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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도르프 교육의 철학적 이해: 예술로 요청되는 교육 - 강상희 (1) 본문

발도르프교육학/발도르프 교육철학

발도르프 교육의 철학적 이해: 예술로 요청되는 교육 - 강상희 (1)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3. 1. 7. 21:26

발도르프 교육의 철학적 이해


강상희(한국공학교육인증원)

2008 한국발도르프영유아교육학회 제2회 동계 학술세미나
한국에서의 발도르프영유아교육 -이론과 실제II-

 


1. 여는 글


발도르프학교의 교육적 실천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담고 있어 발도르프 교육학 안내서로 가장 많이 읽히고 있는 책 중의 하나는 Carlgren F.가 쓴 "Erziehung Zur Freiheit"일 것이다. 이를 번역하면 "자유에 이르는 교육"이다. 이러한 책 제목에서 현재 인간은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 그리고 교육을 통해 자유에 이를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이 미리 전제되어 있다는 것이 감지된다. 그런데 이 책에서 말하는 자유란 무엇일까?


발도르프 교육과 슈타이너(R. Steiner, 1861-1925)에 의해 수립된 인지학은 별개로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는 관계이다. 슈타이너가 학적 체계로 수립하려 노력한 인지학은 인식론과 우주론과 인간론을 하나로 아우르는 거대한 체계이다. 나무로 비유하면 인지학적 인식론은 인지학의 뿌리가 되고, 그 뿌리에서 나온 가지가 인지학적 우주론과 인간론이며, 그 열매로 맺힌 것이 인지학적 교육론, 즉 발도르프 교육학이라 할 수 있다(강상희, 2002: 7쪽). 이와 같은 맥락에서 Abendroth는 슈타이너의 교육학을 인지학의 각각 측면들의 "유기적 연관"(Abendroth,  86)으로, Leber는 슈타이너의 인간학을 "인간론-교육학적 단초"(Leber( l),  29)로 각각 기술하고 있다.

 

본 글에서는 슈타이너가 세운 인지학이라는 거대한 학적 체계를 구성하고 있는 인식이론, 인간학, 우주론이 어떻게 발도르프학교의 교육 및 수업의 근거를 이루고 있는지를 보이고자 한다. 그와 함께 발도르프학교를 논할 때 밝혀야 할 원칙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즉 발도르프학교가 도대체 세계관 학교인가 아닌가? 이어서 학생과 교사 사이의 관계 역시 인지학적 세계관의 원칙에 의해 어떤 식으로 형성되는지 살펴볼 것이다.


2. 예술로 요청되는 교육


발도르프 교육학이 추구하는 이상은 예술로서의 교육 또는 교육예술이라는 표현에 구현되어 있다. 슈타이너는 교육에서 의도하고, 이해하는 바를 교육예술로 표현하였다. 교육 예술은 슈타이너의 세계관 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핵심 이념 (Johannes Kiersch, 1997: 19)이라 볼 수 있다.


예술로서의 교육은, 교육의 주 과제를 세계에 대한 주관적 미적 묘사능력의 배양으로 보고 인류의 도야를 위해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원칙적인 물음을 던진 쉴러(F. von Schiller, 1750-1805)에서 그 원형적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스승인 괴테 연구가 슈뢰어(Karl Julius Schroer)의 영향 아래서 슈타이너는 1888년 빈의 괴테-협회(Goethe-Verein)에서 "새로운 미학의 아버지로서 괴테"에 관한 강연을 한다(Johannes Kiersch, 1997: 19). 이러한 초기 시도의 핵심 사상은 쉴러의 『인간의 심미적 교육에 관한 서신들』과의 연계 속에서 제시된 견해이다.

 

* 인간이 분열된 세계 안에서 어떻게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있으며 인간 도야의 최고 목표인 조화로움을 어떻게 획득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쉴러는 『인간의 심미적 교육에 관한 서신』에서 예술을 해답으로 제시한다. 쉴러는 이 책에서 예술이 인간 속의 하나의 특수한 성질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본성과 본질을 이루는 것임을 증명하려고 하였다(Cassirer, 1988: 296). 쉴러에 의하면 예술작품 자체는 정신-감각의 통일성, 즉 조화로운 통일성이기 때문에 예술은 인간이 자신의 감각적 본성을 버리거나 내적으로 긴장하게 하지 않으면서, 인간 전체를 이해할 수 있게 하고 이성을 통해서 인간을 지도할 수 있다(Reble, 1999 : 252). 쉴러에게 있어서는 예술에 헌신하는 인간만이 완전한 의미에서 인간이다.


