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시사인] 청소년 도박 권하는 사회 본문

기사 및 방송

[시사인] 청소년 도박 권하는 사회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4. 6. 7. 09:40

열다섯 살 아이 휴대폰에서 열리는 ‘손안의 카지노’

 

2024.06.05

나경희 기자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청소년 도박 문제가 심각해졌다. 도박으로는 돈을 벌 수 없다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설명해줘야 한다. 이미 빠졌다면, 빠른 발견과 대처가 중요하다.

 

5월20일 전북 무주 국립청소년인터넷 드림마을에서 온라인 도박 중독 치유캠프가 열렸다.

 

도박으로는 돈을 벌 수 없다. 열다섯 살 지후(가명)는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는 형을 따라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온라인 도박을 시작한 지후는 지난 4년 동안 몇천 만원 단위로 돈을 따고, 또 잃었다. 과거로 돌아가 도박을 시작하기 직전의 자기 자신을 만날 수 있다면 무슨 말을 해주고 싶냐고 묻자 지후는 망설임 없이 곧바로 대답했다. “도박하면, 망한다.”

 

알지만 끊을 수 없었다. 지난 5월20일 전북 무주의 국립청소년인터넷드림마을(청소년드림마을)에서 열린 온라인 도박 치유캠프에 입소하기 직전까지 지후는 스마트폰으로 온라인 도박에 베팅했다.

 

여성가족부 산하 기관인 청소년드림마을은 원래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중독된 청소년을 위한 치유캠프를 운영하는 곳이다. 2014년 8월 문을 열었으니 올해로 꼭 10년째다. 세계 최초라 각국 외신에서 주목을 받았다. ‘IT 강국’답게 한국 사회는 폐해도, 대처도 빨랐다. 2022년 10월부터는 온라인 도박에 중독된 청소년을 위한 치유캠프를 새로 열었다. 현재 청소년드림마을에서는 해마다 인터넷·스마트폰 중독 치유캠프 22회, 온라인 도박 중독 치유캠프 2회를 연다.

 

이번에 열린 4회차 온라인 도박 중독 치유캠프에 참여한 청소년은 총 18명이었다. 부모님 혹은 상담 선생님의 설득을 통해 전국 각지에서 모인 만 13~19세 아이들이다. 청소년드림마을은 대안교육 위탁교육기관으로 지정돼 있어 참가하는 동안 학교 출석이 인정되는 데다 참가비도 무료다. 경쟁률이 높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열흘 넘게 스마트폰 없이 지낼 자신이 없는 아이들은 신청을 주저한다. 들어온 뒤에 중도 포기하고 퇴소하는 아이도 있다.

 

프로그램은 집단상담, 개인상담과 함께 중독 행위를 대체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으로 채워져 있다. 치유캠프는 자신의 인생 곡선을 그리고 설명하는 과정으로 시작한다.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아이들이 그린 인생 곡선은 가팔랐다. “매일이 끊을 수 있는 기회였던 거 같은데 제가 절제를 못했어요.” “도박으로 처음 딴 돈은 10만원, 처음 잃은 돈은 1만원이고요. 돈을 잃을 때 제일 힘들었는데 또 돈이 없을 때가 끊을 수 있는 때였던 거 같아요. 지금 바라는 건 엄마를 행복하게 해주기요.” “끊은 지 20일 정도 됐고요, 계속 안 하면 (뭐든지) 잘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청소년드림마을에서 도박 치유캠프를 열게 된 결정적 계기는 코로나19 팬데믹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경제가 위축되니 세계 각국에서 돈을 풀기 시작했고,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부동산이 최고가를 찍었고 주식·비트코인 시장도 과열됐다. ‘영끌’ ‘벼락거지’ 같은 단어가 뉴스를 도배했다. 심용출 청소년드림마을 기획운영부 부장은 당시를 이렇게 기억했다. “가족이 모이면 엄마는 부동산 이야기, 아빠는 주식 이야기, 대학 다니는 형은 코인 이야기를 하는데 청소년이라고 그런 ‘한탕주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게다가 모든 일은 온라인으로 이루어졌다. 오프라인 카지노의 영업이 축소·정지되자 풍선효과로 온라인 도박이 흥행했다. 성인도 온라인 도박으로 옮겨갔지만, 더 큰 영향을 받은 건 스마트폰에 익숙한 청소년이었다. 청소년 온라인 도박이 성행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 갖춰진 채로 3년이 지나자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졌다.

