을 받아 그 위에 덧씌워진 특징들을 구분하는 것은 각 경우에 거의 불가능할 수 있다"(Carlgren, 1972: 66).


그리고 또 다른 부분에서 그는 대도시의 발도르프 학생들에 대해 진술하고 있다.


"그 학생들은 모두 거침없이 특정한 한 부류로 분류할 수 있기에는 ... 너무 ‘신경질적’이었다. 몇 학년이 지난 후에 그들은 보다 침착해졌지만, 지배적인 기질을 구분해내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언제나 어려운 일이었다. 많은 발도르프 교사들이 이 비슷한 경험들을 한 상태이고 그것들이 묘사되고 있다"(Carlgren 1972, 66).


이는 슈타이너가 제시하는 기질에 따른 분류의 유형학이 학교의 틀 안에서 성격을 진단하기에는 아주 취약하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슈타이너가 교육에 있어서 학생들의 기질을 강조하는 것은 학생들의 특성에 따라 차별화된 교육을 하도록 권장하는 것으로 긍정적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 하지만 기질에 따른 유형적 분류는 그런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들에게 꼬리표 붙이기(Ullrich 1986: 185)가 될 수도 있다. 기질에 따른 네 가지 분류 외에도 학생의 특성을 분류하는 또 다른 준거들이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은 발도르프 교육학의 시계 속에 전혀 포착되지 않는다. 인간 성격의 다양성을 파악하는 일이 까다롭고 복잡함은 성격을 판단하려는 분류의 준거들이 계속 확대되어 온 데서 짐작해 볼 수 있다. 인간 성격의 다양성을 충분히 파악하기에 기질 분류의 4개 구성 요소들은 미흡하다. 이런 점에서 기질에 따른 인지학적 성격이론은 "오늘날의 연구 상황에 비해 결함이 있는 것이고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평가해야 한다"(Ullrich, 1986: 18)는 울리히(H. Ullrich)의 주장은 공감 가는 점이 있다. 슈타이너의 학설 안에서 인간은 ‘완전히 확정된 존재’이기 때문에, 탁 터놓고 열어 놓는 관심은 애초부터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프랑에(K. Prange)가 지적하였듯이 발도르프 교육학은 “앎의 지평선의 다원주의”에 비하면 닫혀 있는 구조이다(Prange, 1985: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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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희 교수의 견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자면, 인지학 안에서 인간은 '완전히 확정된 존재'가 아니라 '되어 가는 존재'로서 다양한 가능성을 향해 열려 있는 존재로 본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기질을 네 가지 틀에 가두는 것은 물론 위험한 일이다. 인간에게는 네 가지 기질이 모두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한두 가지 기질이 우세하게 드러나고 그러한 기질을 통해 고유한 한 인간의 특성을 파악해갈 수 있다. 그리고 동종요법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슈타이너는 우울질 어린이에게 다혈질 어린이의 특성을 말해주며 반대되는 자극을 줄 필요성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또 화가 난 담즙질 어린이에게 점액질처럼 대하라고하는 것은 그 상황에서 그런 태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발도르프 교사라면 얼마든지 실천적으로 납득이 되는 일관된 접근이다. 기질에 대해 낙인 찍듯 판단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아이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 기질을 활용하는 것은 매우 필요한 일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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