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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칼럼

인지학과 음모론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1. 1. 11. 18:25

인지학과 음모론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코로나 팬데믹은 여러모로 우리 시대의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는 중입니다. 며칠 전 미국 국회의사당에 난입한 시위대들은 집기를 부수고 약탈을 자행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에서 승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초유의 사건이 벌어진 것인데, 이들이 단지 백인이라는 이유로 경찰은 강경진압을 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해 'Black Lives Matter'를 외치며 비폭력시위를 하던 흑인들에게 미경찰이 했던 짓을 생각하면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이 얼마나 극심한지, 또 트럼프와 그의 추종자들이 믿는다는 큐아넌(QAnon) 같은 음모론이 사람들의 정신을 얼마나 오염시켰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신의 오염과 타락은 세계적인 일입니다. 세계 곳곳에 음모론을 주장하는 시위대들이 나타났습니다. 평범한 시민들뿐 아니라 학자, 의사, 교육자, 정치인 들 중에서도 유사과학과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인물들이 나타났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현대 과학에 반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반감이 지나쳐 정부나 학계에 적개심마저 드러냅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정부는 거짓말을 하고 있고 특정 인물들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스크를 쓰면 산소가 부족해져 두뇌가 파괴된다든지, 백신은 부작용이 크므로 맞으면 안 된다든지 하는 이야기는 양반입니다. 코로나 백신에 마이크로칩을 넣어 인류를 통제하려 한다거나, 바이러스가 5G 통신망을 통해 퍼지니 기지국을 불태워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한숨이 나옵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실천도 맹렬히 하는 경우가 많아 문제를 악화시킵니다. 이들의 맹신은 강렬한 것이어서 불안한 사람들을 자극합니다. 세상에 대한 불만, 두려움, 조급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확신을 가진 이들의 신도가 되기 쉽습니다. 이들은 함께 내러티브를 지어내며 sns와 유튜브를 통해 믿음을 전파시킵니다. 이들의 주장은 단순하고 명확해 보입니다. 그러나 근거는 미약합니다. 재미있게도 이들은 과학을 비난하면서도 과학의 권위를 이용해 자기들 주장을 합리화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점조직 형태로, 조심스럽게 세력을 확대합니다. 각종 커뮤니티, 종교모임, 교육모임 등이 이들의 타겟입니다. 일종의 세뇌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극소수의 학자, 의사, 정치인의 이야기를 가지고 와 대다수의 학자, 의사, 정치인 들의 주장을 무력화하려고 하죠. 그러면서 자기들만이 진리를 알고 있다는 식의 우월감을 드러냅니다. 물론 대다수의 사람들이 바보라서 지금의 불편과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아무려나 이런 음모론을 퍼뜨리는 극우정치세력, 신비주의자들 또는 정신 나간 분들의 해악은 팬데믹 이후에도 상당 기간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예상됩니다.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이면 비슷한 믿음 체계가 형성되기 마련입니다. 필연적으로 편견도 생겨납니다. 확증편향이 강화된다고 해야 할까요. 따라서 사회가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다양한 생각을 가진,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이 모여서 일을 해야 합니다. 서로 토론하고 비판하며 과학적 합리성을 찾아가야 합니다. 상대주의는 제한적으로 허용됩니다. 서로 생각이 다를 수도 있지만, 틀린 생각도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반사회적이고 비도덕적인 사고 방식을 상대주의의 이름으로 들이미는 사람을 공동체는 교화시키거나 배제시킬 책무가 있습니다. 흔히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관용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사람들의 정신을 오염시키기 일쑤입니다. 사실과 거짓을 뒤섞고 반대자의 말꼬투리를 붙잡아 지엽적인 문제에 매달립니다. 거짓말, 아무말, 헛소리를 하는 건 예사입니다. 그리고 자기(들)만이 옳다며 동어반복의 주장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보통 자기는 편견이 없다고 말하지만,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란 자기에게 편견이 있다는 걸 인정하는 쪽입니다.

 

발도르프 교육과 인지학을 연구하면서 이쪽 분야에도 음모론적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스크를 쓰지 말자고 선동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백신에 어떤 물질이 들어가는지 모르니 맞지 말자고 하는 사람도 있지요. 이것은 단지 한국뿐 아니라 일본이나 독일 같은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경향성이 있는 사람들이 인지학을 이용하는 게 문제라고 봅니다. 신천지나 인터콥 같은 단체에 빠진 사람들이 기독교를 이용하는 것처럼요. 어제자 가디언지를 보면 필립 올터만(Philip Oltermann)이라는 기자가 독일의 인지학병원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비판하고 있습니다('Ginger root and meteorite dust: the Steiner ‘Covid cures’ offered in Germany'). 이 기자에게도 편견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도 인지학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경계해야 하고, 또 어떤 노력을 더 기울여야 할지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외따로 떨어져 나와 우리들만의 언어와 사고 체계로 섬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인지학을 추구하는 사람들일수록 열린 자세로 현대적 학문을 배워야 하고, 과학적 태도를 훈련해야 하며, 다양한 분야의 최고전문가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엄밀한 방식으로 기초를 탄탄히 세우지 않고, 아마추어리즘 같이 소규모의 그룹에서 도그마를 강화한다면 세상의 비판을 견뎌내지 못할 것입니다. 가디언지에 나오는 인지학병원에서는 자신들의 치료법이 기존의 치료법을 보완하는 '보조 요법'임을 분명히 합니다. 그러나 기자는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습니다. 실제로 그 병원에서는 임상실험을 하지 않았고, 치료 효과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기사를 읽으며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한의학이 국가 의료체계에 어떻게 편입되었고, 어떻게 과학적인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으면서도 독자적인 의학 연구를 통해 우리 삶에 기여하고 있는지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여전히 양의학에서는 한의학에 대한 의구심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한의학계는 현대 과학의 언어로 논문을 생산하며, 치료 효과를 실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요. 인지학에 따른 의학이나 교육도 마찬가지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여기에 허술한 논리를 가져와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이 계속 나온다면, 그동안 쌓아온 신뢰는 일순간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슈타이너가 자서전에 썼던 이야기 한 부분과 앞서 가디언지의 기사를 바탕으로 한국에서 작성한 기사를 아래에 덧붙입니다. 가디언지 원기사를 읽으실 분은 이 링크를 따라 들어가시길요.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21/jan/10/ginger-root-and-meteorite-dust-the-steiner-covid-cures-offered-in-germany