 

국무총리 산하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가 운영하는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예방치유원)에서 도박중독 치료를 받은 청소년 수는 2020년 324명에서 팬데믹이 끝난 시점인 2023년 674명으로 크게 늘었다. 마찬가지로 예방치유원이 발표한 ‘2022년 청소년 도박문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초·중·고등학교 재학 중 청소년의 도박 경험률은 38.8%, 지난 3개월간 경험률은 25.8%, 도박으로 인한 각종 문제 경험률은 4.8%에 달했다.

 

 

도박중독 피해자가 가해자로

 

2023년 10월10일 제42회 국무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은 “청소년을 상대로 한 불법도박 개장은 국가의 미래를 좀먹는 악질 범죄”라고 언급하며 범부처 대응팀 출범을 주문했다. 11월3일 법무부·대검찰청·경찰청·방송통신위원회·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문화체육관광부·여성가족부·보건복지부·교육부 등 9개 부처가 모여 ‘온라인 불법도박 근절과 청소년 보호를 위한 범정부 대응팀’ 첫 회의를 열었다.

 

5월19일에는 서울경찰청에서 청소년 도박으로 올해 첫 ‘긴급 스쿨벨’을 발령했다. 긴급 스쿨벨은 청소년과 관련된 중요한 이슈가 있을 때 서울경찰청이 서울 시내 학교와 학부모에게 주의사항과 대응 요령을 안내하는 시스템이다. 단(斷)도박 가족모임을 운영하는 한 관계자는 “요즘 학부모들에게 문의 전화가 많이 온다. 우리도 이제 청소년 도박 데이터를 쌓아가는 중이다”라고 말했다.

 

최근 청소년 온라인 도박은 두 가지 특징을 보인다. ‘낮아진 연령’과 ‘2차 범죄 연루’다. 저연령화 경향에는 또래 문화가 큰 영향을 미친다. 수도권 소재의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는 한 교사는 “애들끼리 빙 둘러서서 폰을 보며 은어를 주고받고 있으면 ‘뭐야? 나도 낄래’ 하는 마음이 든다. 친구가 ‘돈 땄으니까 내가 쏠게’ 하면 부러움 반 호기심 반으로 해보기도 한다. 그렇게 한 아이가 도박을 하면 그 반, 그 학년, 그 학교로 퍼져나간다. 3학년과 친한 2학년이 있고 2학년과 친한 1학년이 있으니, 한 학년에서 시작해 학교 전체 유행으로 커진다”라고 말했다.

 

온라인 불법도박 사이트 운영자는 이런 청소년의 특성을 역이용한다. ‘사이트를 소개할 때마다 한 명당 꽁머니(공짜로 충전해주는 머니) 지급’ 같은 다단계 방식으로 서로 친구를 끌어들이도록 부추긴다. 자신의 도박 자금을 대기 위해 총판(이용자를 모집해준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 사람) 역할을 자청하는 청소년도 있다. 도박중독의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순간이다.

 

불법도박 사이트는 가입하기도 쉽다. 미성년자가 온라인 도박에 참여하기 위해 적어야 하는 건 단 세 개뿐이다. 이름, 휴대전화 번호, 계좌번호. 성인 인증 절차도 거치지 않는다. 부모 허락도 필요 없다. 그야말로 ‘손안의 카지노’다. 그래서 발견하기가 어렵다. 경찰청 한 관계자는 “같은 중독이라고 해도 도박은 또 다르다. 마약을 하면 행동에서 티가 나고 가루나 주사 같은 물증이라도 보이지만, 도박은 휴대전화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오지 않는 한 알 수가 없다. 청소년 휴대전화도 부모가 함부로 못 들여다보지 않나. 문제가 심각해질 때까지 드러나지 않아 찾기 어려운 범죄 중 하나다. 성인도 보통 다른 범죄에 연루돼 있어서 수사하다 보니 불법도박까지 추가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지, 처음부터 불법도박으로 걸려든 사람은 거의 없다”라고 말했다.

