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아이들은 위대한 스승이다 - Christof Wiechert 본문
흥미로운 역설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인간을 이해하려고 한다면 그의 집은 기본적으로 Heaven이라는 것을 이해해야합니다. (His home is basically becoms from the heavens). 하지만 인간은 땅에서 살아야 하고 각자가 임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임무는 천상에서 발달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며 오직 이 땅에서만 실현 가능합니다. 이것을 이번 생에서 develop 해주고 실현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것이 발도르프 교육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과거의 지구와 아주 다르다는 것이 첫 번째 역설입니다. 두 번째 역설은 이것입니다. 인간을 바라보면 특히 우리가 사는 시대에 우리가 교육하고 개발시키는 모든 것이 “개별화”의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인 것은 인간(나라는 존재로)은 혼자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자신이 되기 위해 나는 세상과 함께 존재해야만 합니다. 더 큰 그림을 그려보면 세상이 나이고 내가 바로 세상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발달은 좀더 고차원적인 단계로의 변형을 뜻하는 것이며 성장해나가야합니다. 이는 발도르프 교육이 가고자 하는 길이고, 이 자체는 혼란스럽지 않습니다. 하지만 복잡해지는 것은 오늘날 물질화된 사회(business life)에서 “개별화된 복지”만을 추구하는 경향 때문입니다. 이것은 세상을 destroy 하는 것이며, 곧 자신을 destroy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일반인간학에서 Steiner가 교사들에게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라는 질문을 한 것을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이 질문에 답을 해볼 수 있고 저 역시 이것에 대해서 답을 해보았습니다. 저의 답은 항상 세상에 사람이 없다면 훨씬 더 좋은 세상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사람이 없이는 세상은 존재하지 못합니다. 인간이 곧 세상과 하나이며, 자신이 되기 위해 인간은 세상을 필요로 합니다. 이것이 발도르프 교육이 가지고 있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사회가 이러한 것은 매우 복잡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주 전형적인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미래세대가 우리가 교육에 대해서 바라보고 만들어 내는 것들을 바라보면 비웃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교육의 본질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복잡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고, 칠판에 이 복잡한 특징들을 그려보겠습니다. 오늘은 특히 그중에 유치원 교사들의 시기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림 (하늘, 땅, 나 (자아), 세상)
오늘 주제를 설명하기 위해서 원숭이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지난 수세기 동안 미국 심리학자 Wintrop Miles Kallog는 인간과 원숭이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였고 인간과 원숭이의 유전자 패턴이 거의 동일하며 아주 작은 부분만 차이가 난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작은 차이가 어떻게 인간과 원숭이의 커다란 차이를 가져오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문득 인간과 원숭이의 차이가 근본적인 유전자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속해있는 사회의 socializing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고 결혼을 해서 부인이 임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부인이 임신을 하고 있는 동안 그는 동물원에 방문을 하였고 임신을 한 침팬지를 발견하였습니다. 부인은 도날드라는 아들을 출산하였고 침팬지는 Gua라는 암컷 침팬지를 출산하였습니다. 어떻게 부인을 설득하였는지 알 수 없지만 부인이 두 아이(도날드와 구아)를 함께 기르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두 개의 요람이 있고 항상 두 세트의 기저귀와 우유가 있었습니다. 구아는 모든 면에서 도날드와 똑같은 환경에서 성장도록 하였습니다. 그렇게 실험은 진행되었고 도날드는 8개월 침팬지는 4~5개월 정도가 되었습니다 둘은 나란히 요람에 누워 있었고 매일 이 둘을 관찰하였습니다.
