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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재판과 회복적 사법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회복적 사법'이라는 말이 갑작스레 이슈가 되었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을 정준영 판사가 맡으면서이다. 서울고법 형사1부의 부장판사인 그는 이재용의 파기환송심 첫 공판에서 부친 이건희 회장을 거론하며 특이한 발언을 했다(2019. 10. 25).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당시 만 51세의 이건희 삼성그룹 총수는 낡고 썩은 관행을 모두 버리고 사업의 질을 높이자는 이른바 삼성 신경영을 선언하고 위기를 과감한 혁신으로 극복했다. 2019년 똑같이 만 51세가 된 이재용 삼성그룹 총수의 선언은 무엇이고 또 무엇이야 하는지 (고민해달라)." 만 52세인 정준영 판사의 이 훈계에 대해 시민사회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경제 상황을 이유로 봐주기 재판을 하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반색하는 입장도 있다. ‘삼성일보’라는 오명을 가진 중앙일보의 사회1팀장 이가영 기자는 한 칼럼에서 정준영 판사를 두둔한다(2019. 10. 31). 비판하는 이들을 향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그의 재판을 지켜본 입장에선 고개가 끄덕여졌다. 법복을 입은 25년간 그가 ‘회복적 사법(restorative justice)’을 실제 재판과 접목하기 위해 노력해 온 과정을 알아서다. 정 판사는 회복적 사법을 “법원이 단지 양형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와 피고인 양 당사자가 분쟁을 직접 마주하고 서로 협의·조정해 나가는 과정”으로 정의한다. “법원이 어떤 결정을 하기 전 피고인에게 변화할 시간을 주고 이를 살펴본 다음 결정을 내리는 것”이라고도 했다.
법전대로만 살면 되는 엘리트 판사 정준영이 회복적 사법에 천착한 이유는 뭘까. 그가 준 답이 바로 첫머리에 언급한 “사람은 변한다는 믿음”이었다. 그는 고교 시절 경험담을 들려줬다.
신설 고교의 모범생 반장이던 그는 급우가 퇴학당할 위기에 처하자 고민에 빠졌다. 그가 아는 급우는 좋은 친구였다. 그 내용을 주변에 알려야겠다고 생각해 ‘진정서’를 썼다. “동의하는 사람은 서명해 달라”며 연판장도 돌렸다. 다행히 그 친구는 퇴학을 면했고, 이후 미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정 판사의 동기들은 이 과정에서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한다.
이재용 부회장 사건은 대법원에서 유·무죄 판단이 끝난 만큼 정 판사는 양형 위주의 결정을 하면 된다. 그런 그가 자칫 이 부회장을 선처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음에도 적극적으로 나선 건 ‘사람은 변한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회복적 사법에 대한 소신 때문일 것이다. 정 판사의 소신에 이 부회장은 어떤 응답을 할까.
실제로 정준영 판사는 오랫동안 회복적 사법을 연구하고 실천해 왔다. 인천지법 부천지원장으로 근무하던 2013년에는 ‘회복적 사법 부천지역 합동 포럼’을 열고, 형사재판에도 조정절차를 도입해 피해자와 피고인(가해자)이 대면해서 화해와 보상의 기회를 갖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형사화해제도가 실무에서도 성공 가능하다는 것을 검증하기 위해 부천지원에서 화해제도를 시범적으로 운영할 것임을 밝혔다. 2012년에는 법률가대회에서 ‘치유와 책임 그리고 통합’이라는 주제로 다음과 같은 글을 발표하기도 했다.
Ⅰ. 회복적 사법의 이해
“회복적 사법(restorative justice)은 특정한 범죄에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을 최대한 관여시켜서 함께 피해와 요구사항, 책임을 확인하고 다루는 절차로서 치유와 바로 잡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Howard Zehr).”
1970년대 중반부터 북미와 유럽에서 시작된 회복적 사법은 범죄에 대한 대응방법으로서 형사사법의 보완 또는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21세기에 들어서 논의되기 시작한 아직 생소한 분야이다.
형사사법에서는 국가의 형사사법기관이 절차를 주도하는 반면, 회복적 사법에서는 가해자 및 피해자, 범죄와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이나 공동체가 주체적으로 참여한다.
