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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칼럼

생태적 전환과 회복적 정의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2. 6. 5. 11:12

생태적 전환과 회복적 정의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포스트 코로나, 변화의 시대

‘포스트 코로나’는 전 세계적인 코로나 대유행 이후 다가올 새로운 시대를 일컫는 말이다.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처음 확인된 코로나19의 감염자가 세계적으로 급증하면서 2020년 3월 11일 세계보건기구는 팬데믹을 선언했다. 1968년 홍콩 독감,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에 이어 세 번째였다. 전 세계 각국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이동제한과 봉쇄 등의 사회적 거리두기, 원격수업과 재택근무 등을 실시했다. 이로 인해 ‘뉴노멀(New Normal)’이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지금 시점에서 섣불리 팬데믹이 종료되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 진정 국면에 들어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나라는 지난 5월 2일부터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었고 거리두기도 완화되었다. 덕분에 놀이공원이나 콘서트장에 사람이 몰리고 여행객이 급격히 늘어났다. 우리는 다시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걸까?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고 있는 것일까? 새로운 시대에 대해 논하기 전에 우리가 지나온 시간을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

교육부의 ‘2021년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9년부터 2년간 언어폭력 비중은 35.6%에서 41.7%, 사이버폭력은 8.6%에서 9.8%, 학교 밖 폭력은 24.3%에서 40.6%로 늘었다. 지난해 사이버폭력 유형은 사이버 언어폭력이 42.7%, 사이버 명예훼손이 17.1%, 사이버 따돌림이 12.6% 순으로 빈번하게 발생했다. 피해는 주로 카카오톡·라인 등 메신저(46%), 인스타그램·틱톡 등 소셜미디어(26.7%), 온라인 게임(15.4%) 공간에서 발생했다. 아마도 2022년 현재에는 사이버폭력이 더욱 늘어났을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등교를 하지 못하고 원격 수업이 늘어나면서 아이들의 삶에 큰 변화가 온 것이다. 규칙적인 생활 리듬이 깨졌고, 학습태도나 집중력이 현저하게 저하되었을 뿐 아니라 공격성이 늘어났다고 볼 수 있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면서 얻게 되는 기쁨이 단절의 스트레스가 된 것이다. 그것이 그대로 사이버폭력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아이들은 중독이라고 할 정도로 미디어에 의존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주의력결핍 문제가 심화되었고, 관계 형성 능력은 심각할 정도로 약화되었다. 비대면 수업과 소위 ‘언택트 문화’는 교육적이지 않다는 게 밝혀진 것이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과 회복적 대화모임이 더욱 필요해진 상황이다.

사회적으로는 코로나19로 인해 사이버 금융범죄와 디지털 성범죄가 급증했다. 대면접촉이 줄고 재택근무가 늘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혐오범죄가 급격히 증가했는데, 미국에서는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하는 폭력이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외국인 대상 혐오범죄가 늘어났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코로나19 이전-이후 혐오범죄 변화와 혐오범죄 폭력수준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대한 연구’). 이것은 팬데믹의 고통을 사회적 약자에게 전가함으로써 불안에서 벗어나려는 행태로 보인다. 물론 이러한 행태는 사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악화시키는 원인이 된다. 혐오의 고리를 끊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이러한 행태를 정치에 이용하는 세력이 득세하고 있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전쟁을 비롯한 국가 간 분쟁이다. 6월 4일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00일이 되는 날이었다. 최근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에 따르면 석 달 넘게 지속되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지금까지 800만 명이 집을 떠났고 난민 650만 명이 발생했다. 4천31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으며, 사망자 중 261명은 어린이로 분류됐다. 실제 사상자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문제는 이 전쟁이 언제 끝나게 될지 예측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세계적 곡창지대이자 주요 곡물 수출국인 우크라이나가 전쟁 피해로 시달리면서 세계 식량 안보가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천연가스와 원유 같은 에너지 문제보다 더 심각한 2차, 3차 피해를 가져올 것이다.