Ginger root and meteorite dust: the Steiner ‘Covid cures’ offered in Germany

The movement best known for its schools is firmly entrenched within the German health sector

www.theguard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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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당대의 '과학적' 사고방식에 비추어 정신-인식(Geist-Erkenntnis)을 정당화하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나는 이 책에서 정신-인식의 정당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나는 자연-인식(Natur-Erkenntnis)에서 으레 '과학적'이라고 간주하는 사고방식을 수용했고, 정신-인식을 위해서 그런 사고방식을 육성했다. 이로써 자연을 관찰할 때의 자연-인식 방법이 정신을 관찰하기 위해 달라진 것은 틀림없지만, 그런 자연-인식을 '과학적'이라고 볼 수 있게끔 만들어주는 특성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루돌프 슈타이너 자서전>, 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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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병원, 생강과 운석가루로 코로나 치료… 슈타이너 대체법 논란

 

머니투데이 김현지 기자

2021.01.11

 

 

독일에서 루돌프 슈타이너라는 인지학자가 주장했던 치료법이 코로나19를 예방하고 치료하는데 이용되고 있다. 슈타이너는 1925년에 사망한 독일의 신비 사상가로 인지학협회를 창설한 인물이다.

10일(현지시간) 가디언에 따르면 독일에서는 생강 뿌리와 운석 가루를 활용한 코로나19 치료법이 널리 유행하고 있다. 이는 생강 뿌리 분말과 겨자 가루, 혹은 야로우(서양톱풀)로 만든 차 등을 섞어 섭취하는 것이다.

이 치료법은 '영적 과학자'라고 불리우는 독일의 인지학자 루돌프 슈타이너(1861~1925)의 지지자들이 주도하고 있다. 그들은 이러한 치료 방법이 "영혼과 신체의 불안감을 완화한다"고 주장한다.

이 치료법은 영적 과학 또는 인류학에 기반을 두고 있어서 과학적 효과를 입증하는 연구나 임상실험은 시행되지 않았다. 독일의 선도적인 집중치료협회가 발표한 공식 치료 지침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치료법은 하벨뢰에 병원 등 슈타이너의 사상에 따라 설립된 병원 다수에서 유명 대학병원의 감독 하에 코로나19 중환자들에게 처방되고 있다.

독일에는 200개 이상의 학교, 500개 이상의 보육원, 263개의 정신장애인을 위한 기관이 슈타이너의 철학을 따른다. 슈타이너의 철학과 치료법은 현재 독일의 공공보건 분야에서도 꾸준히 입지를 다지고 있다.

'교육은 치료다'라는 저서로 유명한 슈타이너는 인지학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고유한 치료교육학을 주창했던 학자다. 1861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그는 윤회, 우주와 식물의 성장 사이에 존재하는 연관성, 진화역사 등으로 기반으로 철학 체계를 구축하고 이를 교육, 건축, 농업, 의학 등 광범위한 분야에 적용했다.

문제는 슈타이너의 치료법이 일각에선 코로나19가 전세계 단일정부를 세우기 위한 음모론이며 백신이 DNA를 변형시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용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슈타이너리즘'을 비판한 책을 쓴 종교사학자 헬머트 잰더는 "(그들은) 인류학으로 비밀스럽고 고상한 지식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음모론자들의 사고방식과 근접해 있다"고 지적했다.

함부르크대학 의료센터의 중환자 치료의학 책임자인 스테판 클루지는 "이렇게 심각한 코로나19 대유행 가운데 이런 비과학적인 주장을 하는 것은 매우 전문적이지 못하고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하벨뢰허 병원 측에 지난해 슈타이너 치료법의 효과를 입증할 임상실험을 실시할 것을 강하게 촉구했다.

이에 대해 슈타이너 병원 중 하나인 하벨뢰허 병원측은 "우리가 사용한 대체 치료법은 기존의 치료법을 보완하는 '부속 치료법'"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이 치료법의 효과를 증명하는 과학적 연구가 없고 실험을 할 충분한 시간도 없었지만 코로나19 환자들에게 도움이 됐다"고 주장했다.

한편, 독일에는 최소 10개의 슈타이너 병원이 있다. 독일의 현행법은 병원에서 치료법의 효과를 외부적으로 입증하지 않고도 사용 승인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news.mt.co.kr/mtview.php?no=2021011109215172133

 

2021.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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