형사사법은 가해자에게 범죄에 합당한 처벌이라는 고통을 주는 것으로서 범죄에 대응한다. 흉포화되어가는 범죄에 대한 형사사법의 대응방법은 지속적으로 처벌강도를 높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회복적 사법의 기본적 대응방법은 ‘피해자·가해자 사이의 대화’이다.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대화를 통해 가해자가 죄책감을 가지게 되면 가해자의 감정이나 태도에 변화가 생기고, 이러한 가해자의 변화를 통해 피해자는 정신적 상처(트라우마)를 치유받고 피해자도 변화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피해자와 가해자가 변화되면 사과·용서·화해가 가능하다. 즉 가해자와 피해자의 대화를 통해 변화(transformation)와 회복(restoration)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회복적 사법을 다룬 영화 중 ‘오늘(2011)’에서는 대화나 사과가 없는 피해자의 일방적 용서로는 회복적 가치가 실현되지 않고, ‘밀양(2007)’에서는 가해자의 변화를 통한 죄책감과 사과가 없어서 진정한 용서나 화해가 없는 반면,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2006)’에서는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대화를 통하여 죄책감, 용서, 화해라는 회복적 가치가 실현되고 있다.
Ⅱ. 회복적 사법의 얼굴(연혁과 현황)
1. 외국의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
최초의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이 1970년대 중반 캐나다 온타리오주 엘미라에서 시행된 이래 북미와 유럽에서 많은 실험적 프로그램이 시행되었다. 미국에서는 미국변호사협회(1994년)와 전국피해자지원단체(1995년)가 회복적 사법 원칙을 승인했다. 오스트리아는 피해자·가해자 조정제도 시행에 관한 국가정책을 수립했고, 독일에는 400개 이상의 회복적 프로그램이 시행중이며, 영국은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을 전국에서 시행하고 있다. 회복적 사법과 관련한 국제적 노력으로서, 유럽연합은 2001년에 회원국에게 형사조정을 장려하고 2006년 3월까지 입법화하도록 결의했고, 유엔은 2002년 12월에 ‘형사사건에서의 회복적 사법프로그램 활용에 관한 기본원칙’을 채택했다. 회복적 사법은 기소 전·후, 교정단계 등 형사절차의 모든 단계에서 활용되고 있으며, ①피해자와 가해자가 조정인이 주선하는 조정에 참여하는 피해자·가해자 조정, ②여기에 공동체 구성원이 참여하는 회합 프로그램, ③더 넓은 범위의 공동체 구성원의 참여가 있는 서클 프로그램으로 분류된다.
실증적 연구결과에 의하면 피해자가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비율은 40~60%이고, 참여자의 80~90%는 절차와 합의결과가 만족스럽고 공정하다고 생각했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대면한 경우 90%이상이 합의안을 도출했고, 합의약정의 80~90%가 이행되었다. 또피해자·가해자 조정을 거친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하여 낮은 재범율을 보이고, 재범을 하더라도 보다 경미한 범죄를 저지르는 경향을 보였다.
2. 우리나라의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
형사조정제도는 기소전 단계에 검사가 회부하는 피해자·가해자 조정 프로그램으로서 2007년부터 전국적으로 확대시행되고 있다. 형사조정 회부 사건수는 2011년 기준으로 17,517건, 합의성립율은 약 50%에 달한다.
그 밖의 회복적 프로그램으로 ‘민사상 다툼에 관한 형사소송절차에서의 화해제도’와 ‘소년법상 화해권고제도’가 있다.
Ⅲ. 회복적 사법을 만날 때까지(과제)
회복적 사법은 기소 전·후, 교정 단계 등 모든 단계에서 가능하도록 설계할 필요가 있다. 회복적 가치가 실현되면 참여자들은 형사사법제도 전반에 대해 만족하고 공정하다고 느끼게 된다. 그러나 피해자와 가해자의 자발적인 대화참여를 전제로 하는 회복적 사법이 전통적 형사사법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 또한 형사사법제도가 공정하게 운영되어야 회복적 사법도 그 기능을 다할 수 있다.
조정위원이 조정과정에서 회복적 사법의 원칙과 기준을 간과할 때에는 피해자가 2차 피해를 입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으므로 회복적 사법 사건을 담당할 조정위원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고, 전문가조정위원도 양성해야 한다. 회복적 사법의 원칙과 실무는 범죄 뿐 아니라 학교, 직장, 사회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형태의 갈등을 다루거나 심각한 정치적 폭력으로 인한 후유증의 국민적 치유를 촉진하기 위해서도 활용할 수 있다. 회복적 사법의 가치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가정, 학교, 직장 등 자신의 주위에서 회복적 사법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실천적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회복적 사법을 만날 때까지.