Kallog는 이렇게 성장을 한다면 침팬지가 인간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것은 수백년전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1940년대, 얼마 전의 이야기입니다. 구아는 도날드보다 성장이 빨랐습니다. 특히 손을 사용하는 능력은 훨씬 빨랐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구아는 요람에서 뛰쳐나와 커튼을 기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몇 주 후 도날드가 요람에서 뛰어나와 커튼을 기어오르기 시작하였지만 성공적이지는 않았습니다. Kallog는 침팬지의 성장이 도날드보다 훨씬 빠르다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몇 달이 지나고 구아는 제공되는 음식에 만족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당시 도날드는 하루에 5번 음식을 먹었는데 구아는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이 신고 있던 신발을 벗어 먹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도날드도 자신의 신을 벗어 먹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도날드는 구아가 내는 침팬지의 소리를 따라 내기 시작하였습니다. Kallog는 실험 1년 반 정도가 되어 이 실험을 멈춰야만 했습니다. 자신의 아들 도날드가 점점 침팬지가 되어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침팬지는 인간다워진 부분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 매우 흥미롭습니다.
1) 불과 얼마 전의 사람들이 원숭이가 인간사회에서 생활한다면 인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That human being had that idea that monkey just by human socialization could become human being)
2) 이 실험의 결과는 심리학 community에 충격적인 wave를 가져다줬습니다. 인간의 결심은 아무런 것에도 확정적으로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직은! 완전히 인간은 열린 존재입니다.
이 두 지점을 생각의 지점으로 가져와 조금 더 발전시켜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이 어떻게 침팬지와 함께 있는 환경에서 침팬지처럼 자랄 수 있는가? 서서히 조심스레 현대과학은 여기에 다가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100년 전 슈타이너는 이미 이것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첫 7년은 놀라운 기간이며 이 기간에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모방의 힘을 아주 놀라운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모습을 볼 때 아기 자신이 아직은 heaven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슈타이너가 말했습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인간의 soul이 지상으로 오고 있는 중이고 아직 땅에 완전히 오지 않았으며, body에 온전히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heaven에 있기 때문에, 아직은 body가 없는 존재이며 경계가 없는 열린 존재입니다. 다가오는 모든 것에 열려 있습니다. 당신 안에 정신세계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할 수 있다면, 아기가 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알고 느낄 수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heaven에 있을 때 육체가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 안에 있고 모두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 말을 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소통하고 알 수 있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슈타이너는 우리가 땅으로 내려오면서 모방의 힘을 가지게 되는데 이 모방력은 우리가 정신계에서 어떻게 지냈는지에 대한 일종의 기억이며 이것은 우리가 살았던 곳으로부터의 마지막 반영(reflection)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힘은 아주 강력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어느 곳에 있던지 아주 강력한 힘으로 주변의 것을 모방합니다.
아침에 저는 중국어로 인사를 하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네덜란드 사람으로서 중국어의 모음과 자음의 발음을 모방하여 연결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언어를 익히는데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언어학자들은 세계 모든 언어가 200개 정도의 소리들이 혼합되어 나온다는 조사결과를 발견하였습니다. 그 200여개의 소리 중 독일어는 예를 들어 40개 소리, 영어는 35개, 프랑스어 40개가 섞여서 나오는 것입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신생아가 있고 아이들은 이 200개가 넘는 소리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돌봐주는 엄마의 소리를 들으면서 아이들은 점점 소리의 특징을 받아들이게 되고 그 안에 들어 있는 의미와 뜻을 파악하기 시작합니다. 현대 뇌 과학에서는(죽어 있는 과정) 이 소리들을 함께 모을 때에 인간의 두뇌에서 시냅스가 모든 일을 한다고 주장합니다.
6개월 된 아기를 연구한, 칼라하리에 있는 언어센터 연구결과에 의하면, 특정 언어에 대한 기호(선호)를 형성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을 ‘pruning(전정, 가지치기)’이라고 하는데 시냅스 연결은 특정 언어를 배우기 위해 남아 있고 나머지들은 죽는다는 것입니다. (3~4개월~8개월 사이에) 신생아 아이들은 모든 언어에 열려 있고 적응과정을 거치며 200개 소리들의 조합에 대해 서서히 닫으면서 특정언어에 대해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이것을 인지학적 과학이 아니라 main stream 과학에서 발견한 것입니다. 이 시기에 아이를 TV 앞에 놓으면 너무 빨리 아이가 ‘pruning’ 작업을 시작하면서 생동감 있는 삶의 언어를 습득하지 못하고 언어에 대해 감각이 좁혀지는 과정이 빨라진다는 결과를 보여주었습니다. pruning이 강화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의 감각은 점점 좁아지게 됩니다.
