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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에 왜 갔느냐’가 아니라 ‘왜 못 돌아왔는지’를 기억해 주세요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3. 10. 27. 17:00

‘이태원에 왜 갔느냐’가 아니라 ‘왜 못 돌아왔는지’를 기억해 주세요

희생자 형제자매들의 목소리... 故이주영 오빠 이진우 씨 인터뷰

 

2023.10.26
제희원



돌이켜보면 비극이 있기 전에는 늘 위험을 알리는 신호가 있었습니다. 2022년 10월 29일 토요일 밤 대한민국 수도 서울 번화가 한복판에서 159명의 청년들이 목숨을 잃은 날도 그랬습니다. 압사 우려가 있다는 신고가 빗발쳤지만 대응은 안일했습니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제대로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다시 계절이 바뀌어 1주기를 앞두고 있지만, 독립된 조사 기구조차 아직 꾸리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애도가 줄어든 만큼 피해자들을 향한 무분별한 비난과 혐오는 커졌습니다. MZ세대라고 호명된 피해자들의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크게 부각됐습니다. 참사 피해자와 생존자에게 ‘그곳에 왜 갔느냐’는 말들이 비수가 되어 꽂혔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겪은 이후에도 달라진 게 없다는 냉소 역시, 이태원 유가족과 생존자들로 하여금 소리 없는 눈물을 삼키게 했습니다.

희생자 또래인 형제자매들이 겪은 ‘참사 그 이후’

이태원 참사 희생자 다수는 2~30대 청년층이었습니다. 보통 참사 이후 마이크를 잡는 건 부모님들이었지만, 다른 참사와 달리 유가족협의회 안에서 형제자매 유가족들의 활동이 매우 두드러졌습니다. 이들은 슬픔에 힘겨워하는 부모들 사이에서 의견을 내고, 시민을 불러 모았습니다. 이들은 학업과 취업, 노동과 자립 등 현재를 살아내는 동시에 사라진 형제의 자리를 메우기 위해 고민했습니다.

올해 2월 꾸려진 〈이태원 참사 작가기록단〉은 희생자의 또래인 형제자매들이 어떻게 이 참사를 겪어냈는지 주목했습니다. 전국에 분포한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기록하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세상을 일구던 활동가와 변호사, 작가들이 모여 희생자의 형제자매, 연인, 생존자 등 14명을 인터뷰했습니다. 피해자의 서사를 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우리 사회 전체가 어떤 목격자 혹은 피해자일지 질문했습니다. 책 제목은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 (출판사 창비)〉. 제목이 된 문장은 참사 당일 피해자들과 생존자들이 가장 많이 가족들과 주고받았던 말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여전히 참사가 해결되지 않은 ‘현재 진행형’이라는 뜻도 담겨있습니다.

손재주 좋았던 웹디자이너 동생의 죽음... “참사 한 달 지나 다른 유족의 삶에 관심”

웹디자이너였던 고 이주영 씨는 참사 당일, 출장으로 오랜만에 만난 예비신랑과 함께 이태원에 데이트를 하러 갔다가 인파에 휩쓸려 결국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동생 주영 씨와 선한 눈매가 꼭 닮은 진우 씨는 네 살 터울 동생에게 그리 살가운 오빠는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있던 주영 씨와 진우 씨는 보통의 남매들처럼 데면데면했지만, 성인이 된 이후에도 부모님과 함께 같은 집에서 얼굴을 맞대고 살았습니다. 하고 싶은 걸 꼭 해내는 성격이었던 주영 씨는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 민트와 초코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 출시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주영 씨가 쓰던 달력에는 11월 말까지 예정된 일정이 빼곡히 적혀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이후, 주영 씨를 포함해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 삶의 궤적도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었던 주영 씨의 오빠, 이진우 씨를 인터뷰했습니다.

 


Q. 이주영 씨는 어떤 동생이었나요.

A. 원래 회사를 다녔어요. 웹디자인 회사였는데, 본인이 나와서 공부를 해보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마침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고 있었거든요. 민트랑 초코 해서 민초단인데 둘을 모티브로 본인이 디자인을 하기 시작하더라고요. 웹사이트도 만들고 고양이 관련 박람회가 열리면 부스 만들어서 판매하는 작업도 하더라고요.

 


Q. 원래 주영 씨가 어릴 때부터 미술을 잘했어요?

A. 만들고 이런 거를 잘했던 것 같아요. 요리나 이런 것도 곧잘 하더라고요. 손으로 하는 재주가 있어서.

 


Q. 지난 1년이 가족들에게는 어떤 시간이었나요.

A.  어떻게 보면 시간이 되게 느리게 간 것 같기도 하고 (1주기가) 엄청 빨리 온 것 같기도 해요. 처음 한 달은 거의 정신을 빼놓고 산 수준이었던 것 같고, 한 달 지나서 조금씩 주변을 둘러보게 됐던 것 같아요. 가족끼리 억누르는 것만 해도 굉장히 힘이 많이 들었거든요.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나서 보니까 저희 가족 말고 다른 가족분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가 궁금해진 거예요. 모임이 있다고 들어서 연락을 하게 됐고, 여기까지 오게 되긴 했네요.

