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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칼럼

이기주의는 사람을 멍청하게 만든다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0. 8. 28. 12:12

이기주의는 사람을 멍청하게 만든다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인류가 마지막까지 싸워야 할 질병은 멍청함일 것이다.”

 

어느 트위터 사용자가 올해 초 남긴 글이 내내 머리에 맴돈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달리 세상은 갈수록 멍청해지는 듯하다. 멍청한 소리가 여기저기서 크게 들리고, 멍청한 짓도 곳곳에서 벌어진다. 문제는 멍청한 이들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져서 공동체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한다는 데 있다. 멍청하다고 비난하고 혐오한다 해서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멍청함은 전염성을 갖는지 확산일로다. 이 현상을 이해하지 않고는 편하게 숨을 쉴 수가 없겠다.

 

* 멍청하다 : ① 어리석고 정신이 흐릿하여 일을 제대로 처리하는 능력이 없다. ② 자극에 대한 반응이 무디고 어리벙벙하다.

 

트위터의 현자는 한 문장으로 오늘날의 세상을 짚어냈지만, 이것이 단지 오늘날만의 문제는 아니어서 동서고금의 많은 현자가 이 문제에 천착했다. 인도의 한 사상가는 오래 전, 인간의 멍청함이 무지에 의한 탐욕과 진에 탓이라고 지적했다.

 

* 진에(瞋恚) : ① 노여움. 분노. ② [불] 삼독(三毒)의 하나. 자기의 뜻이 어그러짐에 대하여 성내는 일.

 

맞는 말 같다. 역병이 도는 와중에 광장에 모여 정부를 규탄하던 사람들은 노여움과 분노에 사로잡혀 증오의 언사를 내뱉었다. 어떤 목사는 대면예배가 신앙의 자유라며 기자회견을 통해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맹비난했다. 믿음을 가진 자는 병에 걸리지 않고, 병에 걸린다 해도 낫는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와 그의 가족은 곧 확진이 되었다.) 이런 현상은 신앙의 차원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다. 의대정원 확대에 반대해 면허증을 찢고 하얀 가운을 벗어던진 채 진료를 거부하는 몇몇 의사들 역시 공산주의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며 울분을 토했다. 이들은 현재 한국이 의사 수가 부족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중이다.

 

무엇이 이들을 노엽게 하는 걸까? 당사자들에게 물어봐도 납득 가능한 답을 듣기 어렵다. ‘우리 뜻을 받아들여 주지 않는 너희는 틀렸고 우리가 옳다’ 이상의 답변이 나오지 않는다. 동어반복적인 주장의 요지는 자기들 멋대로 하게 내버려 두라는 것이다. ‘우리들 뜻대로 안 된다면 세상은 망가져도 좋다’라는 마음가짐을 그들은 실제로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세상이 망가지면 그 책임을 지려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가짜뉴스에 중독돼 유사과학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과 정상적 대화는 불가능하다. 논쟁은 이성을 가지고 해야 할 텐데 감정이 앞서니 억측과 비난으로 함께 괴물이 되기 일쑤다. 합리적인 사고가 정지된 이들과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 사고가 안 된다면 별 수 없다. 감정과 욕구에 초점을 맞추는 수밖에. 그들의 주장을 납득하기 어렵지만 그 맹렬한 감정을 확인하고 인정하며 욕구에 귀기울여 주는 수밖에 없다. 이 방식은 인간적이지만 단순히 인간적이기 때문에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이 방식이 아니면 몽둥이, 즉 폭력밖에 남는 게 없기 때문이다.

 

멍청함에서 노여움과 분노가 나오기도 한다. 이 감정이 증오와 혐오로 불붙고, 마침내 말과 행위로서 폭력을 행사한다. ‘내가 옳다, 너희는 틀렸다’는 생각이 불씨가 되어 믿고 싶은 것만을 믿고 가짜 지식을 근거로 스스로 ‘과학적이라고’ 자부한다. 폭력을 행사해 놓고 자기 말을 듣지 않으니 어쩔 수 없었다라며 합리화한다. 멍청해진 사람은 주변을 곤혹스럽게 만들지만 정작 자신은 그 사실을 모른다. 스스로 몹시 똑똑하다고 여기고 다른 사람들이 멍청하다고 믿을 뿐이다.

 

여기에는 이기주의가 숨어 있다. 인간은 지성을 가지고 과학기술을 발전시켰고, 민주적인 사회 시스템을 만들었다. 심지어 자신의 탐욕을 성찰하고 사법체계를 이용해 이를 제어할 수 있게까지 했다. 신이 인간에게 선물을 준 게 있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지성일 것이다. 지성을 이용해 인류는 여기까지 왔다. 그러나 잘 온 것일까? 형식적으로 알리바이를 만들긴 했지만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마음은 극복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지성을 사용했을 뿐이다.

 

* 이기주의(利己主義) : 자기의 이익만을 꾀하고, 사회 일반의 이익은 염두에도 두지 않는 주의.

 

멍청함을 극복하지 못하면 인류는 멸절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죽든, 기후변화로 죽든 세상은 그리 희망적이지 않다. 덜 멍청한 사람들이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해도 어떤 기적이 벌어지지 않으면 상황은 나아지지 않을 것 같다. 신이 준 선물인 지성을 더 발전시킨다면, 자기중심적 사고의 한계를 우리는 깨우칠 수 있을 것이다. 이기주의는 나만 살려는 탐욕의 발로지만, 다른 사람들이 죽으면 결국 나도 죽는다는 결론에 이른다. 내가 바라는 게 행복이라면, 사회를 이루어 살아가는 인간에게 그것은 공동체 전체의 행복이 가능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는 것이 지성의 귀결이다. 인간 사회만이 아니라 지구 생명체 전체, 환경 전체가 함께 안전해져야 우리 자신도 안전해질 수 있음을 우리는 이제 고통 속에서 배울 수밖에 없게 되었다.

 

고통과 위기가 닥쳐도 배우는 게 없다면 희망은 없다. 기적은 별 게 아니다. 우리 각자가 이기적이라는 걸 인정하고 깨어나는 것이다. 종교든 교육이든 사회든 이기주의 문화라는 무지몽매에 빠져 있는 한 한발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깨어 있지 않으면 언제든지 사로잡히는 게 이기주의다. 내가 공동체 전체, 환경 전체와 하나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기적 따위는 없다. 안타깝게도 우리에게 시간이 별로 남아 있지 않다.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모르고 있나이다."

깨어났다면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 기도만으로는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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