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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자아를 찾는다는 것 - 파커 J. 파머 본문

명상수련

자아를 찾는다는 것 - 파커 J. 파머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18. 12. 12. 04:51

내게 우울증은 여기서 멈추고 되돌아가, 뚫고 나아갈 수 있는 다른 길을 찾으라는 영혼의 외침이었다. 그 외침을 무시하고 억누른다면 그로 인해 발생하는 심적 억압은 우울증과 나른함보다 더한, 생을 마감하고자 하는 강한 욕구 같은 것으로 나타날 수 있다. 내 경우가 그러했다. 내가 내면의 진실에서 멀리 떨어진 삶을 살고 있을 때, 나는 단지 잘못된 길로 접어든 정도가 아니라 매 걸음마다 자아를 죽이고 있었다.

 

삶이 걸어다니는 죽음인 사람은 문자 그대로 죽음으로 가는 길을 걷기 쉽다. 의학적 방법이 이런 종류의 우울증을 일시적으로 가라 앉힐 수 있을지는 모르나, 약물로는 근본적인 치료가 불가능하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삶을 다시 회복하려면 분리되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선택은 쉽지 않으므로혹은 우울증에 빠져 있기 때문에우리의 고통, 즉 참자아를 부인하거나 도전하는 데서 생기는 고통이 더 이상 참기 어려워질 때까지 분리된 삶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현실주의는 우리를 사회에 필요한 구성요소로만 여김으로써 참자아를 부인한다. 이 기이한 주장의 훌륭한 파트너인 도덕주의는 자아이기심으로 바꿔놓고 사전에서 자아라는 낱말을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같은 목적을 달성한다. 도덕주의자들은 사회의 모든 문제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 다른 이들을 희생시키려는 데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도덕주의자들은 뉴에이지(기존의 서구식 가치와 문화를 배척하고 종교·철학·의학·음악 등의 집적된 발전을 추구하는 신문화운동-옮긴이 주)자기 성취에 대한 강조, 자신에 대한 숭배가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공동체 붕괴의 근본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한 진정한 보살핌이 사라지고 있기는 하나, 나는 그것이 뉴에이지의 나르시시즘의 책임이라고 믿지 않는다. 그보다 우리를 고립시켜 불안하게 만드는 대중 사회, 인간의 권리보다 자본을 우선시하는 경제 체제, 시민들을 하찮게 여기는 정치 과정이 우리의 도덕적인 무관심을 낳는 외부 원인들이다.

 

이런 것들이 고삐 풀린 경쟁, 사회적인 무책임, 빈부 격차를 가져오고 부추기는 세력들이다. 노동자들에게는 퇴직금이 송두리째 없어짐을 뜻하는데도, 총수입에서 부당한 몫을 챙김으로써 주요 기업들을 무너뜨린 중역들은 분명 뉴에이지의 구루(스승)보다는 자본주의자들의 비도덕성에 좀 더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너무 먼 곳에서 책임을 찾기보다는 도덕주의자들의 불평에서 실제 문제들을 지적하고자 한다. ‘자신에 대한 숭배가 이 땅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거의 찾기 어렵다. 나는 이 나라를 두루 여행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나 도덕주의자들이 우리 주위에 있다고 주장하는 과도한 자아감을 지닌 사람들, 왕의 신권이라도 지닌 듯 자신을 가장 높은 곳에 올려 놓는 그런 사람들은 거의 만나지 못했다. 대신에 나는 너무나 많은 이들이 공허한 자아 때문에 고통받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이 있어야 할 곳에 깊이를 알 수 없는 구덩이경쟁에서의 승리, 과소비, 성차별, 인종차별 등 자기가 다른 이들보다 낫다는 환상을 줄 그 어떤 것으로 채우려 하는 내면의 공허함를 갖고 있었다. 우리가 이와 같은 태도를 갖고 행동하는 건 우리 자신이 남보다 우월하다고 여겨서가 아니라, 자아감을 전혀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이들을 아래에 놓음으로써 그것을 통해 정체성을 찾고자 하지만,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를 안다면 그런 방법을 사용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도덕주의자들은 점차 커져가는 개인주의와 그것이 본래 지닌 자아중심주의 때문에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고, 그로 말미암아 더 많은 개인주의와 자아중심주의가 생겨나고 있다고 믿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현실은 전혀 다르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정치·경제적 세력에 의해 공동체가 해체됨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이 자아감 결핍 증후군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건강한 커뮤니티는 사람들이 참자아에 대한 의식을 확장하도록 돕는다. 커뮤니티 안에서만 자아를 주고받고, 귀 기울이며 말하고, 존재하고 행동하는 자연스러운 능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커뮤니티가 약해지고 사람들이 서로 접촉하지 않으면, 자아는 위축되고 자기 자신과의 접촉도 약해진다. 우리가 관계라는 망 안에서 자신일 수 있는 기회를 잃으면, 우리는 관계를 더욱 분열시키고 내면의 공허함이라는 유행병을 퍼트리는 행동을 계속함으로써 결국 자신의 자아감마저 사라지게 한다.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자아감 결핍 증후군, 또는 죽음 직전 자기 소멸의 경험인 우울증을 겪어본 나는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도덕주의자들의 관점이 틀렸다고 확신한다. 참자아를 말하고, 주장하고, 북돋우는 건 전혀 이기적인행동이 아니다. 확실히 이기적인 행동들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행동들은 공허한 자아에서 생겨난다. 다른 사람들을 해침으로써, 또는 우리 자신을 해쳐 우리를 걱정하는 이들을 슬프게 함으로써 공허함을 채우려 하는 것이다. 우리가 참자아에 뿌리박고 있을 때 우리 자신과 우리와 만나는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해 생명을 주는 방식으로 행동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참자아를 보살피는 모든 행동은 결국 세상을 위한 선물인 것이다.

 

우리는 분리되지 않고, 부족한 것 없이, 온전한 채로 이 세상에 온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 내면에 있는 것들을 보호하려 하거나 주위 사람들을 속이려 하면서 내면과 바깥의 삶 사이에 벽을 세운다. 그리고 우리 대부분은 분리된 삶에서 비롯된 고통을 참기 어려워졌을 때에야 비로소 분리되지 않은 삶을 찾아 내적인 여행을 시작한다.

 

 

[출처 : 파커 J. 파머, 윤규상 옮김, 온전한 삶으로의 여행, 해토, 2007 : 56-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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