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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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소희>를 보았다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극장을 나서면서 맥주가 마시고 싶어졌다.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을 훔쳤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생긴 갈증은 물을 마시는 걸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해결... 특성화고등학교 아이들이 말도 안 되는 일터에서 노동을 착취 당하고 견디다 못해 자살하거나 사고사를 겪고 있는데, 해결은 요원하다. 영화는 어떠한 해결책도 제시해주지 않고 끝을 맺는다.
영화를 보고 돌아와 술은 마시지 않았다. 그저 참담함을 견디기로 했다. 계속 뉴스로 보아온 일들, 대체로 당시에는 분노했다가 금세 잊혀졌던 일들이 눈앞에 놓였다. 생각해보니 이건 특성화고 학생들에게만 해당하는 일도 아니었다. 이 나라의 노동자, 이주민, 여성, 청년, 노인 등 약자들에게 계속해서 벌어지는 일이다.
소희는 왜 그렇게 화가 나 있었을까? 아마 오랫동안 차별받고 무시당하며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게 쌓이고 쌓여 더는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술을 마셨을 것이다. 그 마음이 오롯이 느껴졌다. 열아홉 살 젊은이들을 사회는 존중하지 않았다.
결국은 착취의 구조가 문제다. 영화 속 경찰의 대사처럼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에게 좀 더 존중을 하는 게 아니라 함부로 대한다. 힘들게 일하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하는 게 아니라, 악착같이 부려먹고 효용가치가 없으면 물건처럼 폐기한다. 이렇게 살아서 무엇할까? 우리는 대체 왜 사는 걸까? 어릴 때부터 무한경쟁을 시키고 성과는 기득권자들이 다 독차지하는데. 현장의 노동자, 학생 들이 어떤 고생을 하는지 관심도 없다. 사용자는 오히려 자기가 피해를 보았다고 큰소리다. 인간성을 잃은 모습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도 그렇다. 아기를 낳고 산모를 보호하기 위해 가습기를 틀었을 것이다. 세균에 오염되면 안 되니 가습기 살균제를 썼을 것이다. 대기업의 제품이고 홍보문구에는 어떤 위험도 담기지 않았다. 그러나 살균제에는 맹독성 물질이 포함되어 있었고, 이 사실을 아는 직원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제품은 판매되었다.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지금도 고통받고 있다. 이로 인해 대기업의 책임 있는 사람들은 온전한 책임을 지었을까? 그렇지 않다. 피해자들은? 정의? 정의 같은 소리... 그래서 영화 속 아이들이 그렇게 욕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이 지옥인데 바꿀 수가 없다. 그래서 팀장의 아내처럼 희망을 잃고 현실과 타협하는 것이다. '세상이 다 그렇지 뭐..'. 체념하고 무기력하게 사는 자들에게 진정한 삶의 기쁨이란 게 가능할까? 그냥 돈이나 잔뜩 벌어서 신나게 쓰는 게 꿈일까? 만만한 사람에게 화풀이하고 괴롭히는 게 기쁨일까? 우리는 어떤 지옥을 만들고 있는 걸까?
세월호 참사 이후에 우리는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지 못했다. 이태원 참사는 빠르게 묻혔다. 기득권과 타협한 언론 종사자들부터 지옥에 가야 할 것이다. 형언할 수 없는 분노가 심장을 쥐어짠다. 어떻게 세월호를 겪고도 저들에게 정권을 넘겨줄 수 있을까...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다. 이런 나라에서 아이를 낳고 기른다는 건 너무 슬픈 일이 아닌가. 어린아이와 엄마들을 경멸하는 문화, 비정규직을 무시하는 문화, 약자를 혐오하는 문화. 이런 병든 사회에서 우리는 어떤 꿈을 좇아야 하는 걸까? 당장 실업계고 아이들은 지금도 전공과 무관한 하청 업체에 나가 취업률을 사수하고 있다. 이게 아이들을 위한 일일리 만무하다. 학교를 위해, 교육청을 위해, 착취가 만연한 이 사회를 위해 그러고 있는 것이다.
죽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을 탓할 수 없다. 그들은 절망한 것이다. 사실상 그들이 죽음을 선택한 게 아니라 사회가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너무나 끔찍한 환경 속에서 우리는 인구절벽이 두렵다는 소리나 하고 있다. 이렇게 살 것인가? 무엇이 문제인가? 어떻게 해야 해결할 수 있는가? 불의한 세상에서 편안하게 산다는 것은 헛된 꿈이자, 고통받는 이웃들을 향한 모욕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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