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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마을교육공동체의 기반, 사회적 공공 시스템을 들여다보다 (울산저널)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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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마을교육공동체의 기반, 사회적 공공 시스템을 들여다보다 (울산저널)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19. 12. 3. 11:03

기획취재 - 독일 마을교육공동체의 기반, 사회적 공공 시스템을 들여다보다

 

 

이동고 기자  / 기사승인 : 2019-11-09 

 

 

[울산저널] 이동고 기자= 기센(Gießen)지역 수학박물관(Mathematikum)에서 성인뿐만 아니라 어린이들이 어떻게 수학을 재미있고 흥미로운 놀이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는지를 살펴보았다. 또 에르푸르트(Erfurt)에 있는 직업학교를 방문해 독일 학생들이 자기 적성을 찾아가는 교육받는 과정을 취재했다. 이어 뉘른베르크(Nurnberg)에 있는 발도르프 학교를 방문했다. 개교한 지 70년을 조금 넘긴 이 학교는 1000명이 넘는 학생이 다니는데, 슈타이너 인지학에 바탕을 둔 학습자의 내재적 능력을 이끌어내는 예술교육이 중심이 된 통합교육을 취재했다. 

 

발도르프 교사가 되려면 칠판 그림을 1년 배워야 한다. 저학년 학생들을 위한 상상력을 키우는 그림이나 역사해설을 위한 그림을 교사는 자유자재로 그릴 수 있어야 한다. 또 칠판은 이중으로 돼 있어 입체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게 돼 있다. 양 옆에는 계절에 맞는 자연물로 장식해 계절감각을 살리도록 도움을 준다. 

 

▲ 수학박물관 문제풀이를 데이트 코스로 잡은 것일까? 다음 단계까지 한참이 남았는데 한 커플이 진지하게 문제를 풀고 있었다.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이동고 기자  

 

즐거운 만지는 수학, 기센지역 수학박물관 

기센지방은 독일 연방 주 헤센(Hessen)의 도시다. 인구는 약 2만6000명인데 약 2만4000명의 대학생이 있을 정도로 교육 도시다. 이 도시가 표방하는 것은 역사와 진보. 예술과 기술의 병치는 대학 도시 기센의 중요한 공간을 차지하는데 이곳에 수학박물관이 있다. 이 박물관에는 흥미로운 대화형 실험의 형태로 수학을 이해하게끔 전시돼 있다. 알브레히트 보이텔슈파허(Albrecht Beutelspacher) 교수는 항상 광범위한 대중에게 수학을 이해하게 하는 데 관심이 많았다. 독일 수학박물관은 1994년 독일 기센대학의 보이텔슈파허 교수가 수학적 모델을 만들고, 거기에 담긴 수학의 원리를 학습하도록 ‘만져보는 수학’이라는 개념으로 개발한 곳이다.

 

▲ 아이들에게 단연 인기가 가장 높았던 전시물 비누방울 만들기, 아이들은 큰 비누방울 안에 들어가는 재미를 느끼며 자연스레 복잡한 수학현상을 체험한다.  

 

5층 건물 1200m² 이상의 전시 공간은 170개가 넘는 실험을 수행할 수 있다. 입장권을 끊으면 하루 박물관 출입이 자유롭다. 그만큼 전시물 관람에 많은 시간이 걸린다. 취재를 간 날에는 유아들이 단체견학을 왔고 젊은 커플이 오랫동안 앉아 수학실험을 했다. 아버지와 아이가 같이 수학실험을 하고 주부로 보이는 이들이 원형으로 도는 판 위에서 웃으며 놀이에 열중하고 있었다. 한 노부부를 만나 물어보니 자신의 퇴화하는 뇌능력을 회복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이곳에 와서 놀이를 즐긴다고 했다. 


가장 인기가 많은 것이 바로 거대한 비눗방울 안에 들어가는 체험이다. 이 체험을 통해 복잡한 수학적 현상 중 하나인 비눗방울이 바깥 표면을 가장 적게 하기 위해 모래시계처럼 허리가 잘록하게 변하는 모양을 볼 수 있다.

