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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이유 - 박진영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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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이유 - 박진영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2. 5. 5. 15:33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감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이유


2022.04.23

동아사이언스

 


주위를 둘러보면 성난 사람들이 많다. 그 중에는 자신의 삶이 불행한 이유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한 채 만만한 약자를 향해 굴절된 분노를 쏟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굴절되어 애먼 곳으로 향한 분노는 불행한 사람을 더 늘릴 뿐 아무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며 아무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 잘 쓰이면 큰 힘을 발휘하기도 하는 분노를 쓸데 없는 데에 소모하기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자신의 욕구와 감정,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이해 자체가 부족한 것이 한 가지 원인일 수 있다.

미국 플로리다대 빅토르 해리스 교수는 최근 정서 지능과 사회 지능 관련 이론들을 통합하여 사회 정서 능력 발달(SEAD)  이론을 소개했다. 해리스에 의하면 정서 발달과 사회성 발달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며, 인간의 감정에 대한 이해 없이는 자신도 타인도 이해할 수 없다.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이해 없이는 자기 자신이나 타인을 위해 바람직하고 이로운 행동을 하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아래 그림에서 나타나듯, 해리스 교수는 사회적으로 적응하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정서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가장 기본이며 그 다음으로는 올바로 이해한 감정을 기반으로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리는 정서 융합,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타인을 이해하고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행동을 보이는 사회적 융합의 세 단계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출처 빅토르 해리스, 사회 정서 능력 발달(Social emotional ability development,SEAD)


내 마음을 정확히 이해하기

우선 정서에 대한 명확한 이해는 슬픔, 좌절, 두려움 같은 서로 다른 감정의 존재와 그 차이를 인식하고 슬픔은 소중한 것의 상실을, 좌절은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음을, 두려움은 피해야 할 대상이 있음을 의미한다는 감정의 메시지를 정확히 이해하며, 감정을 부정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단계로 이뤄진다.

예를 들어 '뭔가 우울하고 기분이 나쁜 상태'라고 했을 때 이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원했던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데서 오는 좌절감, 타인과의 비교에서 오는 불안과 열등감, 빨리 원하는 상태로 나아가야 한다는 조급함,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 등 서로 다른 뿌리를 가지고 있는 부정적 정서들이 한테 뒤엉켜있는 경우가 많다. 이 때 그냥 다 짜증난다며 문제의 뿌리 찾기를 관두거나 또는 이게 다 누구누구 때문이라며 애먼 상대에게 굴절된 분노를 쏟아붓는 경우, 바람직한 인간이 되기 위한 첫 번째 발달 단계부터 막히는 셈이다.  

나를 위한 올바른 선택 내리기

만약 자신의 감정 상태를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성공했다면, 두 번째는 정서 융합, 즉 이해를 통해 얻은 정확한 정보를 기반으로 자신을 위해 바람직한 선택을 하는 단계다. 이 단계는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기반으로 한 적절한 의사 결정을 내리며, 감정을 적응적인 방향으로 조절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져있다.

예를 들어 과한 열등감이 그간 자신이 품어왔던 분노와 불안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타인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부적응적인 행동을 멈추고 문제의 원인인 열등감을 해결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자신의 마음 상태에 의식적인 주의를 기울이며 방금 분노한 것이 또 열등감의 표출은 아니었는지 살펴보고 자신이 비교가 심한 이유가 무엇인지 그 원인에 대해 성찰해 볼 수 있다.

열등감이 느껴진 상황을 구체적으로 떠올려보고 꼭 그런 감정을 느낄 필요가 있었는지, 과민반응한 것은 아닌지, 내 삶이 그러하듯 타인의 삶 또한 많은 복잡하고 보이지 않는 많은 고통들로 이루어져있을텐데 그러한 사실을 간과한 것은 아닌지, 자신은 특별히 좋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자격의식이 지나친 것은 아닌지, 스스로가 마치 뭐라도 된 것처럼 생각하거나 다른 사람 위에 서고 싶어하는 등 현실과 동떨어진 비대한 자아를 가지고 있는 탓에 좌절과 분노가 심한 것은 아닌지 따져보고 감정을 재평가하는 것도 이 단계에서 이루어진다.

자신을 위한 선택을 내리는 과정에서 비슷한 고충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선택을 하는 것도 좋다. 타인이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좋아할 수 있는 자신의 모습들을 늘려가거나, 타인을 깎아내리기보다 높이는 데에서 기쁨과 자신의 쓸모를 찾는 방향으로 건강한 자아를 가꿔나가는 선택을 내릴 수도 있다.

나를 위하듯 타인을 위하기

마지막은 이러한 자기 이해와 자기 조절을 통해 얻은 지혜를 활용하여 적응적인 사회인이 되는 사회적 통합 단계다. 자신이 힘들었을 때 도움이 필요했던 것처럼 힘들어 하는 타인 또한 도움이 필요함을 이해하는 측은지심과 타인의 감정을 자신의 것처럼 정확히 이해하는 공감이 이 단계에 속한다. 달리 말하면 “타인에게 존중받길 바란다면 똑같이 타인을 대우하라”는 원칙을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해리스에 의하면 앞선 정서 이해와 정서 융합 두 단계가 이루어져야 이 단계로 올 수 있다. 자신의 상태와 자신에게 필요한 선택이 무엇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타인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 사회에 자신이 약자가 될 가능성은 전혀 고려하지 못하고 약자를 위한 배려는 필요 없다며, 자기만 잘 살면 된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다. 모두가 나만 잘 살면 된다고 외치는 사회에서는 나만 타인을 해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 또한 나를 해하게 되므로, 이는 결국 자신에게도 해로운 길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주장을 하는 배경에는 어쩌면 자신의 상태와 필요에 대한 정확한 이해의 부재가 깔려있는 것은 아닐까? 감정을 적응적으로 해소하지 못한 채 굴절된 분노만을 내뿜으며 그저 모두가 불행해지기를 바라는 사람들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여기에 편승한 이들이 함께 지옥을 불러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참고자료
Harris, V.W., Anderson, J. & Visconti, B. Social emotional ability development (SEAD): An integrated model of practical emotion-based competencies. Motivation and Emotion, 46, 226–253 (2022). https://doi.org/10.1007/s11031-021-09922-1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출처 : https://m.dongascience.com/news.php?idx=53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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