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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인지학적 치유교육에서 바라본 인간상 (3) - 미카엘 물란 본문

발도르프교육학/발도르프 특수교육

인지학적 치유교육에서 바라본 인간상 (3) - 미카엘 물란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1. 9. 14. 22:11

인지학적 치유교육에서 바라본 인간상 (3)

 

 

강연 : 미카엘 물란

통역 : 이정희

2019년 8월 12일 <인지학과 예술> 강좌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애석하게도 오늘이 마지막 강연입니다. 인간의 4구성체를 슈타이너가 제시하였는데,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이렇게 4구성체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인간을 더 잘 이해해야 수업이 더 잘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교육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4구성체가 잘 발달해서 전체 조합이 조화롭게 될 때 아이들이 배움을 더 잘 가져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4구성체의 어느 부분이 무엇인가 결핍이 있거나 조합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잘 보살펴야 합니다.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요.

 

치유교육 강좌는 슈타이너 생애의 거의 마지막 해에 도르나흐에서 강연했습니다. 이때 당시에는 인간이 천상의 신적 존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아스트랄체와 물질체 등이 어떻게 신적 존재와 연결되는지를 강의할 때였습니다. 치유교육 현장에서 일하든, 가정에서 아이를 돌보든 어른의 4구성체가 조화로워야 건강한 작업을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집중해서 자신의 4구성체가 건강해야 그것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슈타이너는 교사들과 부모들에게 자기 연마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말했습니다.

 

밖으로 드러나는 생각하기, 느끼기, 행하기(사고, 감정, 의지)가 영혼의 작용입니다. 아동발달에서 느끼기와 행하기는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아이가 태어나서 제일 먼저 의지를 갖고 행합니다. 그리고 세상을 호감과 반감으로 어떻게 마주하는가, 이게 느끼기 영역에서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아이들이 영유아시기에는 커다란 판타지를 갖고 놀이 행위를 합니다. 0세에서 7세 사이의 아이들은 판타지와 함께 놀이 속에 들어갑니다. 이제 학교에 가면 선생님을 통해 수업 속에서 세상이 아름답다는 걸 느낍니다. 학교에 들어가면 점점 생각하기의 영역이 발달해 갑니다. 선생님을 통해 개념을 형성해 나가고, 청소년기가 되면 자기 나름의 판단을 해 나갑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발달의 과정으로, 의지로 행하기, 느끼기, 사고하기로 나아가는데, 행하기와 사고하기는 양극적이 특성을 갖습니다.

 

영유아기부터 21세까지만이 아니라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의지와 감정, 사고는 계속 발달해 갑니다. 의지적으로 행하고 느끼고 생각하는 일은 삶을 마무리할 때까지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술적 행위를 학창시절에 많이 쌓을수록 이후의 삶에서도 예술적인 요소를 창의적으로 만날 수 있는 좋은 기반이 됩니다. 발달의 과정에서 어른들은 지성의 과정이 점점 쌓여서 높아진 것입니다. 삶을 꾸려나갈 때 성인은 생각하기에서 많은 것을 출발해 나갑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늘 사고가 잘 작동되어야 합니다. 중요한 결정을 내리거나 직업을 갖는 것이 다 사고와 관련됩니다. 생각하기가 삶을 꾸려나가는 데에 중요한 작용을 합니다. 그래서 보통 사고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생 텍쥐베리의 <어린 왕자>를 보면, 보이지 않는 것을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우리는 그것에 많이 공감합니다. 삶에서 느끼기 영역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슈타이너도 같은 맥락에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가슴을 따뜻하게 해서 여기서부터 우러나올 때 올바른 결정으로 갈 수 있다고요. 차가운 논리의 결정은 이 지점에서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건강한 성인이라 하면 사고와 함께 가슴 부분이 함께 작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인으로서 명료하고 순수한 사고의 발달은 중요합니다. 정말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는 순수한 사고를 통해서 해야 합니다.

 

가슴이 울려야 한다고 해서 가슴으로만 접근하면 오류가 생깁니다. 호감으로만 가서는 안 됩니다. 올바른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사랑의 느낌으로 감정이 우러나오고 명료한 사고가 여기에 결합되면 이때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생각하기가 가장 윗 부분에 위치해 있습니다. 우리가 의식하고 있는 생각은 수많은 잡생각이 다 포함되지요. 여기서 말하는 생각하기는 그런 게 아닙니다. 누구나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쫓아가볼 필요가 있습니다. 생각하기가 잘 연마된 경우에는 이웃에 대한 사랑도 잘 실천될 수 있습니다. 인간 관계에서 다른 사람에 대해 생각하기가 어떻게 명료한 사고로 접근할 수 있는가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감정적인 것뿐만 아니라요. 많은 경우 우리는 상대에 대해 많은 편견을 갖고 있습니다. 결정을 미리 해버리는 것입니다. , 그 사람 좋은 사람이지. , 그 사람 문제 있어. 이런 게 바로 일어나지요.

