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시대에 회복적 사회는 가능할까? (2020. 8. 21.)

팬데믹 시대에 회복적 사회는 가능할까?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세기말부터 늘어난 좀비 영화가 이제는 인기 장르로 자리잡았다. 외계인이나 나치, 공산주의자들이 주적으로 등장하던 헐리웃 영화에도 좀비물이 쏟아진다. 우리나라 역시 최근 ‘부산행’을 비롯해 ‘#살아있다’, ‘반도’ 등의 영화가 주목을 받았다. 넷플릭스의 ‘킹덤’은 큰 인기를 끌어서 시즌3가 예고돼 있다. 단순히 오락물로 즐기는 것도 좋지만 ‘왜 지금 좀비인가?’라는 질문도 필요해 보인다.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우리는 이미 좀비 영화 못지 않은 공포감 속에서 살고 있지 않은가.

전광훈을 비롯한 소위 ‘보수 개신교계’ 인사들이 주도했던 8.15 광화문 집회를 기점으로 국내 확진자 수가 폭증하고 있다. 사랑제일교회와 다수의 극우 지향 교회, 극우 정당 및 극우 유튜버들이 선동한 이 집회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전국으로 퍼지면서 전문가들은 신천지 사태보다 더한 파국을 우려한다. 일부 참가자들은 확진 판정을 받은 후 병원에서 도주하거나 검사 결과를 부정하며 음모론을 제기한다. 그들은 집회 참가자 명단을 숨길 뿐 아니라 검사를 요구하는 이들에게 욕설과 고함을 내지른다. 대체 왜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정신적 좀비화’... 광화문에 모여 태극기와 성조기, 일장기를 흔들며 정부를 규탄하던 인파를 보며 이 말이 떠올랐다. 보건소 직원에게 달려들어 “너희도 걸려봐”라며 껴안고 침을 뱉은 교인 부부는 상징적이다. 그들 역시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어머니이며, 조부모이고 형제자매일 것이다. 그들의 인격을 매도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코로나 이전에, 그들은 어떤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 아닐까? 한 사람의 자아를 마비시키고 정신적으로 좀비와 유사하게 만드는 바이러스의 정체가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지금의 팬데믹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해야 할 정신적 문제의 외적 발현일지도 모르겠다.

증오는 나의 힘

우선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은 전광훈 같은 인물을 ‘기독교인’이라고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이 믿고 있는 종교는 ‘유사 기독교’가 아닐까. 신앙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구속된 이만희를 교주로 여기는 신천지와 다를 바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더럽히는 잘못된 믿음이라고 본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친 예수와 “빨갱이를 몰아내자”라고 외치는 그들이 어디에서 만날 수 있을까. 오히려 빌라도에게 예수를 죽이라고 외친 무리와 겹쳐 보일 뿐이다. 그들의 마음에는 맹목적인 증오만이 가득해 보인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단지 ‘유사 기독교인’들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증오라는 감정은 힘이 있다. 살아갈 희망을 잃은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 사랑만은 아니다. 증오도 살아갈 이유를 만든다. 누군가를 맹렬히 미워할 때 사라진 의욕이 되살아나고 투지가 타오르는 것이다. 이걸 ‘가짜 생기’라고 부르면 어떨까? 물론 ‘가짜 생기’는 불안과 두려움을 연료로 한다. 증오감의 일부를 구성하는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은 ‘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바탕으로 한다. 그리고 ‘내가 갖고 있는 것을 빼앗기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숨어 있다. 불안과 두려움을 인정하고 드러내기에는 자아가 취약한 사람일수록 맹렬한 적개심을 표출한다. 이성적 사고는 마비되었고, 역지사지나 이심전심 같은 공감이 자리할 마음의 여유는 찾아볼 수 없다.

한국사회는 오랫동안 특정인물, 특정집단을 증오하도록 조장되어 왔다. (한국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두 가지 구시대적 잔재로 분단 체제와 자본주의 체제를 들 수 있다.) 광복 이후 한국인은 학교에서부터 사회에 나와서까지 북한, 공산당, 김일성과 김정일 등을 증오하도록 교육받았을 뿐 아니라, 노동자와 노동자들의 정당한 파업도 증오하도록 부추김당해 왔다. 이것은 가공의 두려움, 더 정확히 말해 있지도 않은 기득권을 잃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의 발로에 가깝다. 진짜 기득권들은 증오의 문화 속에서 호의호식해 왔다. 21세기에 들어서도 간첩이 조작되었으며 극우정당과 그 지지자들은 통일세력을 규탄하고 재벌을 옹호했다. 산업재해로 죽어가는 노동자에 대해서는 잠깐 뉴스거리가 될 뿐이었다. 이런 움직임에 검찰 같은 공권력과 언론이 적극 협력해온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자본주의와 반공주의를 내재화한 일부 개신교회 역시 이 기득권 카르텔에 소속되어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시대적 과제