 

청소년 온라인 도박의 또 다른 특징 역시 ‘2차 범죄 연루’다. 청소년은 초기부터 성인보다 2차 범죄에 엮일 위험이 더욱 높다. 성인은 자기 재산부터 걸고 도박을 하다 대출도 받고 사채도 끌어 쓰지만, 청소년은 애초에 탕진할 재산이 별로 없다. 금융거래를 자유롭게 할 수 없는 청소년이 가장 손쉽게 도박 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은 또래 간 불법 사채 혹은 ‘댈입(대리입금)’이다. 친구끼리 높은 이자로 돈을 주고받거나, 대신 입금해주는 대가로 원금의 20~50%에 달하는 ‘수고비’를 더해 주는 형식이다. 만약 돈을 빌린 사람이 계속 판돈을 잃어 돈을 갚지 못하면 ‘추심’에 들어간다. 도박이 학교폭력의 한 원인이 되는 것이다.

 

돈이 얽힌 재정 문제는 해결하기 제일 까다로운 부분이다. 자녀의 도박 문제를 알게 된 부모는 놀란 마음에 빨리 대신 빚을 갚아주고 자녀가 다시 공부에 집중하기를 바라지만, 전문가들은 부모의 성급한 대리 변제가 최악의 해결 방법이라고 말한다. 김영태 예방치유원 예방홍보팀장은 “불법 사채는 이자까지 갚을 필요가 없다. 마음이 조급하더라도 아이가 지금까지 도박으로 얼마나 잃고 얼마나 빚을 졌는지를 정확하게 표로 정리해서 현실을 인식시켜야 한다. 아이가 스스로 어떻게 갚아나갈 건지 계획을 세우고 그걸 지킬 수 있도록 옆에서 돕는 게 부모의 역할이다”라고 말했다. 힘든 수습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다시 도박 충동이 찾아왔을 때 아이는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도박이 문제라는 걸 알면서도 아이들이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만의 책임이 아니다. 불법도박 사이트에 가입할 때 한번 휴대전화 번호를 입력하면 끊임없이 ‘꽁머니’나 ‘돌충(머니 돌발 충전 이벤트)’ 안내 문자가 온다. 여러 사이트가 문어발처럼 연결돼 있기 때문에 한번 입력된 전화번호는 업체들 사이에서 공유된다. 청소년들이 자주 찾는 불법 웹툰·OTT 사이트에 달린 배너광고도 큰 유혹이다. 실제로 2022년 불법 웹툰 사이트 42곳의 첫 화면 배너광고를 분석한 논문(‘불법 웹툰 사이트를 통한 아동·청소년의 불법도박에 관한 연구’, 송봉규)에 따르면, 사이트 첫 화면마다 평균 23개 배너광고가 실리는데 이 중 73.3%가 불법도박 사이트였다. ‘무료 웹툰’을 보려다가 불법도박에 빠져버리는 것이다. 

 

최근 불법도박 사이트에서 밀고 있는 종목은 ‘바카라’다. 청소년은 한 판이 끝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은 종목일수록 선호하는데, 바카라 한 판에 걸리는 시간은 20여 초에 불과하다. 양쪽에서 각각 카드 두 장씩 뒤집어 그 합이 9에 더 가까운 쪽이 이긴다. 직관적이고, 빠르다. 미성년자여도 방문만 닫고 스마트폰을 켜면 곧바로 카지노 테이블에 앉아 20초 만에 돈을 딸 수도, 잃을 수도 있는 것이다.

 

유입 경로나 흥행 종목은 때에 따라 달라지지만 변하지 않는 본질적 요소도 있다. 청소년은 성인보다 유혹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사람이 어떤 행동을 결정할 때 집행부 역할을 하는 뇌의 전전두엽은 스물다섯 살 무렵에야 완전히 성숙한다. 그렇지 않아도 충동성이 높은 청소년이 20여 초 만에 승부가 결정되는 게임을 계속 보며 강렬한 자극을 받으면, 도파민이 과잉 분비돼 보상 회로를 조절하는 시스템이 망가진다. 중독심리전문가이기도 한 방원우 경남경찰청 소속 범죄심리분석관(프로파일러)은 이를 행동심리학적으로 설명한다. “강아지를 훈련시킬 때 처음에는 앉을 때마다 간식을 준다. 나중에는 가끔 준다. 그래도 강아지는 간식이 언제 나올지 모르니까 무조건 앉아서 주인을 쳐다본다. 간헐적 보상을 통해 행위가 강화되는 것이다. 도박에 중독되는 것도 마찬가지 원리다. 언제 이길지 모르니까 이길 때까지 계속하는 거다.”

