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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갈등 상황에서 바꾸어 말하기(paraphrasing) 본문

회복적 정의+비폭력 대화

갈등 상황에서 바꾸어 말하기(paraphrasing)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0. 9. 22. 15:16

갈등 상황에서 바꾸어 말하기(paraphrasing)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우리 속담에 "아 다르고 어 다르다"가 있습니다. 아주 작은 뉘앙스의 차이 하나로 말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잘 지냈니?"와 "잘 지냈냐?", "잘 지냈어?"는 각각 전혀 다른 표현입니다. 말은 우리의 마음을 전하는 도구이기 때문에 어떤 마음을 갖고 말하는지도 중요하지만 같은 마음이어도 어떻게 말하는지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기왕 속담 이야기를 했으니 말과 관련된 속담에 뭐가 있는지 볼까요?

 

- 말 한 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

-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

-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해라

-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

- 웃느라 한 말에 초상난다

- 말로는 못할 말이 없다

- 말 안하면 귀신도 모른다

- 길이 아니거든 가지 말고 말이 아니거든 듣지 마라

 

말 한 마디가 관계를 그르치기도 하고 살리기도 합니다. 절망에 빠진 사람을 일으켜 세우기도 하고 멀쩡한 사람을 고꾸라지게도 하지요. 오해를 사기 쉬운 게 말이지만 진심을 전하는 것도 말입니다. 그런데 말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주변 환경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습득한 언어가 습관화되어 있고, 자기중심적 시각 탓에 현상을 왜곡해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사회 문화적으로 형성된 언어습관을 주관적으로 사용하면서 우리의 심성은 특정한 형태로 고착되기 일쑤입니다.

 

우리가 쓰는 언어에 의해 우리의 사고가 형성되고, 주로 사용하는 감정이 결정되며, 욕구마저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언어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영복 선생님은 생전에 감옥살이를 하며 욕설을 많이 배우기도 했지만, 우리가 버섯을 화분에 담아 탁자에 놓지 않듯이 거친 말을 자랑스러워할 필요는 없다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말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자기가 하는 말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의식적으로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운동 선수가 고착화된 동작을 고치는 것만큼이나 어렵습니다. 늘 깨어 있어야 하는데 그게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다른 사람 또는 자기 자신을 비난하는 말, 체념하는 말, 비꼬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면 최소한 그런 습관은 고칠 필요가 있습니다. 나의 언어습관을 돌아보는 일은 나와 대화를 나누는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공감으로 듣기

 

비폭력대화(NVC)를 만든 마셜 로젠버그는 공감으로 듣기 위해 상대방의 말을 되풀이해 줄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상대방의 말을 정확하게 들었다면, 그 말을 되풀이해 줌으로써 상대방의 의사가 제대로 전달되었는지를 확인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만약 우리의 말이 정확하지 않다면 상대방은 우리가 잘못 이해한 부분을 바로잡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바꾸어 말하기는 물어보는 형태가 되는 것이 더 좋습니다. "어제 내가 약속에 늦었던 걸 말하는 거니?" 이런 식으로요. 이렇게 바꾸어 말하는 과정을 통해 상대방은 자신이 한 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자기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갈 기회를 얻게 됩니다.

 

교실에 지각을 자주 하는 아이가 있다고 해 보죠. 일주일에 서너 번은 한다고 해 보겠습니다. 교사가 만일 아이에게 "너는 어떻게 된 애가 맨날 지각이니?"라고 한다면 아이는 뭐라고 답할까요? 아이는 기분이 상해서 아무말도 안 하거나 변명을 늘어놓을 수 있습니다. "이번 주에 벌써 3번이나 늦었네. 선생님은 네가 약속된 시간에 왔으면 하는데, 무슨 일 때문에 늦는지 말해 줄 수 있니?" 이렇게 말하는 게 더 좋겠지요. 그런데 그때 아이가 "신경 끄세요. 관심도 없으면서." 이렇게 답했다면요?

 

우리는 의외로 가시가 박힌 말을 많이 합니다. 어린 시절에 그런 말을 많이 듣고 자랐다면 더욱 그렇겠죠. 공감으로 듣는 문화가 없는 환경에서는 거친 말이 오히려 친근함의 표현으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거친 말이 난무하는 관계가 안전하게 느껴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가시 박힌 말을 하지 않는 것도 노력할 일이지만 다른 사람의 말에서 가시를 빼고 되돌려 주는 것도 갈등을 예방하는 좋은 태도입니다. 다만 처음에는 그게 어색할 수도 있고 다소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런 태도 자체는 상대방에게 관심을 쏟는 것이므로 나쁠 게 없습니다. 물론 많은 연습이 필요한 일입니다.