생태계를 위한 회복적 질문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도록 하자.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적 대혼란에 대해 분석하기 전에 우리는 팬데믹의 원인을 생태계와 관련하여 따져보아야 한다. 인간 사회는 자연 생태계의 절대적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인류는 생태계의 변형과 파괴를 일으킨 장본인이 되었다. 어쩌면 코로나19는 근대세계의 종언을 알리는 사건이 될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현재 또 다른 전염병의 창궐과 기후위기를 두려워하고 있다. 따라서 더 이상 자연을 착취하고 파괴할 수 없으며 이전처럼 풍요를 구가할 수도 없다. 소비를 줄이고, 육식에 대해 고민해야 하며, 어느 정도 불편한 삶을 감수해야 한다. 다시 말해, 인간 역시 생태계의 일원임을 깨닫고 더 이상의 파국을 막기 위해 모두 함께 노력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근대적 세계관은 세상을 하나의 기계로 본다는 데에 큰 모순이 있다. 과학혁명 이후 데카르트에서 뉴턴에 이르기까지 근대 초기의 사상가들은 기계론적 세계관을 구축해왔다. 갈릴레이가 도입한 ‘정량화’와 베이컨이 옹호한 ‘인간의 자연 지배’, 데카르트가 발전시킨 ‘물질세계를 정신과 분리된 하나의 기계로 여기는 시각’, 그리고 뉴턴의 객관적이고 불변하는 ‘자연법칙’에 대한 관념, 로크가 촉진한, 사회에 대한 합리주의적이고 원자론적인 개체주의적 시각이 기계론적 패러다임을 형성했다(<최후의 전환>, 5쪽) 여기에 흄이 불러온 경험론적 협소한 사고방식을 빼놓을 수 없다.

근대과학의 기계론적 패러다임은 사법에도 영향을 끼쳤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응보적 사법이 확립된 것은 근대과학의 발전과 무관하지 않다. 기계론적 패러다임 위에서 재산과 주권이라는 법 제도를 통해 자연을 착취하고 상품으로 변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소유권과 국가주권은 근대사법의 구성원리이다. 그로부터 범죄란 법률을 위반한 행위이고, 범죄자는 국가질서를 훼손한 것이므로 응분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가 확립되었다. 진정한 피해자는 국가이며, 처벌의 주체 또한 국가라는 법논리는 비인간적 사법체계를 낳았다. 이러한 처벌 중심의 근대 사법체계는 공동체의 인간관계를 파괴할 뿐 아니라 전쟁을 부추기는 기제가 되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는 기계론적 근대 세계관의 결과로서 전염병과 기후위기의 피해자가 진정으로 누구인지 물어야 할 것이다. “누가 피해자이고 어떤 피해를 겪고 있는가?” 고통은 평등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더 열악하고 가난한 이들이 더 큰 고통을 겪게 된다. 백신접종을 맞고 싶어도 못 맞는 제3세계 사람들, 최신 전자기기와 와이파이 시설이 없어 비대면 교육에서도 소외되는 아이들을 상상해 보라. 불평등은 팬데믹 이후 더욱 심해지고 있다.

인간 사회를 벗어나 시선을 지구 전체로 돌리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진정한 피해자는 자연 생태계라고 할 수 있다. 멸종위기에 처한 수많은 동식물의 피해가 전염병, 종다양성의 저하 등 인류의 위기로 다가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무분별한 농약 사용으로 수십억 마리의 꿀벌이 사라지고, 바다를 뒤덮은 미세 플라스틱에 의해 해양 생물 90%가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가 다시 물어야 할 것은 “이 피해를 회복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이다. 인류세의 종말이 언급되는 이 시점에서 회복적 정의는 사법정의의 문제에서 나아가 생태계 정의로까지 확장될 필요가 있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공동체가 단지 인간만의 공동체는 아닐 것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의 공동체, 나아가 우리를 살아 있게 해주는 모든 존재의 유기체적 공동체를 회복하는 일은 우리를 기계론적 세계관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기계적 연대에서 유기적 연대로, 기득권층만의 건강이 아니라 인간과 동물, 생태계를 포괄하는 원 헬스(One Health) 운동으로 관점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또한 기본소득을 비롯해 자본주의적 소유에 대해 성찰하고 개인소유권을 공동소유권으로 전환하는 작업, 즉 공동으로 누리는 ‘커먼즈(commons)’를 확대하는 운동 역시 필요하다. 이러한 생태적 전환이야말로 우리에게 작은 희망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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