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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신 사태와 교육부의 학교폭력 근절 대책에 대하여 본문

슈타이너사상연구소칼럼

정순신 사태와 교육부의 학교폭력 근절 대책에 대하여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3. 3. 9. 22:40

정순신 사태와 교육부의 학교폭력 근절 대책에 대하여

 

슈타이너사상연구소 김훈태

 

 

지난 2월 우리 사회는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된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 학폭사안으로 혼란을 겪었다. 민족사관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그의 아들이 같은 반 친구에게 모욕적인 말과 괴롭힘을 일상적으로 행하여 전학조치를 받았음에도 사건을 대법원까지 끌고 가 대학입시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많은 국민의 공분을 샀다. 이와 관련해 정순신은 사의를 밝혔고, 교육부는 3월 말까지 학교폭력 근절 대책을 내놓겠다고 입장을 냈다. 들려오는 얘기로는 대입 정시모집에 학교폭력 조치사항을 반영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는데, 상당히 우려되는 접근이 아닐 수 없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의 대책은 이미 여러 차례 실패를 경험했고, 소위 정순신 사태의 본질에 해당하기도 한다. 세계에서 가장 교육열이 높은 우리나라에서 학폭사안을 생활기록부에 기입하겠다는 정책이 이명박 정부 당시 발표되던 순간부터 혼란은 예견되었다. 그것은 가해학생을 궁지로 모는 것이었고, 생활지도라는 교육의 문제를 법리공방의 사법 문제로 뒤바꾸는 결정타가 되었다. 자연스럽게 가해학생 측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비싼 변호사비를 들여 어떻게든 입시에 영향을 안 받게끔 노력할 게 뻔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학교는 그러한 사안들로 혼란을 겪게 되었다. 지금도 현장 교사들은 학폭 업무를 학교에서 분리해 달라고 요구한다. 당사자들뿐 아니라 담당 교사와 학교도 소송에 휘말리는 일이 대폭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번 사안은 한발 더 나아가 가해학생의 아버지가 고위 검사였고, 온갖 법적 기술을 동원해 자식의 전학 조치를 막은 데다가 석연치 않은 방법으로 생기부에서 그 기록조차 삭제하여 서울대에 입학시켰기 때문에 더 큰 공분을 샀던 것이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정신과치료를 받고 대학진학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피해학생에게 감정이입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대책이 엄벌주의로 흘러서는 곤란하다. 비슷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더 많은 비용을 들여 법망을 빠져나가는 경우가 안 생기리란 법이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사안을 처벌 중심적으로 가져가기보다 피해학생의 피해 회복에 초점을 맞추는 일이다. 처음 학폭사안이 벌어졌을 때 공동체가 함께 피해학생의 고통에 관심을 기울였어야 한다.

 

물론 이 사안은 우리에게 깊은 무력감을 안겨 주었다. 가해학생이 자신의 아버지가 검사라는 걸 공공연히 밝히고 자기는 처벌받지 않을 것임을 믿었다는 점, 피해학생의 부모도 그 점을 인식하고 자식에게 참으라고 조언했다는 점에서 우리는 분노와 함께 무력감을 느낀다. 이것은 검찰세력이 특권계급화되었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1조에 따라면 사회적 특수계급은 인정되지 아니하지만 우리는 한국사회가 이미 평등하지 않다는 걸 몸으로 깨닫고 있다. 모든 분야가 사법화되어 가는 현실에서 처벌 중심적 형사사법의 절차를 담당하는 검찰이 권력화되어 버린 현실을 우리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사법부도 마찬가지이며, 전관비리가 가능한 비싼 변호사를 살 수 있는 부유층도 사실상 특권계급의 일원이다.

 

여러 대책을 논하기 이전에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문제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제11조의 문장이다. 우리는 누구나 똑같이 존엄하다.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왜 폭력이 발생할까? 현실에서 누군가는 자신이 다른 누군가보다 더 존엄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정순신의 아들은 피해학생보다 자신이 더 존엄하다고 믿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제주 출신이라고 해서 빨갱이돼지라고 멸칭하며 모욕했던 것이다. 이것은 단지 그 학생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가정, 그들의 집단, 나아가 사회 전체가 정신적으로 병들어 있음을 보여준다. 특권의식을 갖고 남들 위에 군림하려 드는 집단이 이미 형성되었고, 사회가 빠르게 계급화되어 간다는 것은 매우 좋지 않은 신호이다. 타인의 존엄성을 짓밟아도 아무 문제없이 사건을 덮을 수 있고 또 출세도 할 수 있는 사회에 희망이란 존재할 수 없다. 이런 비도덕적이고 불평등한 사회에서 누가 아이를 낳아서 키우고 싶겠는가.

 

희망컨대 교육부는 학폭사안의 대책을 처벌 중심의 형사사법 논리로 환원시키지 말고, 피해자의 존엄을 중심으로 여기는 교육적 논리로 접근하길 바란다. 교육은 오로지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며, 인간은 누구나 똑같이 존엄한 존재이다. 피해자뿐 아니라 가해자도 인격적으로 존엄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그것은 피해자의 고통을 직면하여 자발적 책임을 회복했을 때 가능하다. 불평등한 사회구조 속에서 발생한 폭력은 우리가 병들어 있음을 드러내는 동시에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건강한 사회는 누가 만드는가? 그것은 자라나는 세대에 달려 있다. 따라서 교육이 힘을 얻어야 한다. 우리가 사회적으로 회복해야 할 교육적 가치는 무엇보다 개인들의 평등한 존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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