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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교육 영토의 자주성은 어디로 갔는가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3. 8. 3. 08:59

교육 영토의 자주성은 어디로 갔는가


2023.08.02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김영삼 정부가 주도한 ‘5·31 교육개혁’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학교 안에서 학생의 인권과 학습권이 존중되는 흐름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권위주의 정부 아래 폭언과 체벌이 난무하던 학교 안에서 학생의 인권과 학부모의 목소리가 들리도록 한 것은 장기적 관점에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와 함께 신자유주의에 터를 잡은 교육 시장주의와 학습 소비자주의가 학교 안으로 스며들었고, 이제 학교는 나와 내 아이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상품이자 수단이 되었다. 학교는 교육의 공적 이익을 실현하는 대신 오히려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개인적이고 사적인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욕망 기계’가 되었다.

최근 교육 현장에서 학부모 ‘블랙 컨슈머’들과 과잉 민원의 문제는 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문제의 핵심은 단순히 ‘과잉 민원’의 문제를 넘어 교육이란 것이 본질적으로 공적이고 공동재적인 활동이며, 교사와 학생의 상호이해와 포용이 핵심이 되는 일이란 점을 학부모들이 납득하도록 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도 학교는 헌법 제31조와 교육기본법 제5조가 보장하고 있는 교육의 자주성 및 전문성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교육의 영토는 교육적 원리가 우선적으로 작동하는 공간이어야 하며, 그 안에서 교육의 자주성과 자치권은 사법 권력이나 정치적 개입에 앞서야 한다. 이 점은 교육 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에 대한 해결과정에도 적용돼야 한다.

성폭력이나 폭행처럼 명료한 형사범죄 행위는 망설일 것 없이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 하겠지만, 교육의 과정에서 발생한 한두 번의 우발적 행위를 그 맥락에서 인위적으로 분리해 아동학대 혐의와 연계시키는 것은 교육에 대한 명백한 사보타주로 간주되어야 한다. 교육의 과정은 교사와 학생의 대화를 매개로 하며, 그 과정에서의 문제들은 대부분 가르치고 배우는 두 주체의 상호 중첩성을 전제로 한다. 말하자면, 교사의 행동은 학생의 행동과 연결돼 있으며, 이 시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위는 이 맥락에서 잘잘못을 따져야 한다. 게다가 교실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일종의 ‘복잡계’적 세계라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과도한 민원을 제기하는 학부모를 설득하고, 학교의 공공성을 이해시키는 일 또한 학교가 해야 할 교육행위의 일부이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학부모에게도 교육의 진정성과 전문성이 무엇이며, 그들의 민원이 이 맥락에서 어떻게 재인식되어야 할지에 대해서도 가르쳐야 한다.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당연한 일이며, 학교도 그 사회의 일부이다. 또한 교실은 공동생활의 장소이며, 문제와 갈등은 언제나 발생할 수 있다. 민주주의가 갈등을 성숙한 숙려적 태도로 해결하고 포용해가는 사회체제를 지향한다면 학교도 그렇게 해야 한다.

이런 문제에 수세적으로만 대해서는 안 된다. 학교는 오히려 이런 민원에 대해 당당하게 맞서야 하고, 학교가 ‘갈등 해소와 공존의 교육과정’을 위해 당사자들을 참여시켜 논의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주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학교의 교장이나 교감, 지역 교육장, 시·도 교육감 등은 이런 일을 하라고 만들어진 자리이다. 교육 주체들이 주관하는 숙의 기간과 이해소통의 시간을 충분히 갖지 않은 채 학교와 교사에 대한 법적 소송을 진행해서는 아니되도록 법적 제한 장치를 둘 필요가 있다.

민원인 학부모도 학교가 주관하는 대화와 갈등 해소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학부모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 해당 교사와 학교 책임자들과 만나 문제의 원인과 과정을 교육적 차원에서 이해하고 포용하는 과정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 오히려 자신의 자녀 교육을 돕는 적극적인 길이라는 점을 인식하도록 도와야 한다. 문제를 개선해가는 일은 교사·학생·학부모의 공동 과제이며, 그 일을 사법체계에 내맡겨서는 안 된다. 요컨대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이 단지 정치적 개입과 교육과정 구축의 문제로만 한정되기보다는 학교라는 교육 영토의 주권을 보장해주는 원칙으로 자리잡을 필요가 있다.

참고로, 12세기 유럽에서 대학(university)이 형성되던 때, 중세의 대학들은 막강한 자치권을 누렸다. 자치권 안에는 학사과정에 대한 자치권은 물론이고 학내 사법권과 재정에 대한 자치권도 포함돼 있었다. 이러한 대학의 자유와 치외법권적 권한은 당시 종교 및 국가 세력으로부터 교육의 자주성과 존엄성을 보장받는 기초가 되었다. 이것은 비단 고등교육기관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교육의 영역 전체가 누려야 할 자율성의 기초이다.


[출처 : https://m.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308022026005#c2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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