 

▲ 입체적인 모양을 그림자를 만들어 틀 안에 넣는 체험, 모양과 거리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 풀어야 한다. ⓒ이동고 기자

 

팩스 거울은 완전히 대칭적으로 서게 되면 왜 불편한지 이유와 완전한 대칭이 어떻게 사람을 웃게 만드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이진법으로만 이뤄진 표식으로 체험자의 키를 표시하는 전시는 디지털의 세계를 쉽게 체험하고 이해하게 만든다. 또 많은 직선을 통해 곡면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경이로운 체험도 안겨준다. 아울러 둥근 바퀴만 굴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각 바퀴도 굴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레오나르도 다리’는 단순한 나무 칸막이만으로 접착제 또는 기타 도구가 없는 견고하고 안정적인 다리를 만드는 것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노틸러스’는 해수면 아래 생물체를 통해 수학의 원리를 가르쳐 준다. 노틸러스 나선은 ‘살아 있는 수학’으로 달팽이 껍질이 대수적으로 구성돼 있다는 것을 통해 자연 형태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준다. 파이(π)는 소수점 이하 자릿수가 얼마나 비밀이 많은 숫자인지를 보여준다. 삼각형, 사각형 및 기타 기하학적 모양으로 창의력을 자유롭게 발휘하고 다양한 인물, 신체 및 기타 구조를 만드는 것이 가능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길이는 음악을 만든다. ‘청취용 튜브’ 전시물은 숫자의 세계와 소리의 세계가 생각보다 가깝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체스 판 발명가의 이야기로 등비수열을 설명한다. 6세기 인도 굽타 왕조 당시 황제는 체스 발명가에게 어떤 보상을 원하느냐고 물었다. 발명가는 체스판의 64개 칸을 기준으로 차례로 쌀알을 1,2,4,8,16 등 두 배씩 늘려달라고 했다. 황제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고 들어줬는데 체스판의 절반까지만 가도 쌀알 40억 개로 논 몇 마지기 분량이었다. 한 톨에서 시작한 그의 쌀 곡물 급여가 계속해 두 배가 될 때 일어나는 일은 아주 경이로운 체험임을 보여준다.


바람을 이용해 무중력으로 날아가는 공, 피라미드를 특이한 단면으로 분할했을 때의 경이로움 등은 체험객으로 하여금 주변 자연의 현상이 수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을 자연스레 설명한다. 수학박물관은 자신들의 목표를 ‘모두를 위한 수학’이라는 말로 간단히 표현한다. 수학박물관은 수학에 새로운 문을 열어주는데, ‘수학에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수학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놀라운 체험을 안겨주고 있다고 자부한다. 학교 수업은 수학 현상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제공하며 가족은 수학박물관에서 활기차고 유익한 하루를 경험한다. 또 이들이 내세우는 것은 ‘만지는 수학’이다. 수학박물관 방문객들은 수학의 모든 영역에서 실험을 통해 수학을 경험한다.  

 

▲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운 사진기술로 찍은 작품들. 학생이라지만 벌써 전문가의 기술과 자기만의 사진을 만들어 가고 있다.ⓒ이동고 기자

 

적성을 키우는 기술자 양성, 발터 그로피우스 직업학교 방문 

다음은 에르푸르트(Erfurt)에 있는 직업학교를 방문했다. 에르푸르트에는 모두 7개의 국립 직업학교가 있는데, 기술, 영양, 요양 등 각각의 다른 분야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방문한 곳은 기술 교육 및 훈련을 중심에 두고 있는 발터 그로피우스 학교(Walter-Gropius-Schule)다. 독일의 예술학교 바우하우스(Bauhaus)를 설립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의 이름을 딴 이 학교는 1968년에 설립된 독일연방공화국 최초의 종합학교다. 그에 어울리게 예술과 관련된 실용적인 기술을 중요한 교과 과정으로 두고 있었다. 학교를 둘러보면서 갖추고 있는 다양한 시설들을 볼 수 있었다. 

 

▲ 독일 교육 방식은 다양한 경로를 거쳐 적성을 찾아간다. ⓒ이동고 기자

 