어린아이들은 청각적으로도 세상과 만나지만 또한 visual contact로도 세상과 관계를 맺습니다. 어린 아이는 모든 종족 얼굴을 구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며 시각적인 pruning을 시작하고 특정한 종족은 더욱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중국 사람들의 얼굴을 구별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아주 비슷하게 보입니다. 저는 이미 시각적인 pruning 단계를 지나서 특정한 차이만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린 아이들은 이러한 어려움이 전혀 없습니다. 대략적으로 유치원 시기가 되기 전에 이러한 어려움이 없습니다. 어린아이는 하나의 커다란 열린 감각기관과 같다고 슈타이너가 말했습니다. 현대 과학도 다양한 실험으로 이러한 것을 이해해 가고 있습니다. 좋은 새로운 교육은 아이가 가능한 오랫동안 세상 impression에 대해 열린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시각적으로도 청각적으로도.
연대 생물학(Chronobiology)에서는 생물시계(time window)가 존재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 Time biology 여러분은 모두 늑대 인간에 대해서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정글에서 자라났고 나중에 발견이 되었지만 결국 언어를 배울 수 없었던 이야기입니다. 이것에 대한 끔찍한 예가 하나 더 있습니다.
1980년대 유럽의 한 나라인 루마니아에 한 독재자가 있었습니다. 루마니아에는 부모가 죽거나 돌볼 수 없는 형편의 아이들을 돌봐 주는 고아원이 있었습니다. 이곳은 모든 것이 벌로써 운영이 되었습니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가 없었습니다. 유럽 사회가 이 독재자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이 고아원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고아원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찾아갔습니다. 이 아이들을 통해서 발견한 것이 있습니다. 생의 첫 2년을 이곳에서 보낸 아이들은 이후로도 언어를 제대로 배울 수 없었습니다. 생의 첫 2년이 지나기 전에 구출이 된 아이들은 어렵지만 조금은 언어를 습득할 수 있었고 아주 어려운 과정이었습니다. 언어 능력이 제대로 계발되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이 아이들이 얼마나 sensitive한 존재들인지에 대한 반영입니다. 아이들과 세상의 관계를 태어난 첫날부터 시작됩니다.
독일의 유명한 교육자가 교육은 기저귀 가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말을 하였습니다. 가끔 모든 것은 때가 되면 절로 배워진다고 말을 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아주 rude한 표현이라고 했습니다. 언어적 능력을 가지기 위해 specialization하는 것은 너무 일찍 아이들을 다양한 언어적 능력으로부터 pruning 하는 것이며 세상을 이해하는 폭을 좁히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발달 시기에 맞는 교육과 접근이 필요합니다. 개인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니 이제 움직임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항상 재미있는 실험이 있습니다. 또 하나의 예를 말씀드릴 텐데 미국에 있는 유치원에서 기존의 교육과정대로가 아닌 아이들에게 “Let them do what they want!” 프로젝트를 시행하였습니다. 큰 운동장에 정원도 있고 나무들도 많이 있는 곳이었고 아이들은 그곳에서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습니다. 유치원 선생님들이 보니 아이들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뭔가를 파거나 나무에 올라가거나 뭔가 재미난 것을 만들어서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배우는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 유치원의 아이들과 일반적인 유치원의 아이들을 비교하였습니다. 그 아이들은 책상 뒤에 앉아 놀고 밀랍 가지고 만들고 그리고 앉아서 노래하는 평범한 아이들이었습니다. 두 그룹의 아이들을 데리고 특정 상황을 어떻게 통과하는지 실험을 해보았습니다. 엄마는 반대편 벤치에 앉아 있고 사이에 깊은 받침대를 놓고 그 위에 투명한 유리를 덮어 두었습니다. 일반적인 교육환경에 있었던 아이들은 건너는 시도를 하다 유리 위를 기어 엄마에게 다가갔다. 밖에서 놀던 아이들은 아주 투명해서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없는 유리로 덮힌 받침대를 보고 직감적으로 얼마나 깊은지 그리고 자신이 건널 수 없는 깊이라는 것을 판단하고 반대편에서 엄마에게 손을 흔들었습니다. 그들은 눈으로 정확한 깊이를 판단하고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판단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움직임은 눈을 발달시킨다는 것이 검사의 결과였습니다.