괴테는 예술에 의하여 새로운 인간성의 미적·윤리적 교육자가 되려고 했다. 괴테에 의하면 예술은 이념과 현상, 인간 정신과 자연의 중재자 역할을 하며 동시에 윤리적인 행위이다(Martini 1995: 318). 예술 작품은 인간이나 우주처럼 유기적인 형성물로 되어 있다. 식물의 줄기와 잎과 꽃이 하나의 내적 질서에서 성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술 작품은 모든 것을 포괄하는 하나의 중심적 형성 법칙에 따라 창조된다(Martini, 1995: 295). 괴테는 질료와 형상의 통일된 ‘질서의 미학’을 예술가적 창조력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괴테의 예술 이해를 따라, 슈타이너는 참된 예술의 목적이 자연의 단순한 모방도, 정신성, 즉 초감각성의 구현도 아니고 오직 감각-사실적인 것의 변형에 있다고 보았다(Kiersch, 1997: 19).


예술에 대한 슈타이너의 이해는 『예술과 예술인식』(Kunst und Kunsterkenntnis)에서 살펴볼수 있다.


“진실한 것은 표현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는다. 아니, 진실한 것은 완전한 독립된 상태로 머물러 있다. 그것은 새로운 형태, 즉 그것이 우리를 만족시키는 형태를 얻을 뿐이다. 우리가 그 어떤 개체를 그것을 둘러싼 환경 범위에서 끄집어내어 그것을 이러한 다른 위치에 우리 눈앞에 세우는 가운데, 그것에 이어 곧 많은 것이 우리에게 불가해하게 나타날 것이다. ... 한 사물이 자유롭게 독립적으로 다른 것들의 영향을 받지 않고 전개될 수 있다면, 그것은 다만 자신의 고유 이념을 명시할 뿐이다. 사물의 기초가 되지만, 자유로이 현실로 전개하는 데 방해받는 이러한 이념을 예술가는 포착하여 발전시켜야 한다. 그는 대상들 안에서 한 대상이 그것의 가장 완전한 형태로 전개되는, 그러나 자연 자체 안에서는 그것이 펼쳐질 수 없는 지점을 찾아내야 한다."(Kunst und Kunsterkenntnis, 29-30)


이러한 예술 이해에 기초해서 슈타이너는 예술로서의 교육을 발전시킨다. 1907년 『정신과학적 관점에서 본 어린이 교육』 에서 슈타이너는 ‘교육예술’을 본질적으로 기술공학적 의미의 응용과학으로 생각하고 있다.

 

“가령 〈모든 힘과 소질의 조화로운 형성〉 등과 같은 일반적 상투어는 진정한 교육예술의 밑바탕이 될 수 없고 오히려 그런 것은 다만 인간의 본질에 대한 참된 인식 위에서 구축될 수 있다. 예컨대 언급한 상투어가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사람들이 기계에 대해서 그것의 모든 부품들을 조화롭게 작동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듯 그것들로 시작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일반적 상투어가 아니라 기계 세부에 걸친 실제 지식으로 기계에 접근하는 사람만 기계를 다룰 수 있다. 이와 같이 교육예술에 있어서도 핵심은 인간 본질의 지체들 및 그것들 각각의 발달에 대한 지식이다. (...) 특정한 생애 연령에서 우리가 인간 본질의 어떤 부분에 작용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러한 작용이 어떻게 적절하게 일어나는지 우리는 알아야 한다."(Die Erziehung des Kindes ... , S. 27f.)