 

이렇게 하면 곤란합니다. 저 사람, 그러면 이 범주에 들어가고요. 그 사람, 그러면 저 범주에 들어가는 식이면 책을 다 덮은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발전이 없어요. 슈타이너는 늘 강조했습니다. 명료한 사고를 유지하고 그것을 계발하라. 순수한 사고를 연마하라. 생각하기가 언어화된 게 말하기입니다. 이런 경우도 일상에서 목격할 수 있습니다. 내가 말하는 것이 진정성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반쯤 거짓말이 들어 있는지, 이것은 생각하기와 관련된 것입니다. “아빠, 아빠, 오후에 오는 거야?” “, 갈게말하자면 아무 생각없이 빨리 말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는 마음을 놓고 말합니다. “그래, 아빠. 이따 봐.” 그런데 시간이 되어도 아빠는 안 옵니다. 늦는다고 말하는 걸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면 아이 입장에서는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이 세상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사실 말이라는 것은 대단히 영혼이 실려 있는 행위입니다. 결코 함부로 말해도 되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약속을 남발해서는 안 되고, 주의 깊게 말해야 합니다. 약속을 했다면 상대를 위해 지켜야 합니다. 생각하기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래서 생각하기 밑에 말하기(언어)라고 썼습니다. 이것은 마치 세상의 법칙과도 같습니다. 호수에 돌을 던지면 파문이 퍼지는 것과 같습니다. 던진 돌이 주변에 영향을 끼치는 것처럼 잘 생각하고 말을 해야 합니다. 입밖에 나온 말은 행위로 이어져야 합니다. 행위하기로 가면 세상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행위들이 긴요한 것일 때 이 세상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세상에 진정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생각하기도 아니고 말도 아니며 행위입니다프리드리히 실러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장미는 결함이 없이 장미이다. 그런데 너 인간이여, 장미처럼 결함 없는 인간이 되도록 노력하라.” 인간인 우리는 결함이 많습니다.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소가 송아지를 낳았습니다. “음머~” 하고 낳았습니다. 그런 송아지에게 너 더 소가 돼라라고 할 수 없지요. 소가 됐든 닭이 됐든 온전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는 그렇지 않습니다. “너 좀 사람이 돼라라고 합니다. 더 높은 인간이 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행위 속에서 나타납니다. 자기중심적이거나 이기적인 행위가 아닙니다. 스스로 더 나은 사람이 되라고 명령을 합니다.

 

슈타이너는 교육자들에게 사람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에게 관심을 갖고 집중하라고 했습니다. 많은 잠언과 강연을 통해 제시했습니다. “우리 영혼의 빈약한 불꽃으로 정신의 행위에 불을 붙여라.” 삶 속에서는 이렇게 연결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자기중심적으로 , , 만을 생각한다면 외부, 타인, 사회적 맥락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럴 때 내면은 움츠러듭니다. 그걸 버리고 용기를 갖고 외부, 타인을 향하는 것이 정신의 고양입니다. 느끼기 영역에 불을 지피라는 말입니다. 이게 곧 인간 삶의 흐름입니다. 이웃에 대한 공감, 함께 느끼기가 필요하며, 이것을 행위로 가져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감하고 주변의 아픔을 함께 느끼기가 될 때, 치유교육에서 어려움을 가진 아이들의 시련을 함께 느낄 때 아이에 대한 돌봄이 제대로 됩니다. 충분한 이해 속에서 행위가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럴 때 힘든 아이들에 대한 나의 행위가 진심으로 우러나올 수 있습니다.

