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크라코브 선생님의 <갈등의 원인과 해법>을 듣고 (6) 본문
여러분들 이런 개념 혹시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비폭력 대화, 폭력 없는 의사소통. 들어보셨죠. 이런 공간이 생기면 그때 우리는 우리 안에서 저런 신중함, 그 안에서 상대방과 나를 돌이켜 보잖아요. 그러고 나면 우리는 이렇게 반응할 수 있습니다. 내가 저 사람이 무엇을 얘기하려고 하는지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나 자신 안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확인했잖아요. 그럼 우리가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거죠. 분노하는 게 아니라, 그냥 여기에서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하지 마세요"라고 분노를 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악순환에 빠지고요.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저 여유 공간 안에서 우리 안에 비추어둔 그 빛을 따라서 이제 심사 숙고합니다.
그러고 나면 우리는 질문이 생기죠. 상대방한테 할 얘기들이 생겨요. "있잖아요. 말씀하시는 거 다 들었는데 제 안에서 조금, 그거로 인해서 좀 불편한 감정들이 생겨요. 뭔지 모르겠어요. 이게 정말 왜 그런지 모르지만 그 말이 납득이 잘 안 되는 것도 있고요." 그런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서 어떻게 얘기할 수 있냐하면, "내가 생각하기에 당신의 이야기에 당신의 본심이 이러이러이러한 거였어요? 이거 맞아요?"라고 물어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 쪽에서 듣는 것에 대해서 반응할 때는 "당신은 어땠어. 말도 안 돼."라고 너로 시작하는 문장을 말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공간을 만들고 나면 그다음에는 나로 시작하는 문장을 만들어서 줄 수 있어요. "내가 생각하기에는, 또는 나의 마음에서는 이런 저항감 같은 게 좀 생기는데 불편해요. 불편한 게 생기는데 혹시 내 생각이 이게 맞는지 좀 들어봐 주세요. 당신 뜻이 이러하지 않은가요? 나는 그렇게 받아들였어요."라는 '나'로 시작하는 문장들이 상대방에게 전달될 수 있는 그런 여유 공간이 생기게 되는 거예요.
그게 바로 비폭력 대화예요. 폭력이라고 해서 꼭 주먹다짐을 하는 것만이 폭력이 아니잖아요. 거칠어지지 않는, 평화로운, 갈등을 해결하는 방향의 대화 같은 것들이 시작될 수 있는 거예요.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이야기를 더 진전시키기 전에요. 이분은 빅토르 프랑클이라는 분인데요. 이분은요, 의사소통 기술 혹은 의사소통 분석으로 유명한 분이에요. 이분은 나치 시대 때, 그러니까 1945년 이전까지 강제노동 수용소에서 갇혀 있던 분이에요. 거기서 생존한 분이에요. 그런데 자신의 자서전에서 뭐라고 썼냐 하면요. 거기에 있는 동안에 자신들을 괴롭히거나 감시하는 그 사람들, 감시자들, 그 사람들을 미워한 적이 없었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들을 같은 인간으로 봤어요. 그리고 거기서 일어나는 일들에서 그 어떤 의미 같은 것을 찾도록 노력했어요. 그래서 로고테라피라는 것을 창시했죠.