 


이진우 씨가 유가족협의회에서 활동을 하며 기준으로 삼고 있는 건 ‘여기서 내가 제일 힘들고 아픈 사람은 아니다’라는 생각입니다. 자신의 고통과 아픔을 보듬는 것에 멈추지 않고 진상규명을 위한 활동을 하면서 다른 종류의 아픔에도 눈을 돌리게 됐습니다.

 


Q. 이런 질문이 참 송구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부모님은 지금 어떻게 이 시기를 보내고 계신지요. 아버님과 어머님도 같이 유가족협의회 활동을 하셨나요?

A. 돌이켜보면 어머니가 오히려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어머니가 더 먼저 무너질 줄 알았거든요. 근데 어머니가 오히려 강인하게 집의 기둥이 됐다고 할까.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엄마가 여기 딱 지키고 있을 테니까 동생 위해서 아빠랑 너랑 활동 잘하고 와. 집에 돌아오면 다시 우리끼리 시간을 보내자’. 이런 느낌.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저희 가족이 1년을 버티면서 크게 안 무너지고 올 수 있었던 건 엄마의 역할이 굉장히 크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요.

 


이진우 씨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에서 ‘만능 일꾼’으로 통합니다. 간단한 사무나 회계 업무부터 언론의 인터뷰 요청을 취합하고, 형제자매 모임의 주축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Q. 직장생활과 활동을 병행하는 게 힘들지 않았나요? 책에는 ‘5개의 가면’을 쓴 것 같다는 표현도 나오는데 그럼에도 활동을 이어간 이유는 뭔가요.  

A. 적극적으로 활동에 참여하는 유가족과 그렇지 않은 유가족의 차이가 무엇일까 고민을 해봤는데 제가 개인적으로 내린 결론은 참사 당일 현장을 봤냐, 안 봤냐의 차이가 컸던 것 같아요. 저한테 이 모든 상황의 트라우마의 가장 핵심이기도 하고요. 트라우마를 이겨내기 위한 수단으로써 저는 이 활동을 계속해왔던 것 같거든요.

 


참사 1주기가 다 되도록 ‘제대로 된 설명’ 없는 정부

Q. ‘정부가 하겠다는 약속이 지켜진 게 없어서 화나고 속상했다’고 언급했는데, 지난 1년간 정부의 대응은 어떻게 평가하나요?

A. 제가 너무 낙천적으로 생각했던 걸 수도 있는데 저는 공공의 역할을 하는 기관이 충분한 설명을 해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설명을 절대 하지 않더라고요. 단 한 번도 정부가 공식적으로 왜 이런 상황이 펼쳐졌는지, 이런 상황에서 각각의 희생자들이 어떤 식으로 병원에 이송됐는지, 어떻게 사망했는지 원인부터 결과까지 일련의 과정에 대한 설명을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어요. 그리고나서는 늘 ‘언론을 통해 얘기 나오지 않았느냐’, ‘경찰 조사가 되고 있지 않냐’고 하는데 그게 저희한테 제대로 된 설명은 아니거든요. 아직도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입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지난 19일 유엔의 제5차 자유권규약 심의에서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경찰의 특별수사본부 수사 및 국정 조사 등 대대적 조사와 수사를 통해 대부분의 진상을 규명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시민사회와 법조계 생각은 다릅니다. 1주기를 맞이할 때까지 숱한 과제들이 미완의 상태로 방기돼 있다는 겁니다. 시민사회단체는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제 보고회를 열고 30개의 주요 과제와 173개의 세부 과제를 발표했습니다. 지금까지 이뤄진 정부 조사만으로는 다음에 있을지 모를 참사에 대비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Q. 이태원 유가족들에게 시청 앞 분향소가 갖는 의미가 특별하다고 들었습니다.

A. 녹사평 분향소에는 희생자들의 영정과 위패를 세웠다는 의미가 있었는데, 일부 보수 시민단체에서 끊임없이 와서 부모님들한테 ‘자식들 시체 팔아서 돈 얼마나 벌려고 지금 여기 나와서 이러고 있느냐’, 토씨 그대로 이렇게 얘기를 많이 했었어요. 그래서 가족들도 당시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심리적으로 위축돼 있었는데 시청 분향소가 만들어지고 더 많은 시민들을 만나면서 진심으로 추모해 주는 분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고요. 가족들이 좀 더 힘을 차릴 수 있는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정박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Q. 이태원에 왜 갔느냐는 질문보다 왜 돌아오지 못했느냐는 질문이 필요하다는 말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정말 ‘왜 동생이 거기에 갔어?’라는 질문을 많이 들었나요?