 

공감으로 듣는다는 것은 건조하게 정보만을 묻거나 상대방이 한 말을 그대로 되돌려 주는 것이 아닙니다. 존중의 대화는 상대방의 마음, 특히 감정과 욕구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우선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표현하는 것이 좋습니다. "네가 왜 그렇게 말하는지 좀 더 분명하게 알고 싶은데 그렇지 못해서 난감하네. 선생님의 어떤 행동이 너에게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는지 말해 줄 수 있니?"라고 할 수 있겠지요. 

 

들은 말을 언제 어떻게 되풀이해서 확인해 주어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정답이 없습니다. 상대방이 자기가 한 말이 잘 전달됐는지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을 때, 그리고 강한 감정이 담긴 말은 대체로 바꾸어 말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이 강하게 담긴 말은 대체로 충족되지 못한 욕구가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공감으로 듣기의 핵심은 그 사람의 감정과 욕구에 귀 기울이는 것입니다.

 

<비폭력대화>에 나오는 사례를 몇 가지 옮겨 보겠습니다. 

 

* 내가 왜 그렇게 바보 같은 짓을 했을까?

-> 완벽한 사람은 없어. 너 자신을 너무 심하게 대하지 마! (X)

-> 좀 더 깊이 생각하고 행동했으면 해서 실망스럽니? (O)

 

* 내 생각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모두 자기 나라로 돌려보내야 해.

-> 정말 그렇게 하면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니? (X)

-> 그 문제에 대해 뭔가 해결 방법이 있었으면 해서 걱정이 되니? (O)

 

* 너는 신이 아니야!

-> 그래, 나는 신이 아니야. (X)

-> 너는 이 문제를 다르게 볼 수도 있다는 걸 내가 받아들였으면 해서 짜증이 나니? (O)

 

 

바꾸어 말하기

 

상담을 하는 상황에서는 내담자의 마음 깊은 곳의 이야기를 이끌어 내는 것이 기본 목표입니다. 따라서 내담자가 하는 말 중에서 감정이 강하게 담긴 말을 바꾸어 말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먼저 그 말을 하는 사람의 감정이 어떠할지를 추측해 보고, 다음으로 그 감정의 원인이 되는 욕구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기의 기본적 방식은 상대방의 진짜 의도와 욕구를 짐작하여 말하고 이어서 느껴지는 진짜 감정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 어떻게 아빠라는 사람이 저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죠?

-> 아버지가 당신의 마음을 좀 더 이해하고 친절하게 말해 주길 원하셨는데, 그렇지 못해서 많이 힘드셨나요?

 

문제해결서클을 진행하거나 갈등 조정을 할 때는 그 성격이 조금 달라집니다. 사전모임을 할 때는 충분히 공감해 주는 것이 좋지만 본모임을 할 때 그렇게 하면 중립성이 훼손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편을 들어 주는 것으로 오해되어 당사자들에게 신뢰를 잃기 쉽습니다. 조정자는 공감하되 동의는 하지 않고 그 감정과 욕구를 확인하는 선에서 그쳐야 합니다. 갈등 조정에서는 갈등 당사자들의 상황과 쟁점, 행위 이유, 욕구 등이 명확하게 드러나도록 돕는 것이 목표가 됩니다.

 

회복적 조정의 본모임에서는 당사자들이 직접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조정자를 통해서 대화를 합니다. 그럼에도 말의 강도가 세거나 비난이 심하면 갈등이 증폭될 수 있기 때문에 조정자는 이야기를 듣고 가시를 빼 주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갈등 당사자의 주관적인 생각, 부정적인 감정, 일방적인 요구 등을 잘 듣되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표현으로 바꾸어서 다른 당사자의 감정을 보호하고 건설적인 문제해결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 작업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갈등 문제의 본질보다 말 꼬투리를 잡고 늘어지는 일로 갈등이 더 악화될 수 있습니다. 

 

* 저거 봐요. 자기 말만 하고 듣지를 않는다니까. 저런 사람이랑 어떻게 합의를 해요.

-> 지금까지 대화가 잘 되지 않아서 답답하시다는 건가요? 어느 지점에서 소통이 안 됐다고 보시나요? 

 

갈등 당사자들은 당장의 감정이 격한 상태이므로 조정자는 바꾸어 말하기의 기술뿐만 아니라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1) 당사자들의 감정에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침착하게 경청하고, 2) 이야기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요약해서 들려주며, 3) 이야기 속의 감정과 욕구를 파악하여 질문을 통해 바꾸어 말하기를 하는 것은 많은 연습이 필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지요. 부족하더라도 이 원칙을 되뇌이며 계속 연습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조정, 특히 본모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문제해결이라는 걸 잊지 않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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