참 많은 사람이, 고통받는 많은 동료 수감자들이, 거기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이 사람에게 왔습니다. 이 사람의 태도가, 그러니까 미워하지 않고 그리고 굉장히 뭐랄까요, 평상심을 잃지 않고 불안해하지 않고 그런 상태로 지내고 있으니까 "무엇이 당신을 그렇게 할 수 있게 만들었나요?"라고 많이 와서 물었어요. 그리고 특히 며칠 후면 가스실에 끌려가 죽을 사람도 많았어요. 그런 사람들도 와서 많은 얘기를 했습니다. 이때 이 사람이 그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 사람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줬는데요. 이분은 그 강제노동 수용소 생활에서 살아남았어요. 그러니까 45년에 전쟁이 끝나면서 살아남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 생활 동안의 경험이, 그 끔찍했던 경험이 자신을 정신적으로 성장시켰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분이 뭐라고 구체적으로 얘기하냐면요. 인용문입니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는 자신의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힘이 있다. 그리고 우리의 반응에 우리의 성장과 행복이 좌우된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건 사실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지각하는 것과 관련된 것이죠. 상대방의 이야기를 지각하고,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가 반응할 수 있는 데까지 가기 전에 우리의 자아로 만들어내는 공간이 있으면 지각하고 이런 것들이었잖아요. 그러면 지각 연습 같은 것도 해봐야 될 것입니다. 더 말씀드리기 전에 잠깐 뭔가를 여기다가 쓸 텐데요. 제일 위의 단어는 '지각한다'이고, 동일한 이 5개의 꼭지를 가진 이 별은 언제나 인간에 대한 이야기예요. 인간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여러분들에 대한 그림입니다. 제일 오른쪽 위에 있는 게 느끼기, 감정(Fühlen: feeling)이고요. 그다음에 아래쪽에 행동(Handeln: acting)이고, 그다음에 왼쪽 제일 위쪽이 하고 생각(Denken: thinking)하는 거고, 아래쪽이 의지 행위, 행위하기(Wollen: willing). 저쪽은 뭔가 이렇게 그냥 일반적인 행동이거든요. 이것은 의지에 의한 행위이고요. 제일 위가 지각(Wahrnehmen: perceiving)입니다.
이방인으로서, 아시아 문화권 바깥쪽에서 사는 사람으로서 제가 아시아 사람들을 보면 조금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그건 뭐냐 하면요. 지금 서양의 어떤 것, 교육을 통해서인지 아니면 이 아시아 문화라는 그런 특징 때문에 생긴 건지 모르지만 상대방에 대한 행동, 그다음에 자신의 태도 같은 것들에서 뭔가 주의하는 뚜렷한 자각을 가지고 거기에 대해서 이렇게 거리를 두거나 아니면 적절하게 행동하려고 자기 자신의 의식 같은 것을 좀 깨어 있게 만드는 행동, 주변에 대해서 그런 점들이 보여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간의 내면 혹은 인간의 본성, 이런 것들을 얘기할 때 인지학에서는 늘, 발도르프 교육학에서는 늘 이렇게 얘기해왔잖아요. "인간의 내면, 인간 영혼의 활동, 이것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사고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것이다." 의지와 사고와 감정이라고 그랬잖아요.
그런데 여기 지금 다섯 개로 돼 있습니다. 이렇게 다섯 개로 나누어도 이런 얘기할 때는 전혀 불편하지 않아요. 너무 많은 거 아닌가, 아니면 인지학이나 발도르프 교육학하고 좀 어긋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원하시면은 지금 저와 같은 자세를 취하고 이걸 따라하시면서 연습을 같이 해보셔도 돼요. 어떤 자세냐면, 일반적으로 의자에 앉아도 뒤에 등을 기대지 않습니다. 그리고 바닥에 발을 다 붙이고 편안하게 앉습니다. 팔도 손도 무릎에 얹고 그냥 편안하게 허리를 곧추 세웁니다. 이런 상태에서 여러분도 그렇게 하셨으면 제가 이제 질문을 던질 거예요. 동료들과 함께 회의를 하거나 이럴 때도요, 저는 자주 눈을 감고 이런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사람들이 그걸 다 알아요. 저 사람이 지금 좋은 건 아니구나, 라는 걸 압니다. 이렇게 허리를 바짝 세우고 등을 기대지 않고 졸기는 어렵잖아요. 그런데 이런 상태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알고 있냐면, 이제 크라코브 선생이 굉장히 귀를 쫑긋 세우고 깊이 듣기 위해서 저러는구나, 라는 걸 알아요.
여러분들께 질문을 던질 텐데요. 차례대로 저것들에 대해서 한 가지씩,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한 20~30초밖에 여유가 없을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은 그것에 대해서 막 반응하려 하지 마시고 그냥 마치 여러분 자신이 빈 그릇인 양 질문을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리고 그렇게 다섯 가지를 하고 난 뒤에 내 안에서 일어난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잠깐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질문들에 대해서 여러분에게 일어나는 반응 혹은 여러분이 받아들이면서 일어난 어떤 현상들이 그게 정신과 관련된 것일 수도 있고 내면 영혼과 관련된 것일 수도 있고 온갖 것도 다 했어요. 그냥 거기에 대해서 평가도 하지 마시고 거기에 대해서 특별히 주저하거나 아니면 더 혼동도 없이 그냥 자신에게서 일어나는 반응조차도 거기에 담아두십시오. 그러고 난 다음에 나중에 얘기하죠.