A. 다들 쉽게 물어보지는 못하지만 궁금해하는 부분이기도 했어요. 동생은 올해 결혼을 앞두고 있었어요. 이미 결혼식 예정 날짜는 지나긴 했지만. 예비신랑이 출장 갔다가 오랜만에 와서 같이 밥을 먹고 소화시킬 겸 구경하자고 돌아다니다가 사람이 워낙 많아서 나오는 길에 그렇게 됐거든요. 근데 (사람들은) 그런 상황을 잘 몰라요. 그냥 단순히 나쁘게 얘기하면 ‘술 먹으러 놀러 갔다’, ‘이성을 꼬시러 갔다’ 이런 얘기들을 하지만 대체적으로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 상황은 제가 만나서 들었던 가족들 얘기로는 거의 없음에 수렴해요. 그렇다면 왜 이 친구들이 돌아오지 못했는지를 물어보는 게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더 들어요.

 


‘피해자’를 향한 비난의 말들

Q. 앞의 질문과 이어지는 맥락입니다. 이태원 참사 이후에는 유난히 피해자를 비난하는 말들이 많았습니다. 이태원이 가지는 공간적 특성 때문인지도 모르겠는데요. 희생자의 형제자매들도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해보았을까요?

A. 이태원은 저한테도 친구들과 맥주 한 잔 할 수 있는 굉장히 즐겁고 좋은 기억이 있는 곳이었거든요. 그 공간 자체가 그나마 젊은 친구들이 자유롭게 얘기하고 놀 수 있는 공간인데 뭔가 굉장히 나쁜 공간, 정상적이지 않은 행동을 하는 공간이라는 식으로 몰아간 측면이 있었어요. 개인적으로는 이런 부분이 많이 안타까웠고요. 1주기를 앞두고 지구촌 축제 등을 두고도 의견이 분분하잖아요. 제 생각에는 축제는 열리고 그 축제에 대해 사람들이 즐기는 게 오히려 좋다고 생각해요. 왜곡된 생각을 하는 건 그 공간에 가보지 못한 사람들의 편견이라고 봐요.

 


Q. 앞으로 이태원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에 대한 의견도 분분합니다.

A. 저는 과거와 똑같이 자유롭고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다만 이곳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걸 기억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슬픈 일이 일어났던 곳이긴 하지만 여전히 예술과 자유가 넘치는 공간이라는 성격을 다 함유할 수 있는 곳으로 발전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제일 힘들고 아픈 사람은 아니라는 다짐’

Q. 진우 씨는 이태원 참사를 겪으면서 ‘내가 제일 힘들고 아픈 사람은 아니라는 다짐’을 자주 했다고 했어요. 어떤 의미일까요.

A. 저희도 굉장히 힘들고 아프지만 다른 종류의 아픔과 슬픔도 많더라고요. 참사 전후가 많이 다른 게 그전에는 관심이 없던 부분도 더 눈에 밟히고 더 눈에 많이 보여요. 그래서 지금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정말 미약하기는 하지만 뭔가 도움이 되는 말이나 행동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 것 같아요.

 


Q.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있는데 사람들이 어떤 걸 기억해 줬으면 하나요?

A. 백 마디 말보다는 그날 이 친구들이 세상을 떠났던 그 공간을 한번 가보시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증을 가지게 될 거예요. 그 공간을 한번 가보시면 ‘왜 거기 갔느냐’가 아니라 ‘왜 돌아오지 못했냐’에 대한 답을 조금이나마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태원이라는 공간이 어떤 공간인지 몸소 느껴주셨으면 좋겠어요. 희생자들이 세상을 떠난 그곳이 정말 일상적인 공간이고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는 걸 눈으로 보면 느낄 수밖에 없거든요.

 


수많은 재난 참사에서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바꿨나

10·29 이태원 참사 작가기록단 중 한 명인 유해정 인권기록센터 사이 활동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태원 참사 이후 피해자들을 책망하는 말들이 많았어요. 대표적인 질문이 "거기 왜 갔어"라는 것이고요. 그런데 피해자를 책망하는 것으로는 사회는 변화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요. 이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제대로 된 책임을 물어야 하는 건 사실 돌아가신 분들에게는 어떤 이득이 되는 행위가 아니거든요. 일상의 공간을 살아갈 우리 모두의 안전과 존엄을 위한 일이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반복되는 참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예비 피해자가 아닌 사람은 과연 누굴까요. 수많은 재난 참사에서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바꿨나 하는 자괴감은 비단 유가족과 생존자들의 것만은 아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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