좋지 않은 실험이지만 움직이는 것이 허락되지 않고 바구니에 앉아만 있도록 키워진 고양이가 있었고 이동을 할 때도 고양이는 그 바구니 안에 있고 누군가 그 바구니를 옮겨 주였습니다. 결국 이 고양이는 눈이 멀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감각 기관이 발달하기 위해서는 움직임이 필요하고 특히 시각이 발달하기 위해서는 움직임이 필요합니다. 시각은 움직임과 깊은 연관을 가지 있습니다. 또한 시각은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사고와 관련이 되어있습니다. 세상과 깊은 연결을 위해서는 움직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천문학자들이 인간의 눈과 관련한 실험을 하였다. 몸은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시선을 한군데 계속 고정하도록 하면 15분 후에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신체의 움직임이 세상을 받아들이는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whole body movement needs to meet the world” 스위스의 유명한 한 학자는 ‘1시간 이상 근육을 사용하지 않고 아이들이 가만히 앉아만 있게 하는 것은 범죄다!’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발달을 위해서는 신체와 근육을 움직여야 합니다.
일반적인 5~6학년부터 아이들이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살펴보고 스스로 질문을 해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아이들에게 과연 건강한 일인가? 발도르프 교육은 앉아 있는 교육이 아닙니다. 발도르프 교육은 일반학교와 같은 목표를 중심에 두고 있지 않습니다. 체조와 오이리트미 수업에 중요성을 강조하였으며 강의가 아닌 교육을 하도록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우리가 가진 가장 깊은 감각은 바로 움직임입니다. 아이들은 이 방식으로 자신을 잘 교육합니다. 올바른 균형의 환경을 가져다주면 아이들은 스스로 배울 수 있습니다. 특히 유치원과 저학년은 이러한 부분이 아주 중요합니다. 20세기 후반에서 21세기 초에 살고 있는 아이들은 균형 잡힌 올바른 환경에서 스스로를 교육(발달) 시키기에 어려운 환경에 놓여있습니다. 아이들은 집에서 잘 움직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몇 시간씩 TV나 모니터 앞에 앉아서 게임하는 아이들이 움직임을 어떻게 발달할 수 있는지 상상을 해보십시오. 이것은 아이들의 움직이는 능력에 큰 damage를 주는 것입니다. 만약 이렇게 도시화된 좁은 공간에서 삶을 살게 되면 움직임에 대한 큰 반감을 가져 올 것입니다. 학교에서 저학년 아이들을 몇 시간씩 앉아서 공부를 하게 하는 것은 아이들의 감각을 점점 좁게 만들면서 세상과 단절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약간 위험을 안고 있는 테크놀로지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테크놀로지가 아이들의 필요(욕구)를 어떻게 만날 것인가?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아이들에게 해가 됩니다. 주변에서 자연을 거의 만날 수 없이 자란 아이들은 healing forces가 더 이상 삶의 일부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가정폭력이 있는 가정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폭력적인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안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요? 아이들은 큰 공동체, 자연 속에서 자랄 때 훌륭한 Healing forces를 가지게 됩니다.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는 다른 힘을 찾아야 하고, 자연의 치유력을 대처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예술입니다!
예술은 우리를 치료합니다. 예술적인 것이 교육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교육과정에 예술을 가져온 것은 highly 미래 지향적이며 극히 치유 지향적입니다! 2년 전 강의에서 이 그림을 보여드린 적이 있습니다. 위에서 내려오는 힘과 아래에서 올라가는 힘이 섞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예술이며 이러한 예술적인 방식으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바로 예술적인 하루 리듬입니다. 슈타이너가 말했습니다; Even one wrong timetable can kill the affects of the good education! 학교는 시간표도 예술적인 호흡이 있어야 합니다. 시각적인 것과 음악적인 것, 그리고 신체적인 것이 섞여 흐를 수 있는 시간표여야 합니다. flowing quality로 사용되어져야 하고, 실재적인 것(reality)을 발달시키는 방향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relaxing and breathing 예술이 자연을 대처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육적 예술을 개발해야 합니다. 이것이 교육의 본질입니다.