위의 글에서 슈타이너는 교육예술의 핵심이 인간 본질 지체들과 그것들 각각의 발달에 대한 지식임을 못 박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인지학적 교육예술의 기초는 궁극적으로 슈타이너가 주장하는 정신과학적으로 심화된 인지학적 인간론이다. 슈타이너의 교육예술론의 핵심은 성장하는 인간에 대한 인지학적 지식에 기초한 교육으로 압축될 수 있다. 인간을 전체 속에서 인식하고 묻는다는 슈타이너의 인지학적 인간론은 ‘정신과학의 관점에서 본 어린이 교육’(1907), ‘교육학의 기초로서 일반 인간학'(1919) 등 수많은 강연, 논문, 그리고 강좌를 통해 제시되었다. 그는 이 인간론에 기초하여 ‘방법론-교수학'(1919), ‘세미나 논평 및 교육과정 강연’(1919) 등에서 “교육예술”로 발달시켰다. 여기서 ‘인지학’은 교육예술 전체의 원동력으로 표명되고 있다.(강상희, 2002: 14.)


『영혼의 수수께끼에 관하여』(Von Seelenraetseln)에서 슈타이너는 ‘정신적인 것’*에 관한 과학으로서의 자신의 ‘인지학’을 감각 사실에서 출발하는 과학, 즉 그가 ‘인간학’이라 기술하는 과학과 대립시킨다. 그에 따르면, 두 과학의 방향들은 서로 의사소통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 그 둘은 ‘경계 관념’의 영역에서 서로 만난다. 논증적인 개념이 인간학 연구자를 더 이상 이끌어 가지 못하는 경우에 그는 경계 관념에 마주치는 한편, 인지학자는 명상 수행을 통해 개념을 초월한 상태에서 경험할 수 있는 초감각적 ‘관조’의 영역에 이를 수 있는 가능성을 얻어 경계 관념에서 벗어난다. 인지학자는 편견 없는 경험적 연구를 통해 얻게 되는 통찰들을 정신적(영적) ‘관조’로 대체할 수 없다. ‘인간학자’는 ‘초감각적’ 경험들은 다만 비유와 상징들로, 즉 상징적으로 표현되지만, 이러한 경험에 이르는 길의 합리적인 기술은 가능하며 정당함을 이해하는 것을 배울 수 있다.

 

* 정신적인 것을 영적인 것으로 이해할 때 슈타이너의 사상은 좀 더 분명히 다가올 수 있다.

 

슈타이너의 인간학은 ‘명상으로 얻는 인간론’이다.(Erziehung und Unterricht aus Menschenerkenntnis) 슈타이너가 초감각적 세계에 대한 영혼 연구 방법을 발견하고자 한 주된 목적은 인간의 참된 본질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다. 인간의 참된 본질을 파악하려면 감각기관을 통해 지각할 수 없는 사실들, 예컨대 인간과 우주를 구성하는 힘 등 자연과학적 방식으로 계량화할 수 없는 현상들에 대한 연구 또한 중요하다는 것이 슈타이너의 기본 입장이다(Kugler, 1991: 13). 슈타이너에 의하면 괴테 시대 이후 유물론적 사유, 주지주의 그리고 이기주의가 과학 전반을 장악하고 있다. 이런 틀 안에서는 정신 및 영적인 것은 다만 육신의 기능으로서의 의미만을 지니게 된다. 자신의 정신과학*은 이런 흐름에 대항할 수 있는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 Geisteswissenschaft를 번역한 말로 슈타이너의 저작에서는 영적인 영역을 다루는 영학(靈學)으로 이해할 수 있음.


슈타이너에 의하면 교육은 무엇보다도 인간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 기초를 두고 있어야 하며, 인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인간 본성의 표면 밑에 숨겨져 있는 본성을 드러내어야만 한다.* 인지학이 제공하는 “전체적인, 완전한 인간 인식”으로부터 교육적인 것이 “완전히 저절로” 발생한다고 슈타이너는 주장한다. 결국 인지학적 인간이해가 그가 주장하는 교육예술의 배경을 이룬다.

 

* R. Steiner: Die Erziehung des Kindes vom Gesichtspunkte der Geisteswissenschaft. Dornach 1984, S.8.

