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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시대, 발도르프 교육은 희망이 될 수 있을까? 본문

슈타이너사상연구소칼럼

위기의 시대, 발도르프 교육은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2. 8. 15. 12:03

위기의 시대, 발도르프 교육은 희망이 될 수 있을까?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오늘날 전지구적으로 펼쳐지는 위기 상황은 오로지 인류에 의한 것이다. 산업혁명이 일어난 지 불과 200여 년만에 지구는 극심한 환경오염에 시달리고 있고, 기후변화로 극단적 가뭄과 홍수 피해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은 종료되지 않았으며, 유럽은 장기간 지속되는 폭염과 가뭄으로 현재 마실 물조차 부족한 상황에 놓여 있다. 겨울이 되면 에너지 위기가 현실화될 것인데,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천연가스를 무기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세계적인 에너지 위기와 식량 위기, 그리고 기후 위기는 평등한 것이 아니어서 가난한 국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큰 피해를 준다. 무엇보다 이러한 위기가 개선될 것 같지 않다는 데서 절망감이 든다. 이토록 혼란스러운 시대에 우리는 어디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발도르프 교육학을 창시한 루돌프 슈타이너는 사회 문제가 정신 문제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환경오염 이전에 정신오염이 있는 것이다. 한국사회를 보더라도, 코로나 팬데믹을 성공적으로 막아내고 선진국에 진입했지만 정권연장에 실패하면서 연일 암울하고 처참한 뉴스를 봐야 하는 실정이다.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고 책임감도 없는 극우세력이 정권을 잡게 된 데에는 우리 사회의 취약한 민주주의에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기득권이 된 친일세력과 독재세력은 여전히 건재하며 언론과 검찰, 사법기관 등을 통해 집요하게 민주세력을 공격해 왔다. 부정부패와 무능으로 감옥에 가게 된 두 전직 대통령과 세월호 참사라는 희대의 비극을 겪고도 우리 사회는 정신적인 건강함을 회복하지 못했다.

인간이 만들어낸 지구적 위기를 풀어낼 주체는 역설적으로 인간밖에 없다. 그러나 개인들이 아무리 각성을 한다고 해도 정치적으로 힘을 갖지 못한다면 바꿀 수 있는 게 없다. 오염을 양산하는 기업을 제재하고 탄소배출을 줄이도록 강제하는 것은 정치적 힘이다. 깨어난 개인들이 연대하여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수밖에 없다. 정책을 실현하는 정치인은 그나마 대중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공기업을 민영화하고 노동자를 탄압하는 정치세력이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겠는가? 공동체 전체보다 자신의 이해득실에 따라 돌아가는 그들에게 기후위기나 식량위기 등은 새로운 먹잇감이 될 뿐이다. 이처럼 정치적인 병리현상을 극복하지 못하는 이상 사회에 희망은 없다. 정치 문제 역시 정신 문제에서 기인하기 때문에 우리는 정신-문화 영역의 근본인 교육의 문제로 돌아와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교육은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는 영역이다. 인간 그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는 사회에서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며, 개인의 영달을 위해 발달단계를 무시한 조기교육과 경쟁교육을 일삼고 있다. 해마다 영유아 아이들에게 지적인 교육을 시키기 위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고 있다. 이갈이도 하기 전에 한글을 가르치고 영어와 수학, 과학 따위를 가르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아직 말도 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쥐어주며 일찍부터 미디어에 중독되게 하는 세태도 끔찍한 일이다. 유치원이나 학교에서는 교실활동에서 미디어 사용을 장려하는 추세로 인간의 목소리나 악기 연주를 직접 듣고 서로 눈을 마주 보며 신체활동을 하는 기회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무엇보다 문제는 2022년 현재에도 입시교육의 폐해가 여전히 심각하다는 데 있다. 모든 아이를 명문대, 인기학과에 보내고자 하는 집념은 아이들 각자의 개성이나 소질을 무시한 채 건강한 자의식의 형성을 방해한다. 이것은 다시 사회의 문제로서, 남들보다 우위에 서지 못하면 생존 자체가 어려운 야만적 시스템에서 그 문제가 기인한다.