 

불법 추심 시달려 등교 못하기도

 

방 분석관은 도박판이 심리적 악순환의 굴레에 빠지도록 촘촘하게 설계돼 있다고 설명했다. “처음 돈을 따는 순간이 가장 위험하다. ‘초심자의 행운’으로 한번 쉽게 돈을 벌면 ‘선택적 지각 오류’로 지금까지 잃은 돈보다 앞으로 딸 돈에 집중하게 돼 ‘도박사의 오류’에 빠진다. 동전을 던질 때 앞·뒤가 나올 확률은 매번 50대 50인데, 지금까지 계속 앞이 나왔으니 이번에는 뒤가 나올 거라는 이상한 믿음이 생기는 거다. 그렇게 돈을 다 잃은 뒤에는 빚이라도 갚고 나가야겠다는 ‘매몰비용 효과’로 그만두지 못한다. 큰돈을 달리 갚을 방법이 없는 청소년들이 특히 더 그렇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따면, 또다시 선택적 지각 오류부터 다시 이 모든 과정을 반복한다.”

 

청소년들이 도박을 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애초에 손을 대지 않는 것이다. 즉 예방이다. ‘운에 의해 결정되는 불확실한 결과에 가치 있는 것을 거는 모든 행위’가 도박이라는 점, 성인은 복권·경마·스포츠토토 등 합법적으로 도박을 할 수 있지만 청소년은 그 어떤 종류일지라도 불법이라는 점을 명확히 알려주어야 한다. 개인이 도박 사이트를 상대로 돈을 벌 수 없다는 이유도 논리적으로 설명해줄 필요가 있다.

 

만약 청소년이 이미 도박에 빠진 뒤라면 주위 어른들이 상황을 빨리 알아차리는 게 가장 중요하다. 아이가 친구들에게 간식이나 선물을 자주 사거나, 못 보던 고가의 물건을 가지고 있거나, 자주 자기 물건을 팔거나 잃어버렸다고 둘러대거나, 아르바이트를 꼭 해야 한다고 집착하는 모습 등이 도박중독의 징후일 수 있다. 문제를 발견했다면 처음부터 전문가의 개입이 반드시 필요하다. “도박 문제를 발견해도 부모들은 ‘빨간 줄 그이면 어떡하나’ ‘대학 못 가면 어떡하나’ 싶어 쉬쉬하며 집안에서 해결하려 한다. 하지만 중독은 질병이기 때문에 결코 그런 방식으로 나아질 수 없다. 학교 상담교사든 예방치유원의 전화상담(1336번)이든 외부에 문제를 알리고 도움을 받아야 한다. 부모도 함께 상담에 참여하면 아이가 도박을 끊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된다. 설혹 아이가 처벌받는다 해도 지금이 가장 가벼운 처벌을 받을 마지막 기회다.” 많은 청소년 도박중독 사례를 지켜본 심용출 청소년드림마을 기획운영부 부장의 말이다.

 

14세 미만의 형사미성년자가 아니라면 청소년도 형법에 따른 도박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성인이 된 이후라도 아직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은 경우 과거 청소년 때 했던 도박 전력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도박은 청소년 때 했더라도 재판을 받는 시점이 성인이라면 소년법을 적용받을 수 없다. 총판 역할을 했거나 불법 사채를 운영했다면, 이는 도박죄와는 별개로 처벌된다.

 

청소년드림마을 치유캠프에 참가한 청소년 가운데에도 이미 경찰조사를 받고 있는 학생, 보호관찰 중인 학생도 있었다. 학교 안에서 친구들로부터 불법 추심에 시달려 등교하지 못하는 아이도 있었다.

