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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개인과 국가 - 현 시대가 요구하는 사회 유기체의 삼지성 (2) 본문

인지학/사회삼원론

개인과 국가 - 현 시대가 요구하는 사회 유기체의 삼지성 (2)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18. 2. 3. 03:26

국가의 간섭과 감독을 받는 정신, 문화, 교육 영역

 


프랑스혁명이 일어난 지 몇 년도 채 되지 않아 나폴레옹이 정신, 문화, 교육 영역을 국가가 정하는 테두리 속에 가두어 버린 것은 안타까운 인류역사의 운명이었다. 그 이후 오늘날까지 대부분 국가들은 나폴레옹의 전철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니 말이다. 이렇게 정부가 정해 주는 방침대로 정신, 문화, 교육이 끌려가면 제도에 충성하는, 틀에 박힌 국민을 육성할 수는 있으나 자기의 행동을 스스로 책임지며 살아가는 자유로운 인간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물론 이런 자유인이 많아지면 현 제도도 자연히 바뀌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정권을 쥐고 있는 사람들 머릿속에는 정부가 교육내용까지 정해주는 것이 당연할 걸로 박혀 있다. 물론 다수결로 선출된 대표들이 정한 법안에 따른 시행이라 겉보기에는 전혀 무리가 없어 보인다. 교과서 내용 그리고 방송이나 신문 같은 대중매체를 교묘히 조정하면 다음 정권 장악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으니 집권당이면 누가 이를 마다하겠는가? 대부분의 나라들은 사립학교 설립을 정부 손길이 채 못 미치는 영역을 채워 주는 한도 안에서 그리고 정부가 정하는 교육내용을 받아들일 때 인정하고 있다. 국가가 인정하는 자격증 시험들도 결국은 국가가 교육내용을 은연중에 조정하는 간접수단이다.

 

국가가 가장 강하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뒷배경은 운영자금 지원결정권이다. 대부분의 학교나 연구기관, 의료, 체육, 문화 단체들이 국민들이 내는 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다수결로 선출된 정부가 그런 공공기관들을 먼저 지원하는 것이 당연한 듯이 보인다. 소수의 사립학교를 공립학교와 같은 수준으로 지원을 하면 다수결 평등원칙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직접 학교를 설립해서 운영하면 학교 방침을 정부방침에 맞추라고 말할 필요조차 없어지니 가장 그럴 듯해 보인다. 경영주와 자금주가 동일인이라 갈등이 일어날 까닭이 없다.

 


정신, 문화, 교육 영역의 자유

 


민주국가의 보호정책으로 사회의 많은 분야가 성장, 발달한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특히 인권보장은 민주주의가 이룩한 커다란 업적에 들어간다. 현재의 제도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한편으로는 민주주의 덕에 힘입고 있는 것도 분명하다. 종교, 양심, 의견형성, 의사표현, 정보요청, 협력기구설치, 집회, 계약체결에 관한 자유보장은 오늘날 민주사회가 갖고 있는 소중한 보물이다. 정신, 문화, 교육 영역을 수호할 책임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국가가 져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앞서 말한 이런 자유를 보장하면 정신, 문화, 교육 영역에 필요한 것은 다 해결된 듯이 보인다. 그리고 현재 지출되는 높은 교육비, 문화진흥금, 사회사업비를 보면 민주주의는 인류발달사 가운데 인류를 현재 가장 높이 끌어올렸다는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옛날과 비교하면 물론 맞는 말이다. 옛날에는 같은 문화권이나 민족권에 사는 사람들은 거의가 다 비슷하게 생각하고 느꼈다. 그러나 개인의 자아의식과 판단능력이 커짐에 따라 이 상황은 하루아침에 달라졌다. 현대인은 자신의 주관이 다른 사람들과 달라 고립될지언정 자기에게 맞는 삶을 스스로 찾아가려 한다. 현대인은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자신이 무엇을 이룰 수 있고, 자기가 꼭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결정하려 한다. 이런 개인의 관점에서 보면 정신, 문화, 교육 영역은 지금보다는 훨씬 다르게 변해야 한다.

 

헌법으로 만민에게 보장하고 있는 자유는 개인의 자유가 그 밑바탕이다. 비록 모든 개인이 꼭 같이 사물의 이치를 꿰뚫어 볼 수 없을 지라도 자기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때라야 비로소 성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내가 옳다고 여기는 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라는 마틴 루터의 말은 성인이 된 한 사람의 의식상태를 잘 나타내 준다. 어떤 사람이 일을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처리해야 할 일에 관한 명확한 이해이지, 다른 사람의 인정여부는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옳다고 인정할 때라야 받아들인다. 대다수가 결정했다 해서 그 의견이 개인생각보다 더 낫다거나 모자라다고 볼 수 없다. 어떤 판단의 옳고 그름이 꼭 대다수의 결정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다수가 결정한 교육내용을 일방적으로 모든 개인에게 주입하는 것이 교육의 이상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오히려 스스로 판단해서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자질을 함양하는 것이 교육의 이상이 되어야 한다.

 

정신, 문화, 교육 영역의 자유는 개인이 개인에게 주어진 조건과 이상에 맞게 개인의 뜻을 자유로이 펼쳐야 하는 영역에 단체, 사회, 국가가 다수결의 이름으로 행했던 일방적 강요가 그쳐야 함을 뜻한다. 국가가 지금처럼 모든 권력을 쥐고 있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그러면 지금까지 잘 유지시켜왔던 문화생활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제멋대로 변할 수 있다는 걱정도 생길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성인이라면 이 다양성이 오히려 고유한 자기 삶의 표현이라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 영역에서는 다수의 결정은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말이 자유의 속박에 지나지 않는다. 기본인권 보장은 개인의 권익보장이 목적이지, 다수의 권익을 옹호하자는 것은 아니다.

 

국가라는 것은 정해진 테두리 안에 사는 사람들이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라는 전제 아래 모여 사는 큰 약속단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법의 만민평등성을 정신, 문화, 교육 영역에까지 확대적용을 하면 이는 결국 소수자 억압이 될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의 소질과 취향과 능력을 꼭 같게 맞출 수는 없지 않은가? 국민의 문화적 관심을 한쪽으로 몰려는 시도 자체도 이미 소수의 권익침해에 들어간다. 자유, 자율, 자치로 정신, 문화, 교육이 이루어지는 곳에서는 다수가 소수를 억압하는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것은 앞서 오늘날 많은 국가들이 안고 있는 갈등을 풀어 주는 지름길이다. 자신들만이 옳다고 남들에게 내세울 필요도 없고 오직 자유롭게 자기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현하도록 해야 한다. 국가는 정신, 문화 교육 단체의 방향을 정해 줄 필요도 없고 특정단체에 특권을 줄 필요도 없으며 주어서도 안 된다. 그렇다고 공동사회가 잃을 것은 하나도 없다. 다만 다른 사람을 자기 의견대로 따라오길 강요하는 사람만이 잃을 뿐이다. 사실 이 강요는 바로 기본인권 침해가 되고, 따라서 법의 심판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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