첫 번째 질문은 저 제일 위에 있는 지각하기예요 지금 여러분 자신은 무엇을 지각하고 있습니까? 두 번째로, 여러분은 그 전도 아니고 나중에도 아니고요, 바로 현재 이 순간 무엇을 느낍니까? 어떤 감정이 드나요? 세 번째는, 여러분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네 번째로, 여러분의 사지, 여러분 몸 안에 특히 사지가 어떤 행동을 향한 의지 같은 것들에 자극을, 그러니까 여러분의 사지가 어떻게 움직이려고 하나요? 뭘 하려고 하나요? 그것이 의지와 관련된 문제이고 행동과 관련된 것입니다. 조금 전에 지금까지 이렇게 앉아 있으면서 우리의 사지가 무엇을 향한 의지 그 안에서 뭘 하려고 하는 의지 같은 게, 자극 같은 것이 생겼느냐고 여쭤봤잖아요. 거기로부터 이제 다섯 번째는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의 가능성이 있다고 느끼시나요? 내가 뭘 해야 되겠다, 어떻게 할 수 있겠다, 라고 생각하시나요?
감사합니다. 원하시면 지금 결과들에 대해서 살짝 이렇게 메모하셔도 괜찮습니다. 뭔가 이제 질문도 생기고 할 텐데요. 그리고 질문도 드리고 갈 텐데 잠깐 이 이야기를 빨리 진행시키기 위해서 뭔가 이렇게 그림을 하나 그리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균형 잡힌 사람이라면 아까 말씀드린 그런 양자의 균형 같은 것 말이에요. 두 기준의 균형이 잡힌 사람이라면 보통 이 문제에서 무엇인가를 지각하고 그것을 처리해서 내가 어떻게 행동으로 내놓느냐 하는 과정에서 이제 이런 그림과 같은 모습의 상태를 보이게 됩니다. 내가 균형이 잡혀서 아까 말씀드린 "너도 나에게 괜찮고 나도 너에게 괜찮아"라고 하는 그런 상태, 그리고 상대방을 받아들이고 나도 상대방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그런 능력을 가진 이런 상태라면 보통 이런 자극에 대해서 반응하는 그 과정이 마치 호흡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 지금 뭐라고 써 있냐면 내면의 세계예요. 이렇게 가시 같은 것이 안쪽으로 솟아 있어요. 이건 내면의 세계에요. 그리고 이 돌기가 바깥쪽으로 나가는 이건 내면의 세계 이 바깥쪽 외부 세계예요. 이건 그래서 내가 마치 호흡하듯이 내가 들이쉬는 것처럼 내 안에 들어오죠. 그런데 그걸 다시 내쉬어야 하잖아요. 내쉬면 나에게서 바깥쪽으로, 내 외부 세계로 나가게 되잖아요. 그것이 바깥 세계에 어떤 작용이나 영향을 미치게 되지요. 내가 들이쉴 때, 그리고 그것이 밖으로 나가서 호흡처럼 이것이 리듬컬하게 이루어지는 거예요. 리듬을 타고, 그러면 그 사이에서 어떤 능력이 생기느냐, 내 안에서 공감 능력이 생기는 거예요. 상대방의 말에 대한 공감, 상대방의 자아에 대한 공감이 바로 이 그림이 보여주는 지금 얘기예요. 여러분에게 앞에서부터 지금까지 했던 얘기의 결론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갈등이 생기면 아래쪽처럼 됩니다. 저기 지금 화살표 꺾어진 이건 꺾어지면 저 화살표가 갈등 표시에요. 갈등이 생기면 아래처럼 됩니다. 이렇게 균형 잡힌 상태에서의 대화 혹은 상대방과의 요구 같은 것들이 숨을 쉬듯이 이렇게 나의 내면과 외면이 리드미컬하게 교환되잖아요. 외부 세계와 내 안에 내면의 세계가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되어 갈등이 생겨버렸어요. 그러면 내가 어떤 상태에 빠지기 쉽냐, 빠지게 되느냐 하면 나의 내면의 세계하고 내 밖에 있는 외부의 세계가 단절됩니다. 중간에 이런 벽이 생겨요. 그런데 이렇게 벽이 생겨서, 벽이 생기는 것도 모자라서 내가 어떤 망상 혹은 어떤 환상까지 잘못된 환상까지 가지게 되냐면 나는 이런 것들이 있으나 어쩌나 간에 "외부 세계를 즉시 볼 수 있다"고 하는 잘못된 현상이 생기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내가 이 안에서 자기 자신 안에서 뱅글뱅글 도는 이런 상태만 지속이 되면서도 나는 저쪽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하게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 볼 수 있어, 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근데 내가 보는 바깥은 무엇이냐. 여기에 벽이 일종의 거울 역할을 해서 그러니까 내가 보는 건 나밖에 없어요. 그건 외부 세계가 아니에요. 즉 내 모습이 이렇게 안에서 호흡처럼 외부와 내부를 부드럽게 오가지 못하고 내 안에서만, 내면에서만 뱅글뱅글 돌고 있는 나 자신을 보는데 그것을 외부 세계라고 착각하는 거예요.
