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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칼럼

마스크도 쓰지 말고 백신도 맞지 말라는 분들에게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0. 10. 27. 10:40

마스크도 쓰지 말고 백신도 맞지 말라는 분들에게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젊은 시절 명석한 두뇌로, 논리적 사고를 탁월하게 전개하던 이들이 나이가 들수록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앞장서서 진보적 아젠다를 제시하고 기득권을 비판하던 몇몇 인사가 극우정당에 동조하고 음모론을 늘어놓는 모습을 보면 짜증보다 두려움이 앞선다. '나도 저렇게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드는 것이다.

 

그들은 왜 그렇게 됐을까? 개인적으로 확증편향과 억울함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 근간에는 우월감 같은 게 있지 않을까싶다. 뛰어난 사람에게서도 '내 말이 맞다. 어쨌든 맞다.'식의 사고를 종종 보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국 자기중심주의로 귀결되는 듯하다. 어떤 인간도 자기중심성 또는 이기심을 완전히 극복할 수 없겠지만, 최소한 그것에 대해 성찰하지 않는다면 정신적 붕괴를 경험할 가능성이 커진다. 자기중심성은 필연적으로 에고의 팽창을 불러온다.

 

변화는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존재의 변형에서 오는 게 맞을 것이다. 온갖 현란한 학설을 갖다 붙인다 해도, 자기 이력을 과시한다 해도,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존재성이다. 잠시 사람들을 속일 수는 있을지언정 거짓을 감출 수는 없다. 인간에게는 직관이라는 것이 있으므로 거짓과 진실은 드러날 수밖에 없다. 특히 아이들을 속이기는 어렵다. 그래서 거짓된 이들이 잘하는 게 세뇌라는 수법이다. 집요한 태도로 세뇌를 시키고 나면 잘못된 신념이 생기고, 불행히도 신념은 확증편향의 길로 굴러가면서 눈덩이처럼 커지게 된다. 이것이 교육 영역에서 벌어진다면, 상상만 해도 두려운 일이다.

 

*

 

얼마 전에는 마스크를 쓰지 말라고 선동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더니 최근에는 언론들이 합심한 듯 백신에 대한 공포를 조장했다. 상관관계와 인과관계의 차이도 모르는 사람들이 백신을 맞고 갑작스럽게 사망한 사람들의 숫자를 카운팅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히 일상에 바쁜 사람들은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고, 백신 맞기를 꺼리게 될 것이다. 여기에 일찍이 음모론에 사로잡혀 있던 사람들은 온갖 거짓 증거를 들이대며 백신의 위험성과 제약회사의 탐욕, 정부와의 결탁 같은 단골 소재를 그럴 듯하게 들이미는 게 수순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마스크 반대론자든 백신 반대론자든 확신에 차 있다는 것이다. 마치 자기(들)만이 진리를 알고 있다는 듯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례를 들어가며 열변을 토한다. 그들 역시 과학 또는 학계의 권위를 무시할 수 없으므로 어떤 박사나 전문가의 견해를 제시한다. 그리고 유명한 통계나 논문의 아주 일부 내용만을 발췌하고 짜깁기해 과학계 전반의 통설을 반박한다. 문제는 그들만 똑똑하고 다른 이들은 바보가 아니라는 데에 있다. 

 

과학은 민주주의를 지향한다. 모든 것이 공개되어 있고 누구든 실험을 통해 검증할 수 있다. 과거의 지식에 오개념이 있다면 합리적 절차를 통해 그 거짓을 밝히고, 학문 공동체의 인정을 받으면 될 일이다. 스스로 정답을 천명하고 그것을 증명한다며 자기에게 유리한 일부 사실만을 근거로 드는 행위는 과학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중대한 사기행위일 뿐이다. 어떤 현안에 대해 불안감을 느낄 때 좋은 방법은 가장 뛰어난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해당 분야에 관해 문외한인 비전문가의 그럴 듯한 이야기는 아무리 그럴 듯하다 해도 비과학적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

 

유럽에 코로나 팬데믹의 2차 대확산이 분명해지는 상황에서 그 반대론자들은 무슨 말을 준비하고 있을까? 면역력? 면역력이 중요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개인의 문제이고 지나치게 일반화하면 이기주의적 발상이 될 수 있다. 면역력이 좋은 어린아이들, 젊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벗고 다닌다면, 그래서 무증상감염이 되거나 걸렸어도 금세 낫는다 쳐도, 그들에게 전염될 위험이 있는 취약군, 즉 기저질환자나 노약자는 어떻게 할 것인가? 마스크를 쓰면 산소가 부족해 뇌세포가 파괴된다는 이야기도 과장된 가짜뉴스에 지나지 않지만, 어느 정도 아이들이 힘들고 답답해 한다고 해도 공동체 전체를 위해 우리는 조금씩 희생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런 사람들은 반사회적 집단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이것은 백신 접종도 마찬가지이다.

 

코로나19가 독감보다 위험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여전히 있다. 그러나 기존의 독감은 의료적으로 공동체 차원에서 감당이 가능한 것이고, 새로운 전염병은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경각심을 가지고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경제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현대 자본주의 국가들이 저렇게 락다운을 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들은 바보라서 저렇게 무리수를 두는 걸까, 라는 생각을 단 한번이라도 한다면 노 마스크 노 백신이라는 이상한 주장을 펼 수가 없는 것이다.

 

*

 

방역 정책에 일정 부분 수정이 필요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정부나 의료계에 대한 신뢰를 접고 소수의 반대 의견에 마음이 동한다면 스스로의 합리성이 붕괴되어 가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혹시 단순한 반감에 의한 것은 아닌지, 억울함이나 분노와 같은 감정에 의해 합리적 사고력이 마비된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반성할 필요가 있다. 단지 '나는 마스크 쓰기 싫으니까', '백신에 문제가 많다고 하니까' 수준의 생각에서 확증편향이 강화된다면, 누구도 그를 구원할 수 없을 것이다.

 

도저한 자기중심주의 또는 이기주의는 우리가 추구하는 고귀한 이상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여기에 왜 발도르프교육이 나오고 인지학이 나오며 슈타이너가 소환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2020.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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