첫 집단상담 시간, 이곳에 오게 된 이유나 도박을 시작한 나이·종목·잃은 돈의 규모가 각자 다른 아이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이 네 글자로 대답한 순간이 있었다. 친구가 도박을 하려 한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냐는 질문을 던졌을 때였다. 돌아온 대답은 단호했다. “하지 마라.”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3075

 

열다섯 살 아이 휴대폰에서 열리는 ‘손안의 카지노’ - 시사IN

도박으로는 돈을 벌 수 없다. 열다섯 살 지후(가명)는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는 형을 따라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온라인 도박을 시작한 지후는 지난 4년 동안 몇천 만원 단위로 돈을 따

www.sisain.co.kr

 

 

“더럽고 위험한 건 어른들이 치워야 한다”

 

조호연 도박없는학교 교장은 ‘예방’이나 ‘치유’보다 ‘근절’에 초점을 둬야 한다고 본다. 근절 전략은 대포 통장을 잡는 것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입법이 필요한 일도 아니다.

 

조호연 ‘도박없는학교’ 교장은 대포 통장 근절이 온라인 불법 도박 시장 제재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한다.

 

 

무엇이든 직접 해본 사람이 그 일을 가장 잘 안다. 설령 그게 불법일지라도. 조호연 ‘도박없는학교’ 교장은 20여 년 전 불법도박 사이트를 운영한 적 있다. 도박 시장 소식을 전문으로 다루는 언론사를 차렸다가 접기도 했다. 정부에서 ‘어디를 때리면’ 시장이 ‘어디로 도망가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그는 2021년 돌연 청소년 불법도박 근절을 목표로 내걸고 ‘도박없는학교’라는 시민단체를 만들어 교장이 됐다. 서울경찰청이 청소년 도박 근절을 위해 긴급 스쿨벨을 발령한 이튿날인 5월21일, 경기 성남시 도박없는학교 사무실에서 조호연 교장을 만나 해결 방법을 물었다.

 

이력이 독특하다. 왜 ‘도박없는학교’를 만들었나.

 

중학생 아들을 둔 친구가 자기 아들과 대화 좀 해달라고 부탁했다. 도저히 통제가 안 된다며. 그 아들을 혼자 불러서 이야기를 하면 잔소리처럼 느낄 것 같아 친한 친구들을 불러서 다 같이 오라고 했더니 열댓 명이 왔다. 이 아이들은 청소년 온라인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고 불법 사채를 빌려주는 조직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 녀석들이 문제구나’ 하고 이야기를 들어봤더니 그게 아니더라. 얘네들도 선배들한테 물려받은 거였다. 학교에서 전통으로 내려올 정도로 도박이 일종의 문화가 돼 있었다. 그때 청소년 불법도박 시장을 뿌리 뽑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학교 안에 불법 사채시장이 형성돼 있다니.

 

어른들의 사채시장과 똑같은 구조다. 맨 위에 있는 애가 불법도박 사이트를 가져와서 밑에 있는 애들한테 계급에 맞게 역할을 나눠준다. 그 ‘리그’ 안에서는 서로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그냥 준다. 식구니까. 제일 비싸게 이자를 받아먹는 대상은 아무것도 모르고 걸려든 순진한 애들이다.

 

어떻게 걸려드나?

 

모범생한테 갑자기 돈을 주면서 “도박해봐” 이러면 거부감을 느낄 거 아닌가. 일단 사이트에다 아이디를 만들어서 사이버머니 10만원을 심어놓고 “아이디랑 비밀번호 알려줄 테니까 한번 해봐, 재밌어” 하는 거다. 도박이 뭔지도 모르는 애들이 그렇게 배워가면서 한다. 10만원을 다 잃으면 처음에는 3만원, 5만원 장난으로 주다가 그다음부터는 “너 이거 갚아야 돼” 하고 10만원을 빌려준다. 그럼 빌린 애들은 학교 끝나자마자 아르바이트를 뛰러 가서 번 돈을 고스란히 상납한다. 문제는 이 돈을 다시 학교 안에서 불린다는 거다. 돈을 못 갚으면 ‘노예 마케터’로 부려먹는다. 자기가 운영하는 사이트 이름과 주소, 자기 아이디가 추천인 아이디로 적힌 이미지를 만들어서 SNS에 쫙 깔게 한다. 그럼 그걸 보고 또 다른 애들이 유입된다.

 

‘노예 마케터’가 총판(모집책) 역할을 하는 건가?

 

이제는 총판 개념도 애매하다. 그냥 추천인 아이디로 적혀도 총판이기 때문에 잘 살펴봐야 한다. 하지만 그 위에서 돈을 버는 애들은 정말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 사이트 운영자, 사채업자 학생 한 명을 처벌하면 그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50명이 편해진다.