제가 교사 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 그때 발도르프 학교에 동료 두 분이 계셨어요. 그런데 이분들 사이에 갈등이 어마어마했어요. 그분들이 아주 앙숙이었어요. 무엇인지 모르지만 굉장히 심한 문제로 갈등을 일으키고 있었는데 그 상태에서 이제 신참인 제가 양쪽의 이야기를 다 듣습니다. "이건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니에요. 이건 중재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이건 말이에요. 아니 그거 아무것도 아니고요, 이거는 이렇게 볼 수 있는 일이에요. 저분이 얘기하는 거요. 그거 이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이쪽에 가서는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그분들은 전혀 거기에 납득하지 못했어요. 그 갈등은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중재자가 있어도 왜 그 두 분 다 서로 자기 안에서 뱅글뱅글 돌고 있었기 때문에 그분들은 늘 대답하기를 뭐라고 그러셨냐면 "선생님 보세요. 저 분이 얘기하는 게 그게 아니었다는 거 나도 알아요."라고 얘기해요. 근데 아는 게 아니잖아요. 그건 그저 자기 모습이잖아요. 그러니까 해결이 안 되는 거예요. 이런 식으로 갈등이 생겼을 때 이렇게 단절된 상태에서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드는 것 자체가 이런 인식 없이 그 문제를 해결하려 드는 것 자체가 몹시 한계가 있는 일입니다.
여러분이 보시는 이 표는요. 이건 갈등의 스펙트럼, 갈등의 강도가 어떤 종류들이 있느냐, 그러니까 갈등의 에스컬레이터입니다. 그걸 구분해 놨습니다. 이 표는 프리드리히 글라즐이라는 분이 만든 것인데요. 이분은요, 갈등 연구 부분에서 갈등 혹은 갈등해소 연구 부분에서 굉장히 중요한 연구를 하는 분이에요. 그 초석을 놓기도 한 분이고요. 그런데 제가 이분을 만나게 됐어요. 그래서 함께 일하기까지 했어요. 그분에게 많은 것을 배웠고, 그리고 그분이 만들어내고자 하는 어떤 모델 같은 것들을 작업하는 데에도 참여했습니다. 글라즐의 책이 한국에 번역이 되어 있는지 혹시 아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어요. 이분이 이 분야에서 굉장히 좋은 책을 많이 쓰셨어요. 혹시 한국어로 번역된 게 없다면 이 가운데 이 강의를 들으시는 분 중에서 누군가가 번역을 하시면 분명 좋은 책이 될 겁니다. (<교실 갈등, 대화로 풀다> 참고)
이 표는 갈등이 얼마나 심한 상태인가를 나타내는 지표들이잖아요. 1단계에서부터 함께 파멸로 가는 길이 저 끝에 아홉 번째예요. 그렇게 돼 있는데 순서가 1에서 2 또는 3까지 갔을 때도 우리가 웬만하면 서로 또는 주변 사람들, 그냥 동료와 함께 주로 상호 간에 이 갈등을 해소할 수 있어요. 노력하면 그런데, 3 또는 4부터는요,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중재자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파국까지 가는 거예요. 여러분이 어떤 조직에서든, 특히 발로르프 학교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참여하고 계신, 소속돼 있는 그 조직 사회 혹은 주변 안에서요. 갈등을 일으키게 됐어요. 그러면 아까 말씀드린 그러한 방법으로 공간을 서로 만들고 이런 방법으로 서로 해결할 수 있는 선이 있어요. 그런데 그 선을 말씀드린 대로 넘어버리면요. 