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의식의 발달단계 : 그레이브스의 나선형 모델

인간 의식의 발달단계 : 그레이브스의 나선형 모델

 

김훈태(슈타이너사상연구소)

나선형 역동성 이론(Spiral Dynamics)은 인간 의식의 발달단계에 대해 연구했던 발달심리학자 클레어 그레이브스(Clare Graves)의 이론을 체계화한 벡과 코완(Beck & Cowan)의 8단계 가치시스템입니다. 브이밈즈(vMEMES)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 분석표에 관심 있는 분들은 사이드 돌라바니의 『밈노믹스』라는 책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에서 밈(meme)이란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가 저서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로, 생물학적인 유전자 ‘진(gene)’처럼 개체의 기억에 저장되거나 다른 개체의 기억으로 복제될 수 있는 문화적 유전자를 뜻합니다.

 

밈은 인간 특성을 규정하는 정보의 전달자 진과 마찬가지로, 문화적 특성을 규정하는 정보를 전달하는 기능을 수행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의 이면에 밈이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밈과 ‘가치(value)’ 시스템이 결합해 8가지 단계의 가치 체계 밈 이론으로 발전했습니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고 바로 8단계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단계들은 그저 지나가거나 건너뛸 수 있는 단계가 아닙니다. 각각의 인간과 인류는 차례대로 단계를 밟아가며 성장을 합니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층이 있는데, 앞의 여섯 단계는 ‘생존수준’이라 부르고 뒤의 두 단계는 ‘존재수준’이라고 부릅니다. 색깔에 따라 구분되는 단계들을 하나씩 살펴보자면, 1단계는 베이지입니다. 최초의 인간 사회, 신생아처럼 원형적이고 본능적입니다. 음식과 물, 온기, 안전 등이 우선시됩니다. 생존하기 위해 습관과 본능이 사용되고, 이 단계에서는 교육이랄 게 없습니다.

 

다음으로 2단계는 보라입니다. 여기에서의 사고는 마술적이고, 혈연 및 부족의 가치를 지향하며, 생존을 위해 뭉치는 단계입니다. 이 단계에서 사람들은 부족 또는 집단을 위해 충성하고 희생하며 전통과 관습을 지켜나갑니다. 교육은 가족 내에서 이뤄지고 의식과 관습에 크게 의존합니다. 학생들은 수동적이며 개인의 창조성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부두교와 유사한 저주에 대한 믿음, 피로 맺은 맹세, 미신들, 스포츠팀, 가족의식 등에서 이 단계의 특징을 엿볼 수 있습니다.

 

3단계는 빨강입니다. 부족과 구분된 자아가 최초로 출현합니다. 강력하고 충동적이며 자기중심적인 영웅 또는 악당이 나타납니다. 세계는 위협과 약탈로 가득 찬 정글입니다. 조폭이나 제국, 독재국가 등에서 이런 가치시스템을 볼 수 있습니다. 의사결정은 가장 힘센 사람이 하고 추종자들은 그저 따라야 합니다. 이 단계에서의 교육은 가치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과 엄격한 사랑의 모습으로 이루어집니다.

 

4단계는 파랑입니다. 여기에서는 절대적이고 불변하는 진리가 인간 사회를 지배합니다. 단 한 가지의 올바른 방향과 권력에 대한 복종을 기반으로 하며 인간의 개성은 희생되어야 합니다. 이슬람이나 유대교의 강력한 율법, 근본주의, 해병대, 스카우트 등에서 이 가치시스템을 볼 수 있습니다. 교육은 엄격하고 처벌적이며, 이분법적 특성을 보입니다. “매를 아끼면 아이를 망친다”라고 믿는 사람들이 따르는 단계입니다. 최고의 시민이란 자신의 자리를 알고 규범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5단계는 주황입니다. 파랑의 집단적 희생 개념이 과거의 영광을 잃어버릴 때 등장하는 주황은 기술과 혁신, 과학의 상징입니다. 과학적 발견과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볼 수 있듯 이 단계에서 인간은 매우 성취 지향적이고 물질적 이득을 추구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습니다. 공동체는 성공을 거둔 이들을 존경하고 경쟁을 신성하게 여깁니다. 경제적 풍요는 이들의 최종적 목표입니다. 이 단계를 지나고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묻기 시작합니다. “이 모든 게 정말로 우리의 삶을 위한 것인가?” 이 단계는 아마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일 것입니다.

