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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의 발달단계와 촉법소년 본문

슈타이너사상연구소칼럼

아동의 발달단계와 촉법소년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2. 9. 12. 16:02

아동의 발달단계와 촉법소년

 

슈타이너사상연구소 김훈태

 

 

촉법소년 연령 하향에 대한 이슈가 뜨겁다. 범죄를 저질러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고 보호처분을 받는 연령이 현재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인데, 이것을 하향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14세 미만이라는 기준은 1958년에 만들어졌다(당시에는 12세 이상 14세 미만이었음. 2008년에 현재처럼 개정됨). 반세기가 넘게 지났으니 시대변화에 맞게 수정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여기에는 아동발달에 대한 몰이해도 한몫하는 듯하다.

 

잘못에 대해 처벌로 응징해야 한다는 응보적 감정은 우리의 생각을 단순하게 만든다. 잘못을 했으면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하는가? 벌을 받고 나면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반성하고 새사람이 되는가? 피해를 입은 사람의 피해는 원상회복되는가? 공동체는 좀 더 안전해지는가? 범죄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 감정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생각을 해보자는 것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더욱 정의로운 행동일까? 게다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아직 어린 소년 또는 소녀라면? 이들은 형사사법의 과정 속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현재 소년법에 따르면 10세부터 18세까지의 아이들을 우범소년이라고 해서 범죄를 저지를 우려가 있는 연령대로 본다. 여럿이 몰려다니며 주위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거나 술을 마시고 시끄럽게 구는 것, 상습적으로 가출을 하는 것 등을 사법에서는 범죄와 연결해서 우려를 나타낸다. 우범소년은 다시 14세를 기준으로 범죄소년과 촉법소년으로 나뉜다. 14세부터 18세까지의 청소년을 범죄소년이라고 부르는데, 이 나이의 아이들이 범죄를 저지르면 검찰 송치가 이루어지고 사안에 따라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촉법소년의 경우 강제수사나 체포를 할 수 없고, 형사처벌도 불가능하다. 이러한 구분은 나름대로 아동발달의 특성에 기초한다.

 

어린이는 작은 어른이 아니다. 아이들의 발달은 시기별로 질적 변화를 보여주며, 단계별로 결정적 시기가 있다. 간단히 살펴보자.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시기는 7세이다. 7세에서 9세까지, 다시 말해 1-3학년 시기를 아동전기라고 하는데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이다. 대체로 아이들은 7세를 전후해 이갈이를 하고, 이때 학교에 입학한다. 이것은 발달에서 중요한 질적 변화로, 아이는 이갈이와 함께 기억력이 강해져 학습이 가능해진 시기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저학년 아이들은 아직 논리적 사고가 아니라 형상적 사고 또는 상상적 사고를 주로 한다. 아이들은 여전히 모방 능력이 강하고 상상 속에서 살아간다. 대체로 3학년을 보내면서 이러한 판타지적 세계에서 빠져나온다.

 

아동후기가 시작되는 10세부터는 논리적인 사고력이 발달한다. 그러나 자기만의 근거를 가지고 분명하게 사고하는 것은 6학년이 되어서이며, 12세인 이때에 이갈이가 마무리된다. 12세는 사춘기가 시작되는 때이다. 보통 여자아이의 경우 11, 남자아이는 13세 정도에 사춘기가 시작된다. 6학년이라면 여자아이들은 대부분 생리를 시작했고, 남자아이들은 변성기를 겪을 때이다. 대략 14세부터 아이들은 독립적인 감정생활을 한다. 자기 감정을, 부모나 교사 등 어른의 간섭 없이 스스로 처리하고자 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어른에게 위로를 받고 싶어하는 초등학교 2학년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다. 중학교 2학년 정도인 이때 사춘기는 절정에 이르며 반감이 매우 강해진다. 이러한 반감은 자아정체성을 찾으려는 성향으로 이어진다.

 

정리를 해보자면, 촉법소년은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 정도에 해당한다. 이때 아이들은 판타지 세계에서 논리의 세계로 이행하며,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누구보다 친구에 의존한다. 부모와 교사의 권위에 강하게 의존하던 초등 저학년 시기와 달리 자기 생각을 조리 있게 말할 수 있고 감정적으로도 성숙해진다. 그러나 아직 자아의식은 약해서 외적 권위를 필요로 한다. 어른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이에 비해 14세의 아이는 이차성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면서 성호르몬의 분비가 왕성해지고 키가 급격히 자란다. 또한 내적 변화 역시 강해지는데 이성에 대한 관심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고민이 커져간다. 이는 아직 미숙하나마 감정생활이 독립하고, 자기 힘으로 사고하고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이에게 주어지는 책임은 14세 이전과 이후가 분명히 다르다.

 

최근 들어 아이들의 발달이 빨라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물론 과거와 비교해서 발육상태가 좋아졌고 성적으로 조숙해지는 경우도 늘었다. 미디어의 영향으로 성인문화를 일찍 받아들여 어른 흉내를 내는 경향도 강해졌다. 그러나 인간의 신체는 사실상 원시시대와 비교해서 큰 변화가 없다. 더욱이 조숙해지는 것은 아이들의 건강한 발달에서 결코 긍정적인 것이 아니다. 아동발달에 대한 이해가 없는 부모들은 조기교육과 선행학습을 경쟁적으로 시키기도 하지만 그것은 아이를 사랑하는 태도가 아니다. 우리는 서두르지 않고 아이들의 발달에 맞게 교육을 해야 한다. 또한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그것은 아직 자아가 완성되지 않은 아이의 실수이기 때문에 발달에 맞는 책임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

 

촉법소년 연령을 낮추자는 주장은 아동발달에 대한 무지도 있겠지만 소년범죄의 원인에 대해 기성세대가 자신들의 무책임을 숨기려는 의도도 있다고 본다. 소년범죄가 늘어나고 갈수록 흉포해지는 원인이 아동 개인에게 있는 것일까? 범죄를 저지른 그 아이가 자라온 환경과 지배적인 사회문화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 이상 연령 하향은 더 근본적인 부조리를 감추기 위한 시선 돌리기에 지나지 않는다. 공동체 관계의 실패, 교육의 실패를 왜 아동에게 집중시키는 것일까? 아이가 잘못을 저질렀다면 우리는 그 원인을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피해 회복과 관계 회복, 나아가 치유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것이 어른된 도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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