먼저 독일의 교육제도를 알고 가는 것이 필요하다. 하우스트 슐레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언어·산술·지리·역사·과학·음악·미술·체육 등을 계속 공부한다. 일반적으로 남학생에게는 산업미술을, 여학생에게는 가정학을 가르친다. 하우스트 슐레에서 4~5년간 교육을 받은 뒤에는 도제훈련으로 들어가게 된다. 독일에서 중등학교라는 용어는 고등교육기관(대학) 입학 자격증인 ‘고등학교 졸업증서’를 대비하는 교육기관을 말한다. 레알슐레에서는 학생들에게 일반 교육, 예비 직업과정, 영어교육을 실시한다. 만15세가 되면 학생들은 공부를 마치고 직업학교에 입학하거나 도제훈련으로 들어가게 된다. 학문적으로 우수할 경우에 김나지움에 전학할 수도 있다. 김나지움은 고등교육에 대비해 대학준비교육을 엄격하게 시키는데, 학업 능력이 뛰어난 학생들을 위한 학교이며, 학생들은 9년 내내 언어·수학·자연과학·사회과학을 강조하는 교육과정을 이수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김나지움에서 성적이 나쁜 학생은 하우스트 슐레로 전학하기도 한다. 또한 김나지움을 중도 자퇴하고 직업학교에 입학할 수 있다. 우리처럼 단선적인 구조가 아닌 진로를 향한 다양한 방식의 길을 제공하고 있다. 김나지움에 다니는 학생은 고등학교 졸업시험인 아비투어(Abitur)를 치르고 고등학교 졸업증서를 받아야만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 실습교실에 있는 설비들은 아주 정교하게 준비돼 있었다. 배관기술을 실습하는 실험교실이다. 전기작업장, 콘크리트 작업장 등 실제적인 기술을 체험한다.ⓒ이동고 기자  

 

그로피우스 학교 (Walter-Gropius-Schule, 이하 WGS) 

현재 약 2400명의 학생들이 이곳에서 배우고 있으며 교사와 교직원은 이를 지원한다. 이 학교는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가 직접 설계했고 학교 건물은 파빌리온 양식으로 지어졌다. WGS는 중등교과 중심의 13학년 과정으로 초등학생도 포함하고 있다. 교사와 학교 직원들은 학생들이 적성에 맞는 학습, 교육과 기술 개발 방법을 찾도록 하고 있다. 다양한 유형의 학교 교사는 WGS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이 학교 과제를 보다 사회적으로 인식하고 자신감을 갖도록 성과를 향상시키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WGS는 학생들 업적과 능력, 요구 수준에 따라 공통적인 수업 원칙을 적용하지만 한편으로는 한 학급, 다른 학급 또는 다년간의 학습 그룹이 있을 수 있기에 내부 차별화를 동시에 꾀하고 있다. 공동으로 이뤄지는 학교 학습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은 사회생활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고, 자신의 적성에 맞는 서로 다른 차이를 만든다. 독일기술학교는 크게 7개 분야가 있다. 영양, 요리 분야, 기술 분야, 요양, 간호 분야 등으로 나눠져 있다.

베른드 핀케(Bernd Finke) 교장, 직업학교의 입학과 취업  

학생들이 학교를 입학할 때는 이미 자신이 가고 싶은 회사와 접촉을 하고 온다. 기초과정 10년 학교를 다니며 상담교사와 적성 검사를 통해 희망하는 회사를 직접 가보고 최종 결정은 부모가 한다. 어떤 학교에서 배우면 회사에서 받아준다고 계약하면 다른 학교가 아니라 반드시 그 학교를 들어가야 한다. 다양한 학교와 학교끼리 네트워크가 있고, 회사와 학교 간의 네트워크도 발달돼 있다. 이런 시스템은 1970년대부터 만들어져 내려오는 도제 견습교육 시스템에서 비롯됐다. 어떤 직종에 따라서 학생을 고용하는 회사 크기도 다양하고 회사마다 영역이 다르다. 제품생산도 다르기에 각 부문마다 뽑는 방식이 다르다. 분야마다 다른데 학교 간에 네트워크가 발달돼 있어 한 회사가 직원을 뽑는다고 하면 그 직종과 기술에 맞는 학교에서 그 분야에 필요한 학생 수를 알려주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견습기간 중 정직원의 1/3 경비 받아 

학생들은 견습기간 중 정직원의 1/3가량 경비를 지급받는다. 하지만 그것은 급여성격이 아니라 훈련비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계약서에 명시돼 있는데 이들은 소정의 교통비, 책값, 시험 비용 등을 지원받는다. 일반적으로 400~800유로 정도를 받는데 소정의 비용, 작업복, 시험비, 보험, 연금 다 대어 준다. 미래 직원을 위한 교육훈련비 같은 성격으로 지출하는 것이다. 정부지원 없이 기업이 다 부담한다.  


