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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학교폭력 소송남발 대책 마련해야 본문
학교폭력 소송남발 대책 마련해야
2023.05.08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학교폭력은 엄벌이 답이라며 급하게 만든 교육부의 학교폭력 종합대책이 얼마 전 발표되었다. 이 대책 중 피해학생과 관련된 내용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가해학생이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의 결정에 불복했다는 사실을 통지받을 수 있도록 개선되었고, 피해학생이 가해학생을 분리해달라고 학교에 요청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대책의 나머지 대부분은 가해학생에 관련된 내용인데, 가해학생 학폭위 조치사항을 학생부에 4년까지 보존하고 대입 입시에도 직접 반영하겠다는 것이 전면에 강조되었다.
문제는 이 대책 속 결정과 조치들은 모두 소송으로 연결되어 법정 싸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학교폭력에 관한 소송이라면 피해학생이 가해자를 고소하면서 열리는 형사소송을 떠올리기 쉽지만 실상은 다르다. 가해학생이 제기하는 소송이 훨씬 많다.
학생부 기록이 중요한 학생은 학폭위 결정을 다투며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을 건다. 학급교체 조치를 당한 학생은 법원에 집행정지 신청을 낸다. 사건 진행 과정에서 자신의 편을 들지 않거나 서운하게 한 교직원을 아동학대로 고소하거나 위자료를 달라며 민사소송을 건다. 정작 피해학생은 위 소송들의 당사자가 될 수 없다. 기껏해야 소송참가 정도 할 수 있는데 복잡한 소송참가를 위한 변호사 지원이나 법률 비용 지원은 이번 대책에 없다.
학교폭력 관련 소송의 폭증은 학교폭력 처리가 법제화되면서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작년 한 해 초·중·고 학폭위 심의 건수는 2만여건이다. 피해학생을 보호하고 가해학생을 선도·교육하며 그 둘의 관계 회복을 도모하자고 만든 학폭위는 이겨야 하는 전쟁터가 되어버렸다. 피해학생은 가해학생이 더 강한 처분을 받도록, 가해학생은 더 낮은 처분을 위해 온갖 증거를 모으고 변호사를 선임한다.
남소(소송남발)는 소송을 걸 여력도 없는 가난하고 취약한 상황의 학생들을 더 힘들게 만든다. 원치 않게 소송에 끌려 들어간 쪽은 과정과 결과에 세세히 상처받기도 한다. 설상가상으로 이번 대책은 가해학생 학생부 기록을 삭제하려면 피해학생의 동의를 받도록 했는데, 이 동의를 받아내려고 피해학생을 압박하거나 쌍방 폭력으로 무리하게 몰아가는 것에 대한 대비책은 전무하다.
소송이 폭증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수년간 고착화되면서 학교는 법적 꼬투리를 잡히지 않는 기계적 업무처리에 더 신경 쓸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학교폭력을 교육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현장의 노력도 이어져왔다.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에 학교 안에서 일이 생기면, 같이 호흡해 온 어른이 살피고 듣고 보듬고 풀어내는 것이 가장 아이에게 좋다는 믿음 때문이다. 교육적 회복을 이어가려는 학교의 노력은 회복적 생활교육, 학교 밖 관계회복 지원단, 관계가꿈 프로젝트 등 여러 이름으로 지속되어 왔으나 예산이나 인력의 부족으로 지역 간 상황이 고르지 않다.
학교폭력을 사법이 아닌 교육으로 해결하려는 이 꾸준한 노력이 빛을 발할 방법도 현장에 있다. 교사의 회복적 실천 역량을 강화하고, 학교 관계회복 프로그램의 질을 높이며, 특히 학교폭력 사안 처리 과정에서의 관계회복 프로그램 고지 의무화를 법제화하는 등의 여러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교육의 사법화, 학교폭력 처리의 외주화는 한 번뿐인 학창 시절에 어떤 기억을 남기며 어떤 영향을 미칠까. 아이들의 공식적 첫 사회생활인 학교가 법치라는 이름의 엄벌과 소송의 풍경으로 펼쳐지면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마음에 심고 자라날까.
학교라는 특수성을 무시한 채 들어선 법치만능주의는, 변호사는 웃게 할지 몰라도 학교 안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불안과 부담이 될 뿐이다. 교육이 소송으로 신음하지 않도록 남소 방지를 위한 학교폭력 보완 대책이 절실하다.
https://m.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305080300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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