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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개인과 국가 - 현 시대가 요구하는 사회 유기체의 삼지성 (3) 본문

인지학/사회삼원론

개인과 국가 - 현 시대가 요구하는 사회 유기체의 삼지성 (3)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18. 2. 7. 00:10

자유로운 판단에서 자유로운 의견 제안으로

 

현재까지 시행되었던 단체의 방침이 개인의 판단과 어긋나고, 시간이 지날수록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책임감을 느낀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성인이라면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견해를 자유롭게 알릴 수 있어야 한다. 신문, 방송, 언론의 자유는 이럴 때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것을 실천에 옮길 때 다른 사람도 그 일에 참여하도록 강요해서는 안 된다. 자신이 자유를 누리기 위해 다른 사람의 자유를 억압한다면 이 자유는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 사람의 자유의사에 전적으로 맡겨야 한다. 예컨대, 제도교육에 불만을 품고 있는 한 부모가 설득력이 약해서 아니면 다른 이유로 자신의 의견을 충분히 알리지 못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지지를 못 받을 때라도 스스로 대안을 찾아 나설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어린아이들은 요구할 뿐이지만 어른은 스스로 새로운 안을 내어 일의 추진을 꾀해야 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거의 모든 일을 다수결로 진행하면서 소수의 의견은 으레 무시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소수는 다수의 의견을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야 한다. 이를 다른 말로 하자면 소수에 대한 억압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비록 이 억압이 제도상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것이지, 소수의 인권을 일부러 억압하려 했던 것이 아닐지라도 누구라도 현 사회를 잘 살펴보면 어떤 일을 스스로 판단해서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밀고 나갈 수 없는 사람일수록 국가가 자기 대신 자기의 문제를 해결해 주길 바라고 또 이런 사람이 늘어날수록 국가가 떠맡아야 하는 사회과제는 점점 더 많아지는 악순환 현상을 잘 알 수 있다. 스스로 판단할 능력을 갖추고 있는 사회 구성원이 늘어나서 문제 해결을 위해 스스로 일을 계획하고 추진하는 것이 현 사회의 불화와 갈등을 풀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치료제이다.


개인이 모두 자기의 의견에 따라 판단하고 결정을 내린다 해서 새로운 일을 기획하고 추진할 수 있는 단체가 만들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제도 교육에 불만을 품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뜻에 같이 발을 맞추어 갈 사람이 없다면 어쩔 수없이 스스로 자기 아이들의 수업을 떠맡을 수밖에 없지만 만일 제도 교육에 불만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 모여 한 학교를 세운다고 하면 이 학교와 국공립학교 사이에는 어떤 점이 다른가? 국공립학교에서는 모든 교육이 상부기관의 방침에 따라 시행되므로 다른 의견을 가진 소수는 저절로 무시되어 버린다. 학부모들이 뜻을 모아 스스로 세운 학교는 이런 인권훼손 문제는 전혀 나올 수 없다. 그리고 학부모들의 학교운영 참여도와 관심도는 국공립학교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을 것은 당연하다.

 


자유기획과 자율운영

 

누구든지 어떤 일을 새로 기획해서 추진하려면 스스로 그 일을 도맡아 관리할 뿐만 아니라 실제 경제적으로도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게끔 신경을 써야 한다. 운영까지 스스로 책임져야 단체의 뿌리가 단단히 사회에 내릴 수 있고 단체구성원이 갖는 단체의 근본이념에 대한 인식도도 높아진다. 자유기획과 자율운영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깊은 관계에 놓여 있다. 어떤 때는 국가의 뛰어난 행정능력이 그리울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간섭을 용감하게 물리치고 자기 스스로 책임을 지지 않는 한 자율로 가는 길은 까마득히 멀기만 하다. 편안하게 가만히 앉아서 남이 해 주길 바라서야 어떻게 자율로 갈 수 있겠는가? 어떤 어려움을 무릅쓰고라도 계획했던 일을 하나씩 이루어 나갈 때 얻는 내면의 깊은 만족감을 느껴 본 사람들은 국가에 모든 일을 맡기는 수동형 자세로 삶을 살아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학부모가 공동설립한 자율 학교가 때로는 그 지방에 있는 또는 국가의 문화, 교육기관과 협력 관계를 맺어야 할 때도 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율에 따른 협력이지, 간섭이나 감독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이런 바탕 위에 교사는 교육에 관해 전적으로 책임을 지고 자기의 주관대로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 또 교사가 교육에 전념할 수 있도록 경제전반을 책임지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실이다. 충분한 가치가 인정되는 어떤 모임이 사람들의 호응을 얻지 못해 학교를 세울 수 없어서 학령기 아이들의 교육권리를 채워줄 길이 어려울 때도 있을 것이다. 이때 국가가 그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그 모임의 동의자로 나서서 학교가 설 수 있도록 적극적인 도움을 주는 때도 있다. 이때에도 국가는 학교를 자율운영에 맡겨야지 간섭해서는 안 된다.