학생 입장에서는 이점이 많다. 학생들이 실습용으로 쓰는 기계장비는 고가지만 부담 없이 실습할 수 있기에 학생들이 사설학원을 다니거나 하는 방식의 비용이 들지 않는다. 이런 것은 독일이 유럽 어느 나라보다 잘 돼 있다고 평가된다. 학교는 이론적인 공부만 시키면 실기는 회사가 책임지니까 학교 입장에서도 별 부담이 없다. 직업교육과정을 마치면 무조건 취업되는 것은 아니고 자리 제한이 있기에 경쟁도 있다. 인기 있는 좋은 직장으로 인식되는 것이 조건마다 다르다. 회사가 고용하는 인원은 분야마다 다른데 생산하는 물품도 다르고 이 회사는 이런 학교 직업훈련 파트가 지원해야 한다는 식으로 학교 네트워크가 발달돼 있다. 지금 학교에서 쓰는 책상과 의자, 교구들도 지역의 중소기업 회사에서 만든 것인데 1명을 모집할 수도 있고 3~4명을 모집할 수도 있다. 10명 정도 모집하면 많은 축에 속한다.  


이 학교는 30가지 분야를 가지고 있기에 세분화된 직종에 맞는 이론교육이나 기초적인 기술교육이 다 가능하다. 자동차 관련, 비디오 관련, 난방시설과 관련된 것에 전문성이 있다. 2가지 과목을 선택해야 하고 중간에 하나가 힘들면 바꿀 수도 있다.  


회사를 끼고 오는 학생들, 자신의 기술이나 경력을 쌓기 위해 오는 학생들, 즉 마에스트로가 되기 위해 보다 전문적인 기술을 가지고 싶은 학생, 전문대를 가기 전에 기술력을 높이기 위해 오는 학생, 대학 진학 전에 대학에 필요한 전문기술을 배우고 싶어 하는 학생 등 다양한 요구를 가지고 이 학교에 입학한다. 경력을 쌓기 위해 오는 학생들은 약 500명 정도이고 1400명 정도는 회사를 정하고 들어오는 학생이다.  

 

 

독일 기술인들의 자부심 

학교를 졸업하면 전문적인 기술자로 대접받기 때문에 대학에 갈 수도 있고 좀 더 큰 회사로 옮길 수 있다. 부족하다싶으면 전 단계 기술을 보충받을 수도 있다. 독일의 학생들은 전문적인 실력을 갖추고 있기에 기본적으로 보수도 높고 자부심을 가진다. 오랜 기간 쌓여온 직업교육제도이기에 독일처럼 시스템적으로 잘 돼 있는 나라가 유럽에는 드물다는 평가다. 대학을 가기 위해 수능을 보기도 한다. 학생들이 사회로 나아가는 방식이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돼 있다. 독일은 연방제라 주마다 의무교육을 제외한 나머지 교육영역은 다르다. 이 직업학교 성비는 70%가 남자고 30%는 여자다. 좀 더 높은 전문대학에 가고 싶어 하는 분야는 여성이 더 많다. 다른 직업학교에서는 여성 비율이 높은 분야는 영양 쪽이나 경제 경영 분야, 미용관련 분야다.

건축가 이름을 딴 것은 예술적인 영감을 담기 위한 것 

이 학교는 단지 기술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인 예술영역의 가치를 배우라는 것이고, 학생들이 직접 만든 작품 전시회가 열리는 공간도 있다. 조그만 것이지만 예술작품이다. 그로피우스는 실용성을 강조한 사람이고 이런 이름을 받기까지 유가족들 동의도 받아야 하며 제2의 그로피우스를 배출하고픈 소명의식도 가지고 있다. 만일 그로피우스 같은 건축가가 되기 위해서는 직업학교를 졸업하고 수능을 치러 대학을 가서 정규과정을 마쳐야 한다. 예를 들면 미술대학 등을 다니는 식의 자기 노력이 따라야 한다. 이 학교는 그런 길로 나아갈 수 있는 기초소양을 쌓는 학교다.


이 학교 학생은 한국과 일본처럼 부모가 어떤 특정 직업을 가지라는 압박이 별로 없다. 이곳 학생들도 핸드폰을 갖고 놀기 때문에 수업에서 집중에 방해를 받는 것은 똑같지만 학생들의 집중력을 높이고 흥미로운 수업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독일에도 아이들을 방치하는 부모들이 있지만 대부분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특정 직업을 강요하지 않기에 아이들이 무엇을 하기 전에 겁부터 먹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고 한다. 학생들이 자신의 취향을 정확히 알고 배우려고 할 때 가장 높은 집중력을 발휘한다는 원리에 기초하고 있다는 평가다. 아이들이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면 스포츠를,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면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자주 가는 식이다. 

