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당신의 마음과 나의 마음이 연결된다면 (2) 본문
말을 할 수 있다고 해서 대화가 되는 건 아니다
무엇이 문제일까?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말하는 법을 배우고 누구와도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실제로 대화를 나누어 보면 의사소통이 잘 되는 사람을 찾기가 드물다는 걸 알 수 있다. 같은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끼리인데 왜 대화가 안 되는 걸까? 왜 사이가 더 좋아지려고 했던 대화 때문에 종종 사이가 더 나빠지는 걸까?
어쩌면 우리는 가정에서, 그리고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배우지 못한 걸지도 모른다. 아이가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라면서 정작 어떻게 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지 못한다는 건, 솔직히 어처구니 없는 역설이다. 물론 기성세대 역시 그런 것을 윗세대에게 배운 적은 없다. 아니, 무조건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들어가 출세하면 행복하다든지, 원래 남녀차별은 당연한 거라든지 하는 걸 알게 모르게 배워왔고, 그러한 잘못된 생각을 극복해내는 것도 큰 과제였다.
함석헌 선생이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라고 했던 건 우리가 스스로 올바른 사고를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음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자아가 독립한 성인으로서 우리는 권위 있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참고할지언정 자신의 사고생활을 타인에게 의탁할 수는 없다. 하나 하나 스스로 문제제기를 하고 답을 찾아갈 수밖에 없다. 루돌프 슈타이너가 자신의 윤리학에 대해 '윤리적 개인주의'라고 명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는 더 이상 집단적 도덕성을 따르지 않는다. 집단주의로서가 아니라 개인주의로서, 우리는 각자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며 함께 추구할 수 있는 도덕적 지향을 늘 새롭게 합의해야 한다.
불행히도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문화가 여전히 자리잡지 못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차별과 혐오는 안 된다고 하지만 신문과 TV, 인터넷의 포털사이트와 커뮤니티, SNS에는 차별과 혐오의 언어가 차고 넘친다. 오히려 그런 것이 돈이 된다는 걸 깨달은 일군의 사람들은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적극적으로 가짜뉴스와 유언비어, 검증되지 않은 악담을 퍼붓고 있다. 인간으로서 한줌 염치라는 것도 내팽개칠 때 가능한 일일 것이다. 어린아이들은 어른들의 무관심 속에서 그런 동영상에 광범위하게 노출되어 있고, 천박한 언어와 사고방식을 온종일 학습한다. 어쩌면 인류는 환경오염으로 인한 기후변화보다 정신오염으로 인한 폭력적인 문화 때문에 멸망하지 않을까?
인간의 보편적 욕구
우리는 누구나 좋은 관계를 맺고 싶고 다른 사람들이 자기 마음을 알아주길 원한다. 굳이 배우지 않아도 자기 삶이 귀하다는 것도 안다. 자기 자신이 특별하고 고유하며 존엄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다만 그런 믿음이 파괴된 사람이 있을 뿐이다. 갓 태어난 아이는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귀하게 대해주길 원한다. 배가 고프면 바로 젖을 주고, 기저귀에 용변을 보면 울지 않아도 즉시 갈아주길 원한다. 자기를 안아주고 쓰다듬어주고 예뻐해주길 바라지 않는 아기가 있을까? 이런 기본욕구가 충분히 채워진다면 아기는 전능감을 느낄 것이다. '세상은 참 좋아! 나는 뭐든 할 수 있어!' 이것이 일평생 자존감 또는 존재감의 씨앗이 된다. 어린 시절 이런 마음이 자연스럽게 자리잡은 사람과 그것이 박탈된 사람의 이후 삶은 큰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너 같은 거 필요 없으니까 당장 집 나가!"라든지 "내가 왜 널 낳고 미역국을 먹었는지 모르겠다" 같은 이야기를 수시로 듣고 자란 아이는 내면에 어떤 상처가 자리할까? 부모는 농담처럼 던진 말이 아이에게는 크게 다가온다. 굳이 부모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도 아이들은 동영상을 보며 모방하고 배운다. 요지는 이렇다. 존재 자체의 부정. '나는 여기 살아 있는데 나 같은 건 쓸모없으니 사라져야 하나?' 이런 경우 아이는 자신의 실존을 확인하기 위해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할 것이다. 가정에서나 학교에서 부정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는 아이들은 그 내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런 아이들이 친구에게 자기가 어린 시절부터 들었던 말을 변주해 말할 것이다. 존재 자체의 부정은 욕설이 되어 전염된다.
그러나 그런 말의 껍데기를 벗겨낼 수 있다면, 우리는 거칠고 황폐한 언어 속에서 자기 존재를 인정해달라는 절박한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가 있어 보이는 아이들일수록 관심과 이해가 더 필요한 아이들일 수밖에 없다. 다만 우리가 듣지 못할 뿐이다.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대화의 방법
식물들은 모두 땅에 뿌리를 내리며, 땅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 땅에서 뿌리 뽑힌 식물은 금세 시들어 죽고 말 것이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근본 욕구라는 측면에서 연결되어 있다. 저마다 고유한 정신적 자아를 가진 존재지만, 우리의 근본 욕구 또는 보편적 욕구는 동일하다. 우리는 누구나 살아 있고 싶고, 사랑받고 싶으며, 힘을 갖고 싶다. 인간으로서 자유를 원치 않거나 즐거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한 인간 본성을 꿰뚫어볼 수 있다면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 또 누군가 고통스러워할 때 우리 자신이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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