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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인지학적 치유교육에서 바라본 인간상 (1) - 미카엘 물란 본문

발도르프교육학/발도르프 특수교육

인지학적 치유교육에서 바라본 인간상 (1) - 미카엘 물란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1. 9. 14. 21:53

인지학적 치유교육에서 바라본 인간상 (1)

 
 

강연 : 미카엘 물란
통역 : 이정희
2019년 8월 10일 <인지학과 예술> 강좌
 

 
 
인지학적 치유교육의 기본철학은 전세계적으로 “인간 본질의 핵은 장애가 있지 않다”에서 출발합니다. 고유한 인간 본질의 핵심은 어떠한 장애도 존재하지 않고, 인간의 구성요소의 불균형에 장애의 이유가 있습니다. 인간 본질에는 어떠한 장애도 없다는 것에 인간의 존엄이 있습니다. 이 출발점을 분명하게 우리 시각으로 가져와야 합니다. 이러한 확신을 갖고 출발하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현재 장애를 가진 사람을 아낌 없이 지원해야 합니다. 장애를 가진 이들에 대한 무한한 존중, 그 삶에 대한 존중이 있기에 그렇게 접촉이 일어나면서 교육행위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장애를 가진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 외부의 그릇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지, 그 본질은 문제가 없다는 시선을 가져야 합니다. 슈타이너는 ‘나’라는 존재가 정신세계에서 내려온 신성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정신세계에서 내려와 육화를 합니다. 우리 각자는 영원한 존재입니다. 자기의 고유성을 펼쳐나가는 과정에는 아픔이 들어 있습니다. 굉장히 긴 여정 속에서 우리는 발전해 나가는 존재입니다. 삶의 과정 속에서 자기를 발현하는 여정을 밟아나가며 우리는 장애를 가진 사람을 지원해 주어야 합니다. 일반인을 생각할 때 우리는 자기 스스로 무언가를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고 가능한데, 장애를 가진 사람은 그러한 결정을 하는 데에 긴 시간이 필요하고 지원이 필요합니다. 이 지점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을 세계기구에서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1항,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사람은 누구나 자기 삶을 자기 스스로 결정하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 기본이다. 이것이 도입되었습니다. 인간의 존엄과 일치를 이루는 명제지요. 내 삶의 여정에서 스스로 무언가를 결정할 수 있다면 나는 자유롭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자유란 인간 존재의 지고의 목표이기도 하고, 인간을 규정함에서 가장 높은 차원입니다. 바로 이 자유라는 개념이 결국 치유교육 활동가들에게 명확하게 들어 있어야 사람을 만나고 동반할 수 있습니다.
 
치유교육자들이 실천에서 이런 생각이 확실히 들어가야 창의적인 상황을 만들어 나가고 현장에서 예술적으로 치유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에게 “안 돼! 이거는 좋지 않아!” 이렇게 부모가 말합니다. 어떤 한계를 지우고 금지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아이를 깨우게 됩니다. 30-35세 정도의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안 돼!”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르게 접근해야 합니다. 이게 현장에서 매일 일어나는 상황입니다. 공동체생활에서 못하게 하는 것을 외부에서 조종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경계를 짓고 올바로 행동하게 하는 게 일상에서 늘 도전거리입니다. 이 공동체에서는 날마다 옷을 입고 벗는 것도 엄청난 일입니다. 이 닦고 세수하는 것도 큰 일입니다. 언제 작업복 입고 또 외출복 입는 일도 엄청나게 큰 일입니다. 이런 일을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면서 할 수 있도록 하는지가 중요한 과제입니다.
 