 

내가 상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함께 느끼기가 가능하면 행위로서 내가 변합니다. 이것은 일상 속에서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지속적으로 행위를 할 때 내가 변할 수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윤리도 이렇게 연결됩니다. 영혼에 해당하는 윤리학 책에서 보면, “선을 행하는 길이 개 있다. 그것을 행할 때 우리는 행복한 사람이 된다.” 진정한 선을 행위로 옮겨가는 것은 나 스스로의 만족을 실현하는 것이고, 그럴 때 나는 제대로 된 인간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내가 아는 것,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행위로 가겠지요. 다른 하나는 앎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습관으로 가야 합니다. 지속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습관이 된다는 것은 자기가 의지적 행위로 가져가는 것입니다. 한 번 알고 끝나는 게 아니라 습관으로 가면 의지를 갖고 지속적으로 행위를 하는 통로가 됩니다. 이것이 성격의 일부가 됩니다. 성격이 큰 덩어리라고 한다면 그 일부는 습관입니다.

 

일상에서 우리가 누군가를 만날 때 취미 생활이 무엇인지, 여유가 있을 때 무얼 하는지 묻습니다. 규칙적으로 시간이 날 때 무엇을 하는지 알면 그 사람에 대한 상이 형성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성격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어떤 삶의 흔적을 남기고 사는가, 이것이 성격입니다. 그 사람의 행위를 통해 그 사람의 전기, 생애를 알 수 있습니다. 생각하기, 말하기, 느끼기, 행위하기, 습관, 그 다음에 성격을 써 보겠습니다. 이 성격은 우리의 기질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맡는다든지 취직을 한다면 그 결정은 운명과 연결됩니다. 안 맡을 수도 있는데 맡은 것이니까요. 취직을 했지만 실패할 수도 있잖아요. 그 다음에 쓰느 낱말은 그래서 운명입니다.

 

운명이라는 것은 출발점이 내가 한 생각, 생각을 말로 한 것, 말을 행위로 가져간 것, 행위가 습관이 되고 습관이 성격이 되어 나의 운명이 됩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잘 모르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생각을 잘 이끌어서 운명까지 가는 건 완벽하게 해내기 어렵습니다. 완벽한 아빠도 아니고 완벽한 교사도 아니고 등등 결함투성이입니다. 그렇다면 굳은 의지를 갖고 어떻게 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정답은 없지만 자기 자신의 인생 학교를 잘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연마할 수 있는 자기만의 학교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 학교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요?

 

<부차수련>에 대해 들어보셨지요? 물 뚜껑이나 성냥개비 같은 간단한 물건을 대상으로 합니다. 사소한 물건일수록 좋습니다. 그 물건의 색깔도 살피고 모양도 살피고 다각도로 살핀 다음 치우고 5분 정도 그 물건에 대해 계속 생각하는 연습을 하면 생각하기를 강화할 수 있습니다. 주의력에 초점을 맞춘 사고의 힘입니다. 이것을 잘 해내가면 고차적인 자아()를 계발할 수 있습니다. 무언가를 하기로 결정하고 계속 하다가 어느 날 안 하고 시장에 갔을 때 아차, 그거 해야지!” 하는 걸 알려주는 건 고차의 자아입니다. 이것은 영혼의 건강을 위해 대단히 중요하게 작용을 합니다. 무엇을 할까 말까 오락가락 고민할 때 이 사고 훈련을 계속 하면 높은 차원에서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가입니다.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예를 들어, 주변에 은근히 싫은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싫다면 사실 우리가 괴롭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생각을 잘 가꾸어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해 보십시오.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상상 속에 여러분의 장미 정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미를 따서 그 사람에게 주는 것입니다. 그런 상상을 통해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웃음) 우리가 일상 속에서 그 아름다운 장미를 그 미운 사람에게 바치는 일이 일어난다면 놀라운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이것은 아이들에게 더 효과적입니다. 미운 아이에게 마음 속으로 장미를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응용이고, 집중하는 대상에 관심을 가지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 다음으로 의지를 강화하는 연습입니다. 아무 의미 없는 짓을 정해진 시간에 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모르게 합니다. 그 시간에는 그냥 귓밥을 만진다든가 머리를 긁적이는 것입니다. 이것을 일상에서 반복해서 하면 하고자 하는 일을 해내는 의지를 강화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어마어마한 계획을 갖고 있다 해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실천하지 않으면 그냥 저 꼭대기에 있을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멋진 생각을 행위로 가져와야 지상에서 실천이 되는 것입니다. 12시에 코를 한 번 쓰다듬는 일이 쉽지가 않습니다. 5일쯤 하다가 깜빡했다면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다음 단계는 느끼기에서 균형을 잘 잡는 것입니다. 느끼기의 영역도 굉장히 복잡하고 다스리기 어렵습니다. 매일 저녁 돌아보기를 해 보십시오. 하루 종일 부글부글했던 일을 저녁에 돌아보기를 한다면 균형감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비유적으로, 등산할 때 커다란 화강암이 있습니다. 비바람이 쳐도 가만히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런 커다란 바위를 생각해도 좋습니다. 비바람이 쳐도 끄덕없이 자신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나무를 관찰하는 걸 좋아합니다. 산에 가면 아름드리 나무가 있습니다. 비바람이 쳐도 약간 움직일 뿐 다시 제자리로 갑니다. 우람찬 나무는 태풍이 오면 꺾일 수도 있습니다. 그 옆의 유연한 대나무는 태풍이 와도 휘어졌다가 제자리로 갈 수 있습니다. 이 둘을 동시에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영혼이 고유하게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호수가 잔잔하게 (그 내면이) 평정을 유지하면 모든 것을 되비칠 수가 있지요. 하늘도 구름도 떠가는 모든 것을 그대로 되비칩니다. 그러나 표면이 출렁이면 모든 것이 일그러집니다. 여러분이 내면의 평정을 잘 가지고 있으면 고차의 세계가 잘 비추어질 수 있습니다.

