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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인지학이 쉬울까, 양자역학이 쉬울까? (2020. 10. 8.) 본문

슈타이너사상연구소칼럼

인지학이 쉬울까, 양자역학이 쉬울까? (2020. 10. 8.)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1. 8. 30. 17:08

유튜브에 '루돌프 슈타이너'라는 이름으로 검색을 했다가 너무 놀라서 예전에 쓴 글을 다시 올립니다. 인지학을 진지한 학문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풍토 탓인지 슈타이너를 신비주의자, 예언가로 보는 분들이 많더군요. 저는 슈타이너를 괴테에 비견할 만한(또는 더 훌륭한) 사상가로 생각하지만 현대학문의 검증을 거쳐야 한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물론 인지학은 정신과 영혼의 영역을 다루기 때문에 현대의 유물론적 시각으로는 온전히 검증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엄밀한 학문적 태도를 견지하지 않는다면, 인지학이나 발도르프교육은 유사과학, 신비주의 수준으로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특히 발도르프교육의 위상이 땅에 떨어질까봐 걱정이 됩니다. 슈타이너가 줄기차게 강조했던 것은 생각을 정교하게 다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인지학을 동양사상과 무분별하게 혼합하는 경향이 우려스럽습니다. 모쪼록 신화적, 주술적 사고로 슈타이너를 평가하는 이들에게 현혹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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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학이 쉬울까, 양자역학이 쉬울까?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발도르프교육을 비롯해 농법이나 건축, 의학 등의 영역에서 인지학적 실천을 하시는 분들에게 최대 난관 중 하나는 루돌프 슈타이너의 인지학을 온전히 이해하는 일입니다. 국내에 꽤 많은 번역서가 나와 있긴 하지만(물론 아직 번역되지 않은 게 더 많습니다), 그 내용이 워낙 방대하고 난해해서 아직은 경험이 풍부한 외국 교수님들의 도움이 많이 필요한 실정입니다.

인지학은 세계적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시야를 넓히면 도움받을 기관이 많습니다. 제대로 공부를 하고자 하는 분이라면 가급적 외국의 교육코스나 컨퍼런스, 또는 국내에 개설되는 정식 교사코스 및 국제 세미나에 참석하시는 게 좋을 것입니다. 인지학을 독학으로만 공부하기에는 오독이나 곡해의 우려가 큽니다. 책을 읽고 맞게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자리가 꼭 필요합니다. (국내에는 인지학을 독학으로 공부한 뒤 책을 내거나 강연을 하고 심지어 학교나 단체를 차린 이들도 있으니 잘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한국에서 인지학을 꾸준히 공부하기 위해서는, 번역서를 읽고 강의를 듣는 것뿐만 아니라(국내의 유튜브 강연은 별로 추천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검증되지 않은 내용들이 너무 많습니다.) 기초 학문을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기본적으로 학계에서 검증된 정통 철학사와 과학사, 과학철학 등을 추천드립니다. 그리고 지나치게 어려운 책을 처음부터 읽기보다는 <발도르프 아동교육>이나 <발도르프 교육예술> 같은 기초서부터 접근하시길 권합니다.

루돌프 슈타이너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를 살았던 사람이고, 주로 오스트리아와 독일, 스위스 등지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당대 유럽의 학문적 흐름에서 벗어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슈타이너는 독특한 사상을 발전시켰지만 기존의 학계와 끊임없이 소통하고자 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빈 공과대학에서 물리학, 화학, 수학, 철학 등의 기초 학문을 연마했고, 수많은 문화계, 예술계 인사들과 교류했으며, 로스토크 대학에서 <진리와 학문>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자연과학적 방법에 따른 영혼적인 관찰 결과. 현대 세계관의 근본 특징'이라는 부제가 달린 <자유의 철학>은 대중적인 철학서로 상당히 인기를 얻기도 했습니다.(그의 생애에 관심이 생기신다면 <교사 루돌프 슈타이너를 만나다>, <루돌프 슈타이너 자서전>을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슈타이너는 칸트주의를 비롯해 경험주의, 관념론 등을 비판하면서 당대의 이원론적 불가지론, 즉 실재(reality)를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논리를 반박합니다. 그는 사고 개념을 새롭게 확립하면서 세계가 실재함을 증명하고자 합니다. 인간이 실재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지각을 한 뒤에 사고를 통해 개념으로 관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개개의 사물에 대한 지각이 분절화된 개별로 머물지 않고 유기적 전체성으로 통합되어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사고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슈타이너는 설명합니다.

저는 <자유의 철학>을 슈타이너의 과학철학으로 봅니다. 정신세계를 자연과학적 방법으로 탐구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고, 그 탐구의 결과물이 바로 인지학의 여러 실천 분야들입니다. 슈타이너는 스스로 과학의 철학적 기반을 다진 뒤 정신세계를 탐구하는 정신과학자가 되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슈타이너는 철학자이자 과학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상가들이 독서와 사색을 통해 철학적인 연구에 주력했다면 슈타이너는 초감각적 기관을 계발하여 관찰과 실험을 통한 과학적 연구를 했다고 합니다.)

슈타이너 사후 과학에서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넘어서는 양자역학이 나옵니다. 미시적 세계는 거시적 세계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며, 현재의 상태에 대해 정확하게 알 수 있더라도 미래에 일어나는 사실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양자역학의 입장입니다. 양자역학은 고전역학과 달리 확률론적 입장을 취하지요. 오늘날 양자역학은 과학기술뿐 아니라 철학, 문학, 예술 등 다방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만 그 원리를 완전히 이해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천재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 같은 사람도 "양자역학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을 정도니까요.

저는 원자, 분자, 소립자 등의 세계를 연구하기 위해 양자역학이 필요한 것처럼 인간의 정신세계를 탐구하는 사람은 누구든 인지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양자역학이 어려운 것처럼 인지학을 이해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쉽지 않지만 당연히 불가능한 일은 아니고 또 어렵더라도 이해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할 일이지요.

양자역학을 이해하려면 상당한 수준의 기초 지식이 필요하고, 기존의 사고방식을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물질이 파동이기도 하면서 입자이기도 하다는 것, 관찰자가 개입하면 파동처럼 굴던 것이 입자처럼 움직인다는 것 등은 정말 이상한 현상이지만 실재 세계는 그렇게 작동합니다. 세상에는 물질세계뿐만 아니라 영혼세계와 정신세계가 있고, 각각 다른 소재와 체계 및 기제로 작동한다는 인지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렵지만 흥미로운 탐구 대상입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로 마무리지을까 합니다. 요즘 다시 유행하는 학사, 석사, 박사, 교수 시리즈입니다. 지적 오만함을 돌아볼 수 있어서 종종 곱씹어볼 내용입니다.

학사 - 난 이제 모든 걸 다 안다고 생각한다.
석사 - 공부를 더 해 보니 모르는 게 조금 있는 것 같다.
박사 - 생각보다 모르는 게 많다고 생각한다.
교수 -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내가 얘기하니까 학생들이 다 믿더라.



2020.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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