그다음에는 반드시 주변에서 꼭 인지학을 배우거나 아니면 발도르프 학교의 같은 교사이거나 이러지 않아도 괜찮아요. 비교적 이런 부분의 경험이 많고 노련한 분들이 와서 도와주도록 부탁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고 지나가면 굉장히 쉽게 저 9단계까지 갑니다. 그러니까 이거를 사람들이 1~2단계 또는 3단계까지 가서도요, 피하려고 들어요. 대부분이 정말 90%가 피합니다. 거기로부터 그냥 고개를 돌리고 갈등이 있으니까 더 이상 부딪히기 싫어, 이걸로 해결이 안 돼, 라고 그냥 포기하고 좌절하고 돌아가 버리는 거예요. 묻어두는 거예요. 그것으로는 그 어떤 것도 해결되지 않을 뿐 아니라 9번째 저 최악의 단계까지 가는 길이 그대로 뚫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렇지 않기 위해서는 조금 심해지면 중재자가 필요하고 심해지기 전에는 아까 말씀드린 그런 노력들이 필요한 거예요.
그런데 한 가지 우리가 여기서 거의 마무리처럼 생각해야 할 이야기는 뭐냐 하면 한 번 말씀드렸다시피 아까 강제노동 수용소에서 생존하신 분의 이야기에도 나오듯이 우리 인간도요, 이런 갈등을 함께 겪는 이 인간들도 갈등이 그렇게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전제해야 돼요. 뭐냐 하면 갈등을 통해서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갈등으로부터 굉장히 많은 것을 배워요. 갈등을 한 번 겪고 내가 그 안에서 뱅글뱅글 도는 상태로 그냥 끝나버리지 않는다면, 어떻게든 해소하는 노력을 하고 해소하게 된다면 우리는 자신이 겪었던 그 불편한 갈등 상황에서 엄청나게 많은 것을 배우고 자기 스스로가 성장하고 발달하게 됩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여태까지 집중해 주셔서 감사하고요 질문이 있으시면은 지금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짧게 할 수 있겠네요.
* 그 자체가 갈등이 있으면 거기에 인간의 사고, 감정, 의지 또는 행동 이 세 가지 부분에서 다 포함해서 뭔가 갈등의 원인 같은 게 있을 거 아니에요. 원인이라든지 아니면 그 어떤 핵심 같은 게 있었을 거 아니에요. 그게 뭐였나요. 갈등의 원인이 무엇인지에는 상관없이 기본적으로요, 이 코로나 시대는 이 코로나를 겪으면서 우리 밑바닥에 이걸 받치고 있는 바닥이 갈등을 일으키기 아주 쉬워졌어요. 갈등을 자극해서 더 심하게 만들거나 새로운 갈등을 만들어낼 소지들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마련해 줬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대화 없이 또는 어떤 노력 없이 그대로 갈등이 증폭되거나 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어요. 왜냐하면 아이들도 안 오고 마스크는 써야 되고 접촉을 못하게 되니까 결국 있었던 작은 갈등도 커지기 마련이잖아요. 그냥 한 쪽이 떠나버리는 일이 있어요. 그게 많았습니다. 사실 독일에서도요. 그런데 갈등을 겪으면서 한쪽이 피해버리면 떠난 사람의 갈등을 위해서 어떤 형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떠난 사람의 갈등 해소를 위해서, 내가 그게 남아 있는 사람을 향해서든 아니면 어떤 형태든지 간에 뭔가 시도해 볼 수도 있습니다. 오늘 여기서 이렇게 또 들으신 걸 가지고, 함께 했던 것을 가지고 여러분이 많은 작업을 앞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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