정준영 판사는 중증 치매 상태에서 아내를 살해한 60대 남성에게 직권으로 보석을 허가하고 치료구금 결정을 내리기도 했고(2019. 6. 19), 집에 불을 질러 어머니를 살해한 20대 여성의 항소심에서 전문심리위원을 지정해 판결을 내리기 전 전문가 의견을 청취하기도 했다(2019. 6. 21). 치료적 사법 내지 회복적 사법을 시도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이런 판결도 있었다. 빚에 시달리다가 자녀들을 살해하고 동반자살을 하려 했던 부모 중 엄마를 재판부가 조건부로 보석하여 석방시켜 준 것이다(2019. 6. 14). 세 자녀 중 한 명의 아이가 사망했지만 재판부는 1) 부부가 죄를 모두 인정하는 점, 2) 극단적인 선택의 이유, 3) 다시 같은 선택을 할 가능성, 4) 남은 어린 자녀 등을 고려했다고 한다. 이후 재판부는 부부 중 남편에게만 실형을 선고하고 아내는 집행유예로 감형했다. 이밖에도 음주운전 사고를 내고 경찰의 음주측정 요구에 불응한 30대 남성을 보석으로 풀어준 사례도 있다(2019. 8. 24). 3개월간 ‘절대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보석의 조건이었다.
피해자의 피해 회복과 가해자의 진정한 반성, 자발적 책임 이행 등을 중시하는 회복적 사법은 기존의 형사사법이 갖고 있던 한계를 극복하고자 노력한다. 응보주의 또는 예방주의를 표방하는 현재의 사법제도는 처벌 중심의 판결을 통해 범죄를 예방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엄벌주의가 범죄율을 낮추지는 못했다. 가해자는 자신의 범죄 사실을 부인하기 일쑤이고, 처벌을 받았다 해도 반성하는 일은 드물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피해자가 소외되는 현상인데, 가해자에게 아무리 엄벌이 처해져도 피해자의 피해는 그대로일 뿐이다. 회복적 사법이 던지는 질문은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이고,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이다. 가해자 처벌을 통해 우리가 원하는 것은 가해자의 진심어린 반성과 변화이며, 피해자의 피해가 회복되는 것이다. 그러나 대중의 일차적인 법 감정에 따르지 않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업은 ‘그것이 과연 정의로운가?’라는 날카로운 질문 앞에 선다. 범죄 사건이 재벌과 권력의 부패 문제라면 좀 더 예리하고 냉정한 접근이 필요하다.
정준영 판사의 판결에 대해 비판이 거세진 것은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보석을 허가하면서부터이다(2019. 3. 6). 건강 문제를 이유로 병보석 신청을 했던 피고인에게 그는 “건강 문제를 이유로 하는 보석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면서도 “자택에서 매일 1시간 이상 규칙적으로 운동을 해 건강을 유지하고 성실하게 재판에 임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재판 과정에서 느꼈겠지만 형사재판은 현재의 피고인이 과거의 피고인과 대화를 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자택에 가서 기소된 범죄 사실 하나하나를 읽어보고 과거 피고인이 한 일을 찬찬히 회고해 달라.”고 말했는데, 다스뿐 아니라 사대강, 자원외교, 방위 사업 등 초대형비리를 잇달아 저지르고 범행 일체를 부인하는 피고인에게 이러한 주문과 보석 허가가 과연 정의로운지 많은 사람이 묻고 있다.
“정치권력자로부터 뇌물을 요구받을 때 기업이 응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음 기일까지 답변을 달라.” 12월 6일 열린 공판에서 정준영 판사는 이재용에게 숙제 같은 주문을 했다. 이재용은 최순실의 딸 정유라에게 최고급 말을 선물하는 등 박근혜 전 대통령 측에 86억원을 뇌물로 주었다. 이것은 단순히 정치권력자가 겁박을 해서 뇌물을 바친 게 아니다. 모두가 알고 있듯 이재용은 생사불명의 이건희에게 삼성의 경영권을 승계받기 위해 불법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 사건 및 삼성물산 합병 전 주가조작 사건 등은 특검을 통해 그 범죄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특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으로 국민연금이 7000억원 대의 손실을 입었고, 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연금의 가입자들인 국민이 받게 되었다.
특검은 재판부 측에 “헌법 11조 따라 정의롭고 평등한 원칙이 구현되는 양형을 통해 법치주의를 구현하고, 정경유착의 고리를 단절해 경제계가 혁신적 경제모델로 도약할 기회를 마련해달라”며 이재용에게 10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이런 상황에서 권력으로부터 뇌물 요구를 받더라도 기업이 응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이재용에게 묻는 것이 과연 회복적 사법일까? 이재용을 비롯한 삼성 측은 경영권 승계 문제 자체를 부정하며, 자신들은 오히려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준영 판사는 범죄를 개인 간의 문제로 환원시키고, 이것이 회복적 사법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스럽다. 이명박과 이재용의 경우, 이것은 사회 구조의 문제인 동시에 경제 정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앞서 가족 간의 범죄나 음주운전 사건 역시 구조적 측면이 있지만 당사자의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 불의하지는 않다. 그러나 이명박과 이재용의 건은 대한민국의 구조적 병폐를 드러내는 범죄이기 때문에 선처 위주의 판결은 결코 정의로울 수 없다.
