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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개인과 국가 - 현 시대가 요구하는 사회 유기체의 삼지성 (6) 본문

인지학/사회삼원론

개인과 국가 - 현 시대가 요구하는 사회 유기체의 삼지성 (6)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18. 2. 14. 07:14

경제의 박애

 

프랑스 혁명 때 들고 나왔던 구호 가운데 왜 박애(Fraternité)가 시장경제나 계획경제에 뿌리를 내릴 수 없었는지 살펴보자.

 

1. 시장경제에서는 인간을 사회의식이 아예 없는 존재로 보고, 계획경제에서는 아직 없는 존재로 보았다.

 

2. 시장경제에서는 인간에게 자신의 이기심을 마음껏 드러내도 좋다고 말한다. 그래서 사회전반을 살펴볼 수 없도록 이성을 마비시키고 인간을 발달한 동물 수준으로 끌어내린다. 그러나 계획경제에서는 이성이 출발점이지만 개인이 이성을 갖고 있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계획상으로는 인간 이성과 사회정의를 제시하고 있지만 그것이 실제 사회구성원인 개인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인간을 위한 계획이 아니라 계획을 위한 인간일 뿐이다.

 

3. 시장경제에서는 인간의 이기심을 경제생활의 추진력으로 여기고 개인의 사회적 자각을 원치 않는다. 추진력이 약해진다고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공산주의 계획경제에서는 모든 활동이 사회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경제가 아예 살아남지 못했다.

 

4. 시장경제에서는 시장논리가 개인의 관심을 정해 주고, 계획경제에서는 개인의 관심이 아예 이야기거리도 되지 않는다.

 

5. 시장경제에서는 경제의 움직임이 가격에 나타나기 때문에 추세의 변화를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가격의 정당성에 대해 개인은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계획경제에서는 현재 상황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미래 계획을 세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느 누구라도 사업체를 이렇게 경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계획경제 아래에서는 이게 오히려 정상이었다. 걷잡을 수 없는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 그제야 비로소 현 상황을 점검하기 시작했지만 이미 모든 게 끝난 뒤였다.

 

6. 양쪽 모두 각 개인이 져야 하는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 어떻게 되었든 자기들이 하는 일이 사회를 위해 하는 일이 아니냐고 하겠지만 실은 제도에 의한 굴복 이상은 되지 않고, 이대로 계속 나아가면 인간성 상실 밖에 남지 않는다. 시장경제에서는 개인을 시장법칙 아래 굴복하기를 요구한다. 이 굴복이 직접 피부에 닿지 않기 때문에 개인은 시장경제가 자유경제라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가상일 뿐이다. 계획경제에서는 개인이 사회가 정해 주는 계획에 굴복하기를 요구한다. 개인은 계획대로 이 일 저 일을 하지만 실제로는 강제노동이고 자유억압이면 인권박탈이다.


그러면 도대체 경제생활의 박애는 무엇인가? 오늘날에는 기본인권 보장이 실제로 실현되어야 개인도 국가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우리가 요구하는 자유 안에는 한편으로는 공동체사회의 제약을 물리치려 하고, 다른 편으로는 공동체사회를 전제로 하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다른 사람의 자유도 자신의 자유만큼 소중하다면 오늘날에는 옛날보다 더욱 더 다른 사람도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데 같이 힘을 모아야 한다. 사회공동체 구성원들의 자유의 전제 조건은 구성원의 경제 보장이다. 이 경제 보장은 현대 분업사회에서는 정당한 가격을 정할 때에라야 가능하다


다른 사람도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염려하고 서로 돕는 것이 오늘날 인간이 갖는 가장 바람직한 자세이다. 자유와 이웃사랑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것으로, 사회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복지가 사회의 공동목표가 될 때 이웃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 앞으로 지구상에 사는 모든 인류가 이런 사회를 형성하기 위해 공동 책임을 지고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인류가 이런 목표를 위해 서로 책임을 지고 나아가지 않으면 기본인권은 몇몇 사람의 특권이 될 뿐이다.

