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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회복적 대화를 통한 상담 사례 - 초등학교> 본문

회복적 정의+비폭력 대화

<회복적 대화를 통한 상담 사례 - 초등학교>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16. 5. 16. 23:17

<회복적 대화를 통한 상담 사례 - 초등학교>

 

* 아래의 글은 대학원에서 교직이수 과목으로 회복적 정의 과정을 수강하신 한 초등학교 상담교사가 회복적 정의 관점에서 학급에 있었던 따돌림 문제를 상담과 교육으로 대응했던 사례에 대한 것임.


“나는 초등학교에서 전문상담사로 일하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 여 명의 학생, 선생님, 학부모 그리고 때때로 경찰을 교육과 상담으로 만난다. 대부분의 나의 내담자 특히 학생은 학교폭력, 따돌림의 문제로 찾아온다. 사안이 심각해 보일 때, 나는 담임선생님과 주변의 친구들과 상담을 통해 사실여부를 확인하고 가해학생으로 지명된 학생을 상담한다. 특히 가해의 정황이 객관적으로 드러날 경우, 가해학생과의 상담을 위해 가장 먼저 준비하는 것이 <학교폭력에 관한 처벌법>조항이 든 책자이다. 가해학생에게 겁을 주어 폭력행동을 줄여보려는 목적이다. 그리고 법률조항의 확인은 상담할 때 가해행동을 한 학생을 쉽게 기죽이는데 무척 효과적이었다. 마음 약한 학생의 경우 그런 협박(?)에 기죽어 조용히 지내지만 공격성이 높은 학생의 경우 며칠 참다가 더 큰 폭력으로 상담실에 의뢰되곤 했다.

 

아마 마음 약한 학생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지만 음성적으로 공격성을 드러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피해자, 가해자, 학부모 그리고 선생님뿐만 아니라 상담사인 나조차도 폭력에 내성이 생겨 웬만한 폭력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거나 가정교육 탓으로 책임을 전가하곤 했었다. 그래서 폭력 앞에 무기력해진 학교라는 공동체를 자주 접하곤 했었다. 물론 나도 소진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학교폭력예방과 대책>과목을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 ‘회복적 정의’를 배우면서 나는 그 동안 나의 교육과 상담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다. 새로운 패러다임 ‘회복적 정의’는 폭력 앞에 무기력해진 나에게 새로운 희망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드디어 새로운 패러다임 ‘회복적 정의’를 실천해 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 


대상은 우리 학교에서 1학년 때부터 소위 전따였던 6학년 학생을 게임을 빙자해 때리게 한, 모범 학생들의 폭력이었고 이런 상황을 보고 비웃은 같은 반 학생들이었다. 피해학생에 관한 일은 몇 년 전부터 학교공동체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사건이 터질 때마다 가해행동을 하는 학생들을 혼내고 피해학생에게 사과시키고 피해학생에게도 폭력을 유발하는 행동을 하지 말라고 훈시하는 일로 마무리 짓곤 했었다. 그러나 곧 다시 따돌림은 시작되고 학교공동체는 폭력 앞에서 무기력감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먼저 폭력에 무기력해진 담임선생님과 부모님께 새로운 패러다임 ‘회복적 정의’에 대해 설명하고 그런 관점에서 반 전체를 교육시키고 가해행동을 한 학생들과 상담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시도로 피해학생 어머니가 피해학생의 앨범을 가지고 학교에 왔다. 태어날 때부터 유아기의 사진으로 가족의 희망인 딸이 가족들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하는 모습을 설명하며 어머니는 감추려했던 눈물을 쏟아 내었다. 우리 모두는 숙연해졌고 반 아이들은 하나 둘씩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 다음, 학생들은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 사과의 편지를 썼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책임에 대해서도 써 내려갔다. 편지의 내용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자신도 따돌림을 당해 본 경험이 있어서 피해학생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이야기, 피해학생이 자신의 물건을 책상 옆 통로에 쌓아두어서 아이들이 발로 차고 놀렸는데 이제부터 자신이 도와주겠으니 함께 치우자는 이야기, 점심시간에 꼭 손잡고 급식실에 가겠다는 이야기, 다시는 ‘찐따돼지’라는 별명을 부르지 않겠지만 누군가 또 부르려한다면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겠고 한 명의 힘보다 여러 명의 힘이 더 크니 번호 순서를 정해 차례로 여러 명이 하지 말라고 이야기 하겠다는 이야기 등등 이었다.

 

그 동안 폭력이 있을 때마다 반 강요에 의해 써왔던 단편적인 사과가 아닌 구체적인 사과와 책임행동을 결심하는 글들이었다. 피해학생어머니는 아이들의 사과편지를 읽고 당신 딸이 그 동안 듣고 싶었던 사과의 말이었다고 또 한 번 울었다. 그리고 그 날의 일을 결심하기 위해 이 편지를 묶어 교실 뒤쪽에 놓았다. 교육이 있은 날 피해학생은 학교에 오지 않았는데 여러 명의 아이들이 상담실을 찾아왔다. 피해학생을 조금이라도 빨리 찾아가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다고 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약 일주일이 지난 지금, 교실은 많이 편안해졌다. 몇몇 장난꾸러기들은 아직도 교실에 있지만 ‘찐따돼지’라는 말은 사라지고 피해학생은 몇몇 친구들과 수다도 떨고 웃기도 한다. 


아직 완전히 해결된 일은 아니고 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나는 상담의 방향을 응보적 정의에서 회복적 정의를 구현하는 패러다임으로 전환한 나의 교육과 상담결과에 대해 경이로움을 느낀다. 나는 가해자를 범죄자로 몰지도 사과를 강요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는 자신이 듣고 싶었던 사과를 받았고 반 전체는 평화를 즐기고 있다. 피해자, 가해자, 부모들, 담임선생님과 반의 학생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폭력 앞에 무기력한 패배자가 아닌 승리자의 모습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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