회복적 정의 실천가들은 “범죄”를 주로 한 개인이 다른 개인에 대해 지속적으로 저지르는 범죄들에 국한시킨다. 좀 더 큰 범죄들, 더 많은 사람에게 훨씬 더 심각하게 상처를 주는 범죄들은 현재의 응보적인 체계 하에서 그런 것처럼, 회복적 사법체계 아래서도 숨겨진 채로 남아 있다.
내가 말하고 있는 범죄들은 상대적으로 얼굴 없는 범죄들인데, 이것들은 몇몇 사람들을 위한 탐욕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들이 향유할 연금제도를 망가뜨리고, (윈도우 작동시스템에 대한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독점의 예에서처럼) 대중들로 하여금 불필요하게 높은 대가를 지불하도록 강제하며, 다른 사람들은 결핍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음에도 필요 이상의 더 많은 부를 축적하기 위해 그러한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다른 방법들을 모색하는 것과 관련된 범죄들이다.
- 보니 프라이스 로프턴(Bonnie Price Rofton), “회복적 정의는 체계적 부정의에 도전하는가?”, <회복적 정의의 비판적 쟁점>
정준영 판사의 발언들이 논란이 되면서 회복적 사법 자체에 대한 오해와 편견도 생겨나는 듯하다. 회복적 사법을 10대나 사회적 약자의 재판 문제로 국한시킨다든지, 가해자가 반성을 하면 판사가 용서를 해 준다고 보는 게 대표적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회복적 사법은 가해자를 동정해 선처를 베푸는 ‘따뜻한’ 사법이 결코 아니다. 회복적 사법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하워드 제어는 그의 주저 <회복적 정의란 무엇인가?>(원제: Changing Lenses)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을 쓸 때만 해도 나는 두 가지 사법의 모델, 즉 '응보적 사법'과 '회복적 사법'을 상호 배타적인 이분법적으로 받아들였다. 이러한 태도가 양자의 차이를 설명하는 데 유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돌이켜 보면 지나치게 단순하고,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며, 나아가 불공정한 설명이었던 것 같다. 지금에 이르러 나는 법적 사법의 약점뿐만 아니라 강점까지 인정하는 시각에서 정의와 사법을 하나의 연속체로 설명하고자 한다.
......
“어떤 법이 위반되었는가? 누가 위반하였는가? 어떤 형벌이 마땅한가?” 등 기존 사법제도의 근간이 되는 질문에 초점을 맞추는 이상 진정한 의미에서의 정의를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진정한 정의는 “누가 상처(피해)를 입었는가? 그들의 요구는 무엇인가? 이것은 누구의 의무이고 책임인가? 이러한 상황에 누가 관여해야 하는가? 어떤 절차를 통하여 해법을 찾을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을 요구한다. 범죄에 대한 회복적 접근은 우리에게 렌즈뿐만 아니라 질문까지 바꿀 것을 요구한다.
- 하워드 제어, ‘한국어판 서문’, <회복적 정의란 무엇인가?>
사법은 '정의(Justice)'이기도 하다. 진정한 정의를 위해서라면 정준영 판사의 질문은 바뀌어야 한다. “정치권력자로부터 뇌물을 요구받을 때 기업이 응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변을 달라”에서 “정치권력자에게 주었던 뇌물의 목적은 무엇이며, 그 돈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이로 인해 국민은 어떤 피해를 입었는가?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삼성은 의무와 책임을 다 했는가? 막대한 피해를 회복하기 위해 이재용과 삼성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로 말이다. 판사는 이재용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피해자인 국민의 입장에서 이 사안을 바라봐야 한다.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회복적 사법이라 해도 때로는 강력한 처벌을 할 수 있다. 회복적 사법은 응보적 사법과 보완의 관계이며, 잘못한 행위에 대해서는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할지는 재판부에서 시민사회의 의견을 폭넓게 들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이재용 개인이 회개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사회 정의 차원에서 천문학적 벌금과 이재용을 비롯한 관련자 처벌이 반드시 필요하다. 모쪼록 진정한 회복적 정의가 실현되기를 바란다.
2019.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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