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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6. 4. 21. 16:48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때이른 여름 날씨였다가 금세 돌변하여 한파특보가 발령되었다.
봄 날씨란 게 이런 것일까.
꽃샘추위에 관해 예전에 써보았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겨울마녀와 봄요정들의 이야기...
 
호수공원에 평범한 벚꽃은 모두 지고 능수벚꽃과 왕겹벚꽃이 흐드러졌다.
저 꽃들도 조만간 흩날리고 여름이 올 것이다.
집 안 마당에는 튤립과 수선화가 한창이다.
눈부시게 하얀 장미조팝나무 꽃이 배경을 이루고 있다.
예전만 못한 향기를 피우며 라일락꽃도 만개했다.


딸아이가 빌려온 책이 연체되어 도서관에 갔다가
시장에 들러 강낭콩과 옥수수 씨앗, 그리고 옥수수 모종을 사왔다.
딸아이가 태어나기 직전 샀던 자전거,
딸아이를 태우고 참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던 자전거를 타고,
쌀쌀해진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다녀왔다.
6학년이 된 아이는 이제 로맨스 소설을 읽는다.
 
텃밭에는 감자와 완두콩이 싹을 틔우고 자란다.
어제는 대파 씨앗이 남았길래 조금 심었고,
오늘 저녁에는 둘째와 강낭콩과 옥수수 모종을 심을 것이다.
생명역동농법을 시도하면 좋겠으나 마음이 거기까지 가지는 않는다.
한때 풀무학교 전공부에 입학할 계획도 세웠지만 농업이 내 길이 아님을 제법 빨리 깨달았다.
그렇게 농부가 되었다면 교사를 할 때처럼 오래 겉돌았을 것이다.
의미 있고 보람찬 일이지만 머리로 판단해 내린 결정은 진실이 아닐 수 있다.
 
근래 불고 있는 의대 진학 열풍 역시 결국 의사가 된 아이들 중 대다수는
오래지 않아 그 길이 자기의 것이 아님을 깨달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맞지 않는 옷을 벗지 못해 입고 있는 아이들은
영영 방황을 끝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겉돌기도 해 보고 방황도 해 보는 것은 청춘의 특권이니 권장하고 싶다.
그러나 그마저 버리고 자기 길을 찾기 위해 용기를 내는 것, 그것도 꼭 권장하고 싶다.
 
8주간의 짧은 강사 생활이 이번 주로 끝난다.
팀티칭으로 진행하는 '사회학 연습'의 전반부를 완수한 것이다.
서툰 강의였지만 진심을 다했던 것 같다.
매주 즐거웠고 긴장되었으며 어린아이들을 가르칠 때와는 또다른 재미를 느꼈다.
학생들은 공통적으로 서클이 좋았다고 했다.
서른 명이 넘는 강좌였지만 전체 서클, 짝과의 대화, 모둠 대화 등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가졌다.
한 시간 강의, 한 시간 서클, 한 시간 글쓰기의 컨셉으로 진행했는데,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중간고사를 보고서로 대체하였기에 이제
학생들이 반 학기 연구해온 보고서를 읽고 평가하는 일만 남았다.
 
월요일에 정지영 감독의 <내 이름은>을 보았고,
내일 아침에는 이명세 감독의 <란12.3>을 볼 것이다.
<힌드의 목소리>도 볼까 했지만 망설여진다.
실제로 이스라엘 군인에 의해 총격을 당한 여자아이가
적신월사에 구조 요청을 한 사건을 영화화했다는데,
견딜 수 있을까싶다.
<내 이름은>도 보기가 힘들었다.
모든 전쟁은 범죄다.
응보적 정의에 사로잡혀 민간인을 학살한 그들을 용서할 수 없다.
마치 게임처럼 미사일을 발사하고 전투를 수행하는 자들에게 저주가 있기를 기도하게 된다.
 
레바논에 쳐들어가 교회의 예수상을 해머로 내리친 이스라엘 병사가 화제가 되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당황하여 그러한 행위가 이스라엘 군의 가치관에 완전히 어긋난다고 하던데,
그렇게 많은 죄없는 사람들을, 아이들을 살해한 집단이 입에 올릴 말은 아닌 것 같다.
성조기와 이스라엘 국기를 들고 공산주의를 증오하며 집회에 나선 어떤 기독교인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예수는 울고 있을 것이다.
팔레스타인에서, 이란에서, 레바논에서 비참하게 살해된 사람들 곁에서 그저 울고 있을 것이다.
아우슈비츠에서 그랬던 것처럼.
 
AI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러한 울음이다.
내몰린 양떼처럼 전력질주하는 우리에게 우선 필요한 것은 왜 달려야 하는가, 하는 물음이고,
다리가 부러져 뒹구는 양들과 늑대에게 물어뜯기는 양들을 보며 
연약한 양들을 탓할 게 아니라, 나도 늑대가 되어야 하겠다고 다짐할 게 아니라
그저 울음을 터뜨리고 분노하고 맞설 수 있어야 하겠다.
비참함에 가슴 아파하고 부조리에 분노하며
아름다운 무언가를 보고 감탄하는 것.
 
박민규 작가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겨우 다 읽었다.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더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러워하지 않는
당신 <자신>의 얼굴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예수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은 '힘'이 아니라 '사랑'이었다.
사랑이 아니라 힘을 추구하는 가짜 그리스도인들은 회개하길...
극우주의자들이 추구하는 것은 결국 힘이었음을 깨닫고 있다.
그것이 인간의 원죄 아닐까싶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누가복음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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