 

네 번째입니다. 우리가 긍정적으로 바라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밝은 쪽을 늘 바라보세요. 우리는 아름다움보다 추함을 잘 발견하고 그게 더 익숙합니다. 그러나 긍정성을 찾는 일에 더 집중해 보세요. 그래서 의미를 찾는 것입니다. 의미에는 긍정적인 게 담겨 있습니다. 모든 일에서 의미를 찾아 보십시오. 우리 삶의 흔적 속에서 위기의 대목이 있잖아요. 거기에서 의미를 찾아보면 긍정적인 게 들어 있습니다. 빅터 프랭클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지요. 우리 삶에는 아픔과 위기의 대목이 있습니다. 희망도 없고 슬픔에 가득 차 있어요. 시련을 마주했을 때 돌아보면 거기에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계기가 됩니다. 긍정성 찾기입니다.

 

다섯 번째는 개방성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굉장히 열려서 열심히 적고 있습니다. 슈타이너는 살아가면서 이 개방성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누가 무슨 이야기를 할 때 열린 자세로 듣고 판단하지 않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학생들에게 개방성의 중요함을 늘 이야기했습니다. 어느날 한 제자가 스승의 말을 실험하고자 왔습니다. 그래서 거짓말을 만들어서 믿나 안 믿나를 보려 했습니다. 그런데 토마스 아퀴나스는 굉장히 깨어 있는 현자였기 때문에 세 명의 비서가 늘 기록을 하고 있었습니다. “교수님, 저 교회 종탑 위에 당나귀가 올라가 있어요하고 제자가 실감나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가서 직접 보고 당나귀가 없는데라고 했습니다. 슈타이너도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늘 열려 있어야 한다, 누가 무슨 말을 하든 개방성을 갖고 일단 믿으라고 했습니다.

 

여섯 번째는 이렇게 시작된 모든 것을 실행에 옮기는 것, 연마하는 것입니다. 한 달 동안 계속 생각하기를 합니다. 그리고 의지, 느끼기, 긍정성, 개방성을 계속 합니다. 여러분이 자기 나름대로 시간을 내서 실천을 한다면 자기 중심을 잘 잡을 수 있는 연마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제 아이가 다섯이라고 했잖아요. 저는 항상 아이들을 위해 저녁에 인형극을 했습니다. (손수건을 묶어 인형을 만든 뒤 탁자 위에 움직이며) <정신과학에서 바라본 아동교육>을 보면 슈타이너가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냅킨, 천으로 인형을 만들어 보라고 했는데 실천을 한 것입니다. “안녕?” 하고 인형끼리 이야기를 하고 아이들에게도 이야기를 들려 주는 것입니다. 며칠 지나고 아이가 그럽니다. “인형아, 너희들 우리 아빠가 하는 거야.” “아빠? 난 잘 모르겠는데.” “아니야, 뒤에 잘 봐봐, 그게 우리 아빠야.” 그러니까 인형들이 그래? 한번 볼게.” 하는 거죠. 아이들 입장에서 위에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걸 느끼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집에서 이런 인형 놀이를 해 주는 게 중요한 일입니다. 여러분이 꼭 알아야 할 게 아이들에게는 판타지가 엄청나게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판타지로 인형과 진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아빠가 있다고 말하는 건 현실과 판타지를 오가는 것입니다. , 여기까지입니다.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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