3세까지 아이는 잘 호흡할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세상과의 접촉은 안정적인 환경만 있으면 됩니다. 어린 아이들의 모방 능력은 엄청난 것이기 때문에 각자의 영혼에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주변)의 영혼과 가능한 많이 어울려 살 때 큰 이익이 됩니다! 이것은 영혼의 gesture이며, 모방을 위한 가장 근접한 바탕이 됩니다. 모방은 또 하나의 긴밀한 대화(communication) 방법입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 아이를 돌봐주는 엄마나 혹은 유치원(취학 전에 만나는 교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며, 아이의 영혼이 자신의 신체 안으로 들어가 조율(tune)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예전의 시기에도 그랬고 지금의 시기에도 ”희생“을 통해서 아이의 영혼이 나의 영혼 안에 존재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저는 감성적(sentimental) 의미의 희생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감성적인 것이 전혀 아닙니다. 어린 아이가 자신이 영혼적 존재라는 것을 경험하는 것은 또한 다른 영혼적 존재를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며, 아이는 다른 사람들의 영혼에서(영혼을 통해서) 세상과 연결됩니다.
1922년 슈타이너는 예술가들에게 오이리트미 상(image)들에 색을 칠해달라고 요구를 하면서 각 자음과 모음에 따라 아주 정확한 색을 말하였습니다. 다음 해인 1923년 첫 번째 학교 교직원회의에서 다시 한 번 오이리트미 상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교사들에게 이 오이리트미의 상에 대한 공부를 하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공부를 통해서 교사는 아이들이 자신을 세상과 연결시킬 때 생리적, 심리적으로 어떠한 과정을 정확하게 밟아가는지를 이해해야만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오이리트미 상을 바라보는 세 단계>
1) 오이리트미스트의 드레스 색깔입니다. 그것은 세상 안에서의 움직임을 나타냅니다.
2) 베일의 색입니다. 이것은 상의 분위기를 표현하고 있으며 움직임을 통해서 오이리트미스트와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표현합니다.
3) 내적인 색입니다. 하지만 눈으로 볼 수 있는 색입니다. 이것은 그 상 character입니다. 그 음을 표현할 때 어느 부분의 근육이 긴장을 하는지를 나타내 줍니다. 그래서 그 움직을 표현하기 위해서 어디에 에너지와 의도(intention)가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 세 가지의 색이 어울려지면서 하나의 모음이나 자음이 표현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아’ 몸짓을 보겠습니다.
- Movement — purple (pink)
- Veil — bluish and greenish
- Character — red (tension)
긴장이 어깨와 발에 있습니다.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 있지 않으며 안정적으로 세상에 서 있는 모습니다. 어린아이를 보면 아이들 몸짓이 바로 ‘아’와 같습니다. 세상을 기꺼이 받아들이고자 하지만 수동적인 방식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세상을 받아들입니다. “아”에는 수동적이지 않은 큰 행위가 그 속에 있는 것입니다. 모든 아이들의 이러한 영혼적인 움직임이 신체에서 표현되면서 세상과 관계를 맺어갑니다. 이것이 배움의(삶의) 시작입니다! 인간의 운명은 나와 세상의 관계이며, 이것은 나의 삶에서의 관계와 같습니다.
이제 마무리를 하고자 합니다. 아이들의 이 제스처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교육을 통해서 아이들이 첫 7년 동안 세상을 향해 “아”라고 할 수 있게 만들면, 이러한 영혼의 자세로 세상을 만나게 해준다면, 우리는 아이들을 세상과 연결하는 훌륭한 foundation을 마련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중의 삶에 “자유로운 개별적인 인간”이 되게 해줍니다. (자유로운 개별체가 될 수 있게 해줍니다.) “아”의 자세와 같이 세상을 열린 태도로 받아들이면서 아주 긴밀하게 관계를 맺는 힘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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