 

▲ 발도르프 학교에서 목공을 배운다는 것은 단지 기술을 넘어 자신의 창조적인 예술활동으로 자신감과 자존감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통합예술교육, 뉘른베르크의 발도르프 학교를 찾아서  

 

독일 발도르프 교육을 취재한 것은 루돌프 슈타이너 박사의 인지학을 통해 만들어진 교육학으로 250여개 학교에서 활발한 교육이 진행된다는 것 때문이었다. 우리나라도 2000년대 초반 발도르프 교육에 대한 높은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취재가 마을교육공동체 취재로 이뤄졌기에 전면적인 발도르프 교육을 다룰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처럼 경쟁위주의 기능적이고 분할적인 교육경험을 가진 나라 입장에서는 발도르프 교육이 가지는 ‘사람 중심’, ‘예술교육 중심의 통합성’, ‘잠재능력의 계발’이라는 측면과 특히 인간성이 황폐해지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정신과 영혼을 중시하는 정신과학(인지학)으로 ‘도덕적 인간화’에 대한 관심은 중요하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압축성장을 통해 생긴 물질 만능주의가 난무했는데, 발도르프 교육철학이 사람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치유해 그걸 바탕으로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해택을 올려줄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 루돌프 슈타이너(Rudolf Steiner) 박사. 그는 정신과학인 인지학(人智學)을 창시했고 발도르프 학교는 그 이론에 맞게 교육과정을 편성한다. 

 

통합성을 지닌 예술을 중심으로 교육에 접근하기  

슈타이너는 교육을 예술로 파악하기에 ‘교육예술(Erziehungskunst)’이라고 표현한다. 예술로서의 교육이 이루어지려면 예술처럼 교육을 이해하고 수업할 수 있는 교사가 필요하다. 교육을 예술이라고 하는 이유는 부분에서도 전체를 느낄 수 있다는 통합성 때문이다.


교육과정은 예술적인 교육 내용, 리듬이 살아 있는 교육, 8년 담임제, 주기집중수업, 오이리트미(인간의 몸을 통해서 소리를 보여주는 움직임의 예술. ‘볼 수 있는 말’이자 ‘볼 수 있는 노래’라고 슈타이너가 규정), 졸업시험으로 대표된다.     


100년 전 사람인 슈타이너 박사는 산업사회가 우리에게 가져다 줄 문제점을 예견했다. 첫째, 인간성에 상처를 가져올 것이고, 둘째, 공동체를 와해시킬 것이다. 그리고 환경파괴를 가져올 것이라는 것. 지금 되돌아보면 그의 예상대로다. 인간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잔인한 일들이 벌어지는 건 인간 본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인간 본성을 교육을 통해 찾아야 한다. 교육을 통해 인간성을 회복시키고 공동체를 다시 느끼고 환경을 보전해야 한다는 슈타이너 철학은 아직도 유효하다. 발도르프 교육은 단순한 대안교육이 아니라 정신과학에 근거한, 100년 전부터 뿌리내린 교육 사상이다. 원래 대안교육의 뿌리는 미국에서 기존 공교육에 대한 반대로 나왔다가 지금은 약화된 상태다. 인간정신에 대한 교육으로 접근한 발도르프 교육과는 출발이 달랐다고 봐야 한다.


루돌프 슈타이너 박사는 교육자일 뿐 아니라 건축가, 철학자, 예술가다. 그만큼 슈타이너 박사의 인지학은 다방면에서 인간에 대한 이해를 시도한 학문이었다. 사람은 신체(Leib), 영혼(Soul), 정신(Spirit) 세 가지로 이루어졌으며, 인간의 본질은 정신이다. 영혼은 생각하고(thinking) 느끼고(feeling) 행하는(willing) 영혼생활을 통해 정신과 신체, 정신세계와 물질세계를 연결한다. 인지학은 일반 심리학보다 더욱 광범위해 심리학의 지평을 넓혔다고 평가된다. 슈타이너 박사의 발도르프 교육은 인간만이 갖고 있는 정신에 대해 교육적으로 접근한 것이며, 이 정신을 찾기 위해서 영혼을 일깨워서 노력해야 한다는 인간학적 내용을 포함한다. 즉 내 자아와 저 밖의 세상을 연결해서 더 높은 자아로 발전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교육은 교사들의 자기수양을 위한 과정이기도 하다. 색채를 인식하는 과정 역시 바로 내가 색을 볼 때 나는 밖으로 나가고 색은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것으로 이해한다. 경계가 없는 색채의 본질을 통해 내 영혼에 대한 깊은 체험의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다. ‘오이리트미’ 역시 마찬가지다. 생명이 있는 건 모두 움직임을 갖고 동물은 본능을 따르지만 인간은 정신에 의해, 살아 있는 ‘나’라는 참자아에 의해 움직이며 참자아를 강화시키기 위해 동작예술을 하면서 더 높은 자아를 추구한다고 했다.  