 


협력 경제

 

자유로운 삶은 현대인이면 누구나 추구하는 이상인데 이 자유 요소가 경제영역에는 어떻게 적용되는지 살펴보자. 분업사회의 발전으로 현대인은 누구나 사회의 수많은 영역 가운데 한 가지 또는 몇 가지 일을 맡아 사회를 꾸려 나간다. 이 사회에 개인이 어떤 자리를 메꿀 것인지는 오직 그 사람만이 결정할 일이다. 이 자유는 어린아이가 아닌 다음에야 누구라도 가질 수 있는 권리이다. 그러므로 개인의 필요와 개인 능력에 관한 문제는 경제 영역에 들지 않고 오히려 경제 영역의 영향으로부터 보호를 받아야 한다. 다른 사람이야 어떻게 되었든 자기 배만 채우면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필요한 물건만 생산하는 것이 옳다는 경제 원리를, 생산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생산해서 이득을 올려야 한다는 원리로 바꾸고 싶어할 것이다. 이것은 자유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교육도 나중에 경제적으로 직접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만을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경제 영역이 정신, 문화, 교 육영역을 침범하는 것이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를 정하는 것은 마땅히 정신, 문화, 교육 영역이 맡아야 할 일이다.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해 전혀 모를 때는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고, 남의 판단에 의지해야 하는 부자유한 인간이 된다. 그러므로 깊은 이해가 선행된 행동이 자유인이 갖춰야 할 기본 태도이다. 어떤 물품이 생산자에서 유통과정을 거쳐 소비자까지 가는 데에는 수많은 사회 구성원들이 사슬처럼 엮어져 노력한 결과가 숨어 있다. 그러나 개인이 이러한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기다란 경제 사슬 가운데 한 고리만을 맡은 개인이 경제에 대한 총체적인 평가를 내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결과 개인은 자기 분야를 벗어나서는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다고 아예 단념할 지경에 이르렀다.


경제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내리기 위해서는 각 분야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자기가 맡은 일에 대해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모임은 좁게는 전문분야에 종사하는 삶들로만 만들 수도 있고 넓게는 생산자, 상인, 소비자 대표들로 만들 수도 있다. 이런 모임을 경제협력 기구라고 한다. 이 경제협력 기구에서 현 경제 상황을 정확히 진단하고 그 때 그 때 변경해야 할 사항이 있으면 서로 협의하여 결정하면 무리한 일이 최소한으로 줄어든다. 이러한 렵력기구 활성화로 지금까지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넓게 벌어진 틈도 좁힐 수 있다


사실 이 틈은 분업발달로 말미암아 어쩔 수 없이 벌어진 틈일 뿐이다. 협력 경제에서 소비자는 생산자나 상인의 경제 대상에 그치지 않고 경제 활동에 같이 참여하는 동료가 된다. 이렇게 되면 한 지역에 더불어 사는 사람들은 그 지역생활 실태에 서로 책임을 지고 개선을 위한 길을 스스로 찾아 나서지, 국가나 기업가에게 무엇 무엇을 더 해달라고 무턱대고 조르진 않을 것이다. 이웃사랑은 적극적 협력으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이지, 어느 특정 사회체제가 가능케 하는 것은 아니다. 이웃사랑은 끊임없이 변하는 사회상황에 맞추어 사회방향을 늘 사회정의 쪽으로 잡을 때 실천할 수 있지, 법조항으로 강요되는 것은 더 더욱 아니다.


이러한 경제협력 기구도 무엇무엇을 결정해야 한다고 미리부터 머리를 짜낼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시작해 보는 것이다. 이웃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사회의 온전한 발전을 위해서는 이 길 밖에 없다. 경제 이론으로는 불가능하다. 사회변화는 외부 조건의 변화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공동체 내부에 변화가 일어날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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