 

온라인 불법도박 시장을 잡으려면?

 

‘대포 통장’을 잡으면 된다. 불법 사이트에 들어가서 ‘여기로 입금하라’고 뜬 계좌번호를 캡처한 사진, 내가 돈을 입금한 내역만 있으면 신고를 할 수 있다. 그러면 경찰이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 은행에 가서 직원하고 같이 그 계좌를 들여다볼 수 있다. 불법도박에 쓰이는 통장은 딱 보면 안다. 패턴이 있다. 개인 계좌인데 하루 5억원씩 치고 빠지는 게 말이 되나. 그럼 은행 직원이 통장을 잠근다(거래정지). 이걸 풀려면 경찰서에 가서 소명해야 하니까 불법 도박업자들은 차라리 그 통장을 버리고 만다. 내가 작년에 대포 통장 280개를 신고했지만 단 한 번도 이의 제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는 정말 대포 통장이 귀해져서 실제로 많은 불법 사이트가 문을 닫았다. 돈을 못 빼니까 자금줄이 마르는 거다. 사이트는 무한히 생성할 수 있어도 계좌는 유한하다. 계좌를 잠가야 한다.

 

지금 추진하고 있는 ‘클린 계좌 프로젝트’도 대포 통장을 걸러내는 작업인가?

 

도박없는학교 홈페이지에 범죄에 쓰인 계좌를 올리고, 제일 많이 등록된 은행사가 어디인지 랭킹을 매기고 있다. 해당 계좌가 정지되면 ‘완료’로 바꾸어서 카운팅에서 빼준다. 7월까지 작업을 계속해서 ‘1등’ 한 은행에는 ‘도박방조상’을 줄 거다. 도박 때문에 학교를 그만둔 아이의 가방을 아크릴에 넣어 상패 대신 전달할 예정이다.

 

이런 일들은 사실 사법기관의 역할 아닌가?

 

나도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 6개월이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불법 시장을 제일 아프게 때리는 방법을 알고 있는 내가 먼저 뛰어들어서 길을 내면, 정부가 뒤따라와 줄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예방 챌린지 같은 거만 하고 무슨 무슨 TF 만들고 탁상공론만 하더라. 몇 개 부처가 와글와글 모여서 한마디씩 얹을 일이 아니라 누군가 총대 메고 컨트롤타워를 하나 만들어서 대포 통장 계좌를 추적하면 된다. 불법 사채시장을 물려받는 게 학교 내 전통이 될 지경에 이르기까지 10년째 정부는 ‘법이 없어서 안 된다’ ‘인력이 없어서 안 된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입법이라는 게 어디 쉽나. 인력을 더 뽑는 게 어디 쉽나. 그냥 손 놓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대포 통장 잠그는 거, 법 없이도 할 수 있다.

 

대포 통장을 잠그는 게 어떤 예방책이나 해결책보다 효과적이다?

 

아무리 어른들이 도박 하지 말라고 해도 도박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 그걸 어떻게 막나. 애들도 언제까지고 미성년자가 아니다. 열아홉 살과 스무 살은 한 달 차이다. 대학 가서 진짜 사채를 쓸 수 있게 되면 더 위험하다. 그러니까 원점을 깨뜨려야 한다. 나는 ‘예방’이나 ‘치유’라는 단어보다 ‘근절’이라는 단어가 맞다고 본다. 더럽고 위험한 게 있으면 어른들이 조금 다치더라도 장갑 끼고 가서 치우면 된다. 해보면 별거 아니다. 금방 치울 수 있다. 지금 정부가 하는 건 그 주위에 폴리스라인을 치고 ‘다치니까 어린아이들은 가까이 가지 마세요’라는 팻말만 붙여놓고 있는 거다. 그러지 말자는 거다.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3077

 

“더럽고 위험한 건 어른들이 치워야 한다” - 시사IN

무엇이든 직접 해본 사람이 그 일을 가장 잘 안다. 설령 그게 불법일지라도. 조호연 ‘도박없는학교’ 교장은 20여 년 전 불법도박 사이트를 운영한 적 있다. 도박 시장 소식을 전문으로 다루는

www.sisain.co.kr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