누구나 다 최고가 되어야 하는가? 학습적으로 부족한 사람은 비참한 삶을 살아도 되는 것인가? 사회는 엘리트가 이끌어가는 게 아니라 건강한 대중이 밀고 가는 것이다. 우리의 교육은 부족하고 어려움이 있는 아이들에게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사회적으로는 학력이 낮든, 전문직이 아닌 일을 하든 인간적인 삶을 영위하는 데 어려움이 없어야 한다. 교육이 교육 본연의 목적에 복무하려면 사회는 약육강식의 자본주의적 질서를 타파해야 한다. 그러나 분단된 한국사회에서 자본주의 비판은 불온한 일로 여겨져 왔다. 체제 경쟁에서 확실히 우위에 섰지만 기득권은 여전히 이념을 무기로 대중을 억압해 왔다. 이것은 노인세대들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반공주의는 젊은 세대에게까지 기묘한 형태로 전수되어 혐오문화를 낳는 데 이르렀다. 유튜브의 시대가 되면서 혐오는 돈이 되기 시작했고, 혐오 콘텐츠는 공동체 전체의 도덕성을 파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병든 사고방식이 확산되면서 투기를 부추기는 천박한 자본주의 이념이 목소리를 드높이고 있다. 약자와 소수자를 당당하게 조롱하고 차별하는 혐오문화가 양지로 나와 아예 주류문화를 차지하려는 지경이 되었다. 여기에다 사이비 종교세력까지 기득권세력에 편입되는 양상을 보인다.

정확히 100년 전인 1922년, 슈타이너와 인지학협회 구성원들에 의해 10여 년에 걸쳐 완공된 1차 괴테아눔이 반대자들에 의해 불타버리는 사건이 벌어졌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이었다. 세계대전의 참화 속에서도 세계 각지의 예술가와 인지학자들의 협력으로 만들어진 목조건물은 한 순간에 재가 되었다. 반대자들은 인지학협회의 무엇에 두려움을 느꼈던 것일까? 그들은 루돌프 슈타이너를 오해한 것일까? 슈타이너는 신비주의자가 아니라 정신과학자였음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인지학은 허황된 신비주의를 무기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것이 아니라, 엄밀한 과학정신을 토대로 인간과 세계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고자 하였다. 무엇을 위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슈타이너 역시 인간 해방의 문제를 가장 큰 관심사로 여겼고, 이를 위해서는 사회 자체의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걸 자각하여 사회운동을 펼쳤다.

발도르프 교육운동은 슈타이너의 사회삼원론 운동의 일환이다. 자본주의를 넘어선 경제, 국가주의를 넘어선 정치, 그리고 물질주의와 이기주의에 빠진 문화를 혁신하는 것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절박한 과제이다. 교육은 그러한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는 건강하고 유능한 사회구성원을 길러내는 작업이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 예술적이고 따뜻한 감성, 확고하고 지칠 줄 모르는 의지를 갖춘 인간을 키워내는 것은 정신적으로 오염된 후기 근대사회의 최대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세상은 건강하게 자라난 젊은 세대에 의해 창조될 것이다. 미래의 혁신과제는 새로운 역량을 갖춘 그들이 새롭게 자각하고 판단할 것이다. 그런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교사와 부모 역시 인지학을 공부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발도르프 교육과 인지학 공부를 더욱 단단히 할 필요가 있다. 최소한 교사들은 검증된 교육기관에서, 경험이 풍부한 교수들에게 일정 기간 지도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기초학문, 즉 철학과 과학에 대한 기본적 소양을 갖춰야 한다. 슈타이너는 전소된 1차 괴테아눔 위에 그 당시 혁신적인 공법이었던 콘크리트 구조물로 2차 괴테아눔을 건설한다. 세상의 어떤 공격에도 굴하지 않을 만큼 단단하게, 공동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인지학의 관점에서 세상은 모든 존재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공동체이다. 세상은 기계가 아니고 살아 있는 생명이며 눈에 보이는 물질성 속에는 반드시 정신성이 담겨 있다. 우리가 인지학과 발도르프 교육을 공부하는 것은 우리 내면의 정신성을 자각하고 깨어나 해방되기 위해서이다. 정신적으로 성장하고 정치적으로 연대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마침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슈타이너는 1차 괴테아눔의 전소 이후 인지학협회를 새롭게 정비하였으며, 강연과 사회운동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인지학을 공부하는 이라면 사회적 실천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세계 인지학협회와 발도르프교육연맹을 중심으로,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발도르프학교연합을 중심으로 힘을 모을 필요가 있다. 이제는 우리나라에도 인지학협회가 세워질 때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이 사회를 변혁시켜나갈 집단은 교육자들이라고 생각한다. 발도르프 교육기관뿐 아니라 공교육이나 대안교육의 교사들이 발도르프 교육과 인지학, 사회삼원론을 좀 더 배우고 실천한다면 희망이 커지지 않을까. 그리고 올바른 교육을 받고 자란 어린이와 청소년 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길 바란다. 이런 세상을 물려주게 되어 한 명의 기성세대로서 미안함이 크지만 앞으로의 세상은 그들의 것이다. 개인적인 성찰과 실천뿐 아니라 이 사회의 부조리한 구조를 날카롭게 바라보고 단결된 힘으로 세상을 바꾸어나가기를. 거짓된 어른들의 나약함을 밟고 올라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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