일반인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이 닦고 오늘 강연회니까 어떤 옷을 입을지 고민하고 결정하는 게 별 일 아니지만 장애인들에게는 보통 일이 아닙니다. 말도 못하고 손도 못 움직이고 눈으로만 무언가를 결정할 수 있는 아이가 있습니다. 그 아이에게 옷을 입힐 때 파란 옷과 빨간 옷을 보여줍니다. 네가 결정할 수 있어, 어떤 옷 입을래? 그러면 시선이 어디로 가는지 봅니다. 모든 결정에서 중증장애인의 경우 이렇게 자기 결정이 포함될 수 있도록 활동가가 고려합니다. 존엄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예술적으로 활동하는 것은 사람만이 할 수 있기 때문에 현장에서도 예술적인 활동이 많이 일어납니다. 이런 활동에서 창의적으로 직접 결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상력과 창의성, 이 두 가지가 현장에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창의성이라는 건 꼭 예술활동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삶 속에서 벌어집니다. 일반교육에서도 마찬가지인데요, 내가 무얼 한다고 할 때 누가 시키는 게 아니라 내가 이걸 하고 싶어, 하고 스스로 결정하는 것은 창의성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저는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해서 결정할 수 있도록 비중을 많이 두고 있습니다. 내가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으면 우리는 누구나 선장이 됩니다. 선박의 선장말입니다.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스스로 생각해서 결정하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창의성이 녹아 있어야 매순간 아이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도 돌아보면, 정말 독립적으로 스스로 해내야 하는 순간에는 누구나 어렵습니다. 우리 역시 삶에서 어려움에 봉착하는데 이때 늘 고통을 겪습니다. 이 어려움에 봉착하면 깜깜하고 전망이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위기 상황에서 우리는 출구가 없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면 이 문제가 어떻게 풀릴까요? 막 다른 골목에 처하지만 어떻게든 풀리잖아요. 이 고통에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만약 의미가 안 담겨 있다면 더 고꾸라질 수도 있습니다. 이 의미를 포착하고 생각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분명히 사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 소망하는 사항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깜깜합니다.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이것은 고통, 시련과 연결됩니다. 이 마이너스 상황, 즉 의미가 결핍되고 아픔만 있는 상황에서도 어느 순간에 의미가 생기면서 새로운 전환점이 옵니다. 빅토르 프랑클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삶 속에서 위기에는 늘 의미가 담겨 있다” 로고테라피의 창시자이기도 한 프랑클은 정신과의사였습니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낳은 부모는 커다란 고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여러분께서 정말 이 심정을 공감해 보시길 바랍니다. 저는 그래서 이런 부모를 대할 때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는가를 돕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해 주곤 합니다. “이 아이는 어쩌면 정신세계에서 다른 과제를 가지고 온 천사일 것입니다. 당신에게 깨어나라는 메시지를 갖고 온 천사라고 봅니다. 깨어나세요, 당신을 변화시키세요, 이 메시지를 가지고 당신에게 온 것입니다.” 수업에서 부처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는데요. “얘들아, 봐라. 부처는 어렸을 때 아주 부유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태어난 왕자였지만 어느 날 ‘이게 아냐’ 하면서 집을 나가지 않았니? 부처가 마차를 타고 나갔을 때 세상에 대한 새로운 눈이 생기지 않았니? 모든 사람의 삶에 전기는 이처럼 새로운 상황에 대해 눈을 뜨는 것에 변화가 있단다.”
 
우리 삶에서 어려움에 봉착할 때 우리의 사고와 감정, 의지가 깨어날 때 새로운 전환점이 옵니다. 이렇게 확 깨어나면 새로운 안정감과 자신감, 확신감이 생겨납니다. 이 어려움 이후에 생각하기, 느끼기, 행하기가 진짜 깨어날 때는 이 어려움이 자기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정확히 인식할 때 새출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독립적으로 사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이처럼 독립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를 전환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볼테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행복한 것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 건강에 대해 잘 돌보지 않았다면 아플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다섯 아이의 아빠인데 집에 문제가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내 가정을 내가 잘 꾸려야지, 하고 결정해서 확신감을 가지면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상상한 것을 행위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올바르게 실천하기 위해서는 직관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직관이란 우리가 확실한 자기의 지식을 갖고 있어서 삶 속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높은 차원에서 생각이 와서 행동으로 옮기는 것, 이것이 직관입니다. 직관의 힘을 갖는 것은 현장이나 삶에서 굉장히 중요합니다. 타인과 상담을 하거나 무엇을 해결할 때 꼭 필요합니다. 치유교육 현장에서는 직관이 더더욱 중요한데요, 문제의 상황이 정말 예측불허이기 때문입니다. 매일 매순간에요. 행동으로 나아갈 때 그 순간 일어나야 하고, 늘 어마어마하게 중요합니다.
 