 

다음으로 6단계는 초록입니다. 이 단계는 공동체와 감성을 기반으로 이뤄지고 생태계를 소중히 여깁니다. 계층구조에 대항하며 수평적 유대와 연결을 만듭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가치는 경쟁이 아니라 내적 평온, 평등하고 개방적인 태도, 모든 도덕적 입장에 대한 상대주의적 태도, 집단의 조화, 경험의 공유, 그리고 협동입니다. 요약하자면, 평등주의와 인도주의입니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기 마련입니다. 이 단계의 그림자는 끝나지 않는 회의, 합의에 도달하기까지 너무나 많은 에너지의 낭비, 지나치게 허용적인 태도 등입니다. 초록 단계는 결코 진보의 최종 목적지가 아닙니다.

 

첫 번째 층(1-6단계)의 각 단계는 자기만의 세계관이 옳고 가장 최선의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외부의 위협을 받으면 자신의 도구를 사용해 맹렬히 공격합니다. 파랑의 질서는 빨강의 충동성과 주황의 개인주의 모두를 매우 불편하게 여깁니다. 주황의 성취는 파랑의 질서를 애송이 같다고 생각하며, 초록의 유대를 나약하면서도 떼를 쓴다고 생각합니다. 초록의 평등주의는 탁월함, 가치 순위, 큰 그림 혹은 권위적으로 보이는 모든 것과 쉽게 같이할 수 없습니다. 파랑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전근대이고, 주황은 근대, 초록은 탈근대에 가까워 보입니다.

 

수십 년 동안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많은 것이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을 일부 구성원들이 깨닫는 순간, 초록은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준비를 합니다. 두 번째 층의 사고와 함께 모든 것이 질적으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두 번째 층의 의식을 이용하는 개인은 본질적으로 계층구조와 위계를 모두 사용해서 수직적인 동시에 수평적으로도 사고할 수 있습니다. 우선 초록의 집단적 접근방식에서 다시 한 번 개인적인 접근 방식에 길을 내주게 됩니다.

 

7단계는 노랑입니다. 여기에서 인간은 지금 어디까지 와 있으며 어디로 나아갈 것인지 비로소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이 단계는 초록과 주황, 파랑, 빨강, 보라의 건강한 측면들을 포함하며 이들 모두를 통합해 더욱 효과적인 시스템을 만들어 냅니다. 거시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문제해결을 위해 시스템적인 접근방식을 창조합니다. 필요하다면 평등주의는 타고난 탁월성의 정도에 따라 보완되어야 합니다. 지식과 능력이 계급, 권력, 지위, 집단을 대신하게 됩니다. 노랑 단계에서는 첫 번째 층에서 빚어진 건강치 못한 여러 활동들로 인해 산산조각나 버린 세상을 하나로 통합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노랑의 개별적인 접근방식은 한계가 있습니다. 이 단계의 사고방식이 점차 퍼져나가고 생활환경이 변화하기 시작하면서 점점 협력적인 활동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이제 마지막 단계로 이동합니다.

 

8단계는 신비한 청록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 그리고 객관과 주관을 결합함으로써 삶과 존재에 관한 문제를 탐구하게 됩니다. 모든 것은 다른 것들과 서로 연결돼 있으며, 거시적이고 직관적인 사고방식과 협력적인 활동이 요구됩니다. 다원적 수준이 하나의 의식체계로 통합되는데, 외적 질서(파랑)나 집단 유대(초록)에 기초하지 않은 살아 있고 의식적인 모습을 지닌 보편적 질서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청록의 시스템은 어떤 형태로 출현할지 지금 우리가 예상하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지금까지의 그 어떤 시스템과도 비슷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백 년은 아니어도 아마 수십 년의 시간은 족히 걸릴 것입니다.

 

여기서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의 미래는 초록의 단계가 결코 아니라는 점입니다. 물론 초록이 상당히 축적되어 있을 때만이 두 번째 층이 출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는 첫 번째 층의 생존의식이 아니라 두 번째 층의 존재의식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 이 체계를 살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