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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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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도르프교육학

우리는 왜 발도르프교육에 주목해야 하는가?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17. 9. 19. 11:46



우리는 왜 발도르프교육에 주목해야 하는가?


김훈태(슈타이너사상연구소)




해님은 식물들에게

빛을 줍니다.

해님이 식물들을

사랑하니까요.

사랑을 할 때는,

그렇게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혼의 빛을 줍니다.


- 루돌프 슈타이너(1919)



우리는 아이를 사랑한다고 말을 하면서도 정작 어떻게 해야 올바로 사랑하는 것인지 모를 때가 많다. 정원사가 꽃과 나무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면, 또는 동물에 대한 지식이 없는 이가 수의사 노릇을 한다면 어떤 결과가 벌어질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부모와 교사로서 우리는 아이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나는 교대를 졸업하고 첫 번째 담임을 맡던 해를 잊지 못한다. 내가 처음 만난 아이들은 4학년이었다. 놀랍게도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이 어떤 존재인지 배운 적이 없다. 아이들은 나를 사랑으로 반겨줬지만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종종 악몽에 시달리곤 했다. 꿈속에서 나는 외과 의사였고, 수술실에서 집도를 준비하고 있다. 메스로 환부를 여는 순간 깨닫는 것이다. ‘나는 의학을 배운 적이 없다!’


교사로서 인간학을 배운 적이 없다는 사실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1학년 아이들은 어떻고, 3학년은 어떠하며, 6학년은 또 어떤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여자아이들과 남자아이들의 차이, 기질에 따른 특성 등은 말할 것도 없다. 배운 것이라곤 고작 파블로프의 개 실험과 프로이트의 구강기, 항문기 등이고, 피아제의 헐거운 인지발달이론이었다. 인간 발달에 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조차 별로 없었다. 그러나 아이들을 만난 첫날부터 나는 인간 이해의 부재가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깨달았다. 그것은 마치 무면허 의료인으로서 아이들의 영혼을 함부로 매만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후 나의 관심사는 교육과정과 수업방법보다 인간에 대한 이해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운명적으로 발도르프학교를 알게 되고, 또 그곳에서 담임교사를 시작하면서 교사로서 내 삶은 달라졌다. 발도르프교육의 근간이 되는 루돌프 슈타이너의 인지학(Anthroposophy) 사상은 인간학의 보고였다. 인간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와 같은 형이상학적인 이야기부터,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어난 아기가 어떤 경로를 거쳐 성인이 되고[각주:1] 발달단계마다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에 관한 실용적인 정보, 그리고 그에 맞는 예술적 수업방식까지, 그토록 찾아 헤매던 가르침이 풍성하게 담겨 있었다. 이전에는 경험해 본 적 없는 전혀 다른 세계관이었고, 교육이 곧 예술이 되는 새로운 세계의 교육학이었다.


부모와 교사를 통틀어 교육자라면 아이들과 어떤 행위를 할 때 그것을 왜 하는지에 대한 확실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것이다. 교육은 이렇게 해도 되고 저렇게 해도 상관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어떤 장난감을 줄 때 왜 그 장난감을 주는지, 또는 이야기를 들려줄 때 왜 그 이야기가 아이에게 필요한 것인지 교육자는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게 발도르프교육의 입장이다. 당연히 교과를 가르칠 때는 왜 그것을 그렇게 가르치는지에 대한 답이 교사에게 있어야 한다. 그냥 남들도 다 그렇게 하니까, 교과서에 그렇게 하라고 나와 있으니까, 라는 식의 대답은 아이들은 고사하고 교사 자신도 만족시키지 못한다. 발도르프교육은 그 이유를 올바른 인간 이해에서 찾는다. 막연하게 아이를 위해서 해 왔던 일들의 의미에 대해 우리는 처음부터 다시 돌아보고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왜 어린아이들에게 스마트폰 대신 돌멩이나 나무토막, 솔방울 같은 자연물을 장난감으로 주어야 하는지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발도프프교육에 관심이 있는 부모와 교사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를 온전히 사랑하고 건강하게 키우고 싶은 이라면 누구나 흥미로워할 내용이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은 걸 마음대로 쏟아 붓는 게 아닐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에게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사랑하는 대상이 필요로 하는 것을 이해하고 할 수 있는 만큼 그것을 주는 것, 그게 사랑일 것이다. 아이들을 사랑한다면 우선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저자인 르네 퀘리도는 30년이 넘는 교육경험을 바탕으로 교육과 인간의 본질에 관한 이야기를 친절하게 들려준다. 미국의 한 발도르프학교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일곱 개의 강의를 정리해 모은 이 책은 사전지식 없이 읽는다 해도 별 어려움 없이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리듬 있는 생활이 왜 필요한지, 아이들을 이해하는 데 기질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아이들에게 삶을 어떻게 준비시켜야 하는지, 그리고 이 시대에 아이들에게 길러줘야 할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등은 아이를 키우며 늘 생각하는 우리들의 고민 주제이기도 하다. 이어서 책에서는 발도르프교육의 실제적 수업을 지리와 역사, 외국어 등을 중심으로 생생한 사례를 덧붙여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태양이 식물에게 빛을 주는 것처럼 부모와 교사로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영혼의 빛을 전해 주는 존재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영혼이 빛나야 할 것이다. 이 책을 번역하는 내내 내 가슴은 기쁨으로 가득 차곤 했다. 발도르프 교사를 그만 두고 연구와 번역에 전념하는 지금 나에게 또 다른 삶의 과제는 아기를 키우는 일이다. 이제 막 만 3세가 지난 딸아이를 온종일 돌보며 작업을 하느라 번역은 더디게 진행되었다. 그럼에도 번역 작업을 즐겁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교육과 인간에 대한 저자의 깊이 있는 통찰 덕분이었다. 날마다 아이를 돌보며 ‘내 영혼은 빛나고 있는가?’, ‘나는 아이에게 빛을 주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난 날 초등학교와 발도르프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던 일을 떠올리곤 했다. 지금 아이들을 키우고 가르치는 부모와 교사들에게도 이 책이 많은 도움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글을 마친다.



2017년 가을

  1. 발도르프교육에서는 인간 발달에서 7년 주기로 질적 변화가 온다고 말한다. 신체적인 변화만 본다면 만 7세에 이갈이가 시작되고, 14세에 2차 성징이 두드러지며, 21세에는 키 성장이 멈춘다. 내적으로는 7세에 기억력이 강화되면서 본격적인 학습이 시작되고, 14세에는 사춘기가 정점에 올라 감정생활이 독립한다. 그리고 21세가 되면 자아가 독립하여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고 실행하며 살아가는 성인이 되는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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