풍부한 예술성을 지닌 교사의 필요

슈타이너 이론에 의하면 교육이 예술적이기 위해서는 먼저 교사 자신이 풍부한 예술성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예술가로서 자각하는 일이 요구된다. 슈타이너는 교사, 특히 아동기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를 ‘영혼의 예술가’라고 부른다. 교사는 예술적인 것을 기쁘게 사랑할 수 있고 예술적인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열정(enthusiasm)이 필요하다. 슈타이너는 교사가 열정을 가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첫째, 인간·아동 본성에 대한 인식, 둘째, 세계 본질에 관한 인식을 해야 한다고 답한다. 교사가 인간과 세계에 대해 친밀하고 생생한 관계를 맺는 것은 인지학적 방법을 통해 가능하다고 역설한다. 예술가로서 발도르프 교사는 학교를 살아 숨쉬는 유기체로 만들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교사양성과정에서 예술교육을 중시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교사가 먼저 저 높은 참자아를 찾고 강화시켜서 아이들이 자아를 발견할 수 있게 돕는 존재로 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자아를 강화시킬 수 있도록 이 세계와 저 높은 세계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잘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발도르프 교육은 기독교적인 색채가 강하지만 인간의 정신을 교육학적인 입장에서 규명하고 찾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뉘른베르크 발도르프 학교도 종교교육을 정식 수업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실제 불교, 힌두교, 천주교, 기독교 지도자를 초대해 종교 이야기를 직접 듣는다. 특정 종교를 강요하진 않지만 종교를 믿는 인간 자체의 영성에 대한 이해를 구하기 위해서다.

 

▲ 학생들이 그린 자신의 자화상, 어느 것 하나 비슷한 것이 없이 각자 다른 차이를 가진 개성이 잘 드러나 있다.

 

발도르프 학교의 독자성과 도제시스템  

250개 발도르프 학교들은 독자적이고 학교의 규모가 다르다. 지역산업과 결합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슈타이너는 교사가 학생들을 다 알고 있을 정도의 규모여야 한다고 했는데 뉘른베르크 발도르프 학교는 학생 수가 천명이 넘어 불가능하다. 이 학교는 지역의 유명한 문구회사인 ‘스테들러’로부터 스폰서를 받았다. 이후 스테들러가 재단을 만들어 도제 시스템을 지원해 주었다. 학교에 수공예 수업은 있지만 학교 내 공방을 직접 만들어 기술을 배우는 도제시스템을 도입한 학교는 그리 많지 않다. 공방에서 기술을 배운 학생이 졸업하면 바로 스테들러에 취직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는데 지금은 그 맥이 끊겼다. 어떤 학교는 책상 만드는 도제 시스템이 있는 곳도 있다.

 

울산에서 9년째 발도르프 어린이집의 교사활동을 해온 손정운 씨는 독일에서 한 달 동안 실습할 때 발도르프 학교에 숲유치원이 같이 있었다고 했다. 독일에서는 유치원과정을 마치고 초등과정으로 바로 갈 수 없는 인지발달능력이 뒤떨어진 아이들은 다시 유치원(킨더 가르텐)으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숲유치원에서 1년 간 활동하면서 균형감각을 길러 초등학교로 보내는 교과과정을 진행한다. 1년 동안 숲에서 뛰어 놀면서 인지능력을 높이는 식으로 진행했다고 한다.


손정운 씨는 “우리도 유치원을 졸업하면 바로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적응하기 어려운 친구들이 많다”며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필요한 인지능력을 숲 치유활동으로 채워 그런 아이들을 위한 교육 과정이 있다는 것 자체가 신선한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교육환경이 너무 달라져 적응을 못하는 아이들에게 “너는 초등학교로 진학을 못하는 아이야” 하는 식으로 의기소침하게 할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신나게 뛰어 놀며 놀이를 통해 자신을 채워 초등학교에 입학할 준비가 됐다는 것을 당당하게 보일 수 있는 그런 독일 교육이 너무나 부러웠다고 덧붙였다. 손 씨는 마을교육공동체 교육에 지식과 기능 중심이 아닌 예술중심의 통합교육이 도입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동고 기자 / 통역 정지은  
http://www.usjournal.kr/news/newsview.php?ncode=1065558690743754

 

* 약간의 문장 수정이 있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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