세월호 참사 이후 시대가 변하고 있다. 대한민국 사회의 온갖 모순이 쌓이고 쌓여 폭발한 것이 세월호 참사다. 이 비극적 사건은 대중의 머리채를 잡아 흔들었고 사람들은 더 이상 우민(愚民)의 잠에 빠져 있을 수 없었다. 촛불 혁명은 한국사회의 변화를 보여 준다. 친일세력과 재벌, 언론, 검찰 등의 기득권 카르텔을 더는 감내할 수 없었던 대중이 먼저 한 일은 정치세력의 교체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시대의 변화는 완결되지 않는다. 기득권의 저항은 여전히 맹렬하고 끈질기다. 태극기 집회는 쉼없이 이어졌고, 대북전단 살포도 멈추지 않았다. 이재용은 건재하며, 검찰과 언론이 화력을 모으는 대상은 개혁세력이다. 앞으로도 진통은 계속될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세대를 위한 희망은 어디에서 일구어야 하는가? 물론 교육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가정과 학교의 교육에서 한 사람이 갖고 있는 자아의 존엄성을 중요하게 다뤘던 적이 있는가? 아이 한 명 한 명의 고유한 특성에 관심을 기울였던 적이 있는가? 오히려 기득권을 유지하거나 기득권에 소속되도록 하기 위해 과도한 조기 교육, 경쟁 교육을 일삼지 않았던가? 어린 시절부터 주입당한 두려움으로 배움의 기쁨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채, 학년이 올라갈수록 협박이나 보상이 아니면 학습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 배움과 삶, 배움과 자아가 괴리되고, 이로 인해 약화된 자아가 스스로 사고할 힘을 갖추지 못하는 경우 역시 상당하다. 교회 역시 신자 스스로 성경을 읽고 예수의 가르침을 체화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보다 성직자의 권위와 순수한 믿음만을 강조하지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약화된 자아들은 필연적으로 강력한 카리스마의 지도자를 원한다. 난폭한 지도자는 두려움과 증오감을 심어 주는 방식으로 추종 세력을 통제하고자 한다. 일본의 아베가 혐한을 부추기는 것이나 미국의 트럼프가 중국을 때리는 방식은 히틀러가 유대인을 탄압한 것과 동일한 기제다. 여기에는 우월감이라는 달콤한 보상도 포함된다. 히틀러가 게르만 민족의 우월함을 주장할 때 독일인들은 열광했다. 일본이나 미국의 극우 세력 역시 그것을 똑같이 재현한다. 그러나 우월감은 물구나무 선 열등감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에서 우리는 단지 ‘무기력한 자아는 직면을 두려워한다’는 사실만을 확인할 수 있다.

존재감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

후기 자본주의 체제 아래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가치는 여전히 ‘이기주의’다. 이것은 한 사람의 인성 문제가 아니다. 이 시스템 자체가 이기주의를 향해 직조되어 있으며, 그 구조를 어떻게든 은폐하고자 하는 것이다. TV를 틀면 나오는 광고는 모두 우리의 불안을 자극한다. 그리고 욕망을 선동한다. 소비를 통해 존재감을 느끼라는 것이다. 더 많은 소비를 위해, 더 안정된 소비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포기하고 있을까?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잃는다는 것은 외면할 수 없는 법칙이다. 과식을 선택하면서 비만을 피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안락함 역시 근육의 손실을 가져온다.

이러한 섭리에 눈 감고, 불가능한 양가적 욕망을 추구할 때 우리는 비합리성에 지배된다. 이기주의적 관점을 유지하는 한 자가당착은 피할 수 없다. 지금과 같은 물질적 풍요를 추구하면서 자연과 약자에 대한 착취를 멈춘다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다. 오늘날의 팬데믹과 기후변화는 근대 자본주의적 사고방식, 삶의 방식의 결과일 수밖에 없다. 그 종착점이 반지성주의, 유사과학, 가짜 뉴스, 대안적 진실 등임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우리는 두 가지 기로에 놓여 있는 셈이다. 직시하고 깨어나는 길과 외면하고 잠들어버리는 길. 그러나 외면하고 잠들어버려서는 존재감을 온전히 느낄 수 없다는 데서 진짜 어려움이 발생한다.