 

슈타이너가 주장하는 “교육예술가”가 될 수 있으려면 인지학적 인간론의 기초 위에서 창의적인 관찰 능력을 발달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한 예술가적 능력이 있을 때, 교육자가 관계 맺는 개인들, 그들의 생활 형편의 특수성, 그리고 순간순간의 수업 상황에 따른 교육이 가능해진다. 결국 교육예술은 인지학적 인간론을 배경에 둘 때 가능하다는 것이 슈타이너의 교육예술론의 기저에 깔려 있다. 인간의 본질을 영, 혼, 육신이라는 삼원적 요소로 구성된 통합적 존재라는 인간 이해가 교육 예술을 위한 기본 이해이다.


슈타이너에 의하면 예술은 정신세계가 감각적으로 지각할 수 있는 세계로 변형된 영역이며 따라서 예술가는 물질적으로 지각할 수 있는 것에서 출발하지만 그것을 정신적인 것으로 변형시키는 존재이다. 예술 안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인 것이 눈에 보이는 물질을 통해 구현되듯이, 예술로서의 교육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어린이 안에서 눈에 띄지 않지만 어린이 안에 내재되어 있는 정신성(영성)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또 다른 요소이다.


슈타이너는 교육이 진정한 예술로 승화되려면 교육이 어린이 본성에 대한 참된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어린이는 끊임없이 변화, 성장하고 발달하는 존재이다. 교육 내용 및 방법은 사람이 성장해 가면서 단계별로 무엇을 배울 수 있고 알 수 있는가 하는 인간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슈타이너는 강조한다. 모든 수업은 인간에 대한 깨달음의 바탕 위에서, 즉 심리학을 토대로 한 발달 단계를 진정으로 이해한 다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가로서의 교사가 어린이와의 “내면의 영적인 관계”로부터 출발하기 위해서는 호흡과정의 리듬 그리고 수면과 깨어 있음 사이의 리듬 과정의 “우주론적 의미”를 인식할 필요성 또한 생긴다.(Eickhorst, 1995: 53) 그런데 인지학이 그런 것에 대한 참된 시각을 제공해준다. 예술가로서의 교사는 어린이들의 기질들을 적절히 “다룰” 수 있는 것 또한 중요한 과제가 된다.


슈타이너가 목표로 삼았던 바는, 교육자가 자기 자신과의 의식적인 대결 속에서 원예가, 예술가, 치료사 그리고 예지자가 될 능력을 갖출 수 있게 해주는 인식의 방법을 전달하는 것이었다(Randoll, 1999: 34). 원예가로서 교육자는 ‘숨겨져 있는 인간 본성의 발달법칙’에 대한 지식의 기초 위에서 또는 ‘성장하고 있는 인간의 본질에서부터’ 교육한다. 예술가로서 교육자는 예술심미적 수업을 통해 육신, 혼 그리고 영의 전체적인 조화를 실현하려 시도한다. 그런 전체적인 조화는 어린이 안에서는 아직 미분화된 채 나란히 존재하고 있다. 치료사로서 교육자의 과제는 위기상황에서 치유하는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예지자로서 교육자는 자신의 교육 행위를 반드시 교육학적 통찰과 방법에서 끌어내지 않고 세계 과정에 대한 정신과학적(영학적) 탐구의 결과 나오는 일종의 명상적 관조에서 끌어내며, 그 결과 그에게 어린이 및 어린이의 카르마의 생생한 “본질상”이 열린다.


슈타이너는 발도르프 교육학의 전제들은 분명히 인지학적 세계관의 지평 안에 서 있음을 표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교수학보다 교육의 우위성이 요청됨을 표명하고 있다.


“발도르프학교에서 사용하는 교재의 목적은, 각 수업 단계에서 외적인 지식의 전달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의지, 정서 및 오성의 육성과 관련하여 학생의 인간성 발달의 전진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다. 모든 수업 과목들은 각각 어떤 자체 목적을 매개와 관련하여 자체 내에 지니고 있지 않다. 교사가 각 과목을 알맞은 방법으로 다룸으로써 참으로 이해된 인간성 발달이라는 의미에서 해당 발달 연령에서 학생에게 영향을 미쳐야 하는 그런 식으로 학생에게 과목이 영향을 미치도록 모든 개별 수업과목은 교사의 손 안에서 예술로 승화되어야 한다. 그래야 학생은 삶에서 성장하는, 삶 속에서 자기 자리를 채우는 사람이 된다."(Die Waldorfschule, 13-14)


그리고 이런 교육적 윤리는 교수학을 통해 수업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Erziehungskunst II, 184) 이런 교육의 근거는 슈타이너의 인간상 및 세계상에 있다.


