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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버들낭자와 느티도령 1부 본문

인지학/옛이야기와 동화

버들낭자와 느티도령 1부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2. 6. 6. 16:00

이 이야기는 서산시 읍내동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양유정 마을의 이야기를 동화로 창작한 것입니다.

 

"1927년경 서산팔경 중에는 양유정과 관련해 명림표향(明林漂響·명림산 골짜기의 빨래소리)과 양유소연(楊柳銷烟·양유정에 자욱한 물안개) 등 두 개나 들어 있을 정도로 양유정은 옛 서산의 아름다움을 대표했다. 서산시 읍내동 양유정에 들어서면 수백 년은 된 아름드리 느티나무들이 여러 그루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숲이라고 할 만큼 많은 그루도 아닌데 수백 년의 세월동안 무수하게 뻗어 올린 나뭇가지들은 하늘을 덮고,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다. 양유정은 본래 버드나무가 우거진 정자가 있는 곳이었다. 양류정이라는 정자의 이름도 버드나무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의 양유정에 정작 득세를 하고 있는 것은 느티나무들이다. 넓은 면적을 자랑하던 터도 지금은 두 개로 나뉘어져 본래의 모양을 잃었다는 것이 주민들의 설명이다. 그렇게 나뉜 두 개의 양유정 사이로는 하천을 메워 만든 복개도로가 옛 자취를 감췄다." [출처 : http://www.hjn24.com/news/articleView.html?idxno=34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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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들낭자와 느티도령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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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날에 양유정 마을에는 버드나무가 숲을 이룰 정도로 많았습니다. 부춘산 옥녀봉에서 흘러온 냇물은 울음산 계곡을 지나 양유정 정자 옆을 지나갔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아름드리 느티나무와 함께 냇가 주변에 운치 있게 자라는 버드나무를 무척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선비들이 정자에 앉아 글을 읽노라면 멀리 울음산에서 여인들의 빨래방망이 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왔고, 수양버들과 능수버들 사이로 물안개가 자욱했습니다.

 

옛사람들은 울음산을 명림산(鳴林山)이라 불렀고, 정자 옆으로 흐르는 개천을 명림천이라 불렀습니다. 명림천은 흐르고 흘러 양대리 바다에 닿았습니다. 버들이는 양대리 갯마을에서 살다가 이곳 양유정 마을로 이사를 온 여자아이입니다. 버들이의 아버지는 고기 잡는 어부였습니다. 큰 태풍이 불어온 날 이후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자, 어머니는 어린 버들이를 데리고 고향인 양유정 마을로 돌아온 것이었습니다. 음식 솜씨가 좋은 어머니는 울음산 아래 학돌재에 주막을 차려서 버들이를 홀로 키웠습니다. 어머니의 갯마을 음식은 인기가 좋았습니다. 그리고 버들이는 씩씩한 어머니를 닮았습니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눈이 반짝이고 키가 훌쩍 큰 버들이의 머리카락은 버들가지처럼 치렁치렁했습니다. 냇물에 뛰어들어 동무들과 놀 때 보면 정말로 버들가지가 흔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버들이는 늘 당당하고 활기찼습니다. 조무래기 아이들의 대장은 늘 버들이었습니다. 가끔씩 버들이에게 아빠가 없다고 놀리는 아이가 있었는데, 그럴 때 버들이는 움츠러들지 않고 오히려 그 아이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습니다. 한참 그러고 있으면 기세에 눌린 상대편 아이는 고개를 숙이고 사과를 했습니다. 버들이는 아무렇지 않게 사과를 받아주었고, 아이들은 다시 신나게 어울려 놀았습니다.

 

봄에 아이들은 느티나무 높은 가지에 매단 그네를 타고 놀았습니다. 여름에는 맑고 시원한 시냇물에 뛰어들어 놀았고, 가을이 되어 추석이 다가오면 강강수월래를 즐겨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양유정 버드나무숲은 행복한 놀이터였습니다. 어르신들은 그런 아이들을 보며 흐뭇하게 웃음지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저녁이 되면 정자 주변에 모여 앉아 모깃불을 피우고 음식을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양유정 마을은 고을 전체에서도 살기 좋고 아름다운 곳으로 이름이 났습니다.

 

버들이를 아주 좋아하고 따르는 사내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은 느티였습니다. 느티는 키가 작고 얼굴이 하얘서 몹시 병약해 보였습니다. 다른 아이들보다 몸이 약한 느티는 놀이에 끼기보다 정자에 앉아 동무들 노는 걸 구경하곤 했습니다. 그럴 때 버들이가 느티에게 같이 놀자고 권하면 못 이기는 척 함께 놀았습니다. 느티는 달리기를 잘하지는 못했지만 책을 많이 읽어서 아는 게 많았고, 아이들이 잘 모르는 풀꽃의 이름이나 곤충과 새의 이름도 곧잘 알려주었습니다. 아이들은 모르는 게 있으면 늘 느티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또 한참을 뛰어논 아이들은 정자에 누워 쉬었는데, 그때 느티가 들려주는 옛이야기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느티의 할아버지는 성암서원에서 유생들을 가르치는 스승님이었습니다. 학식이 깊고 인격이 높아 마을에서 존경을 받는 어른이었지요. 느티는 이곳 양유정 마을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셋이 살았습니다. 느티에 대한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이 얼마나 각별했는지 모릅니다. 할아버지는 느티에게 옛 선현들의 아름다운 가르침을 들려주었습니다. 병치레를 자주 하던 느티를 위해 할머니는 산에 다니며 귀한 약초를 캐왔습니다. 그리고 새벽이면 사람들이 소원나무라고 부르는 가장 우람한 느티나무 앞에서 정화수를 떠놓고 느티의 건강을 기도했습니다. 그 덕분인지 느티는 커갈수록 점점 더 건강한 아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마을에 역병이 돌았습니다. 다행히 지독한 병은 아니어서 어린아이와 젊은이들은 감기를 앓듯 고생을 조금 하고 회복되었습니다. 버들이는 사흘만에, 느티는 일주일만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은 한참을 앓아눕거나 심하면 세상을 떠나시기도 했습니다. 보름을 앓았던 느티의 할아버지와 달리 할머니는 좀처럼 차도가 없었습니다. 열이 펄펄 나고 기침을 심하게 하셨지요. 느티는 사랑하는 할머니를 극진히 간호했습니다. 또 할머니가 기도하던 소원나무 아래에서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한울님, 한울님, 우리 할머니를 살려주세요. 제 생명을 드려서라도 할머니가 살아나게 해주세요. 할머니가 살아나시면 저는 한울님이 명하시는 일을 하며 평생을 살겠어요.”

 

그러나 한울님은 느티의 소원에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아니, 사실은 그 당시 마을에 제대로 된 의원이 없어 변변한 치료조차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늦장마로 비가 몹시 내리던 어느 밤, 할머니는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할아버지는 밤새 곰방대를 태우셨고, 느티는 울다 울다 지쳐서 잠들었습니다. 할머니를 선산에 묻어드리고 돌아오던 날 느티는 결심을 했습니다.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주는 의원이 되겠다고요. 느티는 할아버지를 설득해 한양으로 가 의술을 배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느티가 훌륭한 유생이 되기를 바라셨지만, 느티의 고집을 꺾지 못하였습니다.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어느 가을밤, 느티는 어머니와 함께 달맞이를 하러 나온 버들이에게 편지를 전하고, 다음날 새벽 일찍 상인 무리와 함께 한양으로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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