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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대림절/성탄절을 맞이하여 본문

슈타이너사상연구소칼럼

대림절/성탄절을 맞이하여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0. 12. 24. 09:27

대림절/성탄절을 맞이하여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감옥의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잠을 자고 나면, 침낭 아래가 습기로 흥건히 젖어 있곤 했다. 바닥이 차가우니 체온에 의해 물방울이 맺히는 것이다. 그래서 바닥에 종이 박스를 깔아 두어야 했다. 누우면 입김이 나왔다. 난방이 없는 겨울은 냉방이 없는 여름만큼 길었다.

 

감옥은 수감자의 자해나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24시간 불을 끄지 않는다. 따라서 잠을 잘 때도 창백한 형광등이 켜 있다. 이불을 이마까지 뒤집어쓰고 바닥과 벽에서 밀려오는 냉기를 이기기 위해 몸을 최대한 웅크리고 있으면 세상으로부터 쫓겨났다는 실감이 들곤 했다. 창문 밖 세상은 어둡고 이따금 눈이 내렸다. 매서운 바람 소리가 들리기도 하지만 대개는 적막했다. 흔한 라디오 소리조차 없다. 연말이 되면 으레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활기에 넘치는 도시와 달리 그곳은 춥고 더 빨리 어두워지며 면회객 수도 적어져 수감자 간의 대화마저 줄어든다. 우울감이 감도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님에도 아기 예수의 탄생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그 시절 깨달았다. 보통 성탄절은 동지 즈음이다. 동지까지 해는 점점 짧아지고 기온은 계속 낮아진다. 차갑고 황량한 세상에서 사람들은 절망에 빠지기 쉽다. 이룬 것도 없이 한 해가 끝나간다. 그런데 신의 선물처럼, 저기 겨울의 한 가운데에 성탄절이 있다. 작은 촛불처럼 저 멀리에서 빛이 반짝이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12월이 되기 전부터 크리스마스 트리를 아름답게 장식하고 신나는 캐롤송을 튼다. 어린아이들은 산타할아버지에게 받을 선물을 생각하며 남은 날짜를 센다. 사람들을 정신적으로 고양시키는 성탄절이 없었다면 12월은 얼마나 외롭고 추운, 암담한 달이 되었겠나.

 

*

 

예수가 세상에 온 시절도 그렇게 암담한 때였다. 로마 시대 말기, 황제들은 폭정을 일삼았고 제국은 타락했다. 로마 시민들은 경기장에 전쟁 포로를 몰아넣어 서로를 죽이게 했다. 때로는 맹수를 풀어 처참하게 물어뜯기는 죄수들을 보며 환호했다. 힘을 가진 인간이 신으로 추앙받던 시기였다. 정의나 평화는 죽은 말이었다. 그런데 기적처럼 제국의 변방, 팔레스타인 땅에 진리라 불리는 청년이 나타났다. 그는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의 벗이 되려 했고, 불의에 편승하는 자들을 엄히 꾸짖었다. 기득권자들의 눈엣가시였던 그는 십자가형을 당하지만 끝내 아무도 미워하지 않았다. 아마 그는 사람들의 탐욕이, 어리석음이, 무지가 그저 슬펐을 것이다.

 

희생되기 전날 예수가 올렸던 기도를 좋아한다. “내 뜻대로 마시고 당신 뜻대로 하소서.” 신약을 다시 읽으며 전율을 느꼈던 이 구절을, 감옥에서는 힘들 때마다 되뇌였다. “그러나 이것이 당신 뜻이라면...” 내가 내 삶을 이끌어간다는 느낌의 자아감도 지나치면 오만이 된다. 평화를 추구한다는 사람도 어느 순간 ‘내가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수 있는 것이다. 자기중심주의, 이기심, 반감을 부추기는 후기 자본주의 시대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환난을 겪는 중이다. 어쩌면 이 산을 넘으면 기후변화 위기를 더 직접적으로 겪을지도 모르겠다. 당장은 세월호 참사를 일으켰던 기득권 카르텔, 즉 검찰과 언론, 재벌 개혁 앞에 우리는 서 있다. 이 산을 넘고 또 산을 넘으며 나아가는 것이, 아마도, 예수 그리스도가 꿈꿨던 하늘의 뜻을 이 땅에도 펼치는 것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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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소 후 일하게 된 발도르프학교에서는 대림절 행사를 소중히 여겼다. 커다란 보라색 초 네 개를 준비하여 아침열기를 할 때마다 매주 촛불의 개수를 늘렸다. 성탄절이 있는 주에는 네 개의 초에 모두 불을 밝히고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4절까지 불렀다. 세상 어딘가에 진리 그 자체를 몸으로 살았던 이가 있었다는 것을 추억하며, 또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한 그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기를 소망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성탄절 당일에는 조그맣고 새하얀 초에 혼자 불을 밝히곤 했다. 사람들의 가슴에 이처럼 밝고 따뜻한 촛불이 타오르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추신. 얼마 전 특정 종교가 아닌 평화의 신념으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하신 분이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세상은 더디게나마 한 발씩 나아간다.)

 

 

2020.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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