사회 곳곳에서 존재감을 느끼고자 하는 사람들, 특히 잘못된 방식으로라도 존재감을 느끼고자 하는 사람들에 의해 다양한 문제들이 벌어지고 있다. 교실에는 욕구불만으로 몸부림치는 아이가 늘었고, 콜센터에는 나이를 막론하고 악다구니부터 퍼붓는 고객이 비정상적으로 늘었다. 그런 이들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것은 문제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회가 더 나아지길 바라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현상을 이해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해하려는 마음이 멈춰질 때 고개를 드는 것은 증오감 또는 혐오감이다. 오늘날 우리의 커뮤니티에는 비하의 언어가 난무한다. 굳이 그 예를 들지 않더라도 우리 일상 구석구석에 혐오와 증오의 언어가 가득 차 버렸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과학이다

이 사회의 진정한 팬데믹은 두려움에 의한 증오감이 아닐까. 증오(또는 혐오)는 사람을 정신적 좀비로 만든다. 나는 무조건 옳고 너희는 어쨌든 틀렸으니 없어져야 한다는 사고방식이야말로 좀비적 현상이다. 여기에는 이기주의적 태도, 자기중심적 사고, 자아와 존재감의 상실 같은 실존적 문제가 숨어 있다. 증오를 멈추면 그런 본질에 직면해야 하니 증오는 집단적으로 고조되어 간다. 유튜브와 카톡, 종편 채널 등을 통해 증오를 확대 재생산하는 가짜 뉴스는 진실과 거짓이 섞여 그럴 듯한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믿음 체계를 공유하는 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는 믿음을 강화하는 먹잇감이 될 것이다. 이로 인해 자아가 팽창한 사람들이 음모론을 외친다. 폐쇄적인 공동체에서 동일한 믿음 체계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비합리적 언행을 우리는 매번 뉴스를 통해 발견한다. 비대해졌지만 약화된 자아, 이것은 우리 시대의 크나큰 고통이다.

실천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업은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래서 우리가(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같은 질문.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게 더 많은 재산일까? 행복을 위해 필요한 재화는 무한대일 수 없다. 적당한 정도를 넘어서면 오히려 재화 때문에 불행해진다.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지나치게 집착할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게 증오일까? 증오하는 이들의 제거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좀 더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을 따름이다. 타인의 불행 위에서 우리의 행복이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어찌되었거나 함께 행복해지는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합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대화가 가능하다. 여기에서 말하는 합리성은 이론적인 차원이 아니라 실천적인 차원이다. 관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실제로 그러한가를 봐야 하는 것이다. 이야말로 과학적 작업이다.

과학적으로 사고하기 위해서는 자기중심적 사고로부터 탈피해야 한다. 사실 가장 어려운 게 이것일 수 있다. 자기중심성을 극복하는 것, 이것은 자기 자신을 인식하는 일에서 출발한다. 자아를 인식하는 일이 오로지 심리적 차원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 인식은 심리적인 동시에 사회적인 작업이다. 자기가 사회로부터 받아온 영향을 인식하는 것(가정, 학교, 지역, 직군, 국가 등), 자신의 관심사, 기질, 소질, 소명 등을 인식하는 것, 그리고 자신의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알아차리는 것 등에서 자아를 강화할 수 있는 책임 능력이 형성된다. 발생한 영향을 인식하고 수용하는 일에서 책임감이 싹트고, 책임질 수 있는 힘을 통해 자아는 두 발을 딛는다. 단독자로서 자아는 이제 자기 삶의 의미를 찾고 자기 행위를 반성할 수 있다. 그럴 때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으며, 존재감을 건강하게 느낄 수 있다. 교육이나 종교는 지금 당장 사람들이 건강한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당신 뜻대로 하소서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끝으로, 만약 예수가 우리 사회의 이런 아비규환을 보고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었을지 생각해 보고 싶다. 그가 남긴 마지막 기도는 의미심장하다. “주여, 왜 저에게 이런 고난을 주시나이까...” 그는 다음 날 죽임 당할 것을 안다. 밤새 고통스럽게 기도하며 결국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고 당신 뜻대로 하소서.” 이기주의로 똘똘 뭉친 어리석은 백성들에게 예수는 자기희생을 통한 사랑을 가르쳤다. 2000년이 지났지만 그 가르침은 여전히 생명력을 갖는다. 거듭나기 위해서는 죽어야 한다는 것. 에고의 죽음이 두려운 자들이여, 오직 회개하라.


2020년 8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