 


자유정신, 문화, 교육 영역의 재정

 

그러면 이런 자유정신, 문화, 교육과 관련된 단체의 재정은 누가 맡아야 하는가? 정신, 문화, 교육 영역의 자율과 자치를 실현하는 데 기본원칙은 필요한 사람이 바로 그 운영경비를 짊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수요가 바로 정신, 문화, 교육 활동의 방향을 정하는 주요소이다. 어떤 사람의 제안에 누구도 응해주지 않으면 그 제안은 사회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 기껏해야 혼자서 계속 추구해 보는 수밖에 없다. 정신, 문화, 교육 영역의 자율자치안에 찬성하고 그런 단체를 이용하려 들지만 막상 운영경비는 국가에다 미루면 결국 옛날처럼 국가에서 해주는 대로 받는 비자립, 수동자세로 되돌아갈 뿐이다. 정신, 문화, 교육 활동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급여비를 지불해야하는, 앞서 말한 원칙에 따르려면 일반 가계수입에 문화, 교양비가 미리 책정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지급받는 문화, 교양비가 실제 문화, 교양을 위해 지출해야 한다고 법으로 강요할 필요는 없다. 사람들의 자유로운 판단에 맡겨야 할 문화나 교양이 강제성을 띤다면 아주 우스운 꼴이 되어 버린다. 오히려 문화나 교양 강좌를 제공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하는 일에 사람들의 수요가 계속 있는지 없는지를 잘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수요 없는 공급은 정신, 문화, 교육영역에서도 아무런 사회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정신, 문화, 교육 생활이 필요해도 지불할 수 없는 어린이, 청소년, 환자, 장애인, 노인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른 사람들이 이 사람들을 대신해서 지불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므로 국민 총 예산을 잡을 때 이 사람들의 수요액을 충분히 미리 책정해야 한다. 지급을 받는 대상이 어떤 층이냐에 따라 또는 어떤 환경에 놓여 있느냐에 따라 지급방법과 액수가 달라지겠지만 의무교육기간 안에 있는 학생들을 예로 들어보자. 적당한 교육비를 모든 학생 앞으로 먼저 정해야 하는데 이때 정확한 액수는 학교자치 운영기구와 실업자 대표 사이의 협약으로 정하고, 국가가 법으로 협약내용을 보장한다. 교육비는 부모들에게 교육수표로 지급되든지, 아니면 국가에다 교육위탁구좌를 설치하고 필요한 때 언제든지 찾아 쓰게 한다든지 또는 교육비 지급대신에 세금면제 같은 형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돈이 국가 일반 자산에 편입되지 않도록 해야 할 일이다. 국가가 이 일에 끼어든다면 끝까지 중립을 지키고 학부모의 뜻이 잘 이루어지도록 배려를 해야 한다. 학부모가 어느 학교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교육비 지급 학교도 결정된다. 물론 기부금을 학교에 얼마나 내든 그 제한은 없다.


그러면 배우, 교사, 대학 연구실 연구원 같은 전문인 및 직업교육은 어떻게 하는가? 이 문제는 이런 교육을 받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교육비를 지불할 것인가를 정하는 게 우선 중요할 것이고, 다음으로는 이런 전문인 수용으로 직접 이득을 얻는 단체가 얼마나 이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수요와 공급에 차질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하는가를 정하는지가 중요하다 하겠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없는 예; 많은 사람들이 자연요법이나 유사치료법으로 치료를 받는데 의과대학에 그 과목이 설정되어 있지 않은 경우)


앞서 말한 내용을 다음과 같이 간추려 말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자유정신, 자유문화, 자유교육에 대한 요구가 실제 일어나야 국가의 간섭과 감독도 끝이 날 것이다. 그러면 실수요가 있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수요를 채워 줄 수 있는 사람을 스스로 찾아 나설 것이고, 또 그 수요에 응해 공급해 줄 사람도 자연스럽게 나타날 것이다. 이 자유, 정신, 문화, 교육 영역에서는 실업가들이 자기들 수익의 일부를 문예 중흥금으로 삼아 세금면제를 목적으로, 또는 기업을 널리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억지 수요를 만들어 일방적으로 공급하는 문화행사도 원칙적으로 거부한다. 그렇다고 물론 문화 중흥을 위한 기부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정신, 문화, 교육영역도 모든 사람에게 관련되는 일이다. 이 영역에 필요하다고 보이는 게 있으면 누구라도 새로운 안을 제시하고, 또 그 실현을 위해 자유로이 헌신할 수 있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 어떤 사람이 어떤 문화안의 성취를 위해 여러 방면으로 심혈을 기울여 노력했지만 끝내 경제적으로 헤쳐 나갈 돌파구를 찾지 못하여 포기해야 하는 때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물론 그 사람에게는 가슴 아픈 일이겠지만 그 문화안에 대한 현 사회의 수요가 없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수요가 없는 안은 아예 발붙이지 못하므로 부패할 수 있는 여지가 미리 제거될 것이고, 앞서 실패했던 사람은 또 그 실망을 딛고 일어서서 한층 더 노력하여 더 나은 안으로 다시 시도해 볼 수 있는 긍정적인 면도 있을 것이다. 자유정신, 자유문화, 자유교육으로 좀 더 나은 인간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은 이런 현상을 받아 들일 수 있는 용기도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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