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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폐쇄병동, 1020으로 가득”...마음의 병 앓는 청소년들 본문
“정신과 폐쇄병동, 1020으로 가득”...마음의 병 앓는 청소년들
조백건 기자
정해민 기자
2024.01.30.
대구의 중학생 신모(14)군은 수년간 게임 중독을 앓았다. 자기 방에서 밤새 게임만 했다. 학교엔 늘 지각했고 친구들은 ‘게임 오타쿠(オタク·마니아)’라고 놀렸다. 신군은 자신을 “필요 없는 사람”이라고 자책했다. 작년 말 심각한 우울증 진단을 받고 대학병원 정신병동에 입원하려고 했더니 빈자리가 없어 이번 달에야 입원할 수 있었다. 신의진 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는 29일 “과거 성인 조현병 환자들을 수용하던 세브란스 폐쇄 병동 30개가 최근은 1020 청소년들로 꽉 차 있다”며 “대부분 우울증이 심해져 자해·자살 시도를 한 아이들”이라고 말했다.
우울증·자해 등으로 정신과 마음이 아픈 1020 세대가 급증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7년 1020의 정신과 입원 환자는 1만3303명으로 전체 환자의 14.6%였다. 그런데 재작년엔 1만6819명(22.2%)으로 5년 만에 10%포인트 가까이 늘었다. 증가 속도가 가파르다는 것도 문제다. 국립중앙의료원 등에 따르면, 2021년 6월부터 2022년 6월까지 자해·자살 시도로 응급실에 온 4만3268명 중 46%(1만9972명)가 10~29세였다. 최근 5년간 전체 자해·자살 시도자가 11.7% 증가했는데, 같은 기간 10대와 20대는 각각 52.5%, 68.9% 급증했다. 이들이 자해·자살을 시도한 가장 큰 원인은 ‘정신과 문제(44.1%)’였다. 그런데도 부모들 중엔 정신과 치료에 대한 편견 등으로 “우리 애는 사춘기일 뿐 문제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최근 우울증 환자도 10대와 20대에서 가장 빨리 증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울증 등으로 인한 공격·충동 성향이 안으로 발현하면 자해, 밖으로 나타나면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요즘 1020 사이엔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기 신체 일부를 훼손한 사진, 일명 ‘자해 전시’ 사진을 공유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환각 효과를 일으킨다고 소문난 특정 감기약을 다량 복용해 응급실에 실려간 ‘약물 자해’ 후기도 넘쳐난다.
상담·치료 필요한 학생 25만명… 어른들은 “사춘기 땐 다 그렇다”
‘마음의 병’ 곪아가는 1020
최은경 기자
오유진 기자
정해민 기자
2024.01.30
고3 A군은 지난달 아파트 4층에서 뛰어내렸다. 수능으로 의대에 가려 했지만 올해 원하는 점수를 못 받았다. 그런데 평소 모의고사 점수가 낮던 친구가 수시로 의대에 들어가자 극단적 행동을 한 것이다. A군은 “나보다 공부를 못했던 친구는 의대 가는데 나는 못 가는 게 너무 억울하다”고 했다. ‘대학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정신과 의사 말에도 귀를 막았다. 중학생 B양은 약물 과다 복용 등 자해·자살 시도로 최근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학교 친구들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따돌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 교육 현장에선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청소년들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다. 2022년 정신병원에 입원한 1020세대는 1만6819명으로 전체 입원자의 22.2%를 차지했다. 작년 상반기에만 1만1016명의 1020세대가 정신 병동에 들어갔다. 계속 증가하고 있다. 2022년 자해·자살로 응급실에 간 환자가 4만3268명인데 이 중 1만9972명(46.2%)이 10대와 20대였다. 보건복지부가 국민의힘 백종헌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우울증 등으로 치료받은 환자가 2019년(코로나 전)에 비해 가장 많이 늘어난 연령대로 20~29세(51%)와 10~19세(46.9%)가 꼽혔다.
대전의 고교생 C양은 지난해 학교에서 자신의 손을 칼로 벴다. 교사에겐 “누가 나를 죽여줬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했다. 학교는 “중증 우울증이 의심된다”며 부모에게 알렸다. 그러나 C양 부모는 “사춘기는 누구나 겪는다” “우리 애는 문제없다”며 정신과 치료를 거부했다. 일선 학교와 교사는 자살 고위험군 등으로 분류된 학생 보호자에게 병원 치료를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 중 20%는 “집에선 문제없다” “사춘기엔 다 그런다”며 권고를 무시하고 있다. 정신과 치료에 대한 편견과 거부감이 아이들의 병을 더 키우는 것이다.
교육부는 지난해 초 1·4, 중1, 고1 등 4개 학년 173만1596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심리 검사를 했다. 그런데 2만2838명이 ‘자살 위험군’으로 분류됐다. 초·중·고 12개 학년으로 계산하면 자살 위험군이 7만명에 달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4개 학년 중 상담·치료가 필요한 ‘관심군 학생’도 8만2614명이었다. 12개 학년으로 환산하면 25만명의 학생이 치료 대상이라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검사에서 드러나지 않은 자살 위험군과 관심군 학생은 더 많을 것”이라고 했다.
D(19)양은 최근 손목에 바코드 모양 줄을 그은 채 병원에 왔다. 평소 부모님과 사이가 안 좋은 D양은 밤에 혼자 있을 때 우울한 마음이 들면 자해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몸에 상처를 낸다. 한번은 팔뚝에 주삿바늘을 찔러 피를 뽑는 자해를 한 적도 있다. 홍현주 한림의대 교수는 “청소년들은 처음엔 조금씩 피를 내는 정도로 자해를 하다가, 점점 강도가 세져서 깊게 찔러 꿰매야 할 정도로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1020세대가 ‘마음의 병’을 앓는 이유는 다양하다. 신의진 연세대 의대 소아정신과 교수는 “입원한 학생들과 상담하다 보면 대다수는 가정 양육에 문제가 있다”며 “번듯한 전문직 부모도 성적으로 아이를 닦달하고 학원만 돌리는 게 ‘정서적 학대’가 될 수 있다는 걸 모르더라”고 했다. 정찬호 마음누리학습클리닉 원장은 “요즘 아이들은 물질적으로는 풍요롭고 여러 사교육을 받아 할 줄 아는 건 많지만, 부모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압박도 매우 큰 세대”라고 했다. 온라인 괴롭힘과 따돌림도 10대들 마음에 상처를 준다.
온라인에 자해·자살 관련 정보가 넘쳐 나는 것도 문제다. 특정 소셜미디어에는 청소년들의 자해 경험담과 사진이 실시간으로 올라온다. 김동욱 대한정신건강의학과 회장은 “청소년들이 소셜미디어에 자해한 증거를 올리며 소속감이나 동질감을 느끼는 문화까지 번지고 있다”고 했다.
배승민 가천대 소아정신과 교수는 “학교 내 상담 기관인 ‘위클래스’는 현 상황에서 학교 폭력 등 눈에 보이는 문제만 집중할 수밖에 없다”면서 “지금보다 다양한 측면에서 청소년의 마음을 살피고 상담하는 기능을 키워야 한다”고 했다. 김재원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는 “미국 소아청소년과학회는 만 12~18세 소아청소년들이 매년 1회 우울증 선별 검사 받도록 권고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연 1회 정도 검사 받을 수 있게 하고 위험군 아이들이 입원할 수 있는 병동도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https://www.chosun.com/national/education/2024/01/30/PBZRKVNEVNENPBD6NISNH3KS6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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