한번 상상해 보세요. 긴 여행을 하느라 굉장히 피곤합니다. 그래서 잠을 자고 싶은데 방이 굉장히 덥습니다. 그런데 파리 한 마리가 있어서 신문지로 잡으려고 합니다. 너무 빨라서 잡지를 못합니다. 이때 직관이 발동합니다. 아, 파리는 축축한 걸 좋아하지. 이건 지식이죠. 그래서 손 안쪽에 침을 바릅니다. 양손에 축축하게 침을 발라서 모으고 구멍을 만듭니다. 이건 정말 있었던 일인데요, 30초가 지나니까 양손으로 날아왔습니다. 그리고 2초 뒤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불교적인 자세로 창문 밖으로 해방시켰습니다. 이때 파리의 속성에 대해서 알지 못하면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파리는 습기를 좋아한다는 걸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곤충에 해당하는 파리는 본능에 따른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양손을 도구가 되었습니다. 도구가 있어야 행위를 할 수 있지요.
 
삶 속에서 그리고 장애아이를 만나는 순간 순간 직관의 힘이 필요합니다. 이때 적절한 표현력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아이를 만날 때 ‘나는 너를 사랑해’라는 표현이 정말 중요합니다. 끊임없이 “나는 너를 사랑해”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어떤 표정, 어떤 손동작으로 진심이 닿는 게 중요합니다. 모든 활동에서 그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핵심은 대화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면의 대화지만 서로 소통을 가능케 합니다. 마르틴 부버라는 철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내가 되기 위해서는 너를 통해서여야 한다.” 부버는 ‘나’의 성장을 많이 이야기했습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통해 확인되는 것이고, 그 다른 사람의 존재 속에 어떤 현존이 들어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은 사람으로서 무언가를 요구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확인이 늘 일어나야 한다.” 이렇게 풀이할 수 있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해’라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대할 때에는 상대에 대해 ‘내가 너의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거야’라는 것으로 그 사람에 대해 확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장애 유무를 떠나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일입니다.
 
우리의 모든 관계에서 ‘너의 모든 것을 그대로 인정한다’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네가 좀 변해야 해’가 아니라 ‘네 모습 그대로 인정해’라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받아들이는 거야’가 되어야 ‘내가 너를 사랑해’가 느껴집니다. 이 비슷한 이야기를 슈타이너는 치유교육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세요, 여러분이 그 아이가 나타날 때 진심으로 내적 관심을 가지고 바라볼 때와 그냥 오는가 보다 하고 바라볼 때는 다릅니다.” 자기 내면을 잘 다스리는 일이 정말 필요한 일입니다.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오래 명상할 일입니다.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는 심포지움을 일주일 해도 모자랍니다. 확실한 것은 명료한 사고가 있어야 진정한 사랑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호감이 강해 과도한 행동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슈타이너는 “미래에는 사람으로서 반드시 가져야 할 덕목이 자유와 사랑이다. 사람이 자유롭다는 것은 확실한 의지를 가지고 명료하게 사고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확실한 사고를 통해 행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사랑의 실천이라는 것입니다.
 
확실한 사고 속에서 행위를 가져갈 때 이것이 지상의 도덕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면 자신의 행위가 타인의 무언가를 숭상하는 일 없이 자유로운 행위가 됩니다. 슈타이너의 명상적 글귀를 보면 명료한 사고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가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현장에 적용하면, 이 아이가 지금 무엇이 필요한가를 명료하게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아이를 사랑한다면 정말 이것이 필요한 것이라고 한다면 해주어야 하는 것이고, 필요한 게 아니라면 마음이 그렇지 않더라도 어느 때는 벌을 줄 수도 있고 “노”라고 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의 성장에 도움이 됩니다.
 
예를 하나 들고 마치겠습니다. 제 아이들은 겨울에 꼭 스노보드를 타는데요. 다섯 아이의 복장과 장비를 챙겨주려면 돈이 많이 듭니다. 그런데 한 아이가 아주 스노보드를 잘 탑니다. 그 아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빠, 저 삐삐(위험 신호장치)가 필요해요.” 그런데 이런 장치는 노선을 벗어나지 않고 안전하게 타면 필요하지 않습니다. 사랑을 담아 “너 그거 필요 없어. 정해진 길만 잘 따라가면 돼. 왜 위험을 각오하려고 하니.”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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