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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버들낭자와 느티도령 2부 본문

인지학/옛이야기와 동화

버들낭자와 느티도령 2부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2. 6. 8. 10:25

버들낭자와 느티도령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

 

버들낭자는 아침 일찍 삼선암(서광사)에서 예불을 드리고 오는 길이었습니다.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 조심스레 걸었습니다. 낙엽이 제법 쌓여 바스락 바스락 소리가 났습니다. 오랫동안 주막일을 하던 어머니가 어느 날부터인가 시름시름 앓으며 자리에 누운 뒤로 버들낭자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예불을 드렸습니다. 자비로운 부처님의 미소 아래 절을 올리며 어머니의 쾌유를 빌었지만 병세는 더욱더 나빠질 뿐이었습니다. 읍내뿐 아니라 해미와 홍주, 멀리 당나루까지 이름난 약방을 찾아다니며 온갖 약을 써봐도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시 쓰고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던 버들낭자는 이제 어머니의 주막을 이어받아 술을 담그고 장국을 끓여 온종일 손님을 맞이했습니다.

 

버들아, 난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주는 의원이 되고 싶어. 그게 한울님의 뜻이고 할머니의 바람이실 것 같아. 공부를 마치면 꼭 이곳으로 돌아와 사람들을 도울 거야.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꼭 좋은 의원이 되어 돌아올게.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저 보름달을 보며 널 생각할 거야. 널 생각하면 난 늘 힘이 나니까. 버들이 너도 아프지 말고 늘 건강하게 지내.”

 

어젯밤 버들낭자는 달이 유난히 둥글고 밝아 오랜만에 느티도령의 편지를 꺼내 읽어보았습니다. 단정한 글씨에 힘이 들어 있었습니다. ‘느티는 지금쯤 의원 공부를 마쳤으려나... 와서 우리 엄니 좀 고쳐주면 얼마나 좋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마침 기러기들이 하늘 높이 시옷 자로 늘어서서 끼룩대며 날아갔습니다. 어릴 적에 보았던 포구가 생각났습니다. 겨울이 되면 포구 주변으로 많은 새가 날아왔습니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둑에 서서 새들을 구경하던 기억이 났습니다. ‘이제 찬바람이 불면 엄니가 더 아프실 텐데 어떻게 하나... 땔감을 넉넉히 사둬야겠네.’ 버들낭자는 어머니의 낡은 겨울옷을 꺼내 바느질하다가 밤이 깊어서야 잠들었습니다.

 

그 말 들었슈? 우리 고을에도 의원이 생긴다네유.”

 

의원? 그게 뭔소리여?”

 

, 왜 느티라고 성암서원 훈장 어르신 손주 있잖유. 그 느티가 의과에 장원급제해서 내의원에 있었는디,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가겠다고 했다네유.”

 

그간 우리 고을에 의원이 없어서 아파도 치료를 못 받았는디 참 잘 되었구먼.”

 

전국을 다니며 박첨지놀이를 하는 사당패 손님들의 말이었습니다. 버들낭자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가슴이 뛰었습니다. ‘느티가 돌아온다고?’ 거짓말 같은 일이었습니다. 느티가 한양으로 떠난 지 벌써 십 년이 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는 속담이 있지요. 그 순간 주막 문을 열고 들어오는 총각이 있었습니다. 여전히 얼굴은 하얬지만 키가 훌쩍 커서 자칫 알아보지 못할 뻔했습니다. 의관을 차려입은 느티도령이었습니다.

 

버들낭자와 느티도령은 반갑게 인사했습니다. 버들낭자는 밥을 새로 지어 정성스럽게 저녁을 대접했고, 느티도령은 선물로 고운 옷감을 툇마루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늦저녁에 두 사람은 주막을 닫고 마을 길을 걸으며 지내온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 학돌재에서 양유정을 지나 방죽을 거쳐 아라메길을 향해 걸었습니다. 걷고 또 걸어도 다리가 아프지 않았고, 샘물처럼 이야기할 거리가 마르지 않았습니다.

 

느티도령은 마을에 돌아오자마자 버들낭자의 어머니를 치료하는 일에 정성을 다했습니다. 침을 놓고 뜸을 뜨고 직접 약을 달였습니다. 궁궐 내의원에서 배운 양의학의 방법을 쓰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어머니의 병세는 날이 갈수록 좋아져 겨울이 되기 전에 거동을 할 수 있었고, 겨울이 가기 전에 병환이 씻은 듯 나았습니다. 느티도령은 주막 옆에 의원을 열어 환자를 맞았습니다. 훌륭한 의술 덕에 지팡이를 짚던 느티도령의 할아버지는 더욱 정정해지셨고, 지병으로 고생하던 많은 사람이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사람들은 별일이 없어도 느티도령의 의원에 들러 진찰을 받으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버들낭자의 주막에서 뜨끈한 국밥과 맛좋은 음식을 먹었습니다. 아주 멀리 한양과 한밭에서도 느티도령의 의원과 버들낭자의 주막을 찾아올 정도가 되었습니다. 느티도령과 버들낭자는 양유정 버드나무 숲에 회당을 지어 어르신들을 편히 모셨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서당도 열어서 글과 그림, 노래를 가르쳤습니다. 느티도령이 글을 가르쳤고, 버들낭자가 그림과 노래를 가르쳐주었습니다.

 

몇 해가 흘렀습니다. 다시 봄이 되자 매화와 개나리, 목련이 차례대로 피었습니다. 명림천의 냇물은 언제나 그런 것처럼 힘차게 흘렀습니다. 소박한 양유정 마을은 구석구석 깨끗했고, 사람들은 더욱 건강하고 행복해 보였습니다. 버드나무에 새잎이 돋고 꽃이 만발할 무렵 버들낭자와 느티도령은 온마을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혼인을 했습니다. 고을 사또와 이방들도 와서 축하를 했습니다. 느티도령의 할아버지가 혼례사를 낭랑하게 읊으시는 동안 어린아이들은 나비를 쫓으며 뛰어놀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흐뭇하게 웃으며 선남선녀의 혼인식을 지켜보았습니다. 버들낭자의 어머니는 축하해주러 온 모든 사람에게 맛있는 국수를 대접했습니다. 그 뒤로 버들낭자와 느티도령은 양유정 마을에서 아들딸을 많이 낳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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