슈타이너가 주장하는 교육 예술을 실행하려면 결국 교사는 인지학과의 재귀적 결합이 불가피하다. 인지학적 인간론을 배경에 두고 끊임없는 자아 성찰의 전제 아래서 성장하는 인간에게 초점을 두는 교사에게서만 현실화될 수 있다. 발도르프 교육학 안에서 모든 교육 행위 기준은 성장하는 인간에 대한 인지학적 이해, 따라서 카르마 법칙성에 비추어 정해진다. 그러므로 생생한 교육적 상황에서 교육 예술을 산출해낼 수 있는 가능성은 슈타이너의 인지학적 주장을 통해 조종된다는 것이 드러난다.


그러나 인간 인식, 즉 인간상에 기초하여 교육해야한다는 슈타이너의 교육예술론은 결국 인간 인식을 통해 표상된 인간상에 이르도록 교육시키고 싶어 하는 바람을 인정하는 것일 수 있다. 누구나 인정하듯 발도르프 학교의 교육은 슈타이너의 인간론을 통해 형성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예술이라는 주장 아래서 슈타이너가 제시하는 인간상의 실현 외의 다른 목적을 발도르프 교육은 추구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슈타이너는 발도르프학교에서의 수업 및 교육의 형성과 목적 설정의 방향을 슈투트가르트의 최초의 발도르프학교 설립에 즈음하여 행한 교사 교육을 위한 첫 강연에서 분명히 강조하였다. 그는 이를 "세계질서의 축제의식"(Menschenkunde, 17)이라 부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준비된 우리 활동의 시작에서 우리는 우선, 우리는 정신적(영적) 힘들의 위탁과 위임을 받아 우리들 각자가 모두 어느 정도까지 노력해야 할 것이며, 그런 중 영적 힘들과 어떻게 결합하는지 생각하고자 한다. 그래서 내가 여러분께 부탁드리는 것은, 우리가 이 과제를 떠맡고 있는 동안,이런 예비적인 말들을 상상, 영감, 직관의 힘으로 우리 배후에 있는 힘들에게 드리는 일종의 기도로 이해해달라는 것이다."(Menschenkunde, 17) 교사는 슈타이너가 일종의 기도로 간청한 고차원적 힘들의 위탁을 받고 전권에 기초하여 교육한다. 이런 교육 행위는 슈타이너가 고차원적, 비감각적인 것으로 생각한 인식방식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다.


근대 학교 교육의 내용과 방법을 결정하는 잔일 척도는 지적 능력이다. 왜곡된 형태의 오성적 인간의 육성은 학교 교육의 가장 큰 폐해로 여겨진지 오래이다. 인간의 본질을 이루고 있는 여러 부분들을 절단한 “파편화된 인간”을 암묵적으로 학교에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조장해 왔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인간을 보다 포괄적으로 이해할 것을 주장하는, 전체로서의 인간, 인간의 본질을 이루는 다양한 부분들의 유기적 발달을 강조하는 슈타이너의 인지학적 교육론 및 교육 실천은 교육 현실에 환멸을 느끼고 있는 이들에게 상당한 매력으로 보일 것이다.

 

예술가의 작업을 통해 서로 배치되는 요소들이 전체로서의 하나로 조화감을 찾는 예술의 구조에서 교육이 추구해야 하는 이상을 찾아볼 수 있다. 교육의 예술적 구조화가 가능할 때, 교육은 내면의 힘들의 조화와 균형이 잡힌 발달로 어린이를 이끌 수 있을 것이고, 서로 이질적인 요소들의 조화로운 어울림이 있는 학교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슈타이너가 보았다고 주장하는, 그래서 발도르프학교의 전체 교육실천을 좌우하는 인지학적 본질적인 인간상이